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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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창업은 조선 시대의 문신이자 화가로, 영의정 김수항의 아들이며 김홍도의 스승 중 한 명이다. 진사에 급제하여 성균관 진사가 되었으며, 동몽교관과 통덕랑을 지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아버지 김수항이 사사되자 벼슬을 버리고 시문, 학문, 그림을 교육하며 예술 활동에 전념했다. 숙종 때 형 김창협과 함께 북경을 방문하여 기행문 《연행록》을 저술했으며, 저서로 《노가재집》이 있다.
영의정 김수항의 아들로 태어나 진사에 급제하여 성균관에 입교, 성균관진사가 되었으며, 동몽교관과 통덕랑을 지냈다. 1689년 (숙종 15년) 기사환국으로 아버지 김수항이 사사되자 관직에 뜻을 버리고 시문과 학문, 그림에 전념하였다. 김홍도의 스승 중 한 사람이다.
2. 생애
2. 1. 가문 배경과 초기 생애
김창업은 안동 김씨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김광찬과 아버지 김수항은 모두 영의정을 지낸 고위 관료였다. 형제들인 김창집, 김창협, 김창흡 등도 학문과 예술에 뛰어난 인물들이었다. 김창업은 진사에 급제하여 성균관에 입교하였고, 동몽교관과 통덕랑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2. 2. 기사환국과 은둔
1689년(숙종 15년) 기사환국으로 아버지 김수항이 사사되자 관직에 뜻을 버리고 시문, 학문, 그림 등 예술 활동에 전념하였다. 시문과 그림에 뛰어났으며, 김홍도의 스승 중 한 사람이다.
괴산군 화양 서원에 있는 송시열의 화상은 그가 그린 것을 화공이 그대로 베낀 것이다.
2. 3. 북경 방문과 저술 활동
숙종 때 형 김창협과 함께 북경에 다녀와서 기행문 〈연행록〉을 썼다. 저서로 〈노가재집〉이 있다.
2. 4. 말년과 사후
1722년(경종 2년) 김창업이 개인적으로 땅을 개간하여 만든 열무장(閱武場)이 대간의 탄핵으로 폐쇄되기도 하였다. 1792년(정조 16년) 6월 3일 손자 김이익(金履翼)이 통정대부 수충청도관찰사(종2품직)에 임명되면서 증조부였던 그는 법전에 따라 증 통훈대부 사복시정에 추증되었다.
같은 해 6월 3일, 다른 손자 김양행이 1779년에 형조참판에 임명된 바 있어 김창업은 다시 증 통정대부 이조참의에 추증되었다.
3. 가족 관계
관계 이름 비고 할아버지 김광찬(金光燦) 아버지 김수항(金壽恒) 어머니 나성두(羅星斗) 안정 나씨 형 김창집(金昌集) 형 김창협(金昌協) 형 김창흡(金昌翕) 동생 김창즙(金昌緝) 동생 김창립(金昌立) 부인 이속(李涑)의 딸 익풍군 장남 김우겸(金祐謙) 손자 김유행(金由行) 증손자 김이흥(金履興) 외 3명 차남 김언겸(金彦謙) 손자 김제행(金悌行) 증손자 김이대(金履大) 외 2명 삼남 김신겸(金信謙) 손자 김양행(金亮行) 증손자 김이구(金履九) 현손자 김건순(金建淳) 사남 김비겸(金卑謙) 첩 이름 불명 오남 김윤겸(金允謙) 서자, 단원 김홍도의 스승 손자 김지행(金摯行), 김용행(金龍行) 장녀 조문명(趙文命) 풍양 조씨, 풍릉부원군, 훗날 영의정
4.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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