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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렌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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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렌쥬(御簾中)는 일본에서 에도 시대에 다이묘의 정실을 부르던 호칭이다. 헤이안 시대에는 귀족 여성들이 이성에게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해 발이나 휘장을 사용한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으나, 당시 문헌에서는 귀인의 정실을 고렌쥬라고 칭한 예는 없다. 에도 시대에는 쇼군 후계자, 고산케의 정실에게 격식을 갖춰 사용되었으며, 다이묘의 지위에 따라 다른 호칭이 사용되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막번 체제의 붕괴와 함께 이 호칭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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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렌쥬
고렌쥬
정보
가나ごれんじゅう
한자 표기御簾中
로마자 표기Gorenjū
신분
신분미다이도코로(御台所)의 존칭

2. 에도 시대 이전

헤이안 시대 중기 이후, 귀족 여성은 부모 형제라 하더라도 함부로 이성에게 얼굴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습관이 정착되어, 발이나 휘장을 사이에 두고 사람을 만난 것이 어원으로 여겨진다. 다만, 헤이안 시대 문헌에서는 귀인의 정실 부인을 가리켜 "고렌쥬(御簾中)"라고 쓴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센고쿠 시대에는 센고쿠 다이묘의 부인을 가리켜 "고렌쥬"라고 기술한 문서를 볼 수 있다.

2. 1. 나라 시대 이전

나라 시대 이전에는 "고렌쥬(御簾中)"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다.

헤이안 시대 중기 이후, 귀족 여성은 부모 형제라 할지라도 함부로 이성에게 얼굴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습관이 정착되어, 발이나 휘장을 사이에 두고 사람을 만난 것이 어원으로 여겨진다. 다만, 헤이안 시대 문헌에서는 귀인의 정실 부인을 가리켜 "고렌쥬"라고 쓴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2. 2. 헤이안 시대

헤이안 시대 중기 이후, 귀족 여성은 부모 형제라 할지라도 함부로 이성에게 얼굴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습관이 정착되어, 발이나 휘장을 사이에 두고 사람을 만난 것이 어원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헤이안 시대 문헌에서는 귀인의 정실 부인을 가리켜 "고렌쥬"라고 쓴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2. 3. 센고쿠 시대

센고쿠 시대에는 센고쿠 다이묘의 부인을 가리켜 "고렌쥬"라고 기술한 문서가 보인다.

3. 에도 시대

에도 막부다이묘 통제 정책의 일환으로, 다이묘 정실의 호칭에도 등급을 매겼다. 쇼군의 정실을 미다이도코로라 불렀던 것처럼, 쇼군 후계자와 고산케의 정실은 "고렌쥬"라고 불렀다. 다만, 도쿠가와 이에나리의 정실 시마즈 야스히메는 처음에는 "오로쿠죠사마"로 불렸다.

이후 고산쿄가 설치되면서 고산쿄의 정실도 "고렌쥬"라고 불리게 되었다. 왕정복고의 대호령으로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쇼군직에서 물러나자, 막부는 그의 정실 호칭을 미다이도코로에서 고렌쥬로 바꾸도록 포고를 내렸다.

메이지 유신 이후, 막번 체제가 붕괴되면서 이러한 호칭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3. 1. 등급과 호칭

에도 막부다이묘 통제 정책의 일환으로, 그 정실의 호칭조차 등급을 매겼다. 쇼군 정실에게만 한정되었던 미다이도코로(御台所)와 마찬가지로, 격식이 있는 "고렌쥬"는 쇼군 후계자와 고산케의 정실에게만 사용되었다. 다만, 도쿠가와 이에나리의 정실 시마즈 야스히메는 입장이 미묘하여 처음에는 "오로쿠죠사마 (御縁女様)"로 불렸다.

고산쿄가 생긴 후에는 고산케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면서, 고산쿄의 정실도 "고렌쥬"라고 불리게 되었다. 왕정복고의 대호령으로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쇼군 사직이 인정되자, 막부는 호칭을 미다이도코로에서 고렌쥬로 바꾸도록 포고를 내렸다.

이외 다이묘의 정실은 10만 석 이상이면 "고젠사마(御前様)", 그 이하면 "오쿠가타(奥方)"였다. 쇼군의 딸을 정실로 맞이할 경우에는 남편의 관위에 따라 종3위 이상이면 "고슈덴사마(御守殿様)", 정4위상 이하면 "오스마이사마(御住居様)" 등 다른 호칭이 사용되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막번 체제가 붕괴되면서 이러한 호칭도 사라졌다.

3. 2. 그 외 다이묘의 정실

덧붙여, 이외의 다이묘의 정실은 10만 석 이상이면 "고젠사마", 그 이하면 "오쿠가타"였다. 또, 쇼군의 딸을 정실로 맞이할 경우에는 전혀 다른 호칭이 마련되었고, 남편의 관위가 종3위 이상이면 "고슈덴사마", 정4위상 이하면 "오스마이사마"였다.[1]

3. 3. 쇼군의 딸을 정실로 맞이한 경우

쇼군의 딸을 정실로 맞이한 경우에는 전혀 다른 호칭이 마련되었으며, 남편의 관위가 종3위 이상이면 "고슈덴사마 (御守殿様)", 정4위상 이하면 "오스마이사마 (御住居様)"였다.

4. 메이지 유신 이후

메이지 유신 이후, 막번 체제가 붕괴되면서 이러한 호칭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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