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쿠우치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마쿠우치는 일본 스모의 최상위 등급으로, 요코즈나, 오제키, 세키와케, 고무스비, 마에가시라로 구성된다. 분세이 시대부터 사용된 용어로, 요코즈나는 스모의 최고 계급이며, 오제키는 요코즈나 다음 등급이다. 세키와케와 고무스비는 산야쿠로 불리며, 마에가시라는 산야쿠를 제외한 등급이다. 마쿠우치 선수들은 15일 동안 매일 경기를 펼치며, NHK를 통해 중계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마쿠우치 | |
---|---|
스모 정보 | |
유형 | 스모 |
스포츠 | 격투기 |
활동 기간 | 17세기 초 ~ 현재 |
국가 | 일본 |
계급 정보 | |
종류 | 계급 |
스포츠 | 스모 |
최상위 계급 | 요코즈나 |
하위 계급 | 조노구치 |
위치 | 일본 |
스모 계급 | |
최상위 | 마쿠우치 |
두 번째 | 주료 |
세 번째 | 마쿠시타 |
네 번째 | 산단메 |
다섯 번째 | 조니단 |
여섯 번째 | 조노구치 |
2. 역사
역사적으로 반즈케(番付, 순위표)의 최상단에 있는 선수들을 "마쿠우치"라고 부르게 된 것은 분세이(文政) 시대 무렵으로 여겨진다. 그 이전의 반즈케에서는 현대에 최상단의 선수들을 편의상 "마쿠우치"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당시 어디까지 "마쿠우치"라고 불렸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분세이 시대 이전의 반즈케에서는 최상단을 "마쿠우치"와 구별하여 "상단"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막우치는 요코즈나, 오제키, 세키와케, 고무스비의 산야쿠와 마에가시라로 구성된다.[1]
요코즈나 칭호의 시작은 불분명하며, 두 가지 상반된 전설이 있다. 한 전설에 따르면 9세기의 레슬러 하지카미는 핸디캡으로 허리에 시메나와를 묶고 감히 건드려 보라고 도발하며 현재 알려진 스모를 만들었다고 한다. 다른 전설에 따르면 전설적인 레슬러 아카시 시가노스케는 1630년 황제를 방문했을 때 존경의 표시로 허리에 시메나와를 묶었고, 사후 처음으로 이 칭호를 받았다고 한다. 두 설 모두 뒷받침할 증거는 거의 없다. 1789년 11월, 4대 요코즈나 타니카제 카지노스케와 5대 요코즈나 오노가와 키사부로가 우키요에 판화에 시메나와를 착용한 모습으로 묘사된 이후 요코즈나라는 칭호가 사용되었다.[3]
메이지 시대 이전에는 쇼군 앞에서 스모를 하는 오제키에게 요코즈나 칭호가 수여되었다. 이 특권은 레슬러의 능력과 위엄보다는 레슬러의 후원자가 충분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따라서 현대적 기준으로는 이름만 요코즈나였던 초기의 레슬러들이 많이 있었다. 이 초창기에는 요코즈나는 순위 목록에서 별도의 계급으로 간주되지 않았고, 자신의 링 입장 의식을 수행할 수 있는 특별 허가를 받은 오제키로 간주되었다.
처음에는 요시다 가문과 라이벌 가문인 고조 가문이 레슬러에게 요코즈나 면허를 수여할 권리를 놓고 다퉜다. 요시다 가문이 이 분쟁에서 승리했는데, 이는 15대 요코즈나 우메가타니 토타로 1세가 가장 강력한 레슬러 중 한 명으로서 1884년 2월 요시다 가문으로부터 면허를 받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며, 고조 면허는 더 이상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1890년 5월, 16대 요코즈나 니시노우미 카지로 1세가 자신의 요코즈나 지위가 기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처음으로 반즈케에 요코즈나라는 이름이 적혔다. 1909년 2월, 19대 요코즈나 히타치야마 타니에몬과 20대 요코즈나 우메가타니 토타로 2세의 재위 기간 동안, 요코즈나가 공식적으로 최고 계급으로 인정받았다. 1950년 4월 21일 요코즈나 심의 위원회(横綱審議委員会|요코즈나신기의인카이일본어)가 설립된 이후, 선수들은 일본 스모 협회에 의해 요코즈나로 승진되었다. 일본 스모 협회에 의해 승진된 최초의 요코즈나는 41대 요코즈나 치요노야마 마사노부였다.
3. 구성
산야쿠는 문자 그대로 "세 개의 직위"를 의미하지만 실제로는 요코즈나, 오제키, 세키와케, 고무스비 네 개의 직위로 구성된다. 이는 전통적으로 요코즈나가 특별 허가를 받아 허리에 밧줄을 착용하고 특별한 링 입장 의식을 수행하는 오제키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요코즈나와 오제키가 세키와케, 고무스비와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기 때문에 산야쿠의 정의가 다소 유연해졌다.
반즈케 양쪽에는 최소 하나의 세키와케와 고무스비가 있어야 하며, 일반적으로 총 2명이다. 요코즈나가 둘 이상이고 오제키가 하나만 있는 경우, 요코즈나 중 한 명을 요코즈나-오제키로 지정하여 채운다.
산야쿠 직위에 도달한 레슬러는 일본 스모 협회의 회원 지분 중 하나를 구매할 자격이 있으며, 특정 상황에서 모든 스모 레슬러를 대표하도록 요청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스모 협회 회장이 토너먼트 개막 및 폐막일에 공식 연설을 할 때, 모든 산야쿠 레슬러가 마와시를 입고 그를 호위한다.
산야쿠는 선배 요코즈나와 오제키, 후배 세키와케와 고무스비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특별 승진 기준과 더 높은 급여를 받으며, 스모 협회 구내 주차 권한, 협회 이사 선거 투표권과 같은 추가 특전이 있다. 후자는 산쇼 중 하나를 받을 자격이 있다.
마에가시라는 산야쿠에 속하지 않는 모든 마쿠우치 레슬러를 지칭하며, 최상위부터 번호가 매겨진다. 마쿠우치 레슬러의 수는 42명으로 고정되어 있지만, 산야쿠의 수는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마에가시라의 등급 수는 다양할 수 있다.
같은 마쿠우치라도 지위에 따라 번호 매김상의 글자 크기가 달라지며, 지위가 높을수록 글자 크기도 커진다. 글자 크기 순서는 요코즈나 > 오제키 > 세키와케・고무스비 > 마에가시라 순이다.
3. 1. 요코즈나 (横綱)
스모에서 가장 높은 계급이다. 요코즈나라는 이름은 "수평 로프"를 의미하며, 그들의 계급을 나타내는 가장 눈에 띄는 상징인 허리에 착용하는 시메나와에서 유래되었다.[2] 이 로프는 신토에서 신성한 구역을 표시하는 데 사용되는 ''시메나와''와 유사하며, 정화의 기능을 한다.[2] 최대 20kg까지 나갈 수 있는 이 로프는 경기 중에는 사용되지 않지만, ''요코즈나''의 ''도효이리'' 링 입장 의식 때 착용한다.
스포츠의 가장 큰 스타인 ''요코즈나''는 여러 면에서 스모의 그랜드 마스터이자 대중의 얼굴이다. 따라서, 그들이 행동하는 방식은 매우 면밀히 조사되는데, 이는 스모 전체의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요코즈나 칭호의 시작은 불분명하며, 두 가지 상반된 전설이 있다. 한 전설에 따르면, 9세기의 레슬러 하지카미는 핸디캡으로 허리에 시메나와를 묶고 감히 건드려 보라고 도발하며, 현재 알려진 스모를 만들었다고 한다. 다른 전설에 따르면, 전설적인 레슬러 아카시 시가노스케는 1630년 황제를 방문했을 때 존경의 표시로 허리에 시메나와를 묶었고, 사후 처음으로 이 칭호를 받았다. 두 설 모두 뒷받침할 증거는 거의 없다. 아카시의 존재조차 확실하지 않지만, 1789년 11월 4대 요코즈나 타니카제 카지노스케와 5대 요코즈나 오노가와 키사부로를 시작으로 요코즈나가 우키요에 판화에 시메나와를 착용한 모습으로 묘사되었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이 두 레슬러 모두 유력한 요시다 가문으로부터 요코즈나 면허를 받았다.[3]
메이지 시대 이전에는 쇼군 앞에서 스모를 하는 오제키에게 요코즈나 칭호가 수여되었다. 이 특권은 레슬러의 능력과 위엄보다는 레슬러의 후원자가 충분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따라서 현대적 기준으로는 이름만 요코즈나였던 초기의 레슬러들이 많이 있었다. 이 초창기에는 요코즈나는 순위 목록에서 별도의 계급으로 간주되지 않았고, 자신의 링 입장 의식을 수행할 수 있는 특별 허가를 받은 오제키로 간주되었다.
처음에는 요시다 가문과 라이벌 가문인 고조 가문이 레슬러에게 요코즈나 면허를 수여할 권리를 놓고 다퉜다. 요시다 가문이 이 분쟁에서 승리했는데, 이는 15대 요코즈나 우메가타니 토타로 1세가 가장 강력한 레슬러 중 한 명으로서 1884년 2월 요시다 가문으로부터 면허를 받기를 희망했기 때문이며, 고조 면허는 더 이상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1890년 5월, 16대 요코즈나 니시노우미 카지로 1세가 자신의 요코즈나 지위가 기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처음으로 반즈케에 요코즈나라는 이름이 적혔다. 1909년 2월, 19대 요코즈나 히타치야마 타니에몬과 20대 우메가타니 토타로 2세의 재위 기간 동안, 요코즈나가 공식적으로 최고 계급으로 인정받았다. 1950년 4월 21일 요코즈나 심의 위원회가 설립된 이후, 레슬러들은 일본 스모 협회에 의해 요코즈나로 승진되었다. 스모 협회에 의해 승진된 최초의 요코즈나는 41대 요코즈나 치요노야마 마사노부였다.
현대 스모에서, 요코즈나로 승진하기 위해 오제키가 충족해야 하는 자격은 충분한 힘, 기술, 그리고 품격(品格, hinkaku)을 갖추는 것이다. 절대적인 기준은 없으며, 정해진 할당량도 없다. 요코즈나 계급에 레슬러가 없는 시기도 있었고, 동시에 4명이나 되는 시기도 있었다.
힘과 기술 측면은 대개 최근 토너먼트 성적과 관련하여 고려된다. 사실상(de facto) 기준은 오제키로 2번 연속 우승하거나 이에 상응하는 성적을 내는 것이다. "이에 상응하는 성적" 기준이 사용되는 경우, 레슬러의 지난 3번의 토너먼트 기록이 고려되며, 최소 1번의 토너먼트 우승과 1번의 준우승을 기록하고, 3번의 기록 모두 12승 미만으로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일관된 높은 수준의 성적이 요구된다. 그 사이에 저조한 성적을 보이며 2번의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는 것은 보통 충분하지 않다. 또한, 3번 연속 토너먼트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그 예로는 2013년과 2016년의 오제키 기세노사토가 있다. 규칙은 확정된 것이 아니므로 요코즈나 심의회와 스모 협회는 결론을 내릴 때 기준을 더 관대하거나 엄격하게 해석할 수 있으며, 토너먼트 우승 총 횟수, 승리의 질, 그리고 패배가 심각한 취약성을 나타내는지 여부와 같은 다른 요인도 고려할 수 있다.
품격(hinkaku, 품위와 기품)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문제이므로 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하와이 출신 오제키 코니시키는 특히, 그의 비일본인 출신 때문에 부당하게 요코즈나 지위를 얻지 못했다고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며, 많은 스모 협회 회원들은 외국인(가이진)은 요코즈나가 되기 위해 필요한 품격을 결코 얻을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코니시키의 경우, 그의 체중과 같은 다른 문제도 언급되었다.[4] 외국인이 요코즈나가 될 품격을 갖는지에 대한 논쟁은 1993년 1월 27일, 하와이 출신 오제키 아케보노가 오제키가 된 지 불과 8개월 만에 공식적으로 요코즈나로 승진하면서 마침내 종식되었다. 그 이후, 외국인이 필요한 품격을 갖는지에 대한 문제는 1993년 아케보노 이후 스모 최고 계급을 달성한 9명의 레슬러 중 6명이 일본에서 태어나지 않으면서 논쟁의 여지가 없는 문제가 되었다. 무사시마루는 미국 출신이며, 아사쇼류, 하쿠호, 하루마후지, 카쿠류, 그리고 테루노후지는 모두 몽골 출신이다.
다른 레슬러들도 승진이 보류된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어, 치요노야마는 1950년대에 연속 토너먼트에서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젊다는 이유로 즉시 승진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최고 계급을 달성했다.[5] 반면에, 후타하고로는 그의 승진에 대한 반대 의견으로 미성숙함이 언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86년에 요코즈나 칭호를 받았다.[6] 승진 후, 그는 사소한 문제로 그의 츠케비토(하인 또는 개인 조수) 중 한 명을 때리는 등 스모 협회를 당황하게 하는 여러 부적절한 행동에 연루되었고, 그 스캔들로 그의 일곱 명의 츠케비토 중 여섯 명이 그를 떠나기로 결정했다.[7] 승진은 그가 안정 사장인 타츠나미와 격렬한 논쟁을 벌였고, 그의 헤야에서 뛰쳐나와 그 과정에서 타츠나미의 아내를 때렸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면서 다시 한 번 실패로 드러났다. 후타하고로는 결국 최고 계급에서 불과 1년 반 만에 은퇴했고, 스모 역사상 적어도 한 번의 최고 부문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지 않고 은퇴한 유일한 요코즈나가 되었다.
다른 모든 스모 계급과는 달리, ''요코즈나''는 강등될 수 없다. 그러나 토너먼트 기간 동안, ''요코즈나''에 대한 기대는 매우 높다. ''요코즈나''는 정기적으로 우승하거나 적어도 챔피언십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요코즈나''는 더 이상 이 스포츠의 정점에서 경쟁할 수 없거나, 어떤 경우에는 (후타하고로 또는 하루마후지와 같이) 계급의 품위를 유지하지 못했다고 판단될 경우 은퇴해야 한다. 기대가 너무 높아, 심지어 한 토너먼트 과정에서도 초반에 패배할 것으로 보이는 ''요코즈나''는 은퇴 압박을 느낄 것이다. ''make-koshi''(패배 기록)를 피하고 은퇴해야 한다는 기대를 피하기 위해, 실제 또는 상상된 부상으로 토너먼트에서 기권하는 것은 ''요코즈나''에게 흔하고 예상되는 일이다. 이러한 기대는 무엇보다 ''요코즈나'' 승진 기준이 매우 엄격한 이유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극히 드문 경우에, 요코즈나 심의회는 3분의 2 이상의 위원 찬성으로, 품격과 인품, 기량이 요코즈나의 지위에 걸맞지 않다고 판단되는 요코즈나에게 통고를 할 수 있다.[8] 이러한 통고는 심각한 정도에 따라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1950년 심의회 창설 이후 통고가 세 번 발령되었다.
이 권고는 아사쇼류가 2010년 1월 대회 기간 중 나이트클럽에서 술에 취해 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여 부상을 입혔다는 혐의로 인해 내려졌다. 언론에서는 아사쇼류가 심의회의 권고에 앞서 자진 은퇴를 선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9]
기세노사토는 2018년 11월 대회에서 첫 다섯 경기를 모두 패한 후 기권했다. 그 전에도 그는 요코즈나로 재임하는 동안 10번의 대회 중 8번에서 승리 없이 기권했다(부분적 혹은 전체적으로). 이러한 기권은 2017년 3월 우승 당시 입은 부상의 여파였다. 그는 결국 2019년 1월 ''바쇼''에서 3연패를 한 후 은퇴했다.
심의회에 따르면, 두 레슬러 모두 2019년 11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요코즈나의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이 기간 동안 하쿠호는 세 번(2019년 11월과 2020년 3월 ''유쇼'', 2020년 7월 10승) 충분히 기량을 발휘했고, 카쿠류는 2020년 3월 12승으로 준우승을 한 한 번뿐이었다. 두 선수 모두 부상으로 인해 2020년 9월과 2020년 11월 대회에 불참했다.
하쿠호와 카쿠류에 대한 주의는 2021년 3월에 유지되었다.[11] 카쿠류는 주의를 받은 후 두 번의 대회에 더 불참했고, 결국 2021년 3월 ''바쇼'' 동안 은퇴했다.[12] 2021년 1월 대회에 코로나19로 불참한 후, 하쿠호는 3월에 두 경기를 이겼지만, 의사로부터 슬개골 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기권했다.[11]
다니카제 시대부터 요코즈나 칭호가 공식적으로 생겨난 것은, 최정상급 선수들에게 나머지 최고 등급 선수들과는 다른 링 입장 의식을 갖게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도효이리''는 당일의 경쟁 경기에 앞서 모든 최고 등급 선수들을 소개하는 의식이다. 최고 등급 선수들의 일반적인 의식은 소개를 받고 특별히 장식된 무거운 실크 "앞치마"인 ''게쇼마와시''를 입고 씨름장(''도효'') 주위에 원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들은 경기용 ''마와시''로 갈아입고 경기를 준비하기 전에 짧은 상징적인 "춤"을 춘다.
그러나 ''요코즈나''는 하위 랭커 레슬러들 다음에 소개되며 다른 두 명의 최고 등급 레슬러 "조력자"들이 양 옆을 호위한다. "이슬 쓸이" 또는 ''쓰유하라이''가 ''요코즈나''보다 앞서고, "칼을 든 자" 또는 ''타치모치''가 경기장으로 그를 따라 들어간다. 칼은 일본의 카타나이며 요코즈나의 사무라이 신분을 상징한다. ''타치모치''는 항상 보조 선수들 중 더 높은 랭커가 맡는다. 위에 언급했듯이, 의식 동안 ''요코즈나''는 허리에 자신의 ''쓰나''를 착용한다.[2] 세 명 모두의 의식용 앞치마는 한 세트를 이룬다.
링에 들어서면, ''요코즈나''는 무대의 중심에 서서 훨씬 더 복잡한 의식 춤을 춘다. 이 춤은 두 가지 형태로 할 수 있으며, ''요코즈나''는 처음 승격될 때 보통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약간 다른 방식 외에도, ''요코즈나''의 의식 선택은 허리에 묶는 밧줄의 매듭으로도 결정될 수 있다. "운류" 스타일은 뒤쪽에 하나의 고리만 있는 반면, "시라누이" 스타일은 두 개의 고리가 있다. 이 스타일들은 에도 시대의 10대 ''요코즈나'' 운류 큐키치와 11대 ''요코즈나'' 시라누이 코에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지만, 그들이 실제로 자신들에게 귀속된 춤을 추었다는 역사적 증거는 없다.
전 ''요코즈나''가 60세가 되면, 그는 보통 자신의 장수를 기념하여 빨간 ''쓰나''를 착용하고 ''칸레키 도효이리''라고 알려진 특별한 링 입장 의식을 수행한다. 이 의식은 1937년 전 ''요코즈나'' 타치야마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3. 2. 오제키 (大関)
오제키(大関)는 요코즈나 바로 아래 등급이다. 요코즈나 등급이 도입되기 전에는 오제키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 등급이었다. 반즈케에는 항상 최소 2명의 오제키가 있어야 하며, 실제 오제키가 2명 미만일 경우 1명 이상의 요코즈나가 "요코즈나-오제키"로 지정된다. 2020년 3월에는 타카케쇼만이 오제키였고, 카쿠류가 요코즈나-오제키로 지정되었다.[14] 2023년 첫 3개의 토너먼트에서 타카케쇼가 다시 유일한 오제키였고, 테루노후지에게 요코즈나-오제키 지정이 주어졌다.[15][16]
역사적으로 레슬러가 오제키로 승진하는 것은 여러 토너먼트를 거치는 과정이다. 세키와케 등급의 레슬러가 가장 최근 세 번의 토너먼트에서 총 33승 이상을 거두고, 최근 완료된 토너먼트에서 10승 이상을 거두었을 경우 승진을 고려한다. 3개 토너먼트에서 33승을 거두는 것은 거의 확실한 보증으로 간주된다. 토너먼트 우승이나 요코즈나를 꺾는 것과 같은 확실한 성과와 더불어 레슬러의 전반적인 일관성, 기량 및 스모의 질이 승진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반칙 기술 기록이나 특정 회피 기술에 의존하는 것은 오제키에게 기대되는 위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승진은 심판부에서 일본 스모 협회 이사회에 권고한다. 처음으로 승진하는 경우 이사회의 한 구성원이 공식적으로 레슬러의 스모방을 방문하여 새로운 오제키에게 승진을 알린다. 오제키는 보통 이 자리에서 연설을 하여 계급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
에도 시대에는 레슬러들이 신체 조건만으로 오제키로 데뷔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실제 경쟁력은 검증되지 않았다. 이 제도는 "게스트 오제키"(看板大関|간반 오제키일본어)라고 불렸다. 이들 중 대부분은 곧바로 반즈케에서 사라졌지만, 타니카제 카지노스케를 비롯한 몇몇 레슬러는 실제 레슬러로 남았다.
3. 3. 세키와케 (関脇)
산야쿠의 세 번째 등급이다. 세키와케는 오제키로 승진하기 위한 발판으로 여겨진다. 오제키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세 번의 토너먼트에서 최소 33승을 거두어야 한다.[20]
3. 4. 고무스비 (小結)
산야쿠의 최하위 등급이다. 세키와케와 고무스비는 주니어 산야쿠로 함께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번호 매김상 반드시 최소 2명(동서 1명)씩 배치해야 한다.[20] 글자 크기는 고래 자로 5푼 5리(약 2.1cm)를 차지한다.
3. 5. 마에가시라 (前頭)
산야쿠에 속하지 않는 모든 마쿠우치 레슬러는 최상위부터 번호가 매겨진 '''마에가시라'''(前頭)로 분류된다.[1] 각 등급에는 두 명의 레슬러가 있으며, 상위 랭크는 "동"으로, 하위 랭크는 "서"로 지정된다. 따라서 동쪽 1번은 서쪽 1번보다 높은 랭크로 취급된다.
마쿠우치 레슬러의 수는 2004년부터 42명으로 고정되어 있지만, 산야쿠의 수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마에가시라''의 등급 수는 다양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15~17 사이이다. (이는 약 10명의 ''산야쿠''와 32명의 ''마에가시라''로 ''마쿠우치'' 등급이 나뉘는 것을 의미한다).
''마에가시라'' 등급 내의 이동은 레슬러가 이전 15경기 토너먼트에서 얻은 점수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 8-7의 기록을 가진 ''마에가시라'' 2는 다음 토너먼트에서 ''마에가시라'' 1로 한 단계만 승격될 수 있다. 반대로, 등급 14의 ''마에가시라''가 등급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 ''고무스비''까지 승격될 수도 있다. 실제로 2000년 3월 다카토리키가 후타고야마에서 13-2의 기록으로 챔피언십에서 우승했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마에가시라'' 5등급 이하의 레슬러는 자신들끼리만 경기를 할 가능성이 높지만(토너먼트 중간에 승리 기록이 좋으면 상위 등급의 레슬러와 경기를 할 수 있음), ''마에가시라'' 4등급 이상의 레슬러는 ''오제키''와 ''요코즈나''를 포함한 ''산야쿠'' 레슬러와 여러 경기를 할 가능성이 높다. ''마에가시라'' 1, 2의 레슬러는 일반적으로 ''산야쿠''의 모든 선수와 대결하게 된다(자신의 방 소속 선수와는 대결할 수 없다는 예외 제외). 따라서 이러한 등급은 유지하기 매우 어려운 등급으로 간주된다. 하위 랭크의 ''마에가시라''가 토너먼트 두 번째 주에 우승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점수를 얻으면 ''바쇼'' 후반에 상위 랭크의 상대를 만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예를 들어, 2020년 1월에는 토너먼트 최하위 랭크인 ''마에가시라'' 17 토쿠쇼류가 ''반즈케'' 하위권의 상대와만 대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우승 경쟁에 참여했고, 마지막 날 다카케이쇼 ''오제키''와 대결하여 승리하면서 ''바쇼'' 우승을 차지했다.
''마에가시라''가 요코즈나를 이기면 ''킨보시''라고 불리며, 그는 남은 선수 생활 동안 이 승리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받는다.[1] 레슬러가 ''킨보시''를 획득하여 ''요코즈나''를 물리치는 경기는 일반적으로 스모 경기장에서 큰 흥분을 일으키며, 기술적으로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중이 그러한 경기 후에 좌석 쿠션을 링 안으로 (그리고 레슬러에게) 던지는 것이 일반적이고 예상된다.
'''마에가시라 총 횟수'''
총 횟수 | 선수 | 첫 번째 | 마지막 | 최고위 |
---|---|---|---|---|
53 | 히고노우미 | 1993년 3월 | 2001년 11월 | 마에가시라 1 |
52 | 아사노와카 | 1994년 3월 | 2004년 5월 | 마에가시라 1 |
사다노우미 | 2014년 5월 | 2024년 5월 | 마에가시라 1 | |
토요히비키 | 2007년 7월 | 2017년 5월 | 마에가시라 2 | |
51 | 코토리유 | 1996년 7월 | 2005년 3월 | 마에가시라 1 |
50 | 토키츠우미 | 1998년 9월 | 2007년 9월 | 마에가시라 3 |
49 | 키타카치도키 | 1989년 1월 | 1998년 5월 | 마에가시라 1 |
46 | 미나토후지 | 1993년 7월 | 2001년 7월 | 마에가시라 2 |
44 | 나루토우미 | 1949년 10월 | 1960년 11월 | 마에가시라 1 |
43 | 다이유 | 1963년 5월 | 1972년 9월 | 마에가시라 1 |
히로세가와 | 1943년 1월 | 1958년 5월 | 마에가시라 3 |
공식적인 구분은 아니지만, 대략적으로는 *마쿠우치* 4번째, 5번째 이상 (요코즈나, 오제키의 인원수에 따라 다름)을 *마쿠우치* 상위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이는 시합 편성상, 이 반즈케를 경계로 서로 대전하는 경우가 적고, 같은 *마쿠우치* 내에서도 사실상 2부 리그제가 되기 때문이다. 이론상으로는, 위에서 16번째의 *리키시*는 15번 모두 반즈케 상위의 *리키시*와 대전하고, 17번째의 *리키시*는 모두 반즈케 하위의 *리키시*와 대전하게 된다. 1960년대까지는, 반즈케 편성상의 내규로서, 〈*마에가시라* 5번째 이상, 혹은 요코즈나·오제키와 대전한 *리키시*는, 전패해도 *주료*로 강등되지 않는다〉라는 것이 있었지만, 1971년에 폐지가 명시되었다.[19]
그 때문에, 실력을 키워나가는 도중의 *리키시*는 *마쿠우치*(하위)에 정착한 후, 처음 *마쿠우치* 상위에 승진한 장소에서는, 10패 이상 등의 큰 패배를 하여 밀려나는 예가 많다. 그에 비하면, 신 *고무스비*에서는 이미, *마에가시라* 상위의 지위에서 상위 총당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대패를 하는 예는 많지 않다. 관점에 따라서는 *마쿠우치* 상위와 하위에서는, *산야쿠*와 *히라마쿠* 사이 이상의 차이가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4. 특징
본 장소에서는 15일 동안 매일 경기가 편성되며, NHK에 의해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 막내 경기는 중입 후에 진행된다. 현재 정원은 42명이다 (2004년 1월 장소 이후).
본 장소의 경기는 원칙적으로 막내끼리 진행되지만, 휴장 등으로 인해 막내 출전자가 홀수가 된 경우나, 장소 후반의 교체전 등의 경우에는 막내 하위의 씨름 선수가 십량 씨름 선수와 대전하는 경우가 있다.
십량 씨름 선수가 막내로 승진하는 것을 '''입막'''이라고 부른다. 이 중 처음 입막하는 것을 신입막, 두 번째 이후의 입막을 되돌아 입막 또는 재입막이라고 부르며 구분하기도 한다. 입막 및 십량으로의 강등에 대한 기준은 각자의 성적이나 막내 씨름 선수의 은퇴자 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일정하지 않다.
십량 씨름 선수가 본 장소의 대기석에서 공용 방석을 사용하는 데 반해, 막내 씨름 선수는 사유 방석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막내 씨름 선수는 자신의 씨름 선수 이름이 새겨진 유카타를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여름에는 씨름 선수 이름이나 무늬를 염색한 "염색"이라고 불리는 기모노를 착용할 수 있다(여름에도 무지 기모노는 착용할 수 있지만, 장소 입장 시에는 십량 씨름 선수와 마찬가지로 하오리도 착용해야 한다).
막내를 통산 20장소 근무한 씨름 선수, 막내와 십량을 통산하여 30장소 이상 근무한 씨름 선수, 및 1장소라도 삼역을 경험한 씨름 선수는 토시요리 습명의 자격을 얻는다.
5. 막내 상위
공식적인 구분은 아니지만, 대략적으로 마에가시라 4, 5번째 이상을 막내 상위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이는 경기 편성상 이들을 경계로 서로 대전하는 경우가 적고, 같은 막내 내에서도 사실상 2부 리그제가 되기 때문이다. 1971년까지 마에가시라 5번째 이상, 혹은 요코즈나, 오제키와 대전한 선수는 전패해도 주료로 강등되지 않는다는 내규가 있었다.[19]
실력이 성장하는 단계의 리키시는 마쿠우치(하위)에 정착한 후, 처음 막내 상위에 승진했을 때 10패 이상으로 크게 져서 밀려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신 고무스비는 이미 마에가시라 상위에서 상위 선수들과 대등하게 경기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어, 크게 패하는 경우가 드물다. 따라서 막내 상위와 하위는 산야쿠와 히라마쿠 사이보다 더 큰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은 신입 막(幕) 이후, 소요 장소 수가 적었던 리키시(力士)를 나타낸 표이다.
시코나 | 소요 장소 수 | 막하 | 주료 | 첫 씨름판 | 신입 막 |
---|---|---|---|---|---|
엔도 마사히로 | 3 장소 | 2 장소 | 1 장소 | 2013년 3월 장소 | 2013년 9월 장소 |
하쿠오호 테츠야 | 1 장소 | 2 장소 | 2023년 1월 장소 | 2023년 7월 장소 | |
나가오카 스에요시 | 4 장소 | 2 장소 | 2 장소 | 1978년 3월 장소 | 1978년 11월 장소 |
무소야마 마사시 | 2 장소 | 2 장소 | 1993년 1월 장소 | 1993년 9월 장소 | |
미야비야마 사토시 | 2 장소 | 2 장소 | 1998년 7월 장소 | 1999년 3월 장소 | |
이치노조 슌 | 2 장소 | 2 장소 | 2014년 1월 장소 | 2014년 9월 장소 | |
오타케우미 히사시 | 2 장소 | 2 장소 | 2015년 3월 장소 | 2015년 11월 장소 | |
오노사토 타이키 | 2 장소 | 2 장소 | 2023년 5월 장소 | 2024년 1월 장소 | |
다이키코 마사토 | 5 장소 | 4 장소 | 1 장소 | 1990년 3월 장소 | 1991년 1월 장소 |
와지마 히로시 | 6 장소 | 2 장소 | 4 장소 | 1970년 1월 장소 | 1971년 1월 장소 |
데지마 다케하루 | 3 장소 | 3 장소 | 1996년 3월 장소 | 1997년 3월 장소 |
- 시코나는 신입 막 시의 것.
- 엔도, 오타케우미, 오노사토는 10매째 격, 하쿠오호, 이치노조는 15매째 격, 그 외는 60매째 격 부출.
- 하쿠오호는 신입 막 시에 오치아이에서 개명.
- '''굵은 글씨'''는 현역 역도.
6. 시상
막내 최고 우승을 차지한 선수는 천추락의 모든 경기가 종료된 후 열리는 시상식에서 천황사배와 우승기를 수여받는다. 또한 우승 액자가 증정되어 5년여 동안 국기관에 걸린다. 상금은 1000만엔이다.
또한 요코즈나·오제키 이외의 성적 우수자(승리를 거두는 것이 필요 조건)에게는, 씨름 내용 등에 의해 선고를 거쳐 삼상 (수훈상, 감투상, 기술상)이 수여된다.[1]
7. 기록
요코즈나와 달리 산야쿠 계급은 강등될 수 있다. 오제키의 강등은 두 단계 절차를 거친다. 먼저, 오제키는 토너먼트에서 패배 기록(7-8 또는 그 이하)을 기록해야 하는데, 이를 메-코시라고 한다. 이때 오제키는 가도반 상태가 된다. 다음 토너먼트에서 승리 기록(8-7 또는 그 이상, 카치-코시)을 기록하면 정규 오제키 지위로 복귀한다. 반면, 가도반 상태에서 다음 토너먼트에도 패배 기록을 하면 세키와케로 강등된다. (아무리 부진해도 세키와케보다 낮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세키와케로 강등된 후, 해당 토너먼트에서 10번 이상 승리하면 다음 토너먼트에서 오제키로 복귀한다. 그러나 10승을 넘지 못하면, 다른 레슬러와 동일하게 오제키 승진 심사를 받는다. 이 시스템은 1969년 나고야 토너먼트부터 시행되었다. 이후 미에노우미, 타카노나미, 무소야마, 토치아즈마 다이스케(두 번), 토치노신 츠요시, 타카케이쇼 미츠노부 등 여섯 명의 레슬러가 즉시 오제키 복귀에 성공했다.
미타케우미 히사시는 세 번의 연속적인 패배 기록 후 오제키에서 강등된 유일한 레슬러이다. 2022년 7월 바쇼를 가도반으로 시작했지만, 같은 방 레슬러의 코로나19 확진으로 토너먼트 중간에 기권했다. 스모 협회 코로나 프로토콜에 따라 미타케우미의 오제키 계급과 가도반 상태는 9월 토너먼트까지 연장되었고,[17] 거기서 또 다른 패배 기록으로 강등되었다.
7. 1. 막내 연속 재위 기록
순위 | 시코나(四股名) | 연속 재위 장소 수 | 기간 | 내역 |
---|---|---|---|---|
1위 | 가이오 | 106장소 | 1993년 11월 장소 – 2011년 7월 장소 | 오제키 65장소・세키와케 21장소・고무스비 11장소・평막 9장소 |
2위 | 하쿠호 | 104장소 | 2004년 5월 장소 – 2021년 9월 장소 | 요코즈나 85장소・오제키 7장소・세키와케 5장소・고무스비 2장소・평막 5장소 |
3위 | 다카미야마 | 97장소 | 1968년 1월 장소 – 1984년 1월 장소↓ | 세키와케 8장소・고무스비 19장소・평막 70장소 |
4위 | 고토쇼기쿠 | 91장소 | 2005년 5월 장소 – 2020년 9월 장소↓ | 오제키 32장소・세키와케 12장소・고무스비 8장소・평막 39장소 |
5위 | 테라오 | 90장소 | 1985년 7월 장소 – 2000년 5월 장소↓ | 세키와케 7장소・고무스비 6장소・평막 77장소 |
아키노시마 | 1988년 7월 장소 – 2003년 5월 장소 | 세키와케 12장소・고무스비 15장소・평막 63장소 |
- 2024년 7월 장소 시점.
- ↓는 주료로 강등, 무표시는 은퇴.
- 시코나는 막내에서 마지막으로 사용한 것.
- 가이오의 재위 기간 중에는 스모 승부 조작 문제로 인한 본 장소 중지 1장소, 하쿠호, 고토쇼기쿠의 재위 기간 중에는 스모 승부 조작 문제로 인한 본 장소 중지와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인한 중지 2장소가 있다.
7. 2. 스피드 입막 기록
시코나(이름) | 소요 장소 수 | 마에즈모 | 조노구치 | 조니단 | 산단메 | 마쿠시타 | 주료 | 첫 씨름 | 신입 막내 |
---|---|---|---|---|---|---|---|---|---|
토키코류 키유키 | 9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2장소 | 3장소 | 2011년 5월 장소 | 2012년 11월 장소 |
타카노후지 야키야 | 9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4장소 | 1장소 | 2022년 9월 장소 | 2024년 3월 장소 |
오스나아라시 킨타로 | 10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2장소 | 3장소 | 2장소 | 2012년 3월 장소 | 2013년 11월 장소 |
호쇼후지 다이키 | 10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4장소 | 2장소 | 2015년 3월 장소 | 2016년 11월 장소 |
코토유키 카츠키 | 11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2장소 | 4장소 | 2장소 | 2002년 11월 장소 | 2004년 9월 장소 |
아란 오코 | 11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2장소 | 4장소 | 2장소 | 2007년 1월 장소 | 2008년 11월 장소 |
쇼다이 나오야 | 11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5장소 | 2장소 | 2014년 3월 장소 | 2016년 1월 장소 |
토모카제 유타 | 11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5장소 | 2장소 | 2017년 5월 장소 | 2019년 3월 장소 |
코테츠야마 케이스케 | 12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2장소 | 6장소 | 1978년 9월 장소 | 1980년 9월 장소 |
고니시키 야소키치 | 12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2장소 | 3장소 | 4장소 | 1982년 7월 장소 | 1984년 7월 장소 |
토치아즈마 히로유키 | 12장소 | 1장소 | 2장소 | 1장소 | 1장소 | 4장소 | 3장소 | 1994년 11월 장소 | 1996년 11월 장소 |
아사쇼류 아키노리 | 12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6장소 | 2장소 | 1999년 1월 장소 | 2001년 1월 장소 |
토키텐쿠 요시아키 | 12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6장소 | 2장소 | 2002년 7월 장소 | 2004년 7월 장소 |
카자마 야츠구 | 12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2장소 | 4장소 | 3장소 | 2004년 1월 장소 | 2006년 1월 장소 |
바루토 카이토 | 12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2장소 | 4장소 | 3장소 | 2004년 5월 장소 | 2006년 5월 장소 |
사카이자와 켄이치 | 12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4장소 | 4장소 | 2006년 3월 장소 | 2008년 3월 장소 |
야마모토야마 류타 | 12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2장소 | 5장소 | 2장소 | 2007년 1월 장소 | 2009년 1월 장소 |
우라 카즈키 | 12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3장소 | 5장소 | 2015년 3월 장소 | 2017년 3월 장소 |
아타미후지 사쿠타로 | 12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1장소 | 4장소 | 4장소 | 2020년 11월 장소 | 2022년 11월 장소 |
- 연간 6 장소제 이후의 기록이다.
- 시코나는 신입 막내 때를 기준으로 한다.
- 바루토는 십 양 2장소를 전 휴, 1장소 막내로 강등되었다.
- '''굵은 글씨'''는 현역 선수를 나타낸다.
- 호쇼류(2023년 9월~), 코토자쿠라(2024년 3월~), 오노사토(2024년 11월~)의 기록은 추후 추가될 예정이다.
7. 3. 슬로우 입막 기록
주어진 원본 자료에는 '슬로우 입막 기록'에 대한 내용이 전혀 없으므로, 해당 섹션에 작성할 내용이 없습니다. 요약에 제시된 선수들의 이름(호시이와토 유지, 아사히나미 타케시로, 요시아즈마 히로시)도 원본 자료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섹션은 비워두어야 합니다.- --
위의 내용은 이전의 출력과 동일하며, 주어진 지시사항에 따라 변경할 부분이 없습니다. 원본 소스에 해당 정보가 없으므로 섹션을 비워두는 것이 올바른 처리입니다.
7. 4. 신입막 성적
新入幕成績일본어연 6장소제 이후 신입막 성적 순위는 다음과 같다.[1]
순위 | 시코나 | 신입막 성적 | 최고위 |
---|---|---|---|
1위 | 기타노후지 가쓰아키 | 13승 2패 | 횡강 |
무츠아라시 유키오 | 세키와케 | ||
이치노조 타카시 | 세키와케 | ||
존후지 야키야 | 앞두 6매 | ||
5위 | 와카치치부 타카오 | 12승 3패 | 세키와케 |
다이호 코키 | 횡강 | ||
미소기호 에이지 | 앞두 2매 | ||
토치노하나 히토시 | 고무스비 | ||
하쿠호 쇼 | 횡강 | ||
- '''굵은 글씨'''는 현역 스모 선수(리키시)를 나타낸다.
7. 5. 신입막 초일부터의 연승 기록
순위 | 시코나 | 연승 기록 | 최고위 |
---|---|---|---|
1위 | 다이호 고키 | 11연승 | 요코즈나 |
존후지 야키야 | 마에가시라 6매 | ||
3위 | 지요노야마 마사노부 | 10연승 | 요코즈나 |
4위 | 사다노우미 코시 | 9연승 | 고무스비 |
가이세이 이치로 | 세키와케 | ||
6위 | 도노야마 가츠마사 | 8연승 | 마에가시라 2매 |
와시우야마 요시카즈 | 세키와케 | ||
8위 | 마쓰노사토 나오이치 | 7연승 | 마에가시라 3매 |
고노우미 요시오 | 고무스비 | ||
다카노나미 사다히로 | 오제키 |
- '''굵은 글씨'''는 현역 선수임을 나타낸다.
7. 6. 신입막 우승 선수 목록
시코나(예명) | 신입 막(幕) 장소 | 신입 막 성적 | 최고위 |
---|---|---|---|
료고쿠 유지로 | 1914년 5월 장소 | 9승 1휴 | 세키와케 |
토카이후지 미키야 | 2024년 3월 장소 | 13승 2패 | 앞두 6매 |
- '''굵은 글씨'''는 현역 선수이다.
- 료고쿠의 1914년 당시에는 신문사에 의한 우승액의 게시가 이루어졌을 뿐이며, 1926년에 개인 우승 제도가 정식으로 도입된 이후에는 토카이후지가 처음이다.
7. 7. 재입막 우승 선수 목록
시코나(四股名) | 재입막 장소 | 재입막 성적 | 최고위 |
---|---|---|---|
도쿠쇼류 마코토 | 2020년 1월 장소 | 14승 1패 | 마에가시라 2 |
테루노후지 하루오 | 2020년 7월 장소 | 13승 2패 | 요코즈나 |
- '''굵은 글씨'''는 현역 선수.
8. 막내격 교지(行司) 및 요비다시(呼出)
교지·요비다시 중, 막내 반즈케에 해당하는 자 중에서 산야쿠 이상을 제외한 마에가시라 계급을 막내격 교지·막내 요비다시라고 한다. 이들은 본 장소에서 막내 시합을 판정·호출하며, 인원수에 따라 주료 시합을 담당하기도 한다. 원칙적으로 하루에 2번 시합을 담당하지만, 중입을 사이에 두고 2번 담당은 불가능하므로, 인원이 충분하면 첫 번째 막내 시합만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 주료격 교지·요비다시는 막내 시합을 담당할 수 없어, 막내격 교지·요비다시 이상의 휴장자가 많으면 3번 이상 담당하는 경우도 발생한다.[1]
막내격 교지는 홍백색 국화 매듭과 군배 끈, 흰 족대를 착용하고, 도효 입장 시 짚신을 신지만, 도효이리 때는 하나미치에서 벗는다. 막내 또는 주료 시합 외에 막내 도효이리 선도 교지도 막내격 교지가 담당한다.[1]
막내 요비다시 승격 규정은 "근속 30년 이상 성적 우수자, 또는 근속 15년 이상 30년 미만으로 특히 우수한 자"이다. 정원은 8명 이내지만, 최근에는 정원 초과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1]
참조
[1]
웹사이트
Grand Sumo Tournament Banzuke
https://www.sumo.or.[...]
[2]
웹사이트
Sumo 101: Making the Tsuna
https://www.sumofanm[...]
sumofanmag.com
2021-11-25
[3]
서적
Japan And Things Japanese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17-07-12
[4]
웹사이트
Konishiki
http://sumofanmag.co[...]
sumofanmag.com
2007-04
[5]
웹사이트
Rikishi of Old: Chiyonoyama
http://www.sumofanma[...]
sumofanmag.com
2007-07-04
[6]
웹사이트
http://www.fsinet.or[...]
Fsinet.or.jp
2013-10-08
[7]
뉴스
Tokyo Journal; Wrestler fails to keep hold on an honorable past
https://www.nytimes.[...]
2011-12-14
[8]
뉴스
Sumo yokozuna council issues rare 'encouragement' notice to struggling Kisenosato
https://mainichi.jp/[...]
Mainichi
2020-11-24
[9]
웹사이트
End of the line for Asashoryu
http://www.japantime[...]
2020-11-24
[10]
웹사이트
Sumo: Advisory board issues warning to rehabbing yokozuna duo
https://mainichi.jp/[...]
Kyodo
2020-11-24
[11]
웹사이트
Sumo: Hakuho remains subject to warning over injury absences
https://english.kyod[...]
2021-03-29
[12]
웹사이트
Sumo: Yokozuna Kakuryu retires after missing 5th straight tourney
https://english.kyod[...]
2021-03-24
[13]
웹사이트
SUMO ABC (45) / While there need not be any yokozuna, 2 ozeki must always exist – in theory
http://the-japan-new[...]
The Japan News/The Yomiuri Shimbun
2017-06-02
[14]
웹사이트
38年ぶりに「横綱大関」復活 9組目の「親子幕内」も
https://www.asahi.co[...]
2020-02-26
[15]
웹사이트
【初場所新番付】大関は2人名を連ねるのが慣例のため照ノ富士兼務し「横綱大関」に
https://www.nikkansp[...]
Nikkan Sports
2022-12-26
[16]
웹사이트
【夏場所新番付】霧馬山の大関とりなるか、若貴以来30年ぶりの兄弟関脇も誕生/三役以上編
https://www.nikkansp[...]
Nikkan Sports
2023-05-31
[17]
웹사이트
豊昇龍が新関脇 かど番御嶽海は据え置き―大相撲秋場所
https://www.jiji.com[...]
Jiji
2022-08-29
[18]
웹사이트
Professional rankings: The Banzuke
http://www.scgroup.c[...]
Scgroup.com
2013-10-08
[19]
간행물
相撲』1971年7月号の武蔵川理事長インタビュー
[20]
문서
横綱を含めて四役とはいわない。また三役のうち大関は特別な地位のため、現在では狭義で関脇・小結のみを三役ということがあるが、その場合でも二役とはいわない。また三役格行司・三役呼出の場合は、各人が大関・関脇・小結のいずれに相当するかは特定されないが、優勝決定戦 (相撲)|優勝決定戦においては出場力士の最高位が関脇・小結の場合に務め、出場力士の最高位が大関の場合は立行司・立呼出が務めることになる。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