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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희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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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강석희는 1960년 서울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유학한 대한민국의 작곡가이다. 윤이상에게 사사했으며, ISCM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부회장을 역임했다. 1969년 한국 최초로 전자 음악을 소개했고,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진은숙 등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1982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대학교에서 가르쳤으며, 2020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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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희 (작곡가)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강석희
로마자 표기Kang Seokhui
한글 표기강석희
한자 표기姜碩煕
출생일1934년 10월 22일
출생지일제강점기 경성부
사망일2020년 8월 16일
사망지서울특별시
직업작곡가, 서울대학교 음대 교수
학력
고등학교서울공립공업중학교 재학 중 한국전쟁 발발, 경북 안동고등학교 졸업
대학교서울대학교 작곡과 학사
대학원독일 하노버 국립 음악연극미디어대 음악학 석사, 독일 베를린국립예술대학교 음악학 석사, 독일 베를린공대 전자음악공학과 공학 석사
경력
활동 분야클래식, 현대 음악
소속국제현대음악협회 (ISCM)
수상
훈장대한민국 국민훈장
가족
자녀강호정(장남), 강화성(차남)
음반 정보
레이블Poly Music Co., Poly Classics

2. 학력

3. 경력

강석희는 1960년 서울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하고 1982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대학교 작곡과 교수로 재직했다. 1969년 한국 최초로 전자 음악을 소개했고, ISCM 아시아 최초 부회장을 역임했으며,[1] 범음악제를 창설하는 등 한국 현대 음악계의 선구자였다. 2020년 8월 16일 서울에서 사망했다.[7]

3. 1. 해외 활동

강석희는 1970년대에 독일에서 유학했으며, 베를린 예술대학교에서 윤이상에게 배웠다. 1970년부터 1980년대까지 주로 독일에서 창작 활동을 했으며, Edition Modern(현 리코르디)에서 실내 앙상블을 위한 "Buru"와 같은 작품을 출판했다.[1] 그는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라고 강조하며, 체계적인 재료 조작을 중시했다. 이러한 방법론은 전자 음악 작곡에도 변함없이 적용되었다.[2][3]

서울 올림픽 이후,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1996–97, Max Eschig), 첼로 협주곡 "베를린" (2002, Edition Gravis),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연쇄 반응" (2004, Edition Gravis) 및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2010, Edition Gravis)과 같은 대규모 작품을 발표했다. 1990년대에는 Max Eschig로 이적했다.[4]

2006년부터 일본 쇼비 대학교에서 정기 특별 강좌를 열었는데, 이곳은 그의 제자 오무라 테츠야가 과거에 근무했던 곳이자, 이토 겐이치로의 모교이기도 하다. 2004년에는 그의 70세 생일을 기념하는 콘서트가 전 세계에서 열렸다. 2000년대에는 Edition Gravis로 돌아와 신작을 출판했다.[5]

최근 몇 년 동안 그는 배음 관계를 사용하여 미분음 간격을 탐구하는 데 열정적이었으며, 평균율 화성에 의존하지 않는 협화음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그의 작품은 여전히 Ricordi, Durand-Salabert-Eschig,[6] 및 Edition Gravis에서 출판되지만, 다른 출판사에서 CD 컬렉션 판매 및 음원 스트리밍은 드물며, 정당한 평가는 지연되고 있다.

3. 2. 국내 활동

강석희는 1960년 서울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하고 1970년대에 독일 유학을 떠났다. 귀국 후 1982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대학교에서 작곡을 가르치며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1] 진은숙이 그의 가장 유명한 제자였고, 이상원이 마지막 제자였다.[5]

1969년 한국 최초로 전자 음악을 소개했으며,[1] 범음악제를 창설하는 등 한국 현대 음악계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서울 올림픽 이후에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1996–97, Max Eschig), 첼로 협주곡 "베를린" (2002, Edition Gravis),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연쇄 반응" (2004, Edition Gravis) 및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2010, Edition Gravis)과 같은 대규모 작품을 발표했다.[4]

또한 가야금 연주자 한테라를 가르치는 등, 그의 음악 작곡에 한국 전통 음악 요소를 도입하기도 했다.[2]

2004년에는 그의 70세 생일을 기념하는 콘서트가 전 세계에서 열렸고,[5] 2007년에는 세 번째 음악극 "지구에서 금성으로"가 서울에서 초연되었다.[5] 70세 이후에도 창작 활동을 활발히 펼치며 한국 작곡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었다.[5]

4. 주요 작품

강석희는 1960년 서울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하고 1970년대에 독일에서 유학했다. 베를린 예술대학교에서 윤이상에게 배웠으며, 1969년 한국 최초로 전자 음악을 소개했다.[1] ISCM에서 아시아인 최초의 부회장을 역임했다. 그의 음악에는 한국 전통 음악 요소가 도입되었으며, 가야금 연주가 한테라 역시 그의 제자였다.

4. 1. 1970년대-1980년대 (독일 활동 시기)

강석희는 1970년부터 1982년까지 주로 독일에서 창작 활동을 했다. 이 시기에 Edition Modern(현 리코르디)에서 실내 앙상블을 위한 "Buru"와 같은 작품을 출판했다.[1] 그는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라고 말했듯이, 체계적인 재료 조작을 강조했다. 이러한 방법론은 전자 음악 작곡에도 변함없이 적용되었다.[2][3] 1982년 한국으로 돌아왔으며, 1980년대에는 Edition Gravis로 이적했다. 그는 가끔 다른 출판사와 계약을 맺기도 했다.[9][10]

4. 2. 1990년대 이후

서울 올림픽 이후, 그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1996–97, Max Eschig), 첼로 협주곡 "베를린" (2002, Edition Gravis),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연쇄 반응" (2004, Edition Gravis) 및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2010, Edition Gravis)과 같은 대규모 작품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엘렉톤 음악을 적극적으로 홍보했으며, 오페라 "초월" (1993–94)의 일본 초연은 엘렉톤 앙상블 버전으로 공연되었다. 1990년대에는 Max Eschig로 이적했다.[4]

1982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대학교에서 가르쳤으며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제자는 진은숙이었고, 마지막 제자는 이상원이었다. 2006년부터는 일본 쇼비 대학교에서 정기 특별 강좌를 열었는데, 이곳은 그의 제자 오무라 테츠야가 과거에 근무했던 곳이자, 이토 겐이치로의 모교이기도 하다. 2004년에는 그의 70세 생일을 기념하는 일련의 콘서트가 전 세계에서 열렸다. 70세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창작 활동을 활발히 펼쳤으며, 한국 작곡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거물이었다. 2007년에는 세 번째 음악극 "지구에서 금성으로"가 서울에서 초연되었다. 2000년대에는 Edition Gravis로 돌아와 신작을 출판했다.[5]

최근 몇 년 동안 그는 배음 관계를 사용하여 미분음 간격을 탐구하는 데 열정적이었으며, 평균율 화성에 의존하지 않는 협화음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앞에서 언급한 구조주의적 접근 방식은 더욱 성숙해졌다. 그의 작품은 여전히 Ricordi, Durand-Salabert-Eschig,[6] 및 Edition Gravis에서 출판되지만, 다른 출판사에서 CD 컬렉션 판매 및 음원 스트리밍은 드물며, 정당한 평가는 지연되고 있다.

5. 음악적 특징

강석희는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라고 강조하며, 체계적인 재료 조작을 중시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전자 음악 작곡에도 일관되게 적용되었다.[1]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주로 독일에서 활동하며 Edition Modern(현 Ricordi)에서 실내 앙상블을 위한 "Buru"와 같은 작품을 출판했다.[8] 1980년대에는 Edition Gravis로 이적했다.[2][3]

서울 올림픽 이후,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1996–97, Max Eschig), 첼로 협주곡 "베를린" (2002, Edition Gravis) 등 대규모 작품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엘렉톤 음악을 적극적으로 홍보했으며, 오페라 "초월" (1993–94)의 일본 초연은 엘렉톤 앙상블 버전으로 공연되었다.[11] 1990년대에는 Max Eschig로 이적했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는 배음 관계를 이용한 미분음 간격 탐구에 열정적이었으며, 평균율 화성에 의존하지 않는 협화음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의 구조주의적 접근 방식은 더욱 성숙해졌다. 그의 작품은 Ricordi, Durand-Salabert-Eschig,[13] 및 Edition Gravis에서 출판되지만, CD 컬렉션 판매 및 음원 스트리밍은 드물어 정당한 평가가 지연되고 있다.

6. 제자

강석희는 1982년부터 2000년까지 서울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진은숙, 이상원, 한테라 등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5][2] 2006년부터는 제자 오무라 테츠야가 과거에 근무했던 일본 쇼비 대학교에서 정기 특별 강좌를 열었다.[5]

7. 저서

8. 수상 및 기념

강석희는 ISCM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부회장을 역임했다.[1] 1969년 한국 최초로 전자 음악을 소개한 작곡가였다. 2004년에는 그의 70세 생일을 기념하는 콘서트가 전 세계에서 열렸다.[5]

참조

[1] 웹사이트 Kang, Sukhi https://iscm.org/hon[...] 2021-05-16
[2] 웹사이트 Kang Sukhi https://www.verlag-n[...] 2021-04-01
[3] 간행물 Kang Sukhi https://katalog.slub[...] 1980
[4] 웹사이트 東京室内歌劇場26期第82回公演 https://opera.tosei-[...] 2020-08-16
[5] 웹사이트 Kang Sukhi, Edition gravis https://www.editiong[...] Edition Gravis 2020-08-18
[6] 웹사이트 Kang Sukhi, Durand salabert esching https://www.durand-s[...] Durand-Salabert-Eschig 2020-08-18
[7] 웹사이트 한국 현대음악의 대가로 불리는 강석희 서울대 작곡가 명예교수가 16일 새벽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6. http://www.hani.co.k[...] 2020-08-16
[8] 웹사이트 Katalogsuche https://www.ricordi.[...] www.ricordi.com 2020-08-18
[9] 웹사이트 Kang Sukhi https://www.verlag-n[...] /www.verlag-neue-musik.de 2021-04-01
[10] 웹사이트 Kang Sukhi https://katalog.slub[...] katalog.slub-dresden.de 2021-04-01
[11] 웹사이트 東京室内歌劇場26期第82回公演 https://opera.tosei-[...] opera.tosei-showa-music.ac.jp 2020-08-16
[12] 웹사이트 Kang Sukhi https://www.editiong[...] Edition Gravis 2020-08-18
[13] 웹사이트 Kang Sukhi https://web.archive.[...] Durand-Salabert-Eschig 2020-08-18
[14] 웹사이트 한국 현대음악의 대가로 불리는 강석희 서울대 작곡가 명예교수가 16일 새벽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6. http://www.hani.co.k[...] www.hani.co.kr 2020-08-16
[15] 뉴스 작곡가 강석희(1934~ ) http://www.joongang.[...] 2010-10-17
[16] 뉴스 "[장병욱의 쪽빛보다 푸르게] <28> 가야금 주자 한테라와 그의 스승 작곡가 강석희" https://news.naver.c[...] 2017-04-01
[17] 뉴스 백남준의 음악세계는? 2009-09-23
[18] 웹인용 "'한국 현대음악 거장' 작곡가 강석희 별세…향년 86세" https://www.ytn.co.k[...] 2020-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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