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용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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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용홍은 전연의 황제 모용준의 아들로 제북왕에 책봉되었다. 전연 멸망 후 관중으로 이주하여 북지의 장사로 임명되었으며, 384년 비수대전 패배 후 모용수의 후연 건국 소식을 듣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는 도독섬서제군사, 대장군, 옹주목, 제북왕을 자칭하고 장안을 공격했으나, 가혹한 군령으로 인해 부하 고개에게 살해되었다. 모용홍은 황제를 칭하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그의 반란 시점부터 서연 건국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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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용홍 | |
---|---|
기본 정보 | |
이름 | 모용홍 |
한자 표기 | 慕容泓 |
가문 | Mùróng (慕容) |
씨족 | 알 수 없음 |
휘 | Hóng (泓) |
통치 정보 | |
통치 국가 | 서연(西燕) |
즉위 | 384년 |
퇴위 | 알 수 없음 |
이전 통치자 | 없음 |
다음 통치자 | 모용충 |
묘호 | 숙종(肅宗) |
시호 | 열문황제(烈文皇帝) |
연호 | 연흥(燕興) |
연호 사용 기간 | 384년 |
생몰 | |
출생일 | 알 수 없음 |
사망일 | 384년 |
2. 생애
모용홍은 전연의 황제 모용준의 아들로 모용준에 의해 제북왕(齊北王)에 책봉되었다. 370년 전연이 전진에 의해 멸망당한 뒤, 전진의 부견은 선비족 모용부를 대대적으로 관중(關中)으로 이주시켰는데, 모용홍도 이때 관중으로 이주하였다. 모용홍은 북지(北地)의 장사(長史)로 임명되었다. 383년, 부견이 비수대전에서 패배하자 384년에 모용수가 관동(關東)에서 반란을 일으켜 후연을 건국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모용홍은 북지를 떠나 화음(華陰)에서 선비족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켰고 도독섬서제군사·대장군·옹주목·제북왕(都督陝西諸軍事、大將軍、雍州牧、濟北王)을 자칭하였다.
반란을 일으킨 모용홍은 곧 부견이 파견한 토벌군의 공격을 받았는데 토벌군 대장 부예(苻睿)가 섣부른 공격을 하여 이를 격퇴하는데 성공하였으며, 장안을 점령하기 위해 서쪽으로 진격하기 시작하였다. 같은 시기 동생 모용충이 하동(河東)에서 전진에 반기를 들었는데, 토벌군에게 패하여 모용홍의 진영으로 도망쳐왔고 모용홍은 모용충의 군사를 흡수하여 세를 불리고 장안을 향해 진격하였다.
384년 6월, 장안으로 진격하던 모용홍은 가혹한 군령에 반감을 품은 부하 고개(高蓋) 등에게 살해되었다. 모용홍은 황제를 자칭하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모용홍이 거병한 시점부터를 서연의 건국으로 본다.
2. 1. 전연 시절
모용홍은 전연의 황제 모용준의 아들로 제북왕(齊北王)에 책봉되었다. 370년 전연이 전진에 의해 멸망당한 뒤, 전진의 부견은 선비족 모용부를 대대적으로 관중(關中)으로 이주시켰으며, 모용홍도 이때 관중으로 이주하여 북지(北地)의 장사(長史)로 임명되었다. 383년 부견이 비수대전에서 패배하자 384년 모용수가 관동(關東)에서 반란을 일으켜 후연을 건국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모용홍은 북지를 떠나 화음(華陰)에서 선비족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켰고 도독섬서제군사·대장군·옹주목·제북왕(都督陝西諸軍事、大將軍、雍州牧、濟北王)을 자칭하였다.반란을 일으킨 모용홍은 곧 부견이 파견한 토벌군의 공격을 받았는데 토벌군 대장 부예(苻睿)가 섣부른 공격을 하여 이를 격퇴하는데 성공하였으며, 장안을 점령하기 위해 서쪽으로 진격하기 시작하였다. 같은 시기 동생 모용충이 하동(河東)에서 전진에 반기를 들었는데, 토벌군에게 패하여 모용홍의 진영으로 도망쳐왔고 모용홍은 모용충의 군사를 흡수하여 세를 불리고 장안을 향해 진격하였다.
384년 6월, 장안으로 진격하던 모용홍은 가혹한 군령에 반감을 품은 부하 고개(高蓋) 등에게 살해되었다. 모용홍은 황제를 자칭하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모용홍이 거병한 시점부터를 서연의 건국으로 본다.
2. 2. 전진에서의 관료 생활
모용홍은 전연(前燕)의 황제 모용준(慕容儁)의 아들로 모용준에 의해 제북왕(齊北王)에 책봉되었다. 370년 전연이 전진(前秦)에 의해 멸망당한 뒤, 전진의 부견(苻堅)은 선비족 모용부를 관중(關中)으로 이주시켰는데, 이때 모용홍도 관중으로 이주하여 북지(北地)의 장사(長史)로 임명되었다. 383년 부견이 비수대전에서 패배하자, 384년 모용수(慕容垂)가 관동(關東)에서 반란을 일으켜 후연(後燕)을 건국하였다.2. 3. 서연 건국
370년에 전연(前燕)이 전진(前秦)에 의해 멸망당한 뒤, 전진의 부견(苻堅)은 선비족 모용부를 관중(關中)으로 이주시켰는데, 모용홍도 이때 관중으로 이주하여 북지(北地)의 장사(長史)로 임명되었다. 383년, 부견이 비수대전에서 패배하자 384년에 모용수(慕容垂)가 관동(關東)에서 반란을 일으켜 후연(後燕)을 건국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모용홍은 북지를 떠나 화음(華陰)에서 선비족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켰고 도독섬서제군사·대장군·옹주목·제북왕(都督陝西諸軍事、大將軍、雍州牧、濟北王)을 자칭하였다.모용홍은 장안(長安)을 점령하기 위해 서쪽으로 진격하였으며, 동생 모용충(慕容沖)이 하동(河東)에서 전진에 반기를 들었다가 패하여 모용홍의 진영으로 도망쳐오자 모용충의 군사를 흡수하여 세를 불렸다. 모용홍은 장안의 전진 황제 부견에게 형인 모용위를 보내면 관중을 떠나 전진을 침략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부견은 모용위를 소환하여 추궁했지만 모용위가 충성을 맹세했기에 목숨을 살려주었다. 또한 모용수, 모용홍, 모용충에게 항복을 권하는 편지를 쓰게 했다. 그러나 모용위는 동시에 몰래 모용홍에게 사자를 보냈다. 그 사자가 말하길, 대업을 세우는 데 힘쓰고, 부견이 모용위를 처형하면 황제를 칭하라는 것이었다[1]。모용위가 죽고 모용홍이 장안으로 진격하여 연흥으로 개원함으로써 실질적으로 서연이 성립했다[2]。
384년 6월, 장안으로 진격하던 모용홍은 가혹한 군령에 반감을 품은 부하 고개(高蓋) 등에게 살해되었다. 모용홍은 황제를 자칭하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모용홍이 거병한 시점부터를 서연의 건국으로 본다.
2. 4. 최후
370년 전연이 전진에 의해 멸망당한 뒤, 전진의 부견은 선비족 모용부를 관중(關中)으로 이주시켰는데, 모용홍도 이때 관중으로 이주하여 북지(北地)의 장사(長史)로 임명되었다. 383년 부견이 비수대전에서 패배하자 384년 모용수가 관동(關東)에서 반란을 일으켜 후연을 건국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모용홍은 북지를 떠나 화음(華陰)에서 선비족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켰고 도독섬서제군사·대장군·옹주목·제북왕(都督陝西諸軍事、大將軍、雍州牧、濟北王)을 자칭하였다.반란을 일으킨 모용홍은 곧 부견이 파견한 토벌군의 공격을 받았는데 토벌군 대장 부예(苻睿)가 섣부른 공격을 하여 이를 격퇴하는데 성공하였으며, 장안을 점령하기 위해 서쪽으로 진격하기 시작하였다.
384년 6월, 장안으로 진격하던 모용홍은 가혹한 군령에 반감을 품은 부하 고개(高蓋) 등에게 살해되었다. 모용홍은 황제를 자칭하지 않았지만, 일반적으로 모용홍이 거병한 시점부터를 서연의 건국으로 본다.
3. 가족 관계
3. 1. 부친
모용준은 전연의 황제였다.3. 2. 자녀
- 모용충(慕容忠) - 훗날 서연의 황제가 되었다.
4. 평가
5. 각주
참조
[1]
서적
資治通鑑
[2]
서적
資治通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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