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도 (한국)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공수도(한국)는 전상섭이 오키나와 가라테를 배운 후 설립한 윤무관과 윤병인이 중국 권법과 가라테를 접목하여 창시한 창무관에서 시작되었다. 윤무관은 한국 전쟁 중 전상섭의 실종 후 지덕관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창무관은 윤병인의 수제자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1960년대 대한태권도협회의 통합 과정에서 공수도 강유도 스타일이 파생되었으나, 현재는 한국 외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창무관과 지덕관은 한국 무술계에 영향을 미쳤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공수도 - 카타
카타는 특정 기법의 체득을 돕는 체계적인 훈련 방식으로, 무술 분야에서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여 기술을 연마하며, 최근에는 소프트웨어 개발 등 다른 분야에서도 반복 훈련을 통한 기술 연마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공수도 (한국) | |
---|---|
기본 정보 | |
![]() | |
한자 표기 | 空手道 |
로마자 표기 | Gong-su-do |
개요 | |
종류 | 무술 |
기원 | 한국 |
관련 무술 | 태권도, 가라테 |
주요 기술 | 차기 권법 방어 품새 |
역사 | |
기원 | 일제강점기 가라테를 수련한 한국인들이 전파 |
발전 | 해방 이후 한국 무술로 발전, 태권도의 모체가 됨 |
현재 | 현재는 태권도에 흡수되어 명맥이 끊김 |
특징 | |
기술 체계 | 가라테와 유사한 기술 체계를 가짐 |
수련 방법 | 기본 자세, 품새, 겨루기 등을 수련 |
정신 | 예의, 인내, 극기 등을 중시 |
2. 창무관과 지덕관의 기원
일제강점기 한국의 무술가들은 일본 가라테와 중국 권법 등 다양한 무술을 접하며 창무관과 지덕관의 기원을 형성했다.
2. 1. 윤무관 (지덕관의 전신)
오키나와현의 가라테를 기친 후나코시에게 배운 '''전상섭'''이 윤무관을 설립하였다. 전상섭은 창무관 설립자 윤병인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전상섭과 윤병인은 여러 무술가들과 함께 훈련하기 위해 만주 등지로 여행을 다녔다. 그들은 서로 훈련을 많이 하여 형제로 알려지게 되었다.[1] 전상섭은 한국 전쟁 중 실종되었고, 이후 윤무관은 지덕관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한국 전쟁에서 전상섭이 실종된 후, 윤병인이 지덕관의 초대 관장으로 추대되었다.2. 2. 권법부/창무관
윤병인은 1947년 만주에서 몽골인 지도자로부터 중국 권법을 배우고, 이후 일본 니혼 대학 가라테 클럽에서 도야마 칸켄에게 가라테를 배웠다.[2] 윤병인은 도야마 칸켄과의 교류를 통해 권법과 가라테를 접목하여 자신의 무술을 창시하고 권법 공수도라 불렀는데, 이것이 창무관의 초기 명칭이다. 초기 창무관은 주로 중국 무술(권법)을 기반으로 팔극권의 영향을 받은 팔기권(발지권)을 가르쳤다.[2]한국 전쟁 중 윤병인이 실종되었지만, 그의 가르침은 수제자 이남석에 의해 이어졌으며, 이남석은 학교의 이름을 창무관으로 변경했다.[2] 윤병인의 다른 수제자인 박철희, 홍종표도 그의 가르침을 이어갔다.[2]
3. 창무관과 지덕관의 발전
1947년 만주에서 윤병인이 중국 권법을 바탕으로 권법 공수도를 창시하였다. 윤병인은 일본 니혼 대학에서 도야마 칸켄에게 가라테를 배우며 서로의 지식을 교환했다. 초기 창무관은 팔극권의 영향을 받은 팔기권(발지권)을 가르쳤다.[2] 한국 전쟁 중 윤병인이 실종되자, 수제자 이남석이 창무관으로 이름을 변경하여 가르침을 이었다. 윤병인의 또 다른 제자들인 박철희, 홍종표는 강덕원을 계승, 발전시켰다.
후나코시 기친에게서 가라테를 배운 전상섭은 윤무관을 설립했다. 전상섭은 윤병인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으며, 함께 만주까지 훈련을 다닐 정도로 형제처럼 지냈다.[1] 한국 전쟁 중 전상섭이 실종된 후, 윤무관은 지덕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윤무관의 제자들은 만주에서 권법을 수련한 윤병인을 지덕관의 초대 관장으로 선출했다.
3. 1. 창무관
1947년 만주에서 몽골인 지도자로부터 중국 권법을 배운 윤병인이 권법 공수도를 창시하였다. 이후 윤병인은 일본 니혼 대학 가라테 클럽에서 도야마 칸켄에게 가라테를 배웠다. 윤병인은 도야마에게 권법을, 도야마는 윤병인에게 쇼토칸 가라테를 가르치는 식으로 서로 지식을 교환하였다. 윤병인은 나중에 자신의 무술을 창시하여 권법 공수도라고 불렀다.[2]초기 창무관은 주로 중국 무술(권법)을 기반으로 하였으며, 팔극권의 영향을 받은 팔기권(발지권)을 가르쳤다.[2]
한국 전쟁 중 윤병인은 실종되었으나, 그의 가르침은 수제자 이남석에 의해 이어져 학교 이름이 창무관으로 변경되었다. 윤병인의 또 다른 제자들인 박철희, 홍종표(두 사람 모두 강덕원) 또한 그의 가르침을 계승, 발전시켰다.
3. 2. 지덕관
윤무관은 후나코시 기친에게서 오키나와현의 가라테를 배운 '''전상섭'''이 설립했다. 전상섭은 창무관 설립자인 윤병인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전상섭과 윤병인은 다른 무술가들과 함께 훈련하기 위해 만주까지 여행하기도 했다. 이들은 서로 많이 훈련하여 형제로 알려졌다.[1] 전상섭은 한국 전쟁 중 실종되었고, 이후 윤무관은 지덕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전상섭이 한국 전쟁에서 실종된 후, 윤무관의 제자들은 만주에서 권법을 수련한 윤병인을 지덕관의 초대 관장으로 선출했다.참조
[1]
웹사이트
Jidokwan history
http://www.taekwondo[...]
2013-05-30
[2]
웹사이트
history view of taekwondo
https://web.archive.[...]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