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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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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변숙은 원주 변씨의 시조 변안렬의 명을 받아 원주를 본관으로 한 인물이다. 자는 자엄, 호는 모려당이며, 시호는 문절이다. 1351년 노국공주가 고려에 올 때 제6학사 중 한 명으로 고려에 들어와 가정대부 호부전서에 이르렀다. 고려가 위태로워지자 공민왕에게 충성을 맹세했으며, 정몽주의 죽음을 슬퍼했다. 조선 건국 후 이성계의 탄압을 피해 아들과 함께 피신하여 배천 지역으로 거처를 옮겼고, 두문동에 은거하며 두문동 72현 중 한 사람으로 불렸다. 1399년에 사망했으며, 묘소는 연안군에 있다. 변숙의 후손들은 원주 변씨 전서공파를 이루며 개성 지역에 세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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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숙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이름변숙
원어 이름邊(邉)肅
작위고려의 가정대부(嘉靖大夫)호부전서(戶部典書)
군주고려 공민왕
자엄(子嚴)
모려당(慕麗堂)
시호문절(文節)
국적고려
성별남성
출생지원나라 심양
사망일1399년
사망지고려 배천
매장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황해남도 연안군
본관원주 전서공파
아버지변안백(邊(邉)安伯)
자녀변을충(邊(邉)乙忠)
기타 정보
웹사이트원주변씨 전서공파

2. 생애

변숙(邊肅)은 원주 변씨의 시조 변안렬(邊安烈)의 명을 받아 원주를 본관으로 하였다. 자(字)는 자엄(子嚴), 호(號)는 모려당(慕麗堂), 시호(諡號)는 문절(文節)이다.

1351년(충정왕 3년) 노국공주가 고려에 올 때 제6학사(第六學士)로서 고려에 들어왔다. 당시 노국공주를 수행한 인물로는 3명의 대장과 8명의 학사가 있었는데, 변숙은 이들 중 한 명이었다. 고려에서 가정대부(嘉靖大夫) 호부(戶部)전서(典書)에 이르렀다. 호부전서는 국가 재정과 조세를 담당하는 호부(戶部)의 장관직이다.

공민왕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였으며, 정몽주(鄭夢周)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슬퍼하였다. 정몽주는 변숙과 서로 의지하고 함께 했던 인물이었다.

조선 건국 후, 태조 이성계가 변숙의 처자를 감옥에 가두었으나, 아들 변을충과 함께 서쪽 벽란진을 건너 피신하였다. 이후 배천(白川) 지역으로 거처를 옮겨 그곳 사람들을 '모려절사(慕麗節士)'라 불렀다. 고려에 대한 절개를 지킨다는 의미였다.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하며, 두문동 72현(杜門洞七十二賢) 중 한 사람으로 불렸다. 두문동 72현은 고려 멸망 후에도 절개를 지킨 72인의 유신(遺臣)들을 가리킨다.

1399년(정종 1년)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연안군 동면 용수산 동쪽 기슭 재경동(개성 근처)에 있다.

3. 후손

변숙의 후손들은 원주 변씨 전서공파(典書公派)를 이루며, 600년 이상 개성(또는 개풍, 연백) 지역에 세거(世居)하였다. 변량보는 원주 변씨 전서공파 중 첨지공파(僉知公派)의 시조이다. 변이진은 전라좌수우후로서 1640년(인조 18년) 왜적과 싸우다 영암 칠산(전라남도 무안군 해제면 송석리) 앞바다에서 순절하였다. 변응주는 한국 전쟁 때 KLO(Korea Liaison Office) 부대에서 근무했으며, 아모레퍼시픽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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