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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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야기군은 일본 미야기현에 위치한 군이다. 1878년 행정 구역으로 발족 당시 시오가마시, 다가조시, 센다이시 미야기노구, 이즈미구 및 아오바구 대부분, 와카바야시구 일부를 관할했으며, 오우산맥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동서로 길쭉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1889년 정촌제 시행으로 2정 12촌이 발족했고, 이후 여러 차례의 시정촌 합병 및 분리를 거쳐 현재는 마쓰시마정, 시치가하마정, 리후정 3개 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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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카와군은 미야기현에 위치한 군으로, 센다이 도시권에 속하며 요시다 강 유역의 평야와 구릉 지대를 포함하고, 농업에서 기계 공업 중심으로 산업 구조가 변화했으며, 현재 오사토정, 다이와정, 오히라촌으로 구성되어 있다. - 미야기현의 폐지된 군 - 가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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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센군은 일본 이와테현에 존재했던 군으로, 고대 무쓰국 기센군에서 유래하여 센다이번 다테 씨의 영지였으나 메이지 시대 행정 구역 개편과 합병을 거쳐 소멸되었으며, 지명의 유래에는 여러 설이 있다. - 미야기현의 군 - 구로카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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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군은 나라 시대에 처음 기록되었고, 에도 시대에 시카마군과 합쳐져 가미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878년 행정 구역으로 발족하여 여러 차례의 변동을 거쳐 2003년 가미정으로 통합되었다.
2. 지리
1878년 행정 구역으로 발족 당시의 미야기군은 시오가마시, 다가조시, 센다이시 미야기노구, 이즈미구 및 아오바구 대부분, 와카바야시구 일부에 해당한다. 1955년 센다이시 아오바구 일부가 나토리군에서 편입되었다. 미야기군은 오우산맥에서 태평양에 이르는 동서로 길쭉한 모양이었다.
1878년 10월 21일, 군구정촌 편제법이 미야기현에서 시행되면서 센다이성 조카마치 구역은 센다이구로 분리되고, 나머지 지역에 미야기군이 설치되었다.[6]
3. 역사
1889년 4월 1일, 정촌제 시행으로 미야기군에는 2정 12촌이 발족하였다.[6]
1928년 1월 1일, 마쓰시마촌이 정제 시행으로 마쓰시마정이 되었다.[1] 1941년 11월 23일에는 시오가마정이 시제 시행으로 시오가마시가 되어 군에서 이탈했다.[1] 이후 여러 차례의 합병과 센다이시로의 편입을 거쳐, 1987년 11월 1일 미야기정이 센다이시에 편입되면서 미야기군은 마쓰시마정, 시치가하마정, 리후정의 3개 정만 남게 되었다.[1]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미야기군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다.[2]
3. 1. 고대
미야기군은 5세기부터 마을이나 도시 지역이었다. 미야기군이 역사 기록에 처음 등장한 것은 766년, 続日本紀|쇼쿠 니혼기|속일본기일본어에 기록되었다.[1] 고고학자들은 히로세 강과 나나키타 강 사이에 사방형 구획 경작지 흔적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미야기군이 8세기에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724년 무쓰국의 국부(国府)는 나토리군 코리야마 지역에서 다가(현재의 다가조)로 옮겨졌다. 다가의 성벽 너머로 주거 지역이 확장되었다. 785년 다가군과 가미군이 미야기군에서 분리되었지만, 나중에 다시 합쳐졌다.[1]
和名抄|와묘쇼|화명초일본어에 기록된 향의 수는 10개로, 오슈국에서는 시라카와군의 17개와 이와키군의 12개에 이어 많다.
; 헤이안 시대의 향[3]3. 2. 중세
가마쿠라 시대에도 다가는 국부(国府)가 존속했지만, 도시 중심지는 서쪽 이와키리 부근으로 옮겨진 것으로 생각된다. 1190년 이사와 이에카게는 오카와 카네토의 난 이후 질서 회복을 명령받은 무쓰국의 권대국가(무쓰국 권대국가)로 임명되었다. 그의 후손들은 다가 주변에 영지를 세우고 루스(Rusu)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는 문자 그대로 "권대"를 의미한다.[1]
14세기 남북조 시대에 다가는 남조와 북조 간 군사 작전의 대상이 되었다. 루스 가문은 다가가 위치한 군의 최북단을 점령했다. 루스 가문의 운명은 무쓰(오슈) 지방관들 사이의 싸움에 따라 쉽게 흔들렸다. 무쓰 지방관들은 중앙 정부나 쇼군에서 파견된 강력한 장군들이었다. 루스 가문 외에도 남조를 위해 끈질기게 싸운 오코치, 무쓰 국분사(국분사) 주변 영주인 고쿠분(Kokubun), 과거 무쓰 부국가 후손인 하치만 씨족 등 여러 사무라이 씨족이 군의 남부와 서부에 알려져 있었다.[1]
3. 3. 근세
남북조 시대에 다가는 남조와 북조 사이의 군사 작전의 대상이 되었다. 루스 가문은 다가가 위치한 군의 최북단을 점령했다. 루스 가문의 운명은 무쓰(오슈)의 지방관들 사이의 싸움에 따라 쉽게 흔들렸다.[1] 무쓰 지방관들은 중앙 정부 또는 쇼군에서 파견된 강력한 장군들이었다. 루스 가문 외에도 남조를 위해 끈질기게 싸운 오코치, 무쓰의 국분사(국분사) 주변 영주인 고쿠분 가문, 과거 무쓰 부국가의 후손인 하치만 씨족 등 여러 사무라이 씨족이 군의 남부와 서부에 알려져 있었다.
장기간의 전쟁으로 무쓰의 통일성과 국부의 기능이 깨졌다. 오사키 지방관이 떠난 후, 루스와 고쿠분 가문이 서로 다투면서 군의 지배가 분열되었다. 결국 다테 씨족의 영향력이 미야기군에 미치게 되었고, 다테 씨족은 자녀들을 가문의 장의 사위이자 후계자로 보냈다. 그러자 루스 마사카게와 고쿠분 모리시게는 다테 마사무네의 지휘관이 되어 도호쿠 지방에 대한 다테의 지배를 위해 많은 전투를 치렀다. 두 사람은 가문의 가신들을 달래기 위해 다테로부터 명목상의 독립만을 유지했다.
1590년 마사무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항복하자 루스 가문은 버려졌고, 고쿠분 가문은 다테 가문의 신하가 되었다. 미야기군은 다테 씨족의 영토가 되었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 직후, 마사무네는 미야기군에 센다이 성을 쌓고 거기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3. 4. 근대
1878년 10월 21일, 군구정촌 편제법이 미야기현에서 시행되면서 센다이성 조카마치 구역을 센다이구로 분리하고, 잔여 지역에 미야기군이 설치되었다.[6]
1889년 4월 1일, 정촌제 시행으로 미야기군에는 2정 12촌이 발족하였다.[6]
메이지 정부는 1869년 무쓰국을 3개 부분으로 나누었고, 미야기군은 리쿠젠국의 일부가 되었다.
3. 5. 현대
1928년 1월 1일, 마쓰시마촌이 정제 시행으로 '''마쓰시마정'''이 되었다.[1] 1941년 11월 23일에는 시오가마정이 시제 시행으로 '''시오가마시'''가 되어 군에서 이탈했다.[1] 이후 여러 차례의 합병과 센다이시로의 편입을 거쳐, 1987년 11월 1일 미야기정이 센다이시에 편입되면서 미야기군은 마쓰시마정, 시치가하마정, 리후정의 3개 정만 남게 되었다.[1]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미야기군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다.[2]
미야기군의 행정 구역 변천은 아래 표와 같다.
4. 행정 구역 변천
정촌제 시행 이후 미야기군의 행정 구역 변천 과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1878년 10월 21일: 군구정촌 편제법이 미야기현에서 시행되면서 센다이성 조카마치 구역을 센다이구로 분리하고, 잔여 지역에 미야기군을 설치했다.
- 1889년 4월 1일: 정촌제 시행으로 미야기군에 2정 12촌이 발족했다.
- 하라노정(原町)
- 시치고촌(七郷村)
- 다카사고촌(高砂村)
- 시치가하마촌(七ヶ浜村): 현 시치가하마정
- 우라토촌(浦戸村): 현 시오가마시
- 마쓰시마촌(松島村): 현 마쓰시마정
- 리후촌(利府村): 현 리후정
- 시오가마정: 현 시오가마시
- 다가조촌(多賀城村): 현 다가조시
- 이와키리촌(岩切村)
- 나나키타촌(七北田村)
- 이즈미다케촌(泉嶽村)
- 오사와촌(大沢村)
- 히로세촌(広瀬村)
- 1897년 9월 7일: 이즈미다케촌이 네노시로이시촌(根白石村)으로 개칭되었다.
- 1928년
- 1월 1일: 마쓰시마촌이 정제 시행으로 마쓰시마정(松島町)이 되었다. (3정 11촌)
- 4월 1일: 하라노정과 시치고촌 일부가 센다이시에 편입되었다. (2정 11촌)
- 1931년 4월 1일: 나나키타촌 일부가 센다이시에 편입되었다. (2정 11촌)
- 1938년 9월 1일: 다가조촌 일부가 시오가마정에 편입되었다.
- 1941년
- 9월 15일: 이와키리촌, 다카사고촌, 시치고촌이 센다이시에 편입되었다. (2정 8촌)
- 11월 23일: 시오가마정이 시제 시행으로 시오가마시가 되어 군에서 이탈하였다. (1정 8촌)
- 1950년 4월 1일: 우라토촌이 시오가마시에 편입되었다. (1정 7촌)
- 1951년 7월 1일: 다가조촌이 정제 시행으로 다가조정(多賀城町)이 되었다. (2정 6촌)
- 1955년
- 2월 1일: 오사와촌, 히로세촌이 합병하여 미야기촌(宮城村)이 발족하였다. (2정 5촌)
- 4월 1일: 미야기촌이 나토리군 아키우촌 일부를 편입하였다. (2정 5촌)
- 4월 10일: 나나키타촌, 네노시로이시촌이 합병하여 이즈미촌(泉村)이 발족하였다. (2정 4촌)
- 1957년 8월 1일: 이즈미촌이 정제 시행으로 이즈미정(泉町)이 되었다. (3정 3촌)
- 1959년 1월 1일: 시치가하마촌이 정제 시행으로 시치가하마정(七ヶ浜町)이 되었다. (4정 2촌)
- 1963년 11월 3일: 미야기촌이 정제 시행으로 미야기정(宮城町)이 되었다. (5정 1촌)
- 1967년 10월 1일: 리후촌이 정제 시행으로 리후정(利府町)이 되었다. (6정)
- 1971년 11월 3일 (4정)
- 이즈미정이 시제 시행으로 이즈미시가 되어 군에서 이탈하였다.
- 다가조정이 시제 시행으로 다가조시가 되어 군에서 이탈하였다.
- 1987년 11월 1일: 미야기정이 센다이시에 편입되었다. (3정)
이후, 현재(2023년 기준) 미야기군에는 마쓰시마정, 시치가하마정, 리후정 3정이 속해있다.
5. 역대 군수
참조
[1]
문서
Ōshū is another name of Mutsu
[2]
웹사이트
Photos: 10 Years Since the Great East Japan Earthquake - the Atlantic
https://www.theatlan[...]
[3]
문서
和名類聚抄郡郷里驛名考證
池邊彌
[4]
문서
仙台市町名一覧
[5]
서적
宮城県史
宮城県史編集委員会 (추정)
[6]
법령
宮城県令第8号
1889-02-09
[7]
문서
[8]
문서
宮城郡誌, 塩竈市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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