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니와쿄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나니와쿄는 고대 주요 교통로였던 세토 내해 동쪽에 위치하며, 고대부터 왜왕의 궁이 있던 곳이다. 683년 텐무 천황은 난바를 쌍경의 도읍으로 삼았고, 726년 쇼무 천황은 난바궁에 이궁을 조영했다. 744년에는 구니쿄에서 난바쿄로 천도했으며, 발굴 조사를 통해 당시의 도시 구조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745년 헤이조쿄로 다시 천도한 후에도 외교와 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793년 셋츠 직이 폐지되면서 조정 직할지로서의 역사가 끝났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셋쓰국 - 남조 (일본)
남조는 14세기 일본 남북조 시대에 고다이고 천황이 세운 천황가의 분파로,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세운 북조와 대립하다가 1392년 종결되었으며, 메이지 시대에 정통으로 인정받았다. - 셋쓰국 - 고베항
고베항은 10세기부터 시작된 역사를 가진 일본 효고현 고베시의 주요 국제 무역항으로, 한때 동양 최대의 항구였으나 지진 피해 이후 현재는 국제 컨테이너 전략 항만으로 육성되며 관광 및 문화 도시로 발전 중이다. - 일본의 옛 수도 - 나가오카쿄
나가오카쿄는 784년 간무 천황이 건설한 수도로, 수운에 유리하고 후지와라노 다네쓰구 가문의 지지 기반이었으나, 사건과 재앙으로 인해 794년 헤이안쿄로 천도되었으며, 현재는 나가오카쿄시로 그 이름을 이어가고 있다. - 일본의 옛 수도 - 헤이안쿄
794년부터 1869년까지 일본의 수도였던 헤이안쿄는 간무 천황이 당나라 장안성을 본떠 건설한 도시로, 직사각형 형태와 조방제 도시 계획, 주작대로를 중심으로 한 우경과 좌경의 구분, 그리고 도시 북쪽에 위치한 황궁 다이다이리로 특징지어진다. - 오사카시의 역사 - 오사카 시영 지하철
오사카 시영 지하철은 1933년 미도스지선 개통을 시작으로 8개의 지하철 노선과 1개의 무인 운송 시스템 노선을 운영했으며, 2018년 Osaka Metro에 운영이 이관되었다. - 오사카시의 역사 - 센니치 백화점 화재
센니치 백화점 화재는 1972년 일본 오사카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로, 118명이 사망하고 81명이 부상했으며, 노후 건물, 방화 관리 미비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피해가 커졌고, 일본 소방법령 개정의 계기가 되었다.
나니와쿄 | |
---|---|
개요 | |
국가 | 일본 |
위치 | 오사카부 오사카시 |
종류 | 수도 |
존속 기간 | 645년 ~ 745년 |
이전 수도 | 아스카쿄 |
다음 수도 | 헤이조쿄 |
역사 | |
수도 지정 | 645년 |
수도 이전 | 745년 |
배경 | 다이카 개신 |
폐지 이유 | 정치적 불안정 |
구조 | |
궁궐 | 나니와나가라노토요사키노미야 |
주요 시설 | 나니와궁 |
발굴 조사 | 오사카 역사 박물관에서 발굴 및 연구 진행 |
특징 | |
위치 | 세토 내해와 연결된 교통의 요충지 |
중요성 | 수도로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역할 |
도시 계획 | 조방제 도시 계획 도입 |
관련 항목 | |
관련 항목 | 나니와 나니와쓰 나니와노미야 터 고대 일본의 수도 목록 |
2. 연혁
난바는 세토 내해의 동쪽 끝에 위치하여 예로부터 왜왕의 왕궁이 있었던 곳이다. 고분 시대 닌토쿠 천황이 난바에 궁을 두었다는 전승(일본서기 기록)이 있으며, 아스카 시대에는 고토쿠 천황이 난바 나가라노토요사키노미야를 설치했다. 683년 텐무 천황은 난바를 도읍으로 삼는다는 조칙을 내렸고, 677년에는 셋츠 직을 설치하여 교토 관청으로 삼았다.
726년 쇼무 천황은 후지와라노 우마카이에게 명하여 난바궁에 기와지붕의 이궁을 조영하게 했고, 744년에는 구니쿄에서 난바쿄로 천도했다. 발굴 조사 결과, 나라 시대 후기 난바궁 주변에는 정방위로 뻗어 있는 도랑과 건물터가 다수 발견되었고, 먹으로 쓴 토기 등도 출토되어 많은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관인에게 택지를 지급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쇼쿠니혼기'). 2010년 이후에도 난바궁 관련 유적이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다.[4][5][6]
745년 쇼무 천황이 헤이조쿄로 다시 환도했지만, 난바는 배도 및 견당사와 해운의 항구로서 외교와 물류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이후 793년 셋쓰 직이 폐지되고 셋쓰 국 고후로 전환되면서 116년간의 조정 직할 역사가 끝났다.
2. 1. 고대
난바는 고대 주요 교통로였던 세토 내해의 동쪽 끝에 위치해 있으며, 예로부터 왜왕의 왕궁이 있었다. 고분 시대에는 닌토쿠 천황이 난바에 궁을 두었다는 전승이 있다(난바 타카츠노미야, '일본서기'). 아스카 시대에는 고토쿠 천황이 난바 나가라노토요사키노미야를 설치했다. 텐무 천황은 683년(텐무 천황 12년)에 "대체로 도성의 궁실은 한 곳에 있지 않고 반드시 양참을 만들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난바를 도읍으로 삼고자 한다."라고 조칙을 내려 난바를 예외적인 쌍경의 도읍으로 삼았으며, 677년(텐무 천황 6년)에 셋츠 직을 설치하여 교토 관청으로 삼았다.[4]2. 2. 나라 시대
726년(진키 3년), 쇼무 천황은 후지와라노 우마카이에게 명하여 난바궁에 기와지붕의 이궁을 조영했다. 744년(덴표 16)에는 구니쿄에서 난바쿄로 천도했다. 발굴 조사에 따르면, 나라 시대 후기 난바궁 주변에는 정동서남북 방위(정방위)로 뻗어 있는 도랑이 넓은 범위에서 다수 발견되었으며, 건물터도 정방위에 축조된 것이 많다. 또한, 도랑에서는 먹으로 쓴 토기를 포함한 다수의 토기가 출토되어 상당수의 인구가 생활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인에게 택지를 지급했다는 기록도 있다('쇼쿠니혼기').[4]2010년 이후 난바궁과 관련된 유적(다리 교각 흔적, 대규모 건물군 터, 주작대로 측구 등)이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다.[5][6]
쇼무 천황은 천도 다음 해인 745년에 다시 헤이조쿄로 환도했지만, 난바는 배도로서, 또한 견당사나 해운의 항구로서 외교, 물류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2. 3. 헤이안 시대
793년(헤이안쿄 천도 이후)에 셋츠 직이 폐지되고 셋츠 국 고후로 전환되면서, 조정 직할지로서 116년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4]참조
[1]
문서
[2]
서적
The Constructed Past: Experimental Archaeology, Education and the Public
https://books.google[...]
Routledge
[3]
웹사이트
Recent Archaeological Discoveries in Osaka 2007
http://www.mus-his.c[...]
Osaka Museum of History
2009-02-13
[4]
뉴스
難波京にも「碁盤の目」/奈良期の条坊跡を初確認
https://www.shikoku-[...]
四国新聞社
2010-09-01
[5]
뉴스
大阪・難波京の南に大規模建物群/5棟整然、範囲拡大も
https://www.shikoku-[...]
四国新聞社
2012-12-19
[6]
뉴스
難波京の朱雀大路か 側溝を確認、道幅推定33メートル
https://www.nikkei.c[...]
日本経済新聞社
2015-04-02
[7]
서적
과거의 건설: 실험적인 고고학, 교육과 공공
http://books.google.[...]
Routledge
[8]
웹인용
오사카의 최근의 고고학적 발견 2007
http://www.mus-his.c[...]
오사카 역사 발물관
2009-02-13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