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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산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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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상산 김씨는 신라 경순왕의 후예인 김수를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고려 시대에 상주(尙州)로 분적하여 상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김수 계통과 호장 김조를 시조로 하는 계통이 있으며, 이조 동성동본으로 분류된다. 주요 인물로는 김희일, 김득배, 김귀영 등이 있으며, 상주, 재령, 선산 등으로 분파되었다. 2000년 기준 인구는 63,528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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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산 김씨 - 김기웅 (1961년)
    김기웅은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통일부 차관을 역임한 국민의힘 소속 제22대 국회의원이다.
  • 상산 김씨 - 김주호 (1933년)
    대한민국의 공무원 출신 정치인인 김주호는 농림부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하여 농림수산부 장관 등 요직을 역임하고 한국사료협회 회장, 세계식량농업기구(FAO) 한국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민간 부문에서도 활동하였다.
상산 김씨 - [성씨/가문]에 관한 문서
상산 김씨 정보
성씨상산 김씨
이칭상주 김씨
나라대한민국
관향경상북도 상주시
시조김수(金需)
원시조김알지(金閼智)
중시조김록(金綠)
중시조김연(金璉)
집성촌전라북도 익산시 오산면 송학리
집성촌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
집성촌전라남도 영광군 대마면
집성촌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집성촌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집성촌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집성촌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집성촌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집성촌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년도2000
인구63,528명
상산 김씨 인물 (김수 계통)
인물김비궁
인물김성
인물김일
인물김거도
인물김수(金遂)
인물김득배
인물김득제
인물김선채
인물김준
인물김범
인물김홍민
인물김귀영
인물김덕겸
인물김덕함
인물김거도
인물김수균
인물김흡
인물김일남
상산 김씨 인물 (김조 계통)
인물김약
인물김공숙
인물김국량
인물김억동
인물김광두
인물김우하
상산 김씨 관련 인물
인물김건호
인물김태호
인물김태흠

2. 역사

상산 김씨는 시조가 다른 두 계통이 존재한다. 하나는 고려 초 보윤(甫尹)을 지낸 '''김수'''(金需)를 시조로 하는 계통이고, 다른 하나는 고려 때 호장(戶長)을 지낸 '''김조'''(金祚)를 시조로 하는 계통이다. 이처럼 조상이 다른데도 같은 지역에 뿌리를 두고 같은 성씨를 쓰는 경우를 이조동성동본(異祖同姓同本)이라고 하는데, 상산 김씨가 그 중 하나이다.

《고려사》에 따르면 상주의 향리(鄕吏) '''김조'''(金祚)의 딸 김만궁(金萬宮)이 상주의 향리 '''김일'''(金鎰)에게 시집가서 '''김록'''(金祿)을 낳았고, '''김일'''(金鎰)은 '''김수'''(金需)의 8세손이다. 따라서, 같은 상산을 본관으로 하지만, '''김수'''(金需)와 '''김조'''(金祚)는 서로 다른 일족이다.

2. 1. 시조 및 기원

시조 '''김수'''(金需)는 신라 경순왕 김부의 후예로, 고려 초 정종 때 보윤(甫尹)을 역임했다. 본래 경주였으나, 상주(상산(商山)의 옛 지명)로 분적(分籍)하였다.[2][3]

《증보문헌비고》, 《조선씨족통보》 등의 문헌에 따르면, '''상주 김씨'''(尙州 金氏)의 시조 '''김수'''(金需)는 경순왕의 후예로, 상주로 분적(分籍)한 후 각 파(派)로 나뉘었다고 한다. 상주 김씨는 판전의사사(判典醫寺事) '''김록'''(金綠)의 후손, 호장(戶長) '''김조'''(金祚)의 후손, 또는 판종부사사(判宗簿寺事) '''김연'''(金璉)의 후손이며, 이들의 선계는 모두 '''김수'''(金需)의 후예라고 한다.[4]

《고려사》에 따르면 상주의 향리(鄕吏) '''김조'''(金祚)의 딸 김만궁(金萬宮)이 상주의 향리 '''김일'''(金鎰)에게 시집가서 '''김록'''(金祿)을 낳았고, '''김일'''(金鎰)은 '''김수'''(金需)의 8세손이다. 따라서 '''김수'''(金需)와 '''김조'''(金祚)는 본관은 같으나 서로 다른 일족이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김수'''(金需)와 '''김조'''(金祚)를 별도 시조로 삼고 상산(商山)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호장(戶長) '''김조'''(金祚)에 대해서는 《김씨 분관록》, 《증보문헌비고》등의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고, 《조선씨족통보》에 '''김수'''(金需)의 후예라고 기록되어 있다.

시조 '''김수'''(金需)는 고려 초 보윤(甫尹)을 지내고, 대대로 상산(상주의 옛 지명)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의 선계는 신라 김씨(金姓)에서 분파되었으나, 문헌이 없어 상계를 정확히 고증할 수는 없다고 한다. 다만 후대에 소급(溯及)하여 그 시대적 배경을 통해 역사 사실을 참조할 뿐이다.[5]

시조 '''김조'''(金祚)는 고려 때 상주(尙州)의 향리(鄕吏)로 호장(戶長)을 지냈다. 그의 선계는 자료가 없어 정확히 알 수 없다. 《김씨 분관록》, 《증보문헌비고》등의 문헌에도 언급이 없고, 《조선씨족통보》에 '''김수'''(金需)의 후예라고 한다.

2. 2. 이조 동성 동본

우리나라 성씨 가운데 이조(異祖) 동성동본(同姓同本)으로 조상이 서로 다른 데도 불구하고, 같은 지역에 뿌리를 두고 같은 성씨를 쓰며, 마치 두 집안이 동성동본(同姓同本)인양 오인 받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상산 김씨'''(商山 金氏)도 그중 하나이다.

하나는 고려 초 보윤(甫尹) '''김수'''(金需)를 시조로 하는 계통이고, 또 다른 하나는 고려 호장(戶長) '''김조'''(金祚)를 시조로 하는 계통이다. 이에 대해서는 문헌이 없어 자세히 상고할 수 없다.[4]

2. 3. 분파

《증보문헌비고》·《조선씨족통보》 등의 문헌에 따르면 '''상주 김씨'''(尙州 金氏)의 시조 '''김수'''(金需)는 경순왕의 후예인데, 상주(尙州)로 분적(分籍)하였으며 후에 각 파(派)로 나뉘었다고 한다.[4] 상주 김씨는 판전의사사(判典醫寺事) '''김록'''(金綠)의 후손, 또는 호장(戶長) '''김조'''(金祚)의 후손, 또는 판종부사사(判宗簿寺事) '''김연'''(金璉)의 후손이며, 이들의 선계는 모두 '''김수'''(金需)의 후예라고도 한다.[4]

분파(分派)는 다음과 같다.[4]

인물세(世)관직비고
김비궁(金匪躬)현손찬성(贊成)정평공(靖平公) 김희일(金希逸)의 아들
김성(金成)6세손한림학사(翰林學士)이름을 김유(金逌)로 고침, 김희일(金希逸)의 증손, 문과 급제
김일(金鎰)손자대호군(大護軍)한림학사(翰林學士) 김지연(金之衍)의 아들, 고려 원종 때
김거도(金居道)5세손전서(典書)김지연(金之衍)의 현손, 판서(判書) 김원리(金元理)의 아들
김수(金遂)6세손판사(判書)김지연(金之衍)의 5세손, 지후(祗候) 김치경(金致經)의 아들
김준(金浚)부사(府使)
김수균(金守勻)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김수균(金守鈞)으로도 씀
김흡(金洽)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ㆍ총제사(摠制使)
김일남(金釰南)전공 판서(典工 判書)
파명
상주파(尙州派)
재령파(載寧派)
선산파(善山派)
성주파(星州파)


2. 4. 분적

문헌에 의하면 시조 '''김수'''(金需)는 신라 경순왕 김부의 후예로, 고려 정종 때 보윤(甫尹)을 역임했다. 본관은 본래 경주였으나, 상주로 분적(分籍)하였다.[2][3]

《증보문헌비고》, 《조선씨족통보》 등의 문헌에는 '''상주 김씨'''(尙州 金氏) 시조 '''김수'''(金需)는 경순왕의 후예로, 상주로 분적하였으며 후에 각 파(派)로 나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상주 김씨는 판전의사사(判典醫寺事) '''김록'''(金綠), 호장(戶長) '''김조'''(金祚), 판종부사사(判宗簿寺事) '''김연'''(金璉)의 후손이라고도 하며, 이들의 선계는 모두 '''김수'''의 후예라고 한다.[4]

상산 김씨에서 분적된 성씨는 다음과 같다.

  • 봉산 김씨(鳳山 金氏)
  • 서산 김씨(瑞山 金氏)
  • 연풍 김씨(連豐 金氏)
  • 예천 김씨(醴川 金氏)
  • 제주 김씨(濟州 金氏)
  • 홍원 김씨(洪原 金氏)
  • 함평 김씨(咸平 金氏)

3. 주요 인물

상산 김씨의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이름주요 행적
김약회령 현감
김공숙낭장군
김국량통정대부, 재령군수, 곡산부사
김억동
김광두(金光斗)호 일묵재, 성균진사, 임진왜란 때 창의
김우하(金遇河)통정대부



김수의 후손들은 여러 파로 나뉘어 세계를 이어왔으며,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단을 참고하라. 김조의 후손들은 상주파, 재령파, 선산파, 성주파 등으로 분파되었으며,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단을 참고하라.

3. 1. 김수 계통

시조 '''김수'''(金需)는 신라 경순왕 김부의 후예로, 고려 초 정종 때 보윤(甫尹)을 역임했다. 본래 경주였으나, 상주(尙州. 상산(商山)의 옛 지명)로 분적(分籍)하였다.[2][3]

《증보문헌비고》·《조선씨족통보》 등의 문헌에 따르면 '''상주 김씨'''(尙州 金氏)의 시조 '''김수'''(金需)는 경순왕의 후예인데, 상주(尙州)로 분적(分籍)하였으며 후에 각 파(派)로 나뉘었다고 한다. 혹은 판전의사사(判典醫寺事) '''김록'''(金綠)의 후손, 호장(戶長) '''김조'''(金祚)의 후손, 판종부사사(判宗簿寺事) '''김연'''(金璉)의 후손이며, 이들의 선계는 모두 '''김수'''(金需)의 후예라 하였다.[4]

《고려사》에 따르면 상주의 향리(鄕吏) '''김조'''(金祚)의 딸 김만궁(金萬宮)이 상주의 향리(鄕吏) '''김일'''(金鎰)에게 시집가서 '''김록'''(金祿)을 낳았다. '''김일'''(金鎰)은 '''김수'''(金需)의 8세손이다. 따라서 '''김수'''(金需)와 '''김조'''(金祚)는 본관은 같으나 서로 다른 일족이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김수'''(金需)와 '''김조'''(金祚)를 별도 시조로 삼고 상산(商山)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호장(戶長) '''김조'''(金祚)에 대해서는 《김씨 분관록》·《증보문헌비고》등의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고, 다만 《조선씨족통보》에 '''김수'''(金需)의 후예라 한다.

시조 '''김수'''(金需)는 고려 초 보윤(甫尹)을 지내고, 대대로 상산(商山, 상주(尙州)의 옛 지명)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의 선계는 신라 김씨에서 분파되었다고 하며, 문헌이 없어 상계를 정확히 고증할 수는 없다고 한다. 다만 후대에 소급(溯及)하여 그 시대적 배경을 통해 역사 사실을 참조하여 증험(證驗)할 뿐이다.[5]

'''김수'''(金需)의 후손들은 여러 파(派)로 나뉘어 세계를 이어왔다. 주요 인물은 다음과 같다.

이름세수주요 행적
김비궁(金匪躬)현손정평공(靖平公) 김희일(金希逸)의 아들, 찬성(贊成)
김성(金成)6세손김유(金逌)로 개명, 김희일(金希逸)의 증손, 문과 급제, 한림학사(翰林學士)
김일(金鎰)손자한림학사(翰林學士) 김지연(金之衍)의 아들, 고려 원종(元宗) 때 대호군(大護軍)
김거도(金居道)5세손김지연(金之衍)의 현손, 판서(判書) 김원리(金元理)의 아들, 전서(典書)
김수(金遂)6세손김지연(金之衍)의 5세손, 지후(祗候) 김치경(金致經)의 아들, 판사(判書)
김준(金浚)부사(府使)
김수균(金守勻)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혹은 김수균(金守鈞))
김흡(金洽)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ㆍ총제사(摠制使)
김일남(金釰南)전공 판서(典工 判書)
김희일(金希逸)시중(侍中), 정평공(靖平公)
김유(金逌)김성(金成)의 개명, 문과 급제, 한림학사(翰林學士)
김록(金祿)원(元)나라 제과(制科)에 급제, 판전의시사(判典醫寺事)
김득배(金得培)문과 급제, 예문검열(藝文檢閱) 등 역임, 수충보절정원공신 정당문학(輸忠保節定遠功臣 政堂文學), 문충공(文忠公), 숭의전(崇義殿)에 배향
김득제(金得齊)김득배의 동생, 대장군(大將軍)·판각문사(判閣門事)·의주원수(義州元帥) 역임, 상산군(商山君)에 봉해짐
김선치(金先致)김득배의 동생, 호부낭중(戶部郎中) 등 역임, 추성익위공신(推誠翊衛功臣)·추충보절찬화공신(推忠保節贊化功臣) 하사, 상성군(尙城君)·낙성군(洛城君)에 봉해짐
김범(金範)14세손옥과 현감(玉果縣監), 서원에 배향
김홍민(金弘敏)김범의 아들, 문과 급제, 전한(典翰), 서원에 배향
김귀영(金貴榮)김득제의 9세손, 문과 급제, 좌의정(左議政), 공신,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에 봉해짐
김덕겸(金德謙)김선치의 6세손, 문과 급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덕함(金德諴)김덕겸의 아우, 문과 급제, 대사헌(大司憲), 시호 충정공(忠貞公), 청백리(淸白吏), 서원에 배향
김우석(金禹錫)김덕함의 손자, 문과 급제, 형조판서(刑曹判書)
김연(金演)김우석의 아들, 문과 급제, 호조판서(戶曹判書)
김동필(金東弼)김연의 조카, 문과 급제, 이조판서(吏曹判書), 시호 충혜공(忠惠公)
연령군(숙종의 서자)부인상산 김씨


3. 2. 김조 계통

시조 김조(金祚)는 고려상주의 향리(鄕吏)로 호장(戶長)을 지냈다. 그의 선계는 자료가 없어 정확히 상고할 수 없다. 《김씨 분관록》·《증보문헌비고》등의 문헌에도 언급이 없고, 다만 《조선씨족통보》에 김수(金需)의 후예라 한다.[1]

《고려사》에 의하면 상주의 향리 김조의 딸 김만궁(金萬宮)이 장성하여, 상주의 향리 김일(金鎰)에게 시집가서 김록(金祿)을 낳았다. 김일은 김수의 8세손이다. 따라서 김수와 김조는 본관은 같으나 서로 다른 일족이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김수와 김조를 별도 성향 시조로 삼고 상산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1]

김조의 후손으로는 회령 현감 김약, 낭장군 김공숙, 통정대부·재령군수·곡산부사를 지낸 김국량, 임진왜란 때 창의(倡義)한 성균진사 김광두(金光斗, 호는 일묵재), 통정대부 김우하(金遇河) 등이 있다. 김조의 후손들은 상주파(尙州派), 재령파(載寧派), 선산파(善山派), 성주파(星州파) 등으로 분파되었다.[1]

4. 본관: 상주(尙州)

상산(商山)은 경상북도 서쪽에 위치하는 상주(尙州) 지역의 옛 지명이다. 삼한시대에는 진한(辰韓)의 영토였으나, 3세기경 신라의 세력권에 들어가 524년(신라 법흥왕 11)에 상주(上州), 진흥왕때 상락군(上洛郡), 신문왕 때 사벌주(沙伐州), 757년(경덕왕 16)에 상주(尙州), 776년(혜공왕 12)에 사벌주(沙伐州) 등의 행정구역이 설치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 상주(尙州)라 하였다가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바뀌고, 1018년(현종 9) 때 상주목이 되었다.

1392년(태조 1)에 경주로부터 관찰사영이 상주로 옮겨와 경상도의 정치·행정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1408년(태종 8)에 경상감영이 상주로 옮겨왔다가, 1596년(선조 29)에 관찰사영은 경상도의 중앙에 위치한 대구로 옮겨갔다. 별호는 상락(上洛)‧상산(商山)‧타아(陀阿) 등이었다.

1895년(고종 32)에 지방제도 개정으로 상주목이 상주군으로 개편되었다가 1896년 경상북도에 소속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함창군이 편입되었고, 1931년에 상주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에 상주읍이 시로 승격되어 분리되었고, 1995년 상주군이 상주시에 통합되었다.

5. 인구

2000년 기준 63,528명이다.

참조

[1] 문서 상주 김씨의 다른 명칭
[2] 문서 상주 김씨 시조 김수의 계보 (설 1)
[3] 문서 상주 김씨 시조 김수의 계보 (설 2)
[4] 문서 조선씨족통보의 상주 김씨 기록
[5] 문서 상주 김씨 시조 김수의 계보에 대한 다양한 설과 그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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