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카노르 (파르메니온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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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니카노르(파르메니온의 아들)는 고대 마케도니아의 장군으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에 참여했다. 기원전 335년 게타이 원정에서 팔랑크스 부대를 이끌었고, 기원전 334년부터 히파스피스트를 지휘하며 그라니코스 전투, 이수스 전투, 가우가멜라 전투 등 주요 전투에 참전했다. 가우가멜라 전투 이후에는 다리우스 3세를 살해하고 왕을 칭한 벳소스를 추격하여 체포 및 처형하는 데 기여했다. 기원전 330년 아레이아에서 사망했으며, 그의 죽음 이후 형제 필로타스와 아버지 파르메니온도 알렉산드로스 대왕 암살 음모에 연루되어 처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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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330년 사망 - 다리우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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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노르 (파르메니온의 아들) | |
---|---|
기본 정보 | |
이름 | 니카노르 |
출생 | 기원전 4세기 |
사망 | 기원전 330년 |
소속 | 마케도니아 왕국 |
아버지 | 파르메니온 |
형제자매 | 필로타스 아감 아르키스테라 |
경력 | |
직책 | 장교 |
복무 | 알렉산드로스 대왕 휘하 |
주요 전투 | 그라니코스 전투 이사스 전투 |
2. 생애
니카노르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주요 군사 작전에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웠지만, 가문의 몰락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기원전 330년 아레이아에서 병사했다.[21] 그의 사후, 형제 필로타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암살 음모에 연루되었다는 누명을 쓰고 처형되었고, 아버지 파르메니온도 살해되었다.
2. 1. 초기 군사 활동
니카노르는 기원전 335년 알렉산드로스의 게타이 원정에 참여하여 이스트로스 강(현 다뉴브강) 도하 작전에서 팔랑크스 부대를 이끌었다.[12] 기원전 334년에 시작된 동방 원정에서 니카노르는 히파스피스트(방패병)를 지휘하였고, 그라니코스 전투[13], 이수스 전투[14][15], 가우가멜라 전투[16][17][18] 등 주요 대규모 작전에 이 부대를 이끌고 참전했다.2. 2. 동방 원정
니카노르는 기원전 335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게타이 원정에 참여하여 이스트로스 강(현 다뉴브강) 도하 작전에서 팔랑크스 부대를 이끌었다.[12] 기원전 334년부터 시작된 동방 원정에서 히파스피스트(방패병)를 지휘하였고, 그라니코스 전투[13], 이수스 전투[14][15], 가우가멜라 전투[16][17][18] 등 주요 대규모 작전에서 이 부대를 지휘했다. 가우가멜라 전투 이후 다리우스 3세를 살해하고 왕을 칭했던 박트리아 사트라프 벳소스를 추격할 때에는 선견대를 이끌었고, 이후 벳소스를 붙잡아 처형했다.[19][20]2. 3. 벳소스 추격 및 가문의 몰락
가우가멜라 전투 이후, 니카노르는 다리우스 3세를 살해하고 왕을 칭한 박트리아 태수 벳소스를 추격하는 선견대를 이끌었다. 이후 벳소스를 붙잡아 처형하는 데 성공했다.[19][20] 그러나 기원전 330년, 니카노르는 아레이아에서 병사했다.[21]니카노르 사후, 그의 형제 필로타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암살 음모에 연루되었다는 누명을 쓰고 처형되었고, 아버지 파르메니온도 살해되면서 가문은 몰락했다.
참조
[1]
서적
アッリアノス, I. 4
[2]
서적
アッリアノス, I. 14
[3]
서적
アッリアノス, II. 8
[4]
서적
クルティウス, III. 9. 7
[5]
서적
アッリアノス, III. 9
[6]
서적
クルティウス, IV. 13. 27
[7]
서적
ディオドロス, XVII. 57
[8]
서적
アッリアノス, III. 21
[9]
서적
クルティウス, V. 13. 19
[10]
서적
アッリアノス, III. 25
[11]
서적
クルティウス, VI. 6. 18
[12]
서적
아리아노스, I. 4
[13]
서적
ibid, I. 14
[14]
서적
ibid, II 8
[15]
서적
쿠르티오스, III 9. 7
[16]
서적
아리아노스, III 9
[17]
서적
쿠르티오스, IV 13. 27
[18]
서적
디오로스, XVII 57
[19]
서적
아리아노스, III 21
[20]
서적
쿠르티오스, V. 13. 19
[21]
서적
쿠르티오스, V. 1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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