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순장)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대한예수교장로회(순장)는 1938년 신사참배를 반대하며 조선예수교장로회에서 분립된 교단으로, 이계실 목사를 중심으로 신앙의 절개를 지키며 시작되었다. 한국 전쟁 중 거제도로 피난하여 교회를 재건하고, 1955년 서울 신길동으로 이전하여 교세를 확장했다. 1990년 신학대학원을 신설하고, 1999년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로 정식 인가를 받아 신학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938년 설립된 종교 단체 - 입정교성회
입정교성회는 1938년 니와노 닛쿄와 나가누마 묘코가 창립한 법화경을 근본 경전으로 하는 일본 불교계 신종교 단체로, 개인 수행과 사회 참여 및 평화 운동을 강조하며 세계 종교자 평화 회의 등 국제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 1938년 설립된 종교 단체 - 도덕재무장
도덕재무장은 프랭크 부크만이 1938년에 창설하여 개인의 도덕적 각성을 통한 사회 개혁을 목표로 하였으나, 창립자의 친나치적 발언 등으로 비판받았고 2001년에 변화 주도 이니셔티브로 명칭을 변경했다. - 대한민국의 장로교 -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은 1959년 대한예수교장로회에서 분리된 장로교 교단으로,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 문제로 분열되었으며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하고 칼 바르트의 변증법 신학에 기초한 복음주의적 성경 해석을 따르며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을 채택하고,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공보, 한국장로교출판 등의 기관과 새문안교회, 영락교회, 소망교회 등을 산하에 두고 2024년에는 교회 세습 금지법 폐지 시도 등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 대한민국의 장로교 - 총신대학교
총신대학교는 1901년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로 설립되어 일제강점기 폐교 후 재건, 1975년 현재 교명으로 변경되었으며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다양한 학부 및 대학원 과정을 운영하는 사립대학교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순장) | |
---|---|
교단 정보 | |
교단 명칭 | 대한예수교장로회(순장) |
영문 명칭 | Pure Presbyterian Church in Korea |
설립 연도 | 1979년 |
설립자 | 김홍전 |
소속 | 세계개혁교회협의회(ICRC) |
교단 성향 | 개혁주의 |
한국어 약칭 | 예장순장 |
역사 | |
기원 |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에서 분립 |
주요 활동 | 성경 중심의 신학 연구 및 교육 |
특징 | 칼뱅주의 신학을 고수하며, 성경의 무오성과 권위를 강조 |
관련 인물 | 김홍전, 박윤선 |
신학 | |
주요 신학 | 개혁주의 신학, 칼뱅주의 |
성경관 | 성경의 무오성, 성경의 권위 |
강조점 | 하나님의 주권, 예정론, 그리스도의 대속 |
특징 | |
특징 | 성경 중심의 신학, 엄격한 생활 태도, 보수적인 신앙관 |
중시 가치 | 경건, 신앙의 순수성, 성경적 가르침의 실천 |
기타 | |
관련 단체 | 개혁신학연구원 |
웹사이트 | 개혁신학연구원 웹사이트 |
2. 연혁
1938년 9월 10일, 제27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국가의식'으로 가결하자, 이를 반대한 이계실 목사가 주도하여 1921년 함남 함주군 동천면 풍서리에 덕천교회를 설립한 함남노회를 탈퇴하였다. 주기철, 손양원, 이기선, 한상동, 주남선, 이계실 목사 등이 일제 신사참배 및 동방요배를 배척하고, 덕천교회, 동상리교회, 기곡교회, 장흥교회, 상수리교회가 이계실 목사의 인도를 받아 순교를 각오한 믿음의 길을 걸었다.[1]
이계실 목사는 1950년 6.25 전쟁 발발 다음 해 1.4 후퇴 때, 5개 교회 교인 130여 명을 이끌고 UN군 구원선 '에레스티호'를 타고 경남 거제도로 피난하여, 1952년 10월 거제도에서 성경학교를 시작하였다.
1954년 3월 23일 부산 문현동을 거쳐 1955년 3월, 서울 신길동으로 이전하여 정착하였다. 이후 서울,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해외 등지에 교회를 설립해 나갔다.
2. 1. 교단 설립 배경 (일제강점기)
1938년 9월 10일, 제27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국가의식'으로 가결하자, 이를 반대한 이계실 목사가 함남노회를 탈퇴하면서 순장로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1] 이계실 목사는 주기철, 손양원, 한상동 목사 등과 함께 신사참배 및 동방요배를 배척하며 신앙의 절개를 지켰다.[1] 덕천교회, 동상리교회, 기곡교회, 장흥교회, 상수리교회 등이 이계실 목사의 지도를 받으며 순교를 각오하고 신앙의 길을 걸었다.[1]2. 2. 해방 이후 ~ 한국전쟁 시기
해방 후 이계실 목사는 교회 재건에 힘썼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다음 해 1.4 후퇴 때, 이계실 목사는 인도하던 5개 교회 교인 130여 명을 이끌고 UN군 구원선인 '에레스티호'를 타고 경남 거제도로 피난하였다. 거제도에서 "연합 덕천교회"를 설립하였다. 1952년 10월, 이계실 목사는 칼빈주의에 입각한 개혁주의 신앙을 교육이념으로 정하고 진리를 파수할 교역자 양성을 목적으로 거제도에서 성경학교를 시작하였다.2. 3. 서울 정착 및 교세 확장
1954년 3월 23일, 부산 문현동에 교회와 교우들의 거처를 마련하여 잠시 머물렀다. 1955년 3월, 서울 신길동으로 옮겨 교회와 학교, 교우들의 집을 짓고 정착하였다. 모 교회인 동천교회(구 덕천교회)를 중심으로 서울,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해외(미국, 캐나다, 호주, 일본) 등지에 교회를 세우며 교세를 확장하였다. 특히 1962년 신림동에 신천교회(현 신원예닮교회)를, 1967년 3월에는 신대방동에 대천교회와 창대교회를 개척하였다.3.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설립
1990년에 시대적 요청에 따라 신학 교육의 질을 높일 필요성을 절감하고 신학대학원을 신설, 학제를 대학부 4년, 신학원 3년의 7년 과정으로 개편 운영해 현재까지 신학자 및 목회자, 전임 사역자들을 배출해 왔다.[1] 1995년에는 서울특별시 신대방동 632-57번지에 신학교 교사를 완공하였고, 1997년 7월 16일부로 교육부로부터 “학교법인 순장학원” 설립인가를 받고, 1999년 2월 22일부로 교육부 정식 대학원 대학교 설립인가를 획득,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