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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카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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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리처드 카본은 영국의 정치인으로, 1979년부터 1984년까지 유럽 의회 의원을 지냈으며, 1983년부터 2010년까지 셰필드 센트럴 지역구의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닐 키노크 하에서 야당 대변인, 토니 블레어 정부에서 국무 장관을 역임했으며,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체육부 장관으로 재직했다. 2010년 로비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의회에서 제명되었다. 카본 원칙은 그의 이름을 딴 계획 신청 소환 결정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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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카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리처드 조지 카본
출생일1943년 10월 6일
출생지셰필드, 웨스트 라이딩 오브 요크셔, 잉글랜드
2005년의 카본
국적영국
배우자마가렛 헤이스
정당영국 노동당
학력셰필드 폴리테크닉
직업영국 하원 의원
의회 경력
영국 하원 의원선거구: 셰필드 센트럴 (영국 의회 선거구)
임기 시작: 1983년 6월 10일
임기 종료: 2010년 4월 12일
이전: 선거구 신설
이후: 폴 블롬필드
유럽 의회 의원선거구: 셰필드 (유럽 의회 선거구)
임기 시작: 1979년 6월 7일
임기 종료: 1984년 6월 14일
이전: 선거구 신설
이후: 밥 크라이어
정부 직책
스포츠 장관 (영국)임기 시작: 2001년 6월 7일
임기 종료: 2007년 6월 28일
총리: 토니 블레어
이전: 케이트 호이
이후: 게리 서트클리프
통상 담당 국무 장관임기 시작: 1999년 7월 28일
임기 종료: 2001년 6월 7일
총리: 토니 블레어
이전: 브라이언 윌슨 (노동당 정치인)
이후: 엘리자베스 시몬스, 버넘 딘 남작부인
지역, 재생 및 계획 담당 국무 장관임기 시작: 1997년 5월 2일
임기 종료: 1999년 7월 28일
총리: 토니 블레어
이전: 직책 신설
이후: 닉 레인스퍼드

2. 어린 시절

리처드 카본은 셰필드에서 태어났다. 그는 1958년까지 이스트 뱅크 로드(East Bank Road)에 있는 헐필드 중등학교(현재 셰필드 스프링스 아카데미)와 셰필드의 인테이크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후 그란빌 전문대학(현재 캐슬 칼리지, 셰필드 칼리지의 일부)과 셰필드 폴리테크닉(현재 셰필드 할람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아 엔지니어로 자격을 얻었다.

1959년 엔지니어링 도제 과정을 시작했으며, 1967년에는 Firth Brown에서 정비공으로 일하며 상점 스튜어드 대표가 되었다. 그는 노동 운동에 참여하여 1968년부터 1979년까지 셰필드 노동조합의 부회장을 지냈다. 또한 1975년부터 3년 동안 BBC의 이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그는 협동당과 아미쿠스(구 AEEU)의 회원이다.

3. 정치 경력

리처드 카본은 유럽 의회 의원을 시작으로 영국 하원 의원, 노동당 정부의 장관직을 두루 거치며 오랜 기간 정치 활동을 이어갔다.

1979년 셰필드 선거구에서 유럽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어 정치 경력을 시작했으며, 1983년에는 셰필드 센트럴 선거구에서 하원 의원으로 당선되어 2010년까지 자리를 지켰다. 야당 시절에는 닐 키노크 대표 아래에서 무역 및 산업, 지역 문제 담당 대변인을 맡았고, 하원 선거 위원회 의장으로도 활동했다.

1997년 노동당이 집권한 후에는 토니 블레어 정부에 합류하여 환경, 운송 및 지역부 국무 장관, 무역 및 산업부 국무 장관, 체육부 장관 등을 역임하며 영국 지역 개발 기관 설립, 웸블리 스타디움 재건과 같은 정책에 관여했다.

정치적으로는 존 프레스콧의 가까운 동맹이었으며, 과거 지지자로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반 아파르트헤이트 운동과 넬슨 만델라를 지지하고 1984-1985년 광부 파업 당시 아서 스카길을 지지하는 등 노동 운동 및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2003년에는 논란이 많았던 이라크 전쟁 참전 결정에 찬성표를 던지기도 했다.

2007년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영국의 2018년 FIFA 월드컵 유치 활동을 위한 총리 특사로 활동했으며,[1][2] 2010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정계를 은퇴했다.[3] 은퇴 후 기업 활동을 하던 중 2010년 로비게이트 스캔들에 연루되어 의회로부터 6개월 자격 정지 징계를 받았다.[4][5]

3. 1. 유럽 의회 의원 (1979-1984)

1979년 그는 셰필드 선거구에서 유럽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어 1984년까지 활동했다.

3. 2. 영국 국회의원 (1983-2010)

1979년 유럽 의회 의원 선거에서 셰필드 선거구 의원으로 선출되어 1984년까지 활동했다. 1983년 영국 총선에서는 기존 셰필드 파크 선거구의 노동당 의원이자 전 내각 장관이었던 프레더릭 멀리가 은퇴하면서 신설된 셰필드 센트럴 선거구에 출마했다. 이 선거에서 16,790표라는 큰 표차로 쉽게 당선되어 하원 의원이 되었으며, 2010년까지 이 지역구 의원으로 재직했다.

닐 키노크 대표 시절인 1988년 야당 대변인으로 임명되어 무역 및 산업 분야를 담당했으며, 1990년에는 지역 문제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1992년 영국 총선 이후에는 무역 및 산업 선거 위원회 의장을 맡아 1995년까지 활동했고, 이후 재판관 부 담당 야당 대변인이 되었다.

1997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한 후, 토니 블레어 총리 정부에 합류하여 환경, 운송 및 지역부의 국무 장관을 맡았다. 이 시기 영국 지역 개발 기관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영국 지역 정부 강화를 지지했으나, 2004년 잉글랜드 북부 국민투표에서 반대 여론이 높게 나타나자 정부는 관련 계획을 철회했다. 1999년에는 무역 및 산업부로 자리를 옮겨 같은 직위(국무 장관)를 역임했다. 같은 해 추밀원 위원으로 임명되었으며, 2001년 영국 총선 이후부터 2007년까지는 체육부 장관을 지냈다. 체육부 장관 재임 중 웸블리 스타디움 재건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2005년 10월, "눈이 6피트 정도 쌓이지 않는 한 FA컵 결승전은 그곳에서 열릴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카본은 존 프레스콧의 가까운 정치적 동맹으로 알려져 있으며, 1992년 노동당 부대표 선거에서 프레스콧의 선거 운동을 도왔다(당시 당대표로는 브라이언 굴드를 지지했다). 1994년에는 프레스콧의 부대표 및 대표 선거 운동을 모두 지원했다. 그는 과거 의 지지자였으며, 남아프리카 문제에 깊이 관여하여 넬슨 만델라와 반 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을 지지했고, 아프리카 민족 회의 지지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또한 1984–1985년 광부 파업 당시 아서 스카길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2003년 3월, 논란이 많았던 이라크 전쟁 참전 결정에 대한 의회 표결에서 토니 블레어 총리의 입장을 지지하며 찬성표를 던졌다. 2005년 12월 30일에는 영국 축구계의 임금 상한선 도입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2007년 6월 28일, 체육부 장관직에서 물러나 영국의 2018년 FIFA 월드컵 유치 활동을 위한 총리 특사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발표했다.[1] 이 역할에서 그는 FIFA를 상대로 로비 활동을 벌이고, 유치단의 고위직 임명을 감독했으며, 장관들과 영국 축구 협회 사이의 연락을 담당했다.[2]

2007년 9월 13일, 카본은 다음 총선에 불출마하고 정계를 은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3]

2010년 3월, 카본은 선데이 타임스의 보도를 통해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대가로 금전을 수수했다는 의혹, 이른바 로비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었다.[4] 이 사건으로 인해 2010년 12월 9일, 스티븐 바이어스, 제프 훈과 함께 의회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표준 및 특권 위원회는 카본에게 6개월 간의 의원직 자격 정지 처분을 내렸다 (바이어스는 2년, 훈은 5년).[5]

3. 3. 장관 경력

1997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한 후, 리처드 카본은 토니 블레어 정부에 합류하여 환경, 운송 및 지역부의 국무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영국 지역 개발 기관 설립에 깊이 관여했다. 그는 영국 지역 정부의 강력한 지지자였으나, 2004년 잉글랜드 북부 국민투표에서 부정적인 결과가 나오자 정부는 관련 계획을 철회했다.

1999년에는 무역 및 산업부로 자리를 옮겨 같은 직위(국무 장관)를 맡았으며, 같은 해 추밀원의 일원이 되었다. 2001년 영국 총선 이후부터 2007년까지는 체육부 장관을 역임했다. 체육부 장관 시절 그는 웸블리 스타디움 재건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2005년 10월, "눈이 약 1.83m 정도 오지 않는 한 FA컵 결승전은 그곳에서 열릴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또한 2005년 12월 30일에는 영국 축구계의 임금 상한선 도입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

장관 재임 중이던 2003년 3월, 카본은 논란이 많았던 이라크 전쟁 참전 결정에 대해 토니 블레어 총리를 지지하는 투표를 했다.

2007년 6월 28일, 그는 체육부 장관직에서 물러나 영국의 2018년 FIFA 월드컵 유치 활동을 위한 총리의 대사직을 맡을 것이라고 발표했다.[1] 이 역할에서 그는 FIFA를 상대로 로비 활동을 벌이고, 유치단의 고위직 임명을 감독했으며, 장관들과 영국 축구 협회 사이의 연락책 역할을 담당했다.[2]

3. 4. 2018년 FIFA 월드컵 유치

2007년 6월 28일, 그는 체육부 장관직에서 물러나 영국의 실패한 2018년 FIFA 월드컵 유치 활동을 위한 총리의 대사직을 맡게 되었다고 발표했다.[1] 이 역할에서 그는 FIFA에 로비를 하고, 유치단의 고위 팀 임명을 감독했으며, 정부 장관과 영국 축구 협회 사이의 연락을 담당했다.[2]

3. 5. 정계 은퇴 이후

카본은 2007년 9월 13일 다음 총선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발표했다.[3]

정계 은퇴 후, 카본은 셀라필드 핵 단지를 관리하는 핵 관리 파트너스의 이사직을 맡았으며, 핵 산업 건설 회사인 AMEC와 피트니스 산업 협회의 컨설턴트로도 활동했다.

2010년 3월, 카본은 선데이 타임스가 제기한 의혹으로 로비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었다. 그는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대가로 금전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았다.[4] 이 사건으로 인해 2010년 12월 9일, 스티븐 바이어스, 제프 훈과 함께 영국 의회에서 제명되었다. 의회 표준 및 특권 위원회는 카본에게 6개월의 제명 처분을 내렸다. 바이어스는 2년, 훈은 5년의 제재를 받았다.[5]

4. 정치적 입장 및 활동

1979년 셰필드의 유럽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어 1984년까지 활동했다. 1983년 영국 총선에서는 프레드 멀리 전 내각 구성원이 은퇴한 셰필드 파크 지역구를 계승한 새로운 선거구인 셰필드 센트럴에 노동당 후보로 출마하여 16,790표 차이로 쉽게 당선되었고, 2010년까지 해당 지역구의 국회의원으로 재임했다.

카본은 노동당 내에서 존 프레스콧의 가까운 동맹으로 알려져 있다. 1992년 프레스콧의 노동당 부대표 선거 운동을 도왔으며(당시 당대표 후보로는 브라이언 굴드를 지지), 1994년에는 프레스콧의 부대표 및 대표 선거 운동을 모두 지원했다. 초기에는 지지자였으며, 남아프리카 문제에 깊이 관여하여 넬슨 만델라와 반 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을 적극 지지했다. 또한 아프리카 민족 회의 지지 콘서트를 열기도 했으며, 1984–1985년 광부 파업 당시 아서 스카길을 강력히 지지하는 등 진보적인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야당 시절인 1988년 닐 키노크 지도부 하에서 무역 및 산업 분야 대변인을 맡았고, 1990년에는 지역 문제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1992년 총선 이후에는 무역 및 산업 선거 위원회 의장을 맡아 1995년까지 활동했으며, 이후 재판관 부 관련 야당 대변인이 되었다.

1997년 노동당이 집권하자 토니 블레어 정부에서 환경, 운송 및 지역부의 국무 장관으로 임명되어 영국 지역 개발 기관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영국 지역 정부 강화를 강력히 지지했으나, 2004년 잉글랜드 북부 국민투표에서 반대 여론이 높게 나타나자 정부는 관련 계획을 철회했다. 1999년에는 무역 및 산업부의 국무 장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같은 해 추밀원 위원으로 임명되었으며, 2001년 총선 이후부터 2007년까지 체육부 장관을 역임했다. 체육부 장관 재임 중 웸블리 스타디움 재건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2005년 10월, "눈이 6피트 정도 오지 않는 한 FA컵 결승전은 그곳에서 열릴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2003년 3월에는 논란이 많았던 이라크 전쟁 개입 결정에 대해 토니 블레어 총리를 지지하는 투표를 했다. 2005년 12월에는 영국 축구계의 임금 상한선 도입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2007년 6월 28일, 체육부 장관직에서 물러나 영국의 2018년 FIFA 월드컵 유치 활동을 위한 총리 대사직을 맡을 것이라고 발표했다.[1] 이 역할에서 그는 FIFA를 상대로 로비 활동을 벌이고, 유치단의 고위직 임명을 감독했으며, 정부 장관들과 영국 축구 협회 사이의 연락책을 담당했다.[2]

카본은 2007년 9월 13일 다음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하며 정계 은퇴 의사를 밝혔다.[3]

정계 은퇴 후 카본은 셀라필드 핵 단지를 관리하는 핵 관리 파트너스의 이사, 핵 산업 건설 회사인 AMEC의 컨설턴트, 피트니스 산업 협회의 컨설턴트로 활동했다.

2010년 3월, 카본은 선데이 타임스의 보도를 통해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금전적 대가를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이며 이른바 로비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었다.[4] 이 사건으로 인해 2010년 12월 9일, 스티븐 바이어스, 제프 훈과 함께 의회로부터 제명 처분을 받았다. 표준 및 특권 위원회는 카본에게 6개월의 자격 정지 처분을 내렸으며, 바이어스는 2년, 훈은 5년의 제재를 받았다.[5]

5. 논란

2003년 3월, 카본은 당시 많은 논란을 낳았던 이라크 전쟁에 대한 영국 의회 투표에서 토니 블레어 총리의 입장을 지지했다.

2010년 3월, 선데이 타임스는 카본이 특정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금전적 대가를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이른바 '로비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었음을 보도했다.[4] 이 사건으로 인해 2010년 12월 9일, 영국 의회의 표준 및 특권 위원회는 카본에게 6개월간의 의회 활동 정지 처분을 내렸다. 함께 연루된 스티븐 바이어스는 2년, 제프 훈은 5년의 제재를 받았다.[5]

6. 카본 원칙

카본 원칙은 영국의 국무장관이 계획 신청 소환 권한을 사용할지 결정할 때 사용하는 기준 목록으로, 1999년 6월 당시 계획부 장관이었던 카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참조

[1] 뉴스 Caborn ambassador for 2018 World Cup bid https://www.telegrap[...] The Daily Telegraph 2007-06-28
[2] 뉴스 Richard Caborn in World Cup bid questioned https://www.telegrap[...] The Daily Telegraph 2019-08-13
[3] 뉴스 Caborn to stand down as city MP http://news.bbc.co.u[...] BBC News 2007-09-13
[4] 뉴스 Two more ministerial 'cabs for hire' https://web.archive.[...] The Sunday Times 2010-06-19
[5] 웹사이트 Three Former MPs Face Parliamentary Ban http://news.sky.com/[...] 2010-12-09
[6] 간행물 Calling-in planning applications (England) https://researchbrie[...] House of Commons Briefing Paper Number 00930 2021-07-08
[7] 뉴스 Caborn ambassador for 2018 World Cup bid http://www.telegraph[...] 더 데일리 텔레그래프 2007-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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