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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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408년은 서기 연도이며, 다양한 역사적 사건, 출생, 사망, 그리고 정치적 변화가 있었던 해이다.
주요 사건으로는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 간의 동맹, 오스만 제국의 로도스 침공, 제노바의 프랑스 점령, 오를레앙의 프랑스 합병 등이 있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명나라의 영락 대전이 완성되었고, 일본의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사망했다. 조선에서는 태조 이성계가 사망하고, 하륜이 영의정부사로 임명되었다. 또한, 헝가리에서는 드래곤 기사단이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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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년 | |
---|---|
지도 정보 | |
연대 | |
세기 | 14세기 |
10년대 | 1400년대 |
연도 | 1408년 |
간지 | 무자년(戊子年), 기축년(己丑年) |
주요 사건 | |
발생 | 5월 18일: 대립 교황 베네딕토 13세가 프랑스의 샤를 6세를 위협하여, 샤를 6세는 교황 그레고리오 12세를 지지하게 됨. |
문화 | |
문학 | 1408 (단편 소설, 스티븐 킹) |
영화 | 1408 (영화) |
기타 | |
1408년과 관련된 다른 의미 | 1408 |
참고 | 분류:연도별 |
2. 역사적 배경
1408년은 동아시아와 서양에서 여러 사건들이 일어난 해였다.
동아시아
- 조선 (태종 8년): 음력 2월 11일 하륜이 영의정부사가 되었고, 음력 5월 24일 태조 이성계가 승하하였다.[2]
- 명나라: 영락 6년
- 일본: 오에이(応永일본어) 15년.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사망하고, 명나라 영락제는 그에게 "공헌"이라는 시호를 내렸다.[1] 7월 15일 (오에이 15년 6월 22일) 코끼리가 일본에 처음 도래했다.[1]
서양
- 서구 대분열 지속:
- 1월 12일 프랑스 국왕 샤를 6세는 아비뇽 교황 베네딕토 13세에게 승천일까지 분열을 끝내라고 최후통첩을 보냈다.[1]
- 5월 18일 베네딕토 13세는 파문 교황 칙서를 발표하며 반발했다.[1]
- 6월 15일 베네딕토 13세는 페르피냥 공의회를 소집하고 제노바로 피신했다.[7]
- 7월 2일 리보르노에서 피사 공의회 소집이 결정되었다.[8]
- 9월 23일 웨일스 공 헨리, 오와인 글린두르에게서 애버리스트위스 탈환.[10]
- 12월 13일 헝가리 국왕 지기스문트, 드래건 기사단 창설.
- 아펜첼 전쟁: 스위스 아펜첼과 장크트갈렌 동맹, 브레겐츠 해방 시도 실패. 신성 로마 제국 독일 국왕 루페르트, ''Bund ob dem See'' 해산 명령.[2][5]
- 브램햄 무어 전투: 왕당파 군대, 퍼시 반란 잔당 격파.[3]
2. 1. 동아시아
2. 1. 1. 명나라
명 성조 영락제 6년2. 1. 2. 조선
- 음력 2월 11일 - 하륜이 영의정부사가 되었다.[1]
- 음력 5월 24일 - 조선 건국시조 태상왕 태조 이성계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4세였다.[2]
- 김길통, 남수문, 함우치 등이 있었다.[3]
- 고려 후궁 혜비 이씨가 있었다.[4]
2. 1. 3. 일본
- 応永|오에이일본어 15년
- 황기 2068년
- 일본 국왕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급병으로 사망했다. 명나라의 영락제는 요시미쓰를 높이 평가하여, 그가 사망한 다음 해에 조문 사절을 일본으로 보내 "'''공헌'''"이라는 시호를 증정했다. 일본인으로 외국에서 시호를 받은 것은 요시미쓰가 최초이자 마지막이다.[1]
- (오에이 15년 2월) 명나라 배가 효고에서 출항했다.[1]
- (오에이 15년 2월) 하나조노인 나가치카가 고운구전을 저술했다.[1]
- 5월 20일 (오에이 15년 4월 25일) 아시카가 요시쓰구가 15세에 종3위가 되고, 더 나아가 친왕에 준하여 궁중에서 원복을 했다.[1]
- (오에이 15년 5월) 조정이 아시카가 요시미쓰에게 태상천황의 존호를 올리려 했으나, 아시카가 요시모치가 사퇴했다.[1]
- 7월 15일 (오에이 15년 6월 22일) 와카사국 오바마에 남만 (동남아시아)의 "아레진 경"이 파견한 배가 입항했다. 문헌 기록상 처음으로 코끼리가 일본에 도래했다.[1]
- (오에이 15년 7월) 구마노 혼구 대사가 불탔다.[1]
- (오에이 15년 8월) 교토가 폭풍에 시달려 사찰과 건물이 무너졌다.[1]
- (오에이 15년 12월) 도구라·술집 역의 제도가 정해졌다.[1]
- 여절이 퇴장원 표어도를 그렸다.[1]
2. 2. 서양
1408년 서양에서는 서구 대분열과 관련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아펜첼 전쟁에서 스위스의 아펜첼 지역과 장크트갈렌의 동맹("호수 위의 동맹")은 오스트리아 통치로부터 브레겐츠 시를 해방하려는 시도에 실패했고, 신성 로마 제국의 독일 국왕 루페르트는 ''Bund ob dem See''의 해산을 명령했다.[2][5] 브램햄 무어 전투에서는 왕당파 군대가 퍼시 반란의 마지막 잔당을 격파했다.[3]7월 2일에는 리보르노에서 교황 그레고리를 지지하는 로마 가톨릭 추기경 13명이 1409년 3월 25일에 열리는 피사 공의회에 소집하여 서방 분열을 종식시키려 했다.[8] 9월 23일에는 웨일스 공 헨리 (후일 잉글랜드의 헨리 5세)가 오와인 글린두르로부터 애버리스트위스를 탈환했다.[10] 12월 13일에는 헝가리 국왕 지기스문트 아래에서 드래건 기사단이 창설되었다.
2. 2. 1. 서구 대분열
1월 12일, 프랑스 국왕 샤를 6세는 아비뇽 교황 베네딕토 13세에게 아비뇽으로 서신을 보내 베네딕토와 로마 순종에 대항하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분열을 종식시키라고 최후 통첩을 보냈다. 샤를 6세는 분열이 승천일(부활절로부터 40일 후인 1408년 6월 3일)까지 종식되지 않으면, 프랑스가 아비뇽 순종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1]5월 18일, 프랑스의 최후 통첩에 대한 응답으로 대립 교황 베네딕토 13세는 프랑스 국왕 샤를 6세를 포함하여 아비뇽 교황청에 복종을 철회하려는 모든 사람을 파문하라는 교황 칙서를 발표했다. 베네딕토 13세의 "중대한 전술적 실수"인 이 칙서는 파리 대학교 지도자들에게 칙서를 전달한 자들을 대역죄로 선언하고 베네딕토 13세를 국왕의 존엄성과 국가의 명예에 대한 공격으로 비난할 구실을 제공했다. 샤를 국왕은 베네딕토 교황에 대한 지원을 철회하고 아비뇽과 로마 사이의 분열에서 프랑스의 중립을 선포했다.[1]
6월 15일, 프랑스가 더 이상 자신의 아비뇽 복종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후, 대립 교황 베네딕토 13세는 페르피냥 공의회를 소집하여 11월 1일 프랑스 도시 페르피냥에서 회의를 열도록 하고, 체포를 피하기 위해 프랑스 통제하의 이탈리아 지역 제노바에서 도망쳤다.[7]
2. 2. 2. 유럽 각국의 정세
- 1월 12일 - 서구 분열: 프랑스 국왕 샤를 6세가 아비뇽 교황 베네딕토 13세에게 아비뇽으로 서신을 보내 베네딕토 13세와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분열을 종식시키라고 최후 통첩을 보냈다. 샤를 6세는 승천일까지 분열이 종식되지 않으면, 프랑스가 아비뇽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1]
- 1월 13일 - 아펜첼 전쟁: 스위스의 아펜첼 지역과 보덴 호수를 지칭하는 "호수 위의 동맹" (St. Gallen과의 동맹)이 오스트리아 통치로부터 브레겐츠 도시를 해방시키려는 시도에 실패했다.[2]
- 2월 19일 - 브램햄 무어 전투: 왕당파 군대가 퍼시 반란의 마지막 잔당을 격파했다.[3]
- 3월 14일 - 샤를 6세 국왕이 부르봉 공작 장을 프랑스 대내관으로 임명했다.
- 4월 8일 - 아펜첼 전쟁: 스위스의 아펜첼 지역과 장크트갈렌의 동맹("호수 위의 동맹")이 오스트리아 통치로부터 브레겐츠 시를 해방하려는 시도에 실패했다.[5] 신성 로마 제국의 독일 국왕 루페르트는 ''Bund ob dem See''의 해산을 명령했다.[2]
- 5월 18일 - 서구 대분열: 프랑스의 최후 통첩에 대한 응답으로 대립 교황 베네딕토 13세는 교황 칙서를 발표하여 아비뇽 교황청에 복종을 철회하려는 모든 사람을 파문하겠다고 선언했다. 베네딕토 13세의 이 칙서는 파리 대학교 지도자들에게 대역죄를 선언하고 베네딕토 13세를 국왕의 존엄성과 국가의 명예에 대한 공격으로 비난할 구실을 제공했다. 샤를 국왕은 베네딕토 교황에 대한 지원을 철회하고 프랑스의 중립을 선포했다.[1]
- 6월 15일 - 프랑스가 더 이상 자신의 아비뇽 복종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후, 대립 교황 베네딕토 13세는 페르피냥 공의회를 소집하고, 체포를 피하기 위해 프랑스 통제하의 이탈리아 지역 제노바에서 도망쳤다.[7]
- 7월 2일 - 리보르노에서 교황 그레고리를 지지하는 로마 가톨릭 추기경 13명이 1409년 3월 25일에 열리는 피사 공의회에 소집하여 서방 분열을 종식시키려 했다.[8]
- 9월 23일 - 웨일스 공 헨리 (후일 잉글랜드의 헨리 5세)가 오와인 글린두르로부터 애버리스트위스를 탈환했다.[10]
- 11월 15일 - 대립 교황 베네딕토 13세가 페르피냥 공의회를 소집했다.[12]
- 12월 13일 - 헝가리 국왕 지기스문트 아래에서 드래건 기사단이 창설되었다.
3. 주요 인물
국가 | 이름 | 사망일 | 기타 |
---|---|---|---|
조선 | 하륜 | 음력 2월 11일 | 영의정부사[1] |
조선 | 태조 이성계 | 음력 5월 24일 | 조선 건국 시조, 향년 74세[2] |
조선 | 김길통 | 월일 미상 | [3] |
조선 | 남수문 | 월일 미상 | [3] |
조선 | 함우치 | 월일 미상 | [3] |
조선 | 김희선 | 음력 2월 19일 | 호조판서[6] |
조선 | 조림 | 음력 3월 11일 | 지문하부사[7] |
조선 | 이조 | 음력 3월 24일 | 완평군[8] |
조선 | 진리 | 음력 6월 28일 | 순덕후[9] |
조선 | 류두명 | 음력 7월 28일 | 좌부대언[10] |
조선 | 민제 | 음력 9월 15일 | 여흥부원군[11] |
조선 | 의안대군 | 음력 10월 6일 | [12] |
조선 | 박자안 | 음력 11월 7일 | 좌군도총제[13] |
조선 | 권중화 | 음력 11월 23일 | 영의정부사[14] |
조선 | 조박 | 음력 12월 6일 | 호조판서[15] |
조선 | 목인해 | 월일 미상 | 무신 |
일본 | 아시카가 요시미쓰 | 불명 | 일본 국왕, 명나라 영락제가 "공헌"이라는 시호를 내림[1] |
3. 1. 조선
- 음력 2월 11일 - 하륜이 영의정부사에 임명되었다.[1]
- 음력 5월 24일 - 조선 건국 시조 태상왕 태조 이성계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4세였다.[2]
- 월일 미상 - 조선의 김길통, 남수문, 함우치[3]
- 음력 2월 19일 - 조선의 호조판서 김희선[6]
- 음력 3월 11일 - 조선의 지문하부사 조림[7]
- 음력 3월 24일 - 조선의 완평군 이조[8]
- 음력 6월 28일 - 조선의 순덕후 진리[9]
- 음력 7월 28일 - 조선의 좌부대언 류두명[10]
- 음력 9월 15일 - 조선의 여흥부원군 민제[11]
- 음력 10월 6일 - 조선의 의안대군[12]
- 음력 11월 7일 - 조선의 좌군도총제 박자안[13]
- 음력 11월 23일 - 조선의 영의정부사 권중화[14]
- 음력 12월 6일 - 조선의 호조판서 조박[15]
- 조선의 무신 목인해
3. 2. 일본
- 일본 국왕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급병으로 사망했다. 명나라 영락제는 요시미쓰를 높이 평가하여, 그가 사망한 다음 해에 조문 사절을 일본으로 보내 "'''공헌'''"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일본인이 외국에서 시호를 받은 것은 요시미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1]
- 오에이 15년(1408년) 2월 - 명나라 배가 효고에서 출항했다.[1]
- 오에이 15년(1408년) 2월 - 하나조노인 나가치카가 고운구전을 저술했다.[1]
- 5월 20일 (오에이 15년 4월 25일) - 아시카가 요시쓰구가 15세에 종3위가 되고, 더 나아가 친왕에 준하여 궁중에서 원복을 했다.[1]
- 오에이 15년(1408년) 5월 - 조정이 아시카가 요시미쓰에게 태상천황의 존호를 올리려 했으나, 아시카가 요시모치가 사퇴했다.[1]
- 7월 15일 (오에이 15년 6월 22일) - 와카사국 오바마에 남만 (동남아시아)의 "아레진 경"이 파견한 배가 입항했다. 문헌 기록상 처음으로 코끼리가 일본에 들어왔다.[1]
- 오에이 15년(1408년) 7월 - 구마노 혼구 대사가 불탔다.[1]
- 오에이 15년(1408년) 8월 - 교토가 폭풍에 시달려 사찰과 건물이 무너졌다.[1]
- 오에이 15년(1408년) 12월 - 도구라·술집 역의 제도가 정해졌다.[1]
- 여절이 퇴장원 표어도를 그렸다.[1]
4.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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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5일 - 헨리 7세의 딸 마거릿 튜더가 제임스 4세와 결혼하여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 사이의 동맹을 맺었다.
- 5월 1일 - 로도스가 오스만 제국의 침공을 받았다.
- 7월 10일 - 제노바가 프랑스에게 점령되었다.
- 8월 10일 - 오를레앙이 프랑스에 합병되었다.
- 몰다비아의 도시 이아시가 처음 언급되었다.
- 영락제때, ''영락 대전''이 완성되었다.[13]
- 고틀란드가 덴마크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 정화가 조선에서 명나라 황제에게 300명의 처녀를 보냈다.
- 왈라키아의 미하이 1세가 아버지 미르체아 첼 버트란과 함께 왈라키아의 공동 통치자가 되었다.
- 헝가리 왕 지기스문트가 드래곤 기사단을 설립.
- 일본 국왕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급병으로 사망했다. 명나라의 영락제는 요시미쓰를 높이 평가하여, 그가 사망한 다음 해에 조문 사절을 일본으로 보내 "'''공헌'''"이라는 시호를 증정했다. 일본인으로 외국에서 시호를 받은 것은 요시미쓰가 최초이자 마지막이다.
- (오에이 15년 2월) - 명나라 배가 효고에서 출항한다.
- (오에이 15년 2월) - 하나조노인 나가치카가 고운구전을 저술한다.
- 5월 20일 (오에이 15년 4월 25일) - 아시카가 요시쓰구가 15세에 종3위가 되고, 더 나아가 친왕에 준하여 궁중에서 원복을 한다.
- (오에이 15년 5월) - 조정이 아시카가 요시미쓰에게 태상천황의 존호를 올리려 했으나, 아시카가 요시모치가 사퇴한다.
- 7월 15일 (오에이 15년 6월 22일) - 와카사국 오바마에 남만 (동남아시아)의 "아레진 경"이 파견한 배가 입항한다. 문헌 기록상 처음으로 코끼리가 일본에 도래한다.
- (오에이 15년 7월) - 구마노 혼구 대사가 불탄다.
- (오에이 15년 8월) - 교토가 폭풍에 시달려 사찰과 건물이 무너진다.
- (오에이 15년 12월) - 도구라·술집 역의 제도가 정해진다.
- 여절이 퇴장원 표어도를 그린다.
4. 1. 음력 기준(조선)
음력 날짜 | 사건 |
---|---|
음력 2월 11일 | 하륜이 영의정부사가 됨. |
음력 2월 19일 | 조선 호조판서 김희선 사망. |
음력 3월 11일 | 조선 지문하부사 조림 사망. |
음력 3월 24일 | 조선 완평군 이조 사망. |
음력 5월 24일 | 조선 건국 시조 태상왕 태조가 지병으로 사망. (향년 74세) |
음력 6월 28일 | 조선 순덕후 진리 사망. |
음력 7월 28일 | 조선 좌부대언 류두명 사망. |
음력 9월 15일 | 조선 여흥부원군 민제 사망. |
음력 10월 6일 | 조선 의안대군 사망. |
음력 11월 7일 | 조선 좌군도총제 박자안 사망. |
음력 11월 23일 | 조선 영의정부사 권중화 사망. |
음력 12월 6일 | 조선 호조판서 조박 사망. |
- | 고려 후궁 혜비 이씨 사망. |
- | 조선 무신 목인해 사망. |
4. 2. 양력 기준(서양)
- 1월 12일 - 서구 대분열: 프랑스 국왕 샤를 6세가 아비뇽 교황 베네딕토 13세에게 아비뇽으로 서신을 보내 베네딕토와 로마 순종에 대항하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분열을 종식시키라고 최후 통첩을 보냈다. 샤를 6세는 분열이 승천일(부활절로부터 40일 후, 1408년 4월 24일. 승천일은 6월 3일)까지 종식되지 않으면, 프랑스가 아비뇽 순종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1]
- 1월 13일 - 아펜첼 전쟁: 스위스 아펜첼 지역에서, 인근 보덴 호수를 지칭하는 "호수 위의 동맹"과 St. Gallen과의 동맹이 오스트리아 통치로부터 브레겐츠 도시를 해방하려는 시도에 실패했다.[2] 이 "동맹"은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해산되었다.
- 1월 15일 - 헨리 7세의 딸 마거릿 튜더가 제임스 4세와 결혼하여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 사이의 동맹을 맺었다.
- 2월 19일 - 브램햄 무어 전투: 왕당파 군대가 퍼시 반란의 마지막 잔당을 격파했다.[3]
- 3월 14일 - 부르봉 공작 장이 루이 2세의 아들로, 샤를 6세 국왕에 의해 프랑스 대내관으로 임명되었다.
- 4월 8일 - 아펜첼 전쟁: 스위스 아펜첼 지역과 장크트갈렌의 동맹("호수 위의 동맹", 인근 보덴 호수 지칭)은 오스트리아 통치로부터 브레겐츠 시를 해방하려는 시도에 실패했다.[5] 신성 로마 제국의 독일 국왕 루페르트는 ''Bund ob dem See''의 해산을 명령했다.[2]
- 5월 1일 - 로도스가 오스만 제국의 침공을 받았다.
- 5월 18일 - 서구 대분열: 프랑스의 1월 12일 최후 통첩에 대한 응답으로 대립 교황 베네딕토 13세는 프랑스 국왕 샤를 6세를 포함하여 아비뇽 교황청에 복종을 철회하려는 모든 사람을 파문하라는 교황 칙서를 발표했다. 베네딕토 13세의 "중대한 전술적 실수"인 이 칙서는 파리 대학교 지도자들에게 칙서를 전달한 자들을 대역죄로 선언하고 베네딕토 13세를 국왕의 존엄성과 국가의 명예에 대한 공격으로 비난할 구실을 제공했다. 샤를 국왕은 베네딕토 교황에 대한 지원을 철회하고 아비뇽과 로마 사이의 분열에서 프랑스의 중립을 선포했다.[1]
- 6월 15일 - 프랑스가 더 이상 자신의 아비뇽 복종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을 접한 후, 대립 교황 베네딕토 13세는 페르피냥 공의회를 소집하여 11월 1일 프랑스 도시 페르피냥에서 회의를 열도록 하고, 체포를 피하기 위해 프랑스 통제하의 이탈리아 지역 제노바에서 도망쳤다.[7]
- 7월 2일 - 리보르노에서 교황 그레고리를 지지하는 로마 가톨릭 추기경 13명이 기독교 세계의 군주와 성직자들에게 서한을 보내 1409년 3월 25일에 열리는 피사 공의회에 소집하여 서방 분열을 종식시키려 했다.[8]
- 7월 10일 - 제노바가 프랑스에게 점령되었다.
- 8월 10일 - 오를레앙이 프랑스에 합병되었다.
- 8월 20일 - 브루나이 술탄인 압둘 마지드 하산은 영락제의 초청으로 명나라로 항해를 떠나 9월까지 수도 난징에 도착하여 중국 제국을 평화롭게 방문한 최초의 외국 군주가 되었다. 술탄은 방문 중 병에 걸려 10월 19일에 사망했다.[9]
- 9월 16일 - 토르스타인 올라프손이 그린란드 노르드인의 역사에서 마지막 기록으로 Hvalsey Church에서 시그리드 비요른스다터와 결혼했다.
- 9월 22일 - 안드로니코스 팰러올로고스 (마누엘 2세의 아들)가 형인 요한 8세 팔레올로고스가 사망한 후 테살로니카의 새로운 비잔틴 제국 황제가 되었다.
- 9월 23일 - 웨일스 공 헨리 (후일 잉글랜드의 헨리 5세)가 오와인 글린두르로부터 애버리스트위스를 탈환했다.[10]
- 10월 19일 - 브루나이 술탄 압둘이 질병으로 사망하면서 중국 난징에서 조카인 술탄 압둘 마지드 하산을 수행하던 가족의 일원인 아왕 파테 베르바이가 새로운 브루나이 술탄이 되었다.[11]
- 11월 15일 - 대립 교황 베네딕토 13세가 페르피냥 공의회를 소집했다.[12]
- 12월 5일 - 골든 호드의 에미르 에디구가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 12월 13일 - 헝가리 국왕 지기스문트 아래에서 드래건 기사단이 창설되었다.
4. 3. 날짜 미상
5. 출생
6. 사망
사망일 | 이름 | 설명 |
---|---|---|
음력 2월 19일 | 김희선 | 조선의 호조판서 |
음력 3월 11일 | 조림 | 조선의 지문하부사 |
음력 3월 24일 | 이조 | 조선의 완평군 |
음력 6월 28일 | 진리 | 조선의 순덕후 |
음력 7월 28일 | 류두명 | 조선의 좌부대언 |
음력 9월 15일 | 민제 | 조선의 여흥부원군 |
음력 10월 6일 | 의안대군 | 조선의 대군 |
음력 11월 7일 | 박자안 | 조선의 좌군도총제 |
음력 11월 23일 | 권중화 | 조선의 영의정부사 |
음력 12월 6일 | 조박 | 조선의 호조판서 |
목인해 | 조선의 무신 | |
혜비 이씨 | 고려의 후궁 | |
1월 13일 | 마태오 1세 | 알렉산드리아의 콥트 교황[14] |
2월 19일 | 토머스 바돌프, 제5대 바돌프 남작 | 잉글랜드 반역자 (전투 중 사망) |
2월 20일 | 헨리 퍼시, 초대 노섬벌랜드 백작 | 잉글랜드 반역자 (전투 중 사망) (1341년 출생)[15] |
4월 | 미란 샤 | 티무르의 아들 (1366년 출생) |
4월 10일 또는 4월 11일 | 엘리자베스 르 데스펜서 | 잉글랜드 귀족 여성 |
5월 24일 | 태조 | 조선의 태상왕 (1335년 출생) |
5월 31일 | 아시카가 요시미쓰 | 일본 쇼군 (1358년 출생) |
9월 15일 | 에드먼드 홀랜드, 제4대 켄트 백작 | (1384년 출생) |
9월 22일 | 요한 7세 팔레올로고스 | 비잔틴 제국 황제 (1370년 출생) |
12월 4일 | 발렌티나 비스콘티 | 오를레앙 공작 루이 드 발루아의 부인 |
3월 8일 | 시바 요리타네 | 남북조 시대, 무로마치 시대의 슈고 다이묘 (* 1352년) |
존 가워 | 중세잉글랜드의 시인 (* 133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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