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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 유서대필 의혹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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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 사건은 1991년, 김기설의 분신자살 후 검찰이 강기훈을 유서 대필 혐의로 기소한 사건이다. 검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 감정 결과를 근거로 강기훈이 김기설의 유서를 대신 작성하여 자살을 방조했다고 주장했다.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2015년 대법원은 국과수 필적 감정의 신뢰성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고문 및 조작 의혹, 국과수의 편파적인 감정 의혹 등 많은 의혹을 남겼으며, 관련 인물들의 정치적 행보와 함께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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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 유서대필 의혹사건
사건 개요
사건명강기훈 유서대필 의혹 사건
관련 인물김기설
강기훈
발생 시기1991년
종결 시기2015년
재판 정보
대법원 확정 판결2015년 5월 14일, 무죄 확정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결정
결정 내용강기훈 유서대필 의혹 사건 진실규명결정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관련 기사
동아일보유서대필 강기훈 24년 만에 무죄 확정
경향신문‘유서대필 사건’ 강기훈씨 무죄…대법원, 상고 기각

2. 시대 배경

1991년은 노태우 정권 집권 후반기로, 3당 합당 등 정치적 격변기였다. 수서지구 특혜분양, 국회의원 뇌물외유, 대구 낙동강 페놀 방류 등 각종 비리사건이 발생하던 중 강경대 치사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4.27 범국민대책회의가 결성되었고, 6월 29일까지 약 60여 일간 전국에서 집회와 시위가 일어나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가 매우 높았다.

4월 3일 경원대 천세용, 4월 29일 전남대 박승희, 5월 1일 안동대 김영균, 5월 8일 김기설 등 여러 명이 분신, 투신, 의문사로 사망하였다.

정권에 항의하는 분신이 연일 계속되자 일부 언론에서는 운동권 사이에 죽음을 찬미하는 소영웅주의, 허무주의적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지하는 “죽음의 굿판 당장 걷어치워라”는 글을 발표했고, 예수회 신부인 서강대학교 박홍 총장은 “지금 우리 사회에는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며 성경 위에 손을 올리고 기자회견을 벌이기도 했다.[3][8]

3. 사건 경과

1991년 5월 8일 아침 8시 7분 경 김기설은 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학교 본관 5층 옥상에서 분신 후 16.5m 아래로 투신하여 아침 8시 25분 경 사망하였다. 옥상에서는 “단순하게 변혁 운동의 도화선이 되고자 함이 아닙니다. 역사의 이정표가 되고자 함은 더욱이 아닙니다……”로 시작되는 유서 2장이 발견되었다.

검찰은 강기훈을 유서대필자로 지목하여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감정 결과를 근거로 자살방조 혐의와 이적단체 가입, 이적 표현물 소지 등의 혐의로 기소하여, 1992년 7월 24일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되었다.[3]

4. 검찰 측 주장

검찰은 강기훈이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사회부장 김기설이 1991년 4월 26일 강경대 쇠파이프 치사 사건으로 재야 운동권 및 반정부 투쟁 분위기가 조성되자, 민중을 자극하여 고조된 반정부 투쟁 분위기를 더욱 확산시키기 위해 분신자살을 계획한 것을 알고 김기설 명의의 유서 2매를 작성하여 분신자살을 방조했다고 주장했다.[3]

5. 재판 과정 및 참여 인물

재판은 강기훈에게 유죄를 선고했고, 1심에서 징역 3년, 자격정지 1년 6월이 선고되어 3심에서 원심대로 확정되었다.[10] 재판에 참여한 인물은 다음과 같다.[11]

직책참여자
법원서울지방법원노원욱, 정일성, 이영대
서울고등법원임대화, 윤석종, 부구욱
대법원박우동, 김상원, 박만호, 윤영철
대검찰청
(강력부)
총지휘 부장검사 강신욱, 주임검사 신상규, 실무검사 송명석, 윤석만
변호사김창국 등 3명



당시 법무부장관은 검사 출신 김기춘이었고, 그는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당시 수사검사는 강신욱, 신상규, 송명석, 안종택, 남기춘, 임철, 곽상도, 윤석만, 박경순 등 9명이다. 안종택 검사는 공안부 소속 검사로서 유서대필 부분 수사에는 관여하지 않고, 경찰에서 별도로 송치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만 추가 기소하였다.

강신욱 당시 강력부장은 대법관을 지내고 2007년 박근혜 대선캠프에서 법률지원특보단장을 역임했다. 신상규 검사는 동덕여대 이사장이고, 남기춘 검사 역시 박근혜 캠프에서 클린검증 소위원장을 맡았고, 곽상도 검사는 박근혜 후보의 ‘싱크탱크’로 알려진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에 참여했다. 곽상도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후 현재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12] 윤석만 검사는 대전지역에서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출마했으며,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외곽 조직 대전희망포럼 대표로 있다. 임철 검사는 2008년 총선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13]

5. 1. 1심 (서울지방법원)

직책참여자
법원부장판사 노원욱, 배석판사 정일성, 이영대



1심에서 징역 3년, 자격정지 1년 6월이 선고되었다.[10]

5. 2. 항소심 (서울고등법원)

항소심 재판부는 부장판사 임대화(1942년 충남 대덕), 판사 윤석종(1954년 서울), 부구욱(1952년 부산)으로 구성되어 원심을 유지했다.[11]

직책참여자
서울고등법원부장판사 임대화(1942년 충남 대덕), 판사 윤석종(1954년 서울), 부구욱(1952년 부산)


5. 3. 상고심 (대법원)

대법관 박우동(1934년 경남 함안), 김상원(1933년 경기 이천), 주심 대법관 박만호(1936년 경북 의성), 윤영철(1937년 전북 순창)은 원심을 확정하였다.[10][11]

5. 4. 검찰 측

직책참여자
총지휘 부장검사강신욱
주임검사신상규
실무검사송명석, 윤석만



당시 법무부장관은 검사 출신 김기춘이었고, 그는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다. 당시 수사검사는 강신욱, 신상규, 송명석, 안종택, 남기춘, 임철, 곽상도, 윤석만, 박경순 검사 등 9명이다. 안종택 검사는 공안부 소속 검사로서 유서대필 부분 수사에는 관여하지 않고, 경찰에서 별도로 송치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만 추가 기소하였다.[12]

강신욱 당시 강력부장은 대법관을 지내고 2007년 박근혜 대선캠프에서 법률지원특보단장을 역임했다. 신상규 검사는 동덕여대 이사장이고, 남기춘 검사 역시 박근혜 캠프에서 클린검증 소위원장을 맡았고, 곽상도 검사는 박근혜 후보의 ‘싱크탱크’로 알려진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에 참여했다. 곽상도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후 현재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윤석만 검사는 대전지역에서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출마했으며,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외곽 조직 대전희망포럼 대표로 있다. 임철 검사는 2008년 총선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13]

5. 5. 변호인단

김창국 등 3명이 변호인단을 구성하였다.[11]

6. 재판 결과 (재심)

2015년 5월 14일 대법원은 강기훈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의 필적 감정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감정인이 필적 감정 결과를 번복하고, 법정에서 위증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검찰의 증거만으로는 강기훈의 유서 대필 혐의를 입증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4]

감정인 김형영은 1991년 5월과 7월 두 차례 낸 감정서에서 강기훈이 단국대 화학과 재학 시절 쓴 화학노트 필적도 유서의 필적과 동일하다고 했지만, 2007년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 당시 “화학노트의 경우 유서와 동일 필적의 특징을 찾기가 대단히 어려웠고, 유서와 단순하게 비교하면 상이한 점이 많았다”며 번복했다. 또한 감정인이 혼자 필적 감정을 했으면서 국과수 소속 감정인 4명이 공동으로 유서를 심의한 것처럼 법정에서 위증한 것도 감정 결과를 믿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되었다.[4]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강기훈이 유서를 대신 써 김기설의 자살을 방조했다는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충분히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한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며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4]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서울고법)과 마찬가지로 감정 조작 여부나 유서 작성자를 판단하지 않은 채 사건을 마무리했다. 서울고법은 “강기훈과 김기설의 필적 감정결과와 유서 내용 등을 종합할 때, 이 사건 유서는 김기설이 직접 작성한 것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고만 언급했다.[4]

강기훈이 24년 만에 누명을 벗게 된 데는 김기설의 친구가 2005년 경찰청 과거사위원회에 낸 김기설의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이 결정적이었다. 이를 토대로 2007년 국과수는 1991년 사건 때와 다른 결과를 내놓았고 이는 법정에서 강기훈의 무죄로 연결됐다.[4]

7. 의혹 사항

검찰 수사 과정에서 강기훈은 밤샘 조사를 받았고, 참고인도 강압적으로 조사를 받는 등 고문, 가혹 행위 및 조작 의혹이 제기되었다.[3]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가 문서 감정 처리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편파적인 필적 감정을 했다는 의혹이 있다.[3]

8. 관련 인물들의 정치적 행보 (보수 진영)

당시 법무부 장관은 검사 출신 김기춘이었고, 그는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다.[12] 수사를 담당했던 강신욱 검사는 대법관을 지내고 2007년 박근혜 대선 캠프에서 법률지원특보단장을 역임했다.[12] 신상규 검사는 동덕여대 이사장을 지냈고, 남기춘 검사는 박근혜 캠프 클린검증 소위원장을 맡았다.[12] 곽상도 검사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 민정수석,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역임했다.[12] 윤석만 검사는 새누리당 예비후보로 출마했으며, 박근혜 지지 조직 대표를 맡았다.[13] 임철 검사는 한나라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했다.[13]

9. 기타

1992년 2월 1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 감정 책임자였던 김형영이 뇌물을 받고 허위감정을 한 혐의로 구속되었다.[3] 이 사건은 1890년대 프랑스에서 발생한 드레퓌스 사건과 비슷하여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렸다.[3]

참조

[1] 뉴스 강기훈과 그들의 24년 https://news.naver.c[...] 시사IN 2015-05-18
[2] 뉴스 https://news.naver.c[...]
[3] 웹인용 강기훈 유서대필의혹 사건 진실규명결정 http://www.jinsil.go[...]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2012-04-29
[4] 뉴스 대법, 국과수 필적 감정에 허점 인정… 감정 조작 가능성은 언급 안 해 http://www.hankookil[...] 한국일보 2015-05-14
[5] 웹인용 유서대필 강기훈 24년 만에 무죄 확정 https://www.donga.co[...] 2024-04-20
[6] 뉴스 ‘유서대필 사건’ 강기훈씨 무죄…대법원, 상고 기각 http://news.khan.co.[...] 2015-05-14
[7] 웹사이트 http://www.ohmynews.[...]
[8] 웹인용 영안실서 김귀정 주검 지키며 경찰 침탈 맞서 / 박정기 http://www.hani.co.k[...] 한겨레 2012-04-29
[9] 뉴스 그들은 왜 유서대필사건을 만들었나? http://www.nocutnews[...] 2015-05-14
[10] 판례 대법원 1992. 7. 24. 선고 92도1148 【자살방조,국가보안법위반】 https://ko.wikisourc[...]
[11] 간행물 강기훈을 유죄로 만든 판검사들 2012-09-19
[12] 뉴스 무죄확정 '유서대필 사건' 수사 검사들은 '승승장구' http://www.yonhapnew[...] 2015-05-14
[13] 뉴스 한국판 ‘드레퓌스사건’ 검사들이 왜 박근혜 캠프에… http://www.mediatoda[...] 미디어오늘 201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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