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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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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윤석양은 1966년 전라북도 익산에서 태어나 학생운동에 참여했으며, 1990년 군 복무 중 국군보안사령부의 민간인 사찰 자료를 가지고 탈출하여 양심선언을 했다. 그는 1990년 10월 한국기독교협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내용을 폭로했으며, 이로 인해 국방부 장관과 보안사령관이 경질되고 보안사령부의 명칭이 국군기무사령부로 변경되는 등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군무 이탈 혐의로 체포되어 수감되었으며, 출소 후 노동운동을 하다가 결혼했다. 2011년 영화 《모비딕》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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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양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윤석양
원어명尹錫洋
로마자 표기Yoon Seok-yang
출생일1966년
출생지익산시, 전라북도
국적대한민국
직업군인
병역대한민국 육군
소속국군보안사령부
활동 기간1990년 ~
경력내부고발자
알려진 이유내부 고발
주요 활동국군보안사령부의 민간인 사찰에 대한 언론 인터뷰

2. 초반 생애 및 학생운동

1966년, 그는 전라북도 익산에서 태어났다.[1] 그는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2. 1. 군 입대 및 보안사 근무

1990년 5월 1일 대한민국 육군 현역병으로 입대하였다.[6][1] 육군 제3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6주간 훈련받고 1990년 6월 20일 강원도 철원의 자대에 배치받았다.[6] 소대원으로 복무 중이던 7월 3일, 연대 인사과장에게 불려가 대공상담소라고 적힌 보안부대에서 계장 이승섭과 반장 김효수에게 혁노맹 활동과 다른 조직원의 신상을 자백하라고 심문당하였다.[6] 이후 서울특별시에 있는 서빙고 분실로 옮겨져 7월 5일부터 계장 이승섭, 부장 이덕렬, 반장 김효수 등에게 추가 심문을 받았다.[6]

국군보안사령부의 협조와 신임을 얻은 후, 1990년 8월 22일 장자동에 있는 보안사로 이동하였다.[6] 서빙고 분실로 다시 와서 보안사 대공처 수사3과 분석반에서 과장 김용성, 계장 이승섭, 부장 이덕렬, 박대호, 조재은과 함께 근무하였다.[6] 여기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을 비롯한 민간인 1,303명에 대한 사찰 자료(카드, 디스켓)를 확보하였다.[6] 1990년 9월 23일 새벽, 이 자료들을 가지고 보안사를 탈출하였다.[6][1]

3. 양심선언

윤석양은 1990년 10월 4일 한국기독교협의회(KNCC) 소속 인권 위원회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군보안사령부의 민간인 사찰 내용을 폭로했다.[8] 그는 보안사가 정치인, 언론인, 교수, 학생 등 1,300여 명을 대상으로 사찰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2] 당시 그가 공개한 자료에는 주택 구조, 출입 경로, 친인척 주소 등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는 비상계엄 상황에 대비하여 정부가 이들을 즉시 체포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 둔 자료였다.[2]

3. 1. 양심선언 전개 과정

윤석양은 국군보안사령부를 탈출한 뒤 한국기독교협의회(KNCC)를 찾아가 양심선언문과 80일간의 국군보안사령부 체험을 정리했다.[7] 9월 24일 저녁에는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기관지 〈언론노보〉 기자로 일하던 대학 1년 선배인 양정철에게 전화했고, 다음날인 9월 25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모처에서 만나 국군보안사령부에서 사찰 자료를 들고 나온 사실을 밝혔다.[7] 자료를 받은 양정철은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사무실에 돌아와 권영길 위원장 등 간부들과 심야에 대책을 회의했다.[7] 9월 26일 양정철은 〈한겨레〉 경제부에 근무하던 대학 학보사 선배인 기자 이인우에게 사찰 자료를 건넸다.[7] 기자 이인우는 〈한겨레〉 편집국장 성유보에게 내용을 보고했고, 경찰청 출입 기자 김종구, 기자 이인우, 기자 김성걸, 사진부 기자 곽윤섭으로 특별 취재팀이 구성됐다.[7] 사전 취재를 통해 취재팀은 윤석양의 양심선언 후 서울대학교 근처에 있는 호프집 모비딕을 위장 운영하던 보안사령부의 사찰 활동을 확인해 보도하게 된다.[7]

윤석양은 1990년 10월 4일 한국기독교협의회 소속 인권 위원회 사무실에서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내용을 폭로했다.[8] 그는 "기무사가 정치인, 언론인, 교수, 학생 등 1300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찰을 진행하고 있다"고 폭로했다.[2] 당시 그가 공개한 자료에는 주택 구조, 출입 경로, 친인척 주소 등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비상계엄 상황에 대비하여 정부가 미리 준비해 둔 자료로, 즉시 체포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2]

3. 2. 양심선언의 영향

1990년 10월 4일, 윤석양은 한국기독교협의회 인권위원회 사무실에서 국군보안사령부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했다.[8] 이 사건으로 당시 정국의 최대 현안이었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관철되었고,[8] 국방부 장관 이상훈과 보안사령관 조남풍이 경질되었다.[8] 또한 국군보안사령부의 명칭이 국군기무사령부로 변경되었다.[8]

윤석양의 양심선언은 군사독재 정권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하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윤석양이 공개한 자료에는 정치인, 언론인, 교수, 학생 등 1300여 명의 민간인에 대한 광범위한 사찰 내용이 담겨 있었으며,[2] 여기에는 주택 구조, 출입 경로, 친인척 주소 등이 포함되어 비상계엄 시 즉시 체포할 수 있도록 준비된 자료였다.[2]

반면, 윤석양의 폭로는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행위였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군의 정치 개입은 시대적 상황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폭로 이후 윤석양은 한국기독교협의회에서 보호를 받다가,[8] 1991년 5월 지역 신문사 편집부로 자리를 옮겨 1992년 3월까지 기자로 활동했다.[8] 2년여의 수배 생활 끝에 1992년 9월 23일 대구시에서 국군기무사령부 요원들에게 체포되어 군무 이탈 혐의로 구속되었다.[3]

4. 양심선언 이후

4. 1. 체포 및 수감

1992년 9월 23일 오후 9시 20분, 대구시 남구 대명10동 1647-7 박서방회집에서 윤석양후원사업회 사무국장 양승균과 저녁 식사를 하던 중 국군기무사령부와 대구 헌병대 요원 등 7명에게 강제로 연행되었다.[8] 군형법상 군무 이탈 혐의로 육군 제3보병사단 헌병대에 입창돼 구속당했다.[8] 윤석양은 2년여의 수배 생활 동안 노동을 통한 건강한 운동적 삶을 살려고 노력했으나, 군 입대 후 보안사령부의 강요로 학생운동 조직 수사에 협조했던 기억에 심적 갈등을 겪었다고 밝혔다.[8]

5. 출소 후

1994년 10월 2년 형기를 마치고 공주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하였다.[4] 복학하여 학교를 졸업하고 상명대학교를 자퇴한 후 반월공단에서 4년간 노동운동을 하면서 여공으로서 생활했던 김미화와 1996년 6월 14일에 혼인했다.

6. 기타

윤석양의 의모 민인숙은 전 충청남도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 군수 한준수와 재혼했다.[9]

7. 작품

영화 「모비딕」(2011, 감독 박인제)의 실제 주인공이다.

참조

[1] 뉴스 "나에겐 아직도 갚아야 할 빚이 있다." http://newslibrary.n[...] 1990-10-13
[2] 뉴스 1990년 위기 몰린 노태우, 범죄와 전쟁 선포 http://news.donga.co[...] 2017-10-12
[3] 뉴스 윤석양은 누구?...국군 보안사 민간인 불법 사찰 양심선언 http://daily.hankook[...] 2017-10-12
[4] 뉴스 전 수사관 양심선언…기무사 '민간인 사찰 실태' 폭로 http://news.jtbc.joi[...] 2017-10-11
[5] 저널 분단조국 그리고 윤석양의 삶 2012-09-07
[6] 저널 나에겐 아직도 갚아야 할 빚이 있다 2012-09-07
[7] 웹인용 ‘모비딕’의 숨은 또 다른 주인공 http://www.hani.co.k[...] 한겨레 2012-09-08
[8] 저널 윤석양의 수배일기 2012-09-07
[9] 뉴스 내부고발자 실상 알면 양심선언 못해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12-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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