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기 일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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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농기(農旗)는 두레 풍물패의 상징으로, 두레 노동 시 세워두던 깃발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나 신농유업(神農遺業) 등의 문구와 용 그림이 그려져 물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농업박물관에는 논산 주곡농기, 강진 용소농기, 서산 덕지천 농기, 김제 신풍농기 등 여러 농기가 소장되어 있으며, 농경 사회의 전통과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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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기 일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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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기 일괄 정보 | |
이름 | 농기 일괄 |
국가 | 대한민국 |
위치 | 서울특별시 |
유형 | 문화재자료 |
지정 번호 | 43 |
지정일 | 2009년 3월 5일 |
시대 | 대한제국 |
수량 | 총 4점 |
문화재청 ID | 31,00430000,11 |
2. 농기의 의미와 상징
농기는 두레 풍물패의 상징이자 공동 노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농기는 두레 노동 시에 세워 두었으며, 공동 노동이 끝날 때까지 유지되었다.[1] 농기에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나 ‘신농유업’(神農遺業)과 같은 문구와 용(龍)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물을 중요하게 여기는 논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1]
2. 1. 농기의 문구와 그림
농기는 두레 풍물패의 상징으로서 두레패들이 두레 노동시에 세워 두던 깃발로 공동 노동이 끝날 때까지 세워 두었다. ‘용당기·요덕기·덕석기·용술기·서낭기·대기·농상기’ 라고도 부른다.[1] 보통 '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이나 ‘신농유업’(神農遺業)과 용(龍)이 그려지는데, 이는 수신·용신을 기원하며 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논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이다.[1]2. 2. 농기의 종류
농기는 두레 풍물패의 상징으로서 두레패들이 두레 노동 시에 세워 두던 깃발로, 공동 노동이 끝날 때까지 세워 두었다. 용당기, 요덕기, 덕석기, 용술기, 서낭기, 대기, 농상기라고도 부르며, 보통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나 ‘신농유업’(神農遺業)과 용(龍)을 그렸는데, 이는 수신·용신을 기원하며 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논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이다.[1]3. 농업박물관 소장 농기
농업박물관에는 논산 주곡농기, 강진 용소농기, 서산 덕지천 농기, 김제 신풍농기 등 4점의 농기가 소장되어 있다.[1] 각 농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위 문서를 참고하면 된다.
3. 1. 논산 주곡농기
논산시 상월면 주곡리에서 사용하던 두레기로, 1995년에 논산 주곡리에서 농업박물관에 기증되었다. 마을 주민이던 이방헌(1928년생)의 고조부(이학운)가 최초로 만들었다. ‘병오(丙午)’라는 묵서로 보아 최초 조성 연대는 1846년으로 추정되나, 일제강점기에 원래 것을 본따 새로 제작된 것으로 구전(口傳)된다. 마을에서 여러 번 수선하여 사용한 흔적이 있으며, 농기에는 “神農遺業|신농유업중국어 丙午|병오중국어 七月|칠월중국어”이라는 묵서(墨書)가 있다. 이는 농사신인 신농씨(神農氏)를 지칭하는 ‘神農|신농중국어’과 그가 남긴 업이라는 뜻의 ‘遺業|유업중국어’을 합친 것으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과 같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1]3. 2. 강진 용소농기
전라남도 강진군 군동면 용소부락 안지마을에서 사용되던 농기로, 1933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농기에 농사신인 신농씨가 살포를 매고 용을 탄 모습이 그려져 있다.[1]3. 3. 서산 덕지천 농기
충청남도 서산시 덕지천동의 두레패들이 사용하던 농기로, 1916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995년에 농업박물관에 기증되었다. 농기에는 "천하대본(天下大本), 대정 5년 병진음(丙辰陰) 6월 신비(新備)"라는 묵서(墨書)가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운용문(雲龍紋)을 채색하였으나, 색이 많이 바랜 상태이다.[1]3. 4. 김제 신풍농기
이 농기는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서 사용하던 두레기로, 1995년에 농업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용 그림이 전문가(화원)의 솜씨로 매우 훌륭하게 그려져 있고, 기증자와 두레패의 중심인물, 제작년도 등이 묵서(墨書)로 적혀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1]: 농자천하지대본야(農者天下之大本也) 삼일일우 야우화청 흥운무토 변화막측 기증 곽안순(郭安栒)
: 무오(戊午) 8월 12일생 소원성취 이장 서귀환(徐貴煥) 좌상 김재복(金在福) 공원 양민식(梁玟植)
: 화사(畵士) 광주거(廣州居) 난곡(蘭谷) 정유년(丁酉年) 7월 15일 제작
즉 1918년으로 추정되는 무오년 8월 12일생인 곽안순이 1957년으로 추정되는 정유년 7월 15일에 제작하였고, 그림을 그린 화사(畵士)는 광주에 거주하는 난곡(蘭谷)임을 알 수 있다.[1]
4. 농기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
농기는 일반적으로 천으로 만들어져 야외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비바람에 쉽게 노출된다. 또한 보관할 때도 부피가 커서 주로 접어서 마당에 보관했기 때문에 쉽게 훼손될 우려가 있다. 이러한 조건 때문에 그동안 많은 농기들이 소멸되거나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하지만 이 농기들은 원형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1]
많은 농기들이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과 같이 동일한 형식과 내용을 가지는 데 비해, 이 농기들은 용이 그려진 ‘용기(龍旗)’의 전통과 ‘신농유업(神農遺業)’ 등의 옛 제도(古制)를 따르고 있다. 또한 지네발을 사용하는 등 형식과 내용면에서도 매우 우수하다. 두레가 일찍이 분화되면서 소멸의 길을 걷게 되자, 농기도 두레와 더불어 점차 사라져 현존하는 유물이 매우 희소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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