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온공주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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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덕온공주 유물은 총 6건 33점으로, 덕온공주가 사용했던 의복, 장신구, 생활용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복으로는 원삼, 당의, 장옷, 저고리 등이 있으며, 장신구로는 자라줌치노리개, 댕기 등이 전해진다. 덕온공주는 순조의 셋째 딸로, 1837년 남영위 윤의선과 혼인하였으나, 1844년 급체로 사망했다. 유물들은 윤용구의 딸 윤백영이 보관하다가 석주선에게 인수되어 단국대학교에 기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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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온공주 유물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유물 정보 | |
이름 | 덕온공주 유물 |
유형 | 국가민속문화재 |
지정 번호 | 212 |
지정일 | 1987년 2월 12일 |
시대 | 조선시대 1800년대 초 |
수량 | 일괄(33점) |
소유자 | 단국대학교 |
소재지 |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로 152, 석주선기념박물관 (죽전동,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
관련 정보 | |
참고 자료 | 조선 마지막 공주, 덕온家 유물전 단국대, '조선 마지막 공주' 덕온공주 유물전 개최 |
단국대학교 | |
관련 정보 | 단국대학교 |
2. 유물 내용
이 유물들은 덕온공주가 생전에 사용하였던 것으로, 노리개와 같은 장신구부터 빗, 보자기 등 다양한 생활용품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당시 공주의 생활상을 일부나마 엿볼 수 있어 소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유물은 총 6건 33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2. 1. 의복
덕온공주가 남긴 의복 유물은 조선 후기 왕실 여성의 복식 문화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유물에는 공주가 혼례 때 입었던 대례복인 원삼, 여름용 당의, 외출 시 사용했던 장옷,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저고리 등이 포함된다.[1][2][3]이 유물들은 단순한 옷을 넘어, 1837년 덕온공주의 길례와 같은 특정 시기의 왕실 의례 복식과 일상복의 구체적인 형태, 사용된 옷감(화문사, 도류사, 경광주 등), 금박과 같은 장식 기법, 그리고 당시의 바느질 방식까지 상세하게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특히 각 의복의 종류와 형태는 조선 후기 왕실 복식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어 복식사 연구에 있어 가치가 높다.
2. 1. 1. 원삼
덕온공주가 1837년 남영위 윤의선에게 시집갈 때 대례복(大禮服)으로 입었던 원삼이다. 길이는 164cm, 화장(옷소매 끝동에서 뒷목 중심점을 지나 반대편 소매 끝동까지의 길이)은 164cm이다. 옷감은 녹색 화문사(花紋紗, 꽃무늬가 있는 얇은 비단)를 사용하였고, 옷 전체에 걸쳐 壽(수)자 금박이 고르게 찍혀 있다. 소매 끝에는 붉은색과 황색의 색동과 함께 흰색의 한삼을 달았으며, 깃에는 은단추 2개가 달려 있다. 본래 안감은 홍색이었으나 6.25 전쟁 때 소실되었다.원삼은 일반적으로 겉감과 안감을 각각 독립된 옷으로 만든 뒤, 깃과 도련(옷자락의 가장자리) 부분을 합하여 한 벌로 입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그러나 대한제국 시기 궁중 원삼 중에는 겉감과 안감을 함께 붙여서 바느질한 경우도 있었다. 덕온공주의 원삼은 1837년 공주의 길례(吉禮, 공주나 왕자의 혼례)에 사용된 것으로, 당시에는 겉감과 안감을 따로 바느질하는 전통적인 방식이 유지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유물은 19세기 초 왕실 여성의 복식 형태뿐만 아니라 사용된 옷감, 바느질 방식까지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2. 1. 2. 당의
여름용 홑당의이다. 녹색 도류사(桃榴紗, 복숭아와 석류무늬가 있는 얇은 옷감)로 만들어졌으며, 겉고름과 속고름은 모두 자적색(紫赤色) 도류사이다. 당코깃 형태에 소매는 좁고, 소매 끝에는 흰색 명주로 만든 거들치가 달려 있다. 옷 전체에는 壽(수)자와 福(복)자가 금박되어 있다. 국가민속문화재 제3호인 당의와 매우 흡사한 형태를 보인다.2. 1. 3. 장옷
장옷은 조선시대 중기와 후기에 여성들의 외출복으로 사용되었으나, 후기에는 주로 얼굴을 가리는 쓰개의 용도로 변화한 옷이다. 덕온공주의 장옷은 길이 111cm, 화장 69cm, 품 40cm 크기이다. 겉감은 짙은 녹색의 경광주(비단의 일종)로 만들었고, 안감으로는 세모시를 사용하였다. 깃은 자주색이며 흰색 동정이 달려 있다. 소매는 좁고 길며, 겨드랑이 아래에는 자주색의 작은 삼각형 모양의 무가 달려 있다. 소매 끝에는 흰색 명주로 만든 거들치가 달려 있다. 옷고름은 겉고름으로 붉은색과 다홍색 두 개가 달려 있고, 안고름은 붉은색으로 넓고 길게 만들어졌다.[1][2][3]2. 1. 4. 저고리
유물로 전해지는 저고리는 총 3점이며, 모두 삼회장저고리 형태에 깃은 당코깃 모양을 하고 있다. 3점 모두 회장감(깃, 고름, 견마기, 끝동 등에 덧대는 천)은 자주색을 사용했지만, 바탕색과 세부적인 특징은 조금씩 다르다.- 두록색 삼회장저고리: 겉감은 두록색(연두색) 도류사(桃榴紗, 복숭아와 석류 무늬가 있는 얇은 옷감)를 사용했고, 자주색으로 깃과 고름, 견마기를 댔다. 소매 끝에는 흰색 거들치가 달려 있으며, 속고름은 다홍색이다. 저고리 위에는 당의와 마찬가지로 '壽(수)'자와 '福(복)'자 금박이 찍혀 있다.
- 옥색 누비 삼회장저고리: 옥색 설한단(雪寒緞)으로 만들어졌으며, 매우 곱게 누벼져 있다. 속고름은 연한 분홍색이다.
- 송화색 누비 삼회장저고리: 송화색(소나무 꽃과 같은 노란색) 도류사를 겉감으로 사용하고 모사로 안을 넣었다. 속고름은 다홍색이며, 깃, 고름, 끝동, 견마기는 자주색이다. 이 저고리 역시 매우 곱게 누벼져 있다.[1][2][3]
2. 2. 장신구 및 생활용품
덕온공주가 생전에 사용했던 장신구와 생활용품 유물들은 노리개, 수식류를 비롯하여 다양한 생활용품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 유물들은 당시 공주의 생활상을 일부나마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2. 2. 1. 장신구
덕온공주가 생전에 사용했던 장신구로는 노리개와 댕기가 있다. 노리개는 자라줌치노리개 1점이 전해지며, 댕기는 총 4점으로 제비부리댕기 1점, 매개댕기 2점, 떠구지댕기 1점이 남아있다. 이 유물들은 당시 공주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2. 2. 2. 생활용품
이 유물들은 덕온공주가 생전에 사용하였던 것으로, 당시 공주의 생활상을 일부나마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이다. 주요 생활용품 유물은 다음과 같다.분류 | 유물명 | 수량 |
---|---|---|
빗 | 주칠빗 | 4점 |
화각빗 | 4점 | |
화장도구 | 분첩 | 2점 |
연지첩 | 1점 | |
도장 | 1점 | |
수건 | 1점 | |
소자 | 1점 | |
보자기 | 노리개보 | 3점 |
아청모시보 | 1점 | |
족두리보 | 1점 | |
날염보 | 1점 | |
재봉도구 | 주단척 | 1점 |
색헝겁상자 | 1점 | |
기타 | 저울과 저울집 | 2점 |
국자 | 1점 | |
패물선과 집 | 2점 | |
화각모필 (붓) | 1점 |
덕온공주는 순조 22년(1822) 6월 10일에 태어났으며, 헌종 3년(1837) 16세 되던 해 남녕위(南寧尉) 윤의선과 혼인했다. 어머니는 순원왕후 김씨이다. 위로 명온공주, 복온공주 두 언니가 있었고, 명온공주 위로 또 한 명의 언니가 있었으나 어려서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덕온공주는 순조의 셋째 딸로 기록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넷째 딸이다.
[1]
뉴스
조선 마지막 공주, 덕온家 유물전
http://news.chosun.c[...]
조선일보
2012-05-09
생활용품 유물은 총 6건 33점이다.
3. 전해오는 이야기
헌종 10년(1844) 5월 24일은 헌종 계비의 간택일이었다. 공주는 임신 중이었음에도 경사를 함께 하기 위해 창경궁 통명전(通明殿)에 들어가 점심으로 비빔밥을 먹었는데, 이것이 급체하여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 아기를 낳았으나 아기는 곧 숨을 거두었다. 창고지기(庫直)가 아기를 매장한 지 두어 시간 뒤 공주도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진다.
당시 궁중 법도에 따라 부마는 사별 후에도 재혼할 수 없었다. 이에 오음(梧陰) 윤두수의 11대손인 윤용구(尹用求)가 남녕위 윤의선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덕온공주의 유물은 윤용구의 딸 윤백영이 보관하다가, 1960년대에 민속학자 석주선이 인수하여 보관하였다. 이후 석주선은 소장 유물을 단국대학교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2]
참조
[2]
뉴스
단국대, '조선 마지막 공주' 덕온공주 유물전 개최
http://www.kyeonggi.[...]
주간한국
2013-03-12
[3]
뉴스
"350년 된 '6세소년 실물 미라' 보러 오세요"
http://www.munhwa.co[...]
문화일보
201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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