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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라이 도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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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카라이 도스이는 일본의 소설가이자 언론인으로, 나가사키현 쓰시마시 출신이다.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조선어에 능통하여 도쿄 아사히 신문의 통신원 자격으로 7년간 부산에 주재하며 《춘향전》을 일본어로 번역했다. 1889년 소설가로 데뷔하여 "조선에 부는 모래바람"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으며, 히구치 이치요를 문하생으로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6년 뇌출혈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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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라이 도스이
기본 정보
나카라이 도스이의 사진
반정 도스이
본명나카라이 만조(半井 満之)
출생1861년 5월 28일
사망1902년 12월 16일 (향년 41세)
직업소설가
출생지
출생지일본 기후현
국적일본
로마자 표기
로마자 표기Tosui Nakarai
작품
주요 작품고야히지리(高野聖)
염매(艶魔)
가족
친척나카라이 후우요우 (조카)

2. 생애

나가사키현 쓰시마 이즈하라에서 쓰시마 후추 번의 번의(藩醫)였던 나카라이 한타로(半井湛太郎)와 어머니 후지(藤) 사이의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어린 시절을 부산에서 보냈다. 12세부터 부산에서 일하며 가계를 도왔으나, 영어를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돌아와 진학했다. 10대 중반 무렵 도쿄로 상경해 샤쿠 신파치(尺振八)의 공립학사(共立学舎)에서 공부했다.[2] 여러 신문사를 거쳐 1881년 도쿄 아사히 신문 기자가 되었고,[1] 조선어에 능통하여 이듬해 통신원 자격으로 부산에 파견되어 7년간 주재했다. 부산 주재 기간 동안 조선 고전 소설 《춘향전》을 일본어로 번역하여 도쿄 아사히 신문 지면에 게재하기도 했다.

2. 1. 문학 활동

1889년 도쿄 아사히 신문에 "아농자"(唖聾子)를 게재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2] 이후 "소나기 인연"(しぐれ縁), "가이오마루"(海王丸) 등을 발표하며 신문소설가로서의 입지를 다졌다.[2] 1891년부터 연재한 장편 소설 "조선에 부는 모래바람"(胡沙吹く風)이 대표작이다.[2] 같은 해, 히구치 이치요가 그의 문하생으로 들어왔다.[4] 이치요의 처녀작 "밤 벚꽃"(闇桜)은 도스이의 교정을 거쳐 1892년 그가 창간한 『무사시노』(武蔵野)에 발표되었다.[4] 이듬해 이치요는 그의 문하를 떠났으며, 두 사람이 연애 관계였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도스이는 죽을 때까지 300편 이상의 소설을 썼으나, 현재는 거의 잊혀졌다. "텐구 회상"(天狗廻状), "의민가조"(義民加助) 등도 그의 주요 작품이다. 나가우타와 속곡(俗曲)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직접 작사한 작품도 있다.[5]

2. 2. 사망

1926년 11월 21일, 후쿠이현 쓰루가시의 병원에서 뇌출혈로 사망하였다. 계명은 관청원요광예음거사(観清院謡光冽音居士)였다.[9]

2. 3. 사후

본격적인 전기는 아직 없으나, 쓰시마시 이즈하라정 나카무라에 있는 생가 터에 나카라이 도스이 관(半井桃水館)이 세워져 있다.[9]

3. 작품 목록

제목발표 연도
오마치 야코1889년
나리히라 죽1890년
잎과 산이 무성한 산1890년
한 그루의 그늘1891년
카이오마루1891년
개화의 복수1891년
봄 한 가지1891년
물의 달1891년
메가라1891년
1891년
아래 어둠1892년
꽃 창포1892년
카타미가하리1893년
胡沙吹く風|고샤 부는 바람일본어[1]1893년
사람 의자·꽃의 눈물1893년
해적 나다에몬1894년
참회1895년
나가오 세츠조1895년
종 공양1896년
츠치야 겐야1896년
단총1896년
뿌리 솟은 소나무1900년
사람 죽이는 상투쟁이1900년
꾀꼬리 피리1901년
눈과 숯1901년
원숭이1901년~1902년
사생화1903년
미친 듯이 핌1903년
위문 봉투1906년
자손1908년
젖은 옷1908년
텐구 회보1908년
억새 아래 이슬1908년
모습이 보이지 않는 다리1914년
실록 충신장1914년
다카사고1916년
니치렌1916년
의민 카스케1916년
오오이시 쿠라노스케 (제1-4권)1917년
덴교 대사1921년
나가우타 연구회의 연혁1921년
에노시마의 지표1922년
도이 미치오 군 전1924년



『胡沙吹く風』|고샤 부는 바람일본어 서문에는 히구치 이치요의 서가가 게재되어 있다.[1]

4. 평가

나카라이 도스이는 메이지 시대 일본 문학계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작가 중 한 명이다. 특히 조선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당시 일본 사회에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이해를 넓히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스이는 1881년 도쿄 아사히 신문 기자가 되었고, 조선어에 능통하여 이듬해 부산에 통신원으로 파견되어 7년간 주재하였다. 이때 조선 고전 소설 《춘향전》을 일본어로 번역하여 신문에 게재하기도 했다.[1]

이후 "아농자"(唖聾子), "소나기 인연"(しぐれ縁), "가이오마루"(海王丸) 등을 발표하며 신문소설가로 자리매김했다. 1891년부터 연재한 장편 「조선에 부는 모래바람」(胡沙吹く風)이 대표작이며,[2] "텐구 회상"(天狗廻状), "의민가조"(義民加助) 등도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소설뿐만 아니라 나가우타와 속곡(俗曲)에도 조예가 깊어 직접 작사한 것도 있다.[5]

도스이는 300편이 넘는 소설을 썼지만, 오늘날 그의 작품을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4. 1. 히구치 이치요와의 관계

1891년(메이지 24년), 히구치 이치요가 도스이의 문하생으로 들어왔다.[4] 이치요의 데뷔작 "闇桜(어둠 속의 벚꽃)"은 도스이가 1892년(메이지 25년)에 창간한 『무사시노(武蔵野)』에 발표되었다.[4] 그러나 다음 해, 이치요는 문하생을 떠났다. 이치요와 연인 관계였다는 소문이 당시부터 있었다.

5. 한국과의 관계

나카라이 도스이는 쓰시마 이즈하라 번 출신으로, 아버지의 직업 때문에 어린 시절을 부산에서 보냈다. 12세 때부터 부산에서 일했으며, 조선어가 가능했기 때문에 1881년 도쿄 아사히 신문의 통신원으로 임명되어 7년 동안 부산에 주재하였다.[1] 이 기간 동안 그는 조선의 고전 소설인 《춘향전》을 일본어로 번역하여 도쿄 아사히 신문 지면에 게재하기도 했다.

도스이는 조선을 배경으로 하거나 한국 문화를 소재로 한 작품을 여럿 남겼는데, 대표작으로는 1891년부터 연재한 장편 소설 "조선에 부는 모래바람"(胡沙吹く風)이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당시 일본 사회에 한국을 알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춘향전]]》을 일본어로 번역하여 소개한 것은 한국 문학을 일본에 알린 초기 사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 나타난 조선에 대한 인식은 당시 일본인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도 지적된다.

참조

[1] 서적 日本現代文学大事典 人名・事項篇 明治書院 1994
[2] 서적 日本近代文学大事典 第二巻 講談社 1977
[3] 웹사이트 半井桃水について https://tsushima-tos[...] 半井桃水館 2021-11-06
[4] 서적 樋口一葉 岩波書店 2004
[5] 뉴스 大衆文芸家、敦賀で執筆中に死去 東京朝日新聞 1926-11-25
[6] 서적 作家の臨終・墓碑事典 東京堂出版 1997
[7] 서적 日本現代文学大事典 作品篇 明治書院 1994
[8] 문서 斎藤彦内 참조
[9] 서적 作家の臨終・墓碑事典 東京堂出版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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