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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가와 고루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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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타가와 고루고로는 사할린 출신의 윌타족 대표로, 1905년에 태어나 수렵과 유목 생활을 했다. 러일 전쟁 이후 남사할린이 일본 영토가 되면서 윌타족 보호 구역에서 생활했으며, 1920년대 후반부터 시키카정의 "오타스의 숲"에서 윌타족 대표를 지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58년 홋카이도 아바시리시로 이주하여 윌타어와 민족 문화 보존에 힘썼으며, 1975년 홋카이도 문화재 보호 공로자로 표창받았다. 1959년부터 1974년까지 아바시리시 오로초 불꽃 축제에 샤먼으로 출연했으나, 윌타의 샤먼 의식은 원래 불꽃 축제와는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1975년 홋카이도 문화재 보호 공로상을 수상하고, 1976년 서훈 목배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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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가와 고루고로
기본 정보
주간 신조 표지
주간 신조 표지
인물 정보
이름기타가와 고루고로
로마자 표기Kitagawa Gorogoro
직업편집자
작가
성별남자
출생
출생일1925년 1월 1일
사망일2001년 7월 20일 (향년 76세)
출생지일본 도쿄도
사망지일본 도쿄도
학력
출신 학교와세다 대학 문학부 졸업

2. 생애

사할린의 룩타마에서 태어나[2] 수렵과 유목 생활을 했다. 러일 전쟁 이후 남사할린이 일본 영토가 되면서 보호 구역에 정착하게 되었고,[1][2] 1920년대 후반부터는 시키카정의 "오타스의 숲"에서 윌타 대표를 지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인 1958년에는 홋카이도 아바시리시로 이주하여[1][2] 윌타어와 민족 문화의 보존 및 계승에 힘썼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75년 홋카이도 문화재 보호 공로자로 표창받았다.[4] 또한, 아바시리시의 관광 행사인 "오로초 불꽃 축제"에 1959년부터 1974년까지 샤먼으로 참여하기도 했다.[1]

2. 1. 초기 생애

사할린의 룩타마에서 태어나[2] 수렵과 유목 생활을 했다. 러일 전쟁 이후 남사할린이 일본 영토가 되면서, 윌타는 보호 구역에 정착하게 되었다.[1][2] 1920년대 후반부터는 소수 민족 거류지였던 시키카정의 "오타스의 숲"에서 윌타족 대표를 지냈다.

2. 2. 윌타족 대표 활동

1920년대 후반부터 소수 민족 거류지였던 시키카정의 "오타스의 숲"에서 윌타족 대표를 지냈다. "오타스의 숲"은 사할린청 관할 아래 아이누 외 선주민을 집단 거주시키기 위해 1926년 이후 시키카군 시키카정에 조성된 곳이다.[3] 다만, 당시 약 400명으로 알려진 윌타족과 니브흐족 중 오타스의 숲에서 생활한 사람은 절반 이하로 보인다.[3]

2. 3. 홋카이도 이주와 문화 보존 활동

제2차 세계 대전 후, 1958년 홋카이도 아바시리시로 이주했다[1][2]. 이주 후에는 윌타어와 민족 문화의 소개, 보존 및 계승에 힘썼다.

윌타 문화 계승의 공적이 인정되어 1975년, 홋카이도 문화재 보호 공로자로 표창되었다[4].

아바시리시의 관광 행사 "오로초 불꽃 축제"에 1959년부터 1974년까지 샤먼으로 출연했지만[1], 윌타의 샤먼 의식은 본래 불꽃 축제와는 무관하다고 하였다[5].

2. 4. 오로초 불꽃 축제

아바시리시의 관광 행사인 "오로초 불꽃 축제"에 1959년부터 1974년까지 샤먼 역할로 출연했다.[1] 그러나 기타가와 고루고로 본인은 윌타의 샤먼 의식은 본래 이 불꽃 축제와는 무관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5]

3. 수상


  • 1975년 - 홋카이도 문화재 보호 공로상 (홋카이도 문화재 보호 협회 北海道文化財保護協会일본어)
  • 1976년 - 서훈 목배[6]

참조

[1] 서적 昭和の墓碑銘 新潮社 2006
[2] 뉴스 朝日新聞 1978-06-26
[3] 문서 天野(2017)pp.30-32
[4] 간행물 永遠のジャッカ・ドフニ http://www.hoppohm.o[...] 北海道立北方民族博物館 2018-03
[5] 뉴스 毎日新聞 1978-06-27
[6] 간행물 官報 197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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