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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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붉은 외투는 1485년 튜더 왕조 근위대의 제복으로 시작되어, 영국군을 상징하는 의복으로 발전했다. 17세기 뉴 모델 아미의 제식 군복으로 채택되었으며, 이후 영국 육군과 영연방 국가에서 의장 행사나 군악대 복장으로 사용되었다. 붉은 외투는 미국 독립 전쟁에서 영국군을 상징하며, 카키색 군복의 도입과 함께 쇠퇴했지만, 현재에도 영국 및 여러 영연방 국가에서 군사 전통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남아있다. 붉은 외투는 과거 제국주의 시기의 부정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문화적 다양성을 나타내는 요소로 이해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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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외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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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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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유형 | 군복 |
사용 국가 | 영국군 및 영국 연방 국가 |
사용 시기 | 15세기부터 현재까지 (주로 의례용) |
주요 색상 | 스칼렛 |
사용 부대 | 보병 |
2. 역사
1485년 창설된 근위대는 튜더 왕가의 상징색인 붉은색과 금색 제복을 착용했다. 제임스 1세의 신사 연금 수령자는 모자에 노란색 깃털을 단 붉은색 제복을 입었다. 잉글랜드 내전의 첫 번째 전투인 엣지힐 전투에서 기사당 군대와 의회파 연대도 붉은 코트를 입었다.
아일랜드 왕국에서 엘리자베스 1세 여왕 통치 기간, 여왕 총독의 군인들은 옷 색깔 때문에 아일랜드 해설자들에게 "붉은 외투"라고 불렸다.[2] 1561년, 아일랜드인들은 이 군대에 대한 승리를 Cath na gCasóga Deargaga('붉은 카소크 전투' 또는 붉은 사검 전투)라고 불렀다.[2] 아일랜드어 단어 casógga는 외투, 망토, 제복으로 번역될 수 있다.[2]
"붉은 외투"라는 용어는 아일랜드 귀족이자 군인인 필립 O'설리번 베어가 1621년 튜더 왕조의 아일랜드 정복에 대한 역사에서 '붉은 외투 전투'를 언급하며 유럽과 다른 곳으로 전해졌다. 그는 "붉은 외투'라고 불리는 그 유명한 승리[illam victoriam quae dicitur 'sagorum rubrorum'la]는, 전투에서 사망한 사람들 중 부총독의 붉은 제복을 입고 최근 영국에서 온 400명의 군인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3]
O'설리번은 1581년 제2차 데스몬드 반란 중 교전에서 "옷과 무기로 구별되는 영국 군인 부대가 있었는데, 그들은 '붉은 외투' [Vestibus et armis insignis erat cohors Anglorum quae "Sagorum rubrorem" nominabanturla]라고 불렸으며, 여왕에 의해 [아일랜드]에 전쟁을 위해 보내졌으며, 존 피츠에드먼드 피츠제럴드, 세네찰에 의해 리스모어 근처에서 전멸했다."라고 언급했다.[6] 1599년 윌리엄 버크(Bealatury 영주)에 의해 "붉은 외투를 입은 영국 신병" (qui erant tyrones Angli sagis rubris indutila)이 패배한 사건도 언급했다.[7]
영국 자료는 아일랜드의 왕립 군대가 붉은색 제복을 입었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 1584년, 평의회 의장은 아일랜드에서 복무할 보병에게 "어떤 얼룩덜룩한, 슬픈 녹색 또는 적갈색의 카소크"를 제공해야 한다고 알렸다.[8] 1595년, 부총독 윌리엄 러셀은 에니스킬렌 구원에 대해 편지를 쓰면서, 아일랜드 반군 휴 오닐이 "영국 군인처럼 붉은 외투를 입은 300명의 사수"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9]
영국-스페인 전쟁 동안, 영국 창병과 아케부지어들은 네덜란드 동맹국과 함께 싸우면서 붉은 카소크를 입었다.[10] 오스텐드 포위전에서 프랜시스 베레 경의 지휘 아래 영국군이 붉은 제복을 입은 것이 주목되었다.[11] 16세기 군사 역사가 율리우스 페레투스는 영국 군인의 붉은 제복 뒤에 숨겨진 이유는 혈흔을 가리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피는 실제로 붉은 옷에 검은 얼룩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 주장은 의문스럽다.[11]
붉은 외투는 영국 보병의 일반적인 유니폼에서 의례용으로만 남겨진 의복으로 진화했다. 1645년 2월 잉글랜드 의회는 뉴 모델 아미 조례를 통과시키면서 붉은색 군복을 제식으로 채택했다.[12][13] 새로운 영국군은 22,000명으로 구성되었으며, 보병 연대는 베네치아 붉은색 외투를 입었다. 당시 기록에는 "모든 병사들은 붉은 외투를 입고 있으며, 군대 전체는 그들의 외투의 다양한 앞면으로 구별된다."라고 묘사되어 있다.
1658년 둔즈 전투에서 붉은 외투는 유럽 대륙의 전장에 처음 등장했다. 호국경 군대는 "모든 병사는 새로운 붉은 외투와 새로운 신발 한 켤레를 가지고 있었다."라고 기록될 정도로 붉은 외투를 착용했다.
왕정 복고 (1660) 이후에도 대부분의 영국/잉글랜드 군인들이 붉은색을 채택하고 계속 사용한 것은 정책이라기보다는 여러 상황의 결과였는데, 여기에는 붉은색 염료의 상대적인 저렴함과, 날씨에 노출되었을 때 변색될 가능성이 적은 "견뢰성"이 있었다. 붉은색이 처음에는 보편적이지 않았으며, 회색과 파란색 외투도 입었다.
1707년 이전에는 연대 대령이 군복 제조를 자체적으로 준비했으나, 1707년 1월 16일 왕실 영장에 의해 장군 위원회가 설립되어 군복이 규제되기 시작했다.[16] 공급되는 제복은 위원회가 합의한 "봉인된 패턴"을 따라야 했다. 초기부터 붉은 외투는 제8 보병 연대의 파란색, 제5 보병 연대의 녹색, 제44 보병 연대의 노란색, 제3 보병 연대의 buff색과 같이 대비되는 색상으로 안감을 대고 턴아웃하여 독특한 연대 페이싱(옷깃, 소매, 칼라)을 만들었다.[16]
1747년, 일련의 의류 규정과 왕실 영장은 각 연대가 착용해야 할 다양한 페이싱 색상과 구분을 명시했다.[17] 1784년까지 영국 기병대 정규 연대는 모두 붉은 외투를 착용했는데, 로열 호스 가드("블루스")는 예외였다.[14]
"붉은 외투"(Redcoat)는 미국 독립 전쟁 당시 애국자에 대항하여 싸운 영국 군인들과 문화적 기억 속에서 연관되어 있다. 미국 의회 도서관은 이 시기에 영국군이 사용했던 제복의 몇 가지 사례를 보유하고 있다.[18] 보스턴 포위전 중 1776년 1월 4일, 조지 워싱턴 장군은 조지프 리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붉은 외투"라는 용어를 사용했다.[21] 대륙군의 존 스타크 소장은 벤닝턴 전투 (1777년 8월 16일)에서 "저기 너희의 적, 붉은 외투와 토리들이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23]
영국 군인들에 대한 다른 비하적인 별명으로는 "피투성이 등"(bloody backs)과 "바다가재"(lobsters)가 있었는데, 특히 보스턴 학살 시기 보스턴에서 많이 사용되었다.[24]
19세기 중반 크림 전쟁에서 병사들이 겪은 불편함 이후, 더 실용적인 튜닉이 1855년에 도입되었다. 처음에는 프랑스식 더블 브레스티드 스타일이었으나, 이듬해 싱글 브레스티드 버전으로 대체되었다.[25] 1881년 찰더스 개혁에 따라 영국과 웨일스 연대는 흰색 면(칼라와 커프스), 스코틀랜드는 노란색, 아일랜드는 녹색, 왕립 연대는 짙은 파란색을 사용하는 등 표준화가 시도되었다. 그러나 일부 연대는 이후 고유의 역사적인 페이싱 색상을 재도입할 수 있었다.[26]
영국 군인들은 1885년 12월 30일 수단에서 벌어진 제니스 전투에서 마지막으로 붉은색과 파란색 군복을 입고 전투에 참여했다. 이들은 1884~85년 나일 캠페인에 참여하기 위해 영국에서 파견된 원정군의 일부였으며, 당시의 자국 복무 군복을 착용했다.[27] 여기에는 활동복 유니폼의 일부로 붉은색 "프록"(비공식적인 착용을 위해 디자인된 더 튼튼한 소재의 일반 재킷)이 포함되었지만,[28] 인도에서 파견된 일부 연대는 카키색 드릴을 입었다. 1885년 1월 28일 증기선으로 하르툼에 도착한 소규모 보병 부대는 마흐디 반군에게 '진짜' 영국군이 도착했음을 알리기 위해 붉은 코트를 입고 싸우라는 명령을 받았다.[30]
19세기 말, 소총과 무연 화약의 등장으로 붉은 외투는 야전에서 불리한 복장이 되었다. 1902년에 카키 근무복이 채택된 이후에도, 대부분의 영국 보병 연대(85개 중 81개)와 일부 기병 연대(31개 중 12개)는[31]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까지 사열과 비번 시 "외출복"으로 붉은색 튜닉을 계속 착용했다.[32] 육군의 거의 모든 기술 및 지원 부대는 짙은 파란색을 착용했지만, 왕립 공병대는 이베리아 반도 전쟁 이후 붉은색 코트를 입어 붉은 코트를 입은 보병대와 함께 근무할 때 총격을 덜 받도록 했다.[33]
붉은색 튜닉은 1914년 8월 영국 동원령에 따라 일반적인 지급이 중단되었다. 근위 보병 여단은 1920년에 붉은색 정복 착용을 재개했지만, 육군의 나머지 부대에서는 붉은 코트가 연대 밴드와 장교의 메스 드레스 또는 특정 제한적인 사회적 또는 의례적 행사(특히 법원 행사 또는 결혼식 참석)에만 착용하도록 허가되었다.[34][35][36] 붉은색 정복의 재도입을 하지 않은 주된 이유는 재정적인 문제였는데, 붉은색 천은 구식 방법으로 천의 결에 코치닐 염료를 염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1980년까지도 현대 영국 육군의 짙은 파란색 "1번 드레스"와 카키색 "2번 드레스"를 대체하기 위해 코치닐 대신 더 저렴하고 퇴색되지 않는 화학 염료를 사용하여 붉은색을 재도입하는 방안이 고려되었다. 현역 군인의 의견 조사 결과 이 아이디어에 대한 지지가 거의 없어 보류되었다.[37]
같이 보기: 왕립 해병대 제복
붉은 외투는 1686년 덴마크 왕자 연대에 의해 채택되면서 영국 해상 연대에서 처음 착용되었다.[40] 이후 붉은 외투는 해병대 보병의 일반적인 사열 및 전투복이 되었지만, 소금물에 의한 얼룩 효과로 인해 선상 근무에는 흰색 피로복과 이후 파란색 약식 튜닉이 자주 대체되었다. 왕립 해병 포병대는 1804년 창설 이후 짙은 파란색 제복을 입었다. 왕립 해병 경보병대의 진홍색 정복 튜닉은 1923년 두 개의 군단이 통합되면서 폐지되었고, 짙은 파란색이 의례 및 일반적인 경우 모두에 보편적인 제복 색상이 되었다.[41] 현재 (2021년) 왕립 해병대의 진홍색은 장교 및 선임 부사관의 사관복 재킷에서만 남아 있다.[42]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로 붉은 외투는 영국 육군에서 일반적인 지급이 중단되었다.[48] 근위 보병대와 일부 부대에서는 정복으로 계속 착용했다.[48] 현재 붉은 외투는 영국 육군뿐만 아니라 여러 영연방 국가에서 의장 행사나 군악대 복장으로 사용되고 있다.[43]
영국 육군에서 붉은 외투는 근위 기병대와 다른 여러 기병대, 근위 보병대, 로열 공병, 정규 보병 연대, 장성, 그리고 영국 육군의 대부분의 참모 장교들의 정복의 일부로 사용된다.[48] 현지에서 모집된 로열 지브롤터 연대 또한 동절기 의장 복장의 일부로 붉은 외투를 사용한다.[48]
일부 연대 군악대나 드럼 연주자들은 의례 목적을 위해 붉은 외투를 사용한다.[48] 이전에 붉은색을 착용했던 연대의 장교와 부사관은 붉은색을 "사교" 또는 정식 저녁 재킷의 색상으로 유지한다.
호주, 영국, 캐나다, 피지, 가나, 인도, 자메이카, 케냐, 뉴질랜드, 파키스탄, 싱가포르, 스리랑카 육군을 포함한 여러 영연방 국가의 군대에서 붉은색 튜닉은 정복, 군악대 또는 사관용 제복으로 유지되어 왔다.[43]
명예 친위대, 윈저 군사 기사단 및 근위대원은 국왕 호위대로 알려진 의장대이다. 앞의 두 부대는 의례적인 임무를 수행할 때 19세기 초의 붉은색 장교 외투를 착용한다. 근위대원들은 튜더 양식의 붉은색 프록 코트를 착용한다.
2. 1. 16세기 이전
1485년 창설된 근위대는 튜더 왕가의 상징색인 붉은색과 금색 제복을 착용했다. 제임스 1세의 신사 연금 수령자는 모자에 노란색 깃털을 단 붉은색 제복을 입었다. 잉글랜드 내전의 첫 번째 전투인 엣지힐 전투에서 기사당 군대와 의회파 연대도 붉은 코트를 입었다.아일랜드 왕국에서 엘리자베스 1세 여왕 통치 기간, 여왕 총독의 군인들은 옷 색깔 때문에 아일랜드 해설자들에게 "붉은 외투"라고 불렸다.[2] 1561년, 아일랜드인들은 이 군대에 대한 승리를 Cath na gCasóga Deargaga('붉은 카소크 전투' 또는 붉은 사검 전투)라고 불렀다.[2] 아일랜드어 단어 casógga는 외투, 망토, 제복으로 번역될 수 있다.[2]
"붉은 외투"라는 용어는 아일랜드 귀족이자 군인인 필립 O'설리번 베어가 1621년 튜더 왕조의 아일랜드 정복에 대한 역사에서 '붉은 외투 전투'를 언급하며 유럽과 다른 곳으로 전해졌다. 그는 "붉은 외투'라고 불리는 그 유명한 승리[illam victoriam quae dicitur 'sagorum rubrorum'la]는, 전투에서 사망한 사람들 중 부총독의 붉은 제복을 입고 최근 영국에서 온 400명의 군인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3]
O'설리번은 1581년 제2차 데스몬드 반란 중 교전에서 "옷과 무기로 구별되는 영국 군인 부대가 있었는데, 그들은 '붉은 외투' [Vestibus et armis insignis erat cohors Anglorum quae "Sagorum rubrorem" nominabanturla]라고 불렸으며, 여왕에 의해 [아일랜드]에 전쟁을 위해 보내졌으며, 존 피츠에드먼드 피츠제럴드, 세네찰에 의해 리스모어 근처에서 전멸했다."라고 언급했다.[6] 1599년 윌리엄 버크(Bealatury 영주)에 의해 "붉은 외투를 입은 영국 신병" (qui erant tyrones Angli sagis rubris indutila)이 패배한 사건도 언급했다.[7]
영국 자료는 아일랜드의 왕립 군대가 붉은색 제복을 입었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 1584년, 평의회 의장은 아일랜드에서 복무할 보병에게 "어떤 얼룩덜룩한, 슬픈 녹색 또는 적갈색의 카소크"를 제공해야 한다고 알렸다.[8] 1595년, 부총독 윌리엄 러셀은 에니스킬렌 구원에 대해 편지를 쓰면서, 아일랜드 반군 휴 오닐이 "영국 군인처럼 붉은 외투를 입은 300명의 사수"를 가지고 있다고 언급했다.[9]
영국-스페인 전쟁 동안, 영국 창병과 아케부지어들은 네덜란드 동맹국과 함께 싸우면서 붉은 카소크를 입었다.[10] 오스텐드 포위전에서 프랜시스 베레 경의 지휘 아래 영국군이 붉은 제복을 입은 것이 주목되었다.[11] 16세기 군사 역사가 율리우스 페레투스는 영국 군인의 붉은 제복 뒤에 숨겨진 이유는 혈흔을 가리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피는 실제로 붉은 옷에 검은 얼룩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 주장은 의문스럽다.[11]
2. 2. 17세기: 뉴 모델 아미와 붉은 외투
붉은 외투는 영국 보병의 일반적인 유니폼에서 의례용으로만 남겨진 의복으로 진화했다. 1645년 2월 잉글랜드 의회는 뉴 모델 아미 조례를 통과시키면서 붉은색 군복을 제식으로 채택했다.[12][13] 새로운 영국군은 22,000명으로 구성되었으며, 보병 연대는 베네치아 붉은색 외투를 입었다. 당시 기록에는 "모든 병사들은 붉은 외투를 입고 있으며, 군대 전체는 그들의 외투의 다양한 앞면으로 구별된다."라고 묘사되어 있다.
1658년 둔즈 전투에서 붉은 외투는 유럽 대륙의 전장에 처음 등장했다. 호국경 군대는 "모든 병사는 새로운 붉은 외투와 새로운 신발 한 켤레를 가지고 있었다."라고 기록될 정도로 붉은 외투를 착용했다.
왕정 복고 (1660) 이후에도 대부분의 영국/잉글랜드 군인들이 붉은색을 채택하고 계속 사용한 것은 정책이라기보다는 여러 상황의 결과였는데, 여기에는 붉은색 염료의 상대적인 저렴함과, 날씨에 노출되었을 때 변색될 가능성이 적은 "견뢰성"이 있었다. 붉은색이 처음에는 보편적이지 않았으며, 회색과 파란색 외투도 입었다.
2. 3. 18세기: 제복의 표준화와 식민지 전쟁
1707년 이전에는 연대 대령이 군복 제조를 자체적으로 준비했으나, 1707년 1월 16일 왕실 영장에 의해 장군 위원회가 설립되어 군복이 규제되기 시작했다.[16] 공급되는 제복은 위원회가 합의한 "봉인된 패턴"을 따라야 했다. 초기부터 붉은 외투는 제8 보병 연대의 파란색, 제5 보병 연대의 녹색, 제44 보병 연대의 노란색, 제3 보병 연대의 buff색과 같이 대비되는 색상으로 안감을 대고 턴아웃하여 독특한 연대 페이싱(옷깃, 소매, 칼라)을 만들었다.[16]1747년, 일련의 의류 규정과 왕실 영장은 각 연대가 착용해야 할 다양한 페이싱 색상과 구분을 명시했다.[17] 1784년까지 영국 기병대 정규 연대는 모두 붉은 외투를 착용했는데, 로열 호스 가드("블루스")는 예외였다.[14]
"붉은 외투"(Redcoat)는 미국 독립 전쟁 당시 애국자에 대항하여 싸운 영국 군인들과 문화적 기억 속에서 연관되어 있다. 미국 의회 도서관은 이 시기에 영국군이 사용했던 제복의 몇 가지 사례를 보유하고 있다.[18] 보스턴 포위전 중 1776년 1월 4일, 조지 워싱턴 장군은 조지프 리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붉은 외투"라는 용어를 사용했다.[21] 대륙군의 존 스타크 소장은 벤닝턴 전투 (1777년 8월 16일)에서 "저기 너희의 적, 붉은 외투와 토리들이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23]
영국 군인들에 대한 다른 비하적인 별명으로는 "피투성이 등"(bloody backs)과 "바다가재"(lobsters)가 있었는데, 특히 보스턴 학살 시기 보스턴에서 많이 사용되었다.[24]
2. 4. 19세기 ~ 20세기 초: 카키색 군복의 도입과 붉은 외투의 쇠퇴
19세기 중반 크림 전쟁에서 병사들이 겪은 불편함 이후, 더 실용적인 튜닉이 1855년에 도입되었다. 처음에는 프랑스식 더블 브레스티드 스타일이었으나, 이듬해 싱글 브레스티드 버전으로 대체되었다.[25] 1881년 찰더스 개혁에 따라 영국과 웨일스 연대는 흰색 면(칼라와 커프스), 스코틀랜드는 노란색, 아일랜드는 녹색, 왕립 연대는 짙은 파란색을 사용하는 등 표준화가 시도되었다. 그러나 일부 연대는 이후 고유의 역사적인 페이싱 색상을 재도입할 수 있었다.[26]영국 군인들은 1885년 12월 30일 수단에서 벌어진 제니스 전투에서 마지막으로 붉은색과 파란색 군복을 입고 전투에 참여했다. 이들은 1884~85년 나일 캠페인에 참여하기 위해 영국에서 파견된 원정군의 일부였으며, 당시의 자국 복무 군복을 착용했다.[27] 여기에는 활동복 유니폼의 일부로 붉은색 "프록"(비공식적인 착용을 위해 디자인된 더 튼튼한 소재의 일반 재킷)이 포함되었지만,[28] 인도에서 파견된 일부 연대는 카키색 드릴을 입었다. 1885년 1월 28일 증기선으로 하르툼에 도착한 소규모 보병 부대는 마흐디 반군에게 '진짜' 영국군이 도착했음을 알리기 위해 붉은 코트를 입고 싸우라는 명령을 받았다.[30]
19세기 말, 소총과 무연 화약의 등장으로 붉은 외투는 야전에서 불리한 복장이 되었다. 1902년에 카키 근무복이 채택된 이후에도, 대부분의 영국 보병 연대(85개 중 81개)와 일부 기병 연대(31개 중 12개)는[31]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까지 사열과 비번 시 "외출복"으로 붉은색 튜닉을 계속 착용했다.[32] 육군의 거의 모든 기술 및 지원 부대는 짙은 파란색을 착용했지만, 왕립 공병대는 이베리아 반도 전쟁 이후 붉은색 코트를 입어 붉은 코트를 입은 보병대와 함께 근무할 때 총격을 덜 받도록 했다.[33]
붉은색 튜닉은 1914년 8월 영국 동원령에 따라 일반적인 지급이 중단되었다. 근위 보병 여단은 1920년에 붉은색 정복 착용을 재개했지만, 육군의 나머지 부대에서는 붉은 코트가 연대 밴드와 장교의 메스 드레스 또는 특정 제한적인 사회적 또는 의례적 행사(특히 법원 행사 또는 결혼식 참석)에만 착용하도록 허가되었다.[34][35][36] 붉은색 정복의 재도입을 하지 않은 주된 이유는 재정적인 문제였는데, 붉은색 천은 구식 방법으로 천의 결에 코치닐 염료를 염색해야 하기 때문이다.
1980년까지도 현대 영국 육군의 짙은 파란색 "1번 드레스"와 카키색 "2번 드레스"를 대체하기 위해 코치닐 대신 더 저렴하고 퇴색되지 않는 화학 염료를 사용하여 붉은색을 재도입하는 방안이 고려되었다. 현역 군인의 의견 조사 결과 이 아이디어에 대한 지지가 거의 없어 보류되었다.[37]
2. 5. 20세기 이후: 정복 및 의장 복장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로 붉은 외투는 영국 육군에서 일반적인 지급이 중단되었다.[48] 근위 보병대와 일부 부대에서는 정복으로 계속 착용했다.[48] 현재 붉은 외투는 영국 육군뿐만 아니라 여러 영연방 국가에서 의장 행사나 군악대 복장으로 사용되고 있다.[43]영국 육군에서 붉은 외투는 근위 기병대와 다른 여러 기병대, 근위 보병대, 로열 공병, 정규 보병 연대, 장성, 그리고 영국 육군의 대부분의 참모 장교들의 정복의 일부로 사용된다.[48] 현지에서 모집된 로열 지브롤터 연대 또한 동절기 의장 복장의 일부로 붉은 외투를 사용한다.[48]
일부 연대 군악대나 드럼 연주자들은 의례 목적을 위해 붉은 외투를 사용한다.[48] 이전에 붉은색을 착용했던 연대의 장교와 부사관은 붉은색을 "사교" 또는 정식 저녁 재킷의 색상으로 유지한다.
호주, 영국, 캐나다, 피지, 가나, 인도, 자메이카, 케냐, 뉴질랜드, 파키스탄, 싱가포르, 스리랑카 육군을 포함한 여러 영연방 국가의 군대에서 붉은색 튜닉은 정복, 군악대 또는 사관용 제복으로 유지되어 왔다.[43]
명예 친위대, 윈저 군사 기사단 및 근위대원은 국왕 호위대로 알려진 의장대이다. 앞의 두 부대는 의례적인 임무를 수행할 때 19세기 초의 붉은색 장교 외투를 착용한다. 근위대원들은 튜더 양식의 붉은색 프록 코트를 착용한다.
왕립 해병대에서는 1923년 왕립 해병 경보병대의 진홍색 정복 튜닉이 폐지되고, 짙은 파란색이 의례 및 일반적인 경우 모두에 보편적인 제복 색상이 되었다.[41] 현재 (2021년) 왕립 해병대의 진홍색은 장교 및 선임 부사관의 사관복 재킷에서만 남아 있다.[42]
3. 붉은색을 선택한 이유
머스킷과 흑색 화약 시대에는 전장의 시야가 연기 구름에 의해 빠르게 가려졌기 때문에, 밝은 붉은색은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수단을 제공했다. 19세기까지 사용된 식물성 염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분홍색이나 적갈색으로 변색되었으므로, 더운 기후에서 장기간의 작전에서는 현대의 선명한 붉은색보다 덜 눈에 띄었다.
붉은색을 영국 군복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설명이 없다. 16세기 군사 역사가 율리우스 페레투스는 옅은 색 유니폼에 핏자국이 있으면 사기를 저하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적색이 선호되었다고 주장했다.
군사 역사가 W. Y. 카만은 그의 저서 ''영국 군복''에서 튜더 왕조부터 스튜어트 왕조에 이르기까지 영국 군인의 색깔로서 적색이 서서히 진화한 과정을 추적한다. 그 이유들은 재정적인 이유(더 저렴한 적색, 적갈색 또는 진홍색 염료), 문화적인 이유(적색이 영국 군인의 상징이라는 대중적인 인식 증가), 그리고 단순한 우연(1594년의 명령은 코트가 "가장 잘 제공할 수 있는 색상"을 갖도록 한다)이 혼합되어 나타난다.
잉글랜드 내전 동안 적색 염료는 양측의 부대와 개인에 의해 대량으로 수입되었지만, 이는 긴 오버코트의 유행이 시작된 시기였다. 적색 안료의 손쉬운 공급은 군복에 널리 사용되게 했으며, 적색에 필요한 염색 과정은 단계를 하나만 거치면 되었다. 다른 색상은 두 단계로 염료를 혼합해야 했고, 이에 따라 더 많은 비용이 들었다. 최초의 영국 정규군 (의회파 뉴 모델 아미 1645년)의 창설은 적색 의복을 표준 복장으로 간주했다. 카만은 "적색 코트는 이제 영국인의 상징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고 언급한다.
대규모 교전이 벌어지는 전통적인 전장에서 가시성은 1850년대에 소총이 일반적으로 채택되기 전까지, 그리고 1880년대 이후 무연 화약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군사적 불이점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카키색 의복의 가치는 영국군에 의해 빠르게 인식되었으며, 19세기 중반부터 인도 및 식민지 전쟁을 위해 카키색 드릴을 도입했다. 제2차 보어 전쟁 이후 일련의 개혁의 일환으로, 1902년에는 영국 본토의 근무복으로 더 어두운 카키색 서지가 채택되었다.
4. 영연방 국가 및 기타 국가에서의 사용
여러 영연방 국가의 군대에서는 영국군의 전통을 이어받아 붉은색 군복을 의장 행사나 군악대 복장으로 사용하고 있다.[43] 제국 시대 동안 영국이 조직하거나 동맹을 맺은 군대는 붉은색과 선홍색 군복을 널리 착용했는데, 여기에는 1757년 이후 동인도 회사의 총독부 육군(이후 영국령 인도 육군 포함)[38] 및 캐나다의 식민지 부대가 포함되었다.[39]
진홍색 튜닉은 호주, 영국, 캐나다, 피지, 가나, 인도, 자메이카, 케냐, 뉴질랜드, 파키스탄, 싱가포르, 스리랑카 등 여러 영연방 국가 군대의 정복, 군악대 또는 사관용 제복으로 유지되어 왔다.[43]
4. 1. 영연방 국가
여러 영연방 국가의 군대에서는 영국군의 전통을 이어받아 붉은색 군복을 의장 행사나 군악대 복장으로 사용하고 있다.[43] 제국 시대 동안 영국이 조직하거나 동맹을 맺은 군대는 붉은색과 선홍색 군복을 널리 착용했는데, 여기에는 1757년 이후 동인도 회사의 총독부 육군(이후 영국령 인도 육군 포함)[38] 및 캐나다의 식민지 부대가 포함되었다.[39]
진홍색 튜닉은 호주, 영국, 캐나다, 피지, 가나, 인도, 자메이카, 케냐, 뉴질랜드, 파키스탄, 싱가포르, 스리랑카 등 여러 영연방 국가 군대의 정복, 군악대 또는 사관용 제복으로 유지되어 왔다.[43]
붉은 외투의 사용은 캐나다 민병대에서 시작되었는데, 1867년 캐나다 연방 이후 캐나다 정부를 지원했다. 1902년 군주가 명령한 간소화된 체계에서 비롯된 붉은 외투와 관련된 현재의 복장 규정은 1907년 캐나다 민병대 복장 규정과 민병대 명령 제58/1908호에 공포되었다.[44] 1940년 캐나다 민병대가 캐나다 육군으로 개편된 후에도 붉은 외투를 포함한 복장 규정은 유지되었다. 캐나다 육군의 일반적인 정복에는 붉은색 외투가 포함되며,[44] 파이핑은 흰색, 부대의 면 색상은 외투의 칼라, 소매, 견장에 나타난다.[44] 캐나다 왕립 군사 대학교의 생도들도 붉은 외투의 변형을 착용한다.[45]
19세기 동안 뉴질랜드의 여러 자원 민병대는 붉은색 튜닉을 착용했다. 현재 뉴질랜드 육군 밴드와 장교 사관 학교만이 의례적인 정장 제복의 일부로 붉은색 튜닉을 사용한다. 뉴질랜드 육군의 표준 연회복에는 짙은 파란색/검은색 옷깃이 있는 붉은색 재킷이 포함된다.[47]
붉은 외투는 현재 영국 육군 복장 규정에도 남아있다. 붉은 외투는 현재 근위 기병대와 다른 여러 기병대, 근위 보병대, 로열 공병, 정규 보병 연대, 장성, 그리고 영국 육군의 대부분의 참모 장교들의 정복의 일부로 사용된다.[48] 현지에서 모집된 로열 지브롤터 연대 또한 동절기 의장 복장의 일부로 붉은 외투를 사용한다.
4. 2. 기타 국가
덴마크-노르웨이 연합군은 17세기부터 1814년 연합 해체까지 붉은색 제복을 착용했고, 1848년까지 덴마크 육군 일부 연대는 붉은색 외투를 유지했다.[60]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폴란드 왕립 근위대는 붉은색 외투와 재킷을 입었다.[61] 교황령 육군 정규 보병 연대도 1730년대에 붉은색 외투와 반바지를 착용했다.[62] 프랑스 육군의 아일랜드 여단(1690–1792)은 자코바이트 대의에 대한 충성을 나타내기 위해 붉은색 외투를 입었고, 프랑스 육군의 스위스 근위대도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까지 붉은색 외투를 착용했다. 프랑스 북아프리카 스파히 연대는 1962년 해산될 때까지 붉은색 주아브 스타일 재킷을 입었다.[64] 베네수엘라 독립 전쟁 동안, 시몬 볼리바르를 위한 영국 군단 명예 근위대에서 사용된 붉은색 후사르 기병 제복이 채택되었다. 프로이센 육군의 근위 흉갑 기병 연대 장교들은 궁정 행사에서 진홍색 튜닉을 착용했다.[63]파라과이군은 삼국 동맹 전쟁 (1864–1870) 동안 붉은색 외투를 입었다.[60] 19세기 중반 이탈리아에서는 주세페 가리발디를 따라 이탈리아 통일에 참여한 자원병들이 붉은 셔츠를 입어 "적셔츠"로 불렸다. 미얀마 왕립군의 병사들도 18세기와 19세기에 서양식 붉은색 제복을 착용했다.

현대에 들어서도 덴마크의 왕립 근위대(Royal Life Guards), 네덜란드 육군의 이레네 공주 근위 연대(Garderegiment Fuseliers Prinses Irene)는 붉은색 외투를 의장 행사에서 사용한다. 남아메리카의 브라질 해병대, 볼리비아 콜로라도 연대(Bolivian Colorados Regiment), 베네수엘라 육군 부대([대통령 의장대]],[65] ''Compañia de Honor "24 de Junio"'',[66]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민병대[67][68])도 붉은색 외투를 착용한다. 아시아에서는 미얀마군 의장대와 인도네시아 대통령 경호대(Paspampres)가 붉은색 튜닉을 착용한다.

미국에서는 올드 가드 피프 앤 드럼 군악대(Old Guard Fife and Drum Corps), 미국 해군 군악대(United States Marine Band), 미국 해병대 드럼 앤 버글 군악대(United States Marine Drum and Bugle Corps) 단원들이 붉은색 외투를 착용한다.
5. 한국의 관점과 현대적 의의
붉은 외투는 대영 제국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19세기 말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경험한 한국인들에게는 외세의 압력을 연상시키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식될 수 있다.[53][54][55][56]
그러나 오늘날 붉은 외투는 영국 및 영연방 국가의 군사 전통과 문화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붉은색 군복은 과거의 역사적 의미를 넘어 각국의 문화적 다양성을 보여주는 요소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붉은 외투는 현대에도 여러 국가에서 군사 의전 복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이는 군대의 위엄과 전통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붉은 외투와 검은색 트리코르는 현재 첼시 퇴역 군인의 로열 첼시 병원 내 거주자들의 의례복과 병원 밖 복장의 일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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