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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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공화춘은 1912년 인천에 개업한 중화요리 식당으로, 1908년 청나라 조계지에 건립된 건물을 사용했다. 산둥성 출신 화교 우희광이 개업했으며, 중화민국 수립을 기념해 '공화국 원년의 봄'이라는 뜻으로 이름 지어졌다. 1970년대까지 경인 지역 5대 중화요리점으로 명성을 얻었으나 1983년 폐업했다. 이후 건물은 짜장면 박물관으로 복원되어 개항기 인천 화교와 짜장면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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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춘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 | |
한글 | 공화춘 |
한자 | 共和春 |
가타카나 | 해당 없음 |
히라가나 | 해당 없음 |
로마자 표기 | 해당 없음 |
문화재 정보 | |
국가 | 대한민국 |
유형 | 국가등록문화재 |
그림 | Jajangmyeon Museum 20230430 001.jpg |
이름 | 인천 선린동 공화춘 |
번호 | 246 |
지정일 | 2006년 4월 14일 |
해지일 | 해당 없음 |
수량 | 1동 |
면적 | 846.26m² |
주소 | 인천광역시 중구 차이나타운로 56-14, 38-2 (선린동) |
소유자 | 인천광역시 중구청 |
시대 | 대한제국 |
문화재청 ID | 79,02460000,23 |
2. 역사
1883년 인천항 개항과 함께 인천광역시 중구 선린동 일대에 청나라 조계지가 설치되었고, 1908년경 산둥성 출신 장인들이 참여하여 중정(中庭)을 갖춘 2층 건물인 공화춘을 건립하였다.[5] 초기에는 무역상들의 숙소로 사용되다가, 1912년 산둥성 출신 화교 우희광이 '산동회관'이라는 숙식업소를 개업한 후, 중화민국 수립을 기념하여 '공화춘'으로 이름을 바꾸고 중화요리 식당으로 운영하였다.[5][6] 공화춘은 1970년대까지 경인 지역 5대 중화요리점 중 하나로 명성을 날렸으나, 1983년 폐업하였다.[6] 이후 다른 한국인이 '공화춘'이라는 이름으로 새 점포를 열었고, CJ는 상표권을 구매하려다 GS25에 넘겼다.[7] 2012년 4월 28일, 공화춘 건물은 짜장면 박물관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8]
2. 1. 설립과 초기 발전 (1908년 ~ 1949년)
1883년 인천항이 개항하면서 현재 인천광역시 중구 선린동 일대에는 청나라 조계지가 설치되었다. 1908년 무렵, 청나라 조계지에 산둥성 출신 장인들이 참여하여 중정(中庭, 건물 안의 뜰)을 갖춘 2층 건물을 지었는데, 이것이 바로 공화춘 건물의 시작이었다.[5] 처음에는 무역상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객잔(客棧)으로 사용되었다.[5]1912년, 산둥성 출신 화교 우희광(1886년 ~ 1949년)이 중화요리 식당을 개업하였다.[5] 처음에는 '산동회관'(山東會館)이라는 이름의 숙식업소였으나, 1912년경 중화민국 수립을 기념하여 '공화춘'(共和春, 공화국 원년의 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6] 공화춘이 현재 위치로 이전한 것은 빠르면 1917년, 늦어도 1934년으로 추정된다.[6]
2. 2. 번영과 폐업 (1950년대 ~ 1983년)
공화춘은 1970년대까지 경인 지역 5대 중화요리점 가운데 하나로 명성을 유지하였다.[6] 1983년에 폐업하였고, 이후 다른 한국인이 인근에 '공화춘'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점포를 열었다.[7]2. 3. 폐업 이후와 짜장면 박물관 (1984년 ~ 현재)
1983년 공화춘이 폐업한 이후, 다른 한국인이 인근에 '공화춘'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점포를 열었다. CJ는 로열티를 제공하고 현 공화춘 대표로부터 상표권을 구매하여 독자 사업을 구상하다가 GS25에 상표 사용권을 넘겼다.[7][3]2012년 4월 28일, 복원 과정을 거쳐 공화춘 건물이 짜장면 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박물관은 7개소의 전시 공간과 기획전시실을 갖추어 개항기 인천의 화교와 짜장면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또한 1960년대 공화춘 주방을 재현하였으며, 기획전시실은 공화춘의 창립자 우희광을 기념하여 '우희광 기념홀'로 명명하였다.[8][4]
3. 짜장면의 개발과 대중화
1912년 산둥성 출신의 화교 우희광(于希光, 1886년 ~ 1949년)이 중화민국 수립을 기념하여 '공화춘(공화국 원년의 봄)'이라는 이름으로 중화요리 식당을 개업하였다.[5] 공화춘은 초창기에는 무역상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객잔이었던 산동회관(山東會館)에서 출발하였으며, 이후 현재의 위치(빠르면 1917년, 늦어도 1934년으로 추정)로 이전하여 중화요리 전문점으로 변모하였다.[6]
공화춘은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짜장면을 개발하고 대중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1970년대까지 경인 지역 5대 중화요리점 중 하나로 명성을 떨쳤으며,[6] 1983년에 폐업하였다.[5] 이후 다른 한국인이 인근에 '공화춘'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점포를 열었다.[7]
2012년 4월 28일, 공화춘 건물은 복원 과정을 거쳐 짜장면 박물관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8] 박물관에서는 개항기 인천 화교와 짜장면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으며, 1960년대 공화춘 주방의 모습도 재현되어 있다.[8]
4. 사진
참조
[1]
뉴스
부둣가 끼니거리에서 국민음식 된 짜장면
http://news.naver.co[...]
동아일보
2012-05-01
[2]
뉴스
짜장면과 공화춘
http://www.kyeongin.[...]
경인일보
2012-08-20
[3]
뉴스
'중국집 원조' 공화춘 자장면 편의점서 맛 보세요
http://news.naver.co[...]
한국경제
2006-08-07
[4]
뉴스
다시 만난 공화춘 역사를 맛보다
http://news.itimes.c[...]
인천일보
2012-04-27
[5]
뉴스
부둣가 끼니거리에서 국민음식 된 짜장면
https://news.naver.c[...]
동아일보
2012-05-01
[6]
뉴스
짜장면과 공화춘
http://www.kyeongin.[...]
경인일보
2012-08-20
[7]
뉴스
'중국집 원조' 공화춘 자장면 편의점서 맛 보세요
https://news.naver.c[...]
한국경제
2006-08-07
[8]
뉴스
다시 만난 공화춘 역사를 맛보다
http://news.itimes.c[...]
인천일보
2012-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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