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마르카 교회 (베오그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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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성 마르코 교회 (베오그라드)는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 위치한 교회로, 1931년부터 1940년까지 건설되었다. 세르보-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19세기 목조 교회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1835년에 세워진 옛 교회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파괴되었으며, 1941년 독일의 베오그라드 폭격으로 심하게 손상되어 소실되었다. 현재 교회는 1931년에 기공하여 1940년에 외관이 완성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내부 공사가 지연되어 1948년에 축성되었다. 교회 내부에는 황제 스테판 두샨과 세르비아 총대주교 게르만의 무덤이 있으며, 1961년에 제작된 성 마르코의 모자이크 아이콘과 1992년에 만들어진 이코노스타시스, 2022년에 완성된 옥좌에 앉은 그리스도를 묘사한 모자이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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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마르카 교회 (베오그라드) | |
---|---|
일반 정보 | |
![]() | |
명칭 | 성 마르코 교회 |
원어 명칭 | 세르비아어 키릴 문자: Црква Светог Марка 세르비아어 라틴 문자: Crkva Svetog Marka |
위치 |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
종교 | |
종교 단체 | 세르비아 정교회 |
건축 | |
건축가 | 페타르 및 브란코 크르스티치 |
건축 양식 | 세르보-비잔틴 양식 |
완공 연도 | 1940년 |
크기 | |
수용 인원 | 알 수 없음 |
길이 | 알 수 없음 |
너비 | 알 수 없음 |
높이 (최대) | 알 수 없음 |
웹사이트 | |
공식 웹사이트 | www.crkvasvetogmarka.rs |
2. 역사
성 마르카 교회는 전간기인 1931년부터 1940년까지 베오그라드 중심부의 타슈마이단 공원에 건설되었다. 이 교회는 성 마르코에게 봉헌되었으며, 1941년에 파괴된 19세기 목조 교회 약간 북쪽에 지어졌다.
20세기 초, 베오그라드 팔릴룰라 지역은 도시의 급격한 성장과 인구 증가로 인해 더 큰 교회를 건설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잦은 전쟁으로 1930년까지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지만, 베오그라드 건축가 형제인 페타르와 브란코 크르스티치가 새로운 성 마르코 교회의 설계를 맡았다. 성 마르코 교회는 1835년에 건립된 옛 교회 부지에 세워졌으며, 세르보-비잔틴 건축 양식으로 디자인되었다. 그라차니차 수도원을 모델로 삼았으며, 성 사바 교회가 완공되기 전까지 세르비아에서 가장 큰 교회였다.[2]
2. 1. 옛 교회 (1835-1941)
1835년부터 1836년까지 베오그라드 대주교 페타르 요바노비치 (1833-1859 재임) 시대에 원래의 나무 교회가 지어졌다.[1][2] 주요 기부자는 상인 라자르 판차(1831년 사망)였다. 성 마르코에게 봉헌된 이 교회는 기존의 묘지 안에 지어졌다. 외부 면적이 11.5m x 21m, 내부 면적이 7.75m x 17.46m인 직사각형 건물이었다. 이와 동시에 기부자이기도 했던 밀로시 오브레노비치 공은 톱치데르에 성 사도 베드로와 바울의 궁궐 교회를 지었다(1834년 완공). 두 교회의 작업은 건축가 니콜라 지브코비치 (1792–1870)가 감독했다. 1838년에는 밀란 공과 샤바츠의 가브릴로 포포비치 주교가 교회 바로 옆에 묻혔다. 5월 쿠데타 이후, 왕족인 알렉산다르 오브레노비치 1세 국왕과 드라가 오브레노비치 왕비가 이 교회에 묻혔다. 1870년경, 이 교회는 테라지예와 팔릴룰라 교구의 자리였으며, 테라지예에는 312채, 팔릴룰라에는 318채의 가옥이 있었다.이 교회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오스트리아 군에 의해 파괴되었고, 1917년에 재건되었다. 이후 1941년 독일의 베오그라드 폭격 때 심하게 손상되었으며,[1] 1941년 4월 13일 성지주일에 폭격을 받았다.[8] 잔해는 1942년에 치워졌다.[2]

2. 2. 새 교회 (1931-현재)
1931년부터 1940년까지 베오그라드 중심부의 타슈마이단 공원에 사도이자 복음사가 성 마르코에게 봉헌된 교회가 건설되었다. 이 교회는 1941년에 파괴된 19세기 목조 교회에서 약간 북쪽에 지어졌다.20세기 초, 베오그라드 팔릴룰라 지역은 도시의 급격한 성장과 인구 증가로 인해 더 큰 교회를 건설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잦은 전쟁으로 인해 1930년까지 이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지만, 베오그라드 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인 베오그라드 건축가 형제 페타르와 브란코 크르스티치가 새로운 성 마르코 교회의 설계를 맡았다. 현재의 성 마르코 교회 건물은 1931년부터 1940년 사이에 그들의 도면을 바탕으로 지어졌다. 제2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인해 교회, 특히 내부의 완공이 중단되었고 건설 작업만 마무리되었다.[2] 1931년 5월 8일 세르비아 정교회 바르나바 총대주교에 의해 축성된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건설은 1932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외관은 1939년에 완성되었다.[8]
1941년 전쟁 중과 이후 1948년 11월 14일까지 새로운 교회에서는 교회 현관을 개조하여 예배가 진행되었다. 그 날 교회는 세르비아 정교회 가브릴로 5세 총대주교에 의해 축성되었고, 예배를 위해 문을 열었다. 전체 내부는 프레스코화로 장식할 계획이었다. 외부 벽은 세르보-비잔틴 양식으로 천연 재료의 두 가지 색상으로 되어 있다.[8] 교회 종탑은 서쪽에 위치한 교회 자체의 일부이다.
주변 지역이 이미 도시화되었기 때문에, 동서 방향에 관한 엄격한 교회 규범을 따를 수 없었다. 바르나바 총대주교는 기존 도시 격자에 맞추기 위해 새로운 교회가 규범에서 10도 벗어나는 것을 특별히 허가했다. 그렇게 해서, 주요 입구는 반대편의 ''레사브스카'' 거리와 일치하게 되었다.[3]
그라차니차 수도원이 새로운 교회의 모델로 사용되었다. 성 사바 교회가 그 규모를 넘어서기 전까지, 성 마르코 교회는 세르비아 최대의 교회였다.[2] 이 교회는 세르보-비잔틴 부흥 양식의 가장 아름다운 종교 건축물 중 하나로 여겨진다.[1]
건설이 시작된 지 70년이 넘었지만, 성 마르코 교회는 아직 완공되지 않았다. 이것은 주로 내부 장식, 프레스코 그림, 적절한 조명, 음향, 난방 및 환기와 관련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객관적인 이유로 인해 교회 자체에서 거의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외부 정면의 교회 입구 위에는 1961년 벨코 스타노예비치가 제작한 성 사도이자 복음사가 마르코의 모자이크 아이콘이 있다. 교회의 바닥은 1974년에, ''솔레아''(성상과 제단(성소) 앞 구역) 바닥은 1991년에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폭풍 작전 기념일은 크로아티아 및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사망하고 추방된 크로아티아 세르비아인을 추모하기 위해 8월 5일 성 마르코 교회에서 열린다.[4]
2017년 11월, 교회 앞 타슈마이단 공원의 연장선으로 기능했던 광장의 완전한 재정비가 시작되었다. 주차장으로 사용되던 오래된 아스팔트 포장이 제거되었고, 건축가 요반 미트로비치는 화강암 슬라브와 녹지 공간의 새로운 수평 조합을 설계했다. 광장은 녹지 섬으로 나뉘어 왼쪽과 오른쪽 두 부분으로 나뉜다. 오른쪽 "의례" 측면은 정기적으로 모양이 잡히며, 화강암 슬라브는 수평 리듬으로 배치되고, 얇은 붉은 이탈리아 화강암 사각형이 중간에 배치된다. 이 디자인은 미켈란젤로가 로마 카피톨린 언덕에 지은 신전의 정면을 본떠 만들어졌으며, 교회를 시각적으로 확장하려는 아이디어가 담겨있다. 왼쪽은 크기가 다르고 결합된 화강암 슬라브로 만들어진 "흐트러진" 패턴을 갖게 된다.[3] 광장은 2018년 2월에 완공되었다.[5]
2018년 6월, 1990년부터 2009년까지 세르비아 정교회 수장이었던 파블레 세르비아 총대주교 기념비가 새로 완공된 광장과 타슈마이단 공원의 트램 정류장 사이의 녹지 공간에 세워질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1.8m 높이의 청동 기념비는 조란 말레시가 제작했다. 이 기념비는 2018년 11월 13일 공원에 설치되었고, 파블레의 사망 기념일인 11월 15일에 헌정되었다.[6][7]
3. 특징
교회는 십자가를 제외하고 길이 62m, 너비 45m, 높이 60m이다.[2] 교회 내부는 1m2이며, 나오스는 2,000명을 수용할 수 있고 성가대 갤러리는 150명의 음악가를 수용할 수 있어, 전간기 유고슬라비아에서 가장 큰 세르비아 정교회였다.[2][8]
1992년 조란 페트로비치가 디자인한 중앙 이코노스타시스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주라들로비치가 모자이크로 아이콘을 제작했다. 2017년에는 20m 높이의 앱스에 "하늘보다 더 큰 하나님의 어머니"를 나타내는 모자이크가 설치되었다.[2][8] 수태고지를 묘사한 이코노스타시스의 모자이크는 성모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소식에 놀란 모습으로 표현되어 일반적인 묘사와는 다르다.[9] 이 모자이크는 세계 어느 제단의 압스에서든 가장 큰 모자이크로, 면적은 130m2이며 그중 하나님의 어머니는 80m를 덮고 있다. 2022년 여름에는 100m2 규모의 옥좌에 앉은 그리스도를 묘사한 모자이크가 설치되었다.[10][9]
교회에는 세 개의 제단이 있으며, 제단 테이블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교회 남쪽에는 두샨 대제의 대리석 무덤이, 북쪽에는 세르비아 총대주교 게르만의 무덤이 있다.[2][8]
내부에는 교회의 축척 모형 형태의 100kg 무게의 벌집과 1969년에 제작된 ''아폴리엘레이''(휠 샹들리에)가 있다. 교회 나르텍스 아래에는 2007년에 개조된 지하실이 있으며, 여러 인물들의 무덤이 안치되어 있다.[2]
교회 보물창고에는 풍부한 아이콘과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 주요 아이콘들은 다음과 같다.
아이콘 | 제작 시기 | 작가 |
---|---|---|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테오토코스 | 16세기 | 미상 |
옥좌 위의 예수 그리스도 | 18세기 말 | 미상 |
옥좌 위의 성 니콜라스 | 19세기 전반 | 미상 |
성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헬레나 황후 | 1849년 | 미상 |
성 데메트리오스와 성 조지 | 19세기 전반 | 미상 |
성도들과 함께 있는 테오토코스 | 19세기 전반 | 미상 |
성 조지와 성 데메트리오스 | 19세기 중반 | 미상 |
가장 거룩한 테오토코스의 대관식 | 19세기 중반 | 미상 |
성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헬레나 황후 (존경받는 십자가의 숭고) | 19세기 중반 | 미상 |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테오토코스 | 1863년 | 미상 |
성 예언자 다니엘과 성 요한 세례자 | 1872년 | 미상 |
아라비아의 테오토코스 | 1870년 | 미상 |
세르비아의 성 사바 | 1883년 | 미상 |
성 데차니의 스테판 왕 | 1889년 | 미상 |
성 대천사 미카엘 | 19세기 말 | 미상 |
순례자들의 아이콘 (테오토코스, 예수 그리스도, 사도들, 최후의 심판) | 1926년 | 미상 |
성 조지가 용을 죽이는 모습 | 미상 | 미상 |
아이콘은 주로 스테바 토도로비치, 니콜라 마르코비치 등 저명한 화가들의 작품이다. 16세기의 호데게트리아 성모 아이콘은 베오그라드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아이콘으로 여겨진다.[8]
3. 1. 외부
세르보-비잔틴 양식으로 지어진 교회의 외부 벽은 천연 재료로 만들어졌으며 두 가지 색상으로 되어 있다.[8] 교회 종탑은 교회 건물 서쪽에 있다.주변 지역은 이미 도시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동서 방향에 관한 엄격한 교회 규범을 따를 수 없었다. 바르나바 총대주교는 기존 도시 격자에 맞추기 위해 새로운 교회가 규범에서 10도 벗어나는 것을 특별히 허가했다. 그 결과, 주요 입구는 반대편의 ''레사브스카'' 거리와 일치하게 되었다.[3]
그라차니차 수도원을 모델로 삼아 지어졌다. 성 사바 교회가 그 규모를 넘어서기 전까지, 성 마르코 교회는 세르비아에서 가장 큰 교회였다.[2] 이 교회는 세르보-비잔틴 부흥 양식의 가장 아름다운 종교 건축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1]
교회 입구 위쪽 외부 정면에는 1961년 벨코 스타노예비치가 제작한 성 사도이자 복음사가 마르코의 모자이크 아이콘이 있다.
3. 2. 내부
20세기 초 베오그라드 팔릴룰라 지역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더 큰 교회를 지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잦은 전쟁으로 1930년까지 미뤄졌지만, 베오그라드 건축가 형제인 페타르와 브란코 크르스티치(둘 다 베오그라드 대학교 건축학부 교수)가 새로운 성 마르코 교회의 설계를 맡았다. 현재 교회는 1931년부터 1940년까지 이들의 도면을 바탕으로 지어졌으며,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내부 완공은 중단되었다.[2]1941년 전쟁 중과 이후 1948년 11월 14일까지 새로운 교회에서는 교회 현관을 개조하여 예배를 진행했다. 그 날 교회는 (세르비아 정교회 가브릴로 5세 총대주교에 의해) 축성되었고, 예배를 위해 문을 열었다. 전체 내부는 프레스코화로 장식될 계획이었다.[8]
건설이 시작된 지 70년이 넘었지만, 성 마르코 교회는 아직 완전히 완공되지 않았다. 이는 주로 내부 장식, 프레스코 그림, 조명, 음향, 난방 및 환기와 관련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객관적인 이유로 교회 자체에서는 거의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외부 정면의 교회 입구 위에는 1961년 벨코 스타노예비치가 제작한 성 사도이자 복음사가 마르코의 모자이크 아이콘이 있다. 교회 바닥은 1974년에, ''솔레아''(성상과 제단(성소) 앞 구역) 바닥은 1991년에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교회 내부는 1m2를 덮고 있다. ''나오스''는 2,000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성가대 갤러리는 150명의 음악가를 수용할 수 있다. 예배자 수를 고려할 때, 이곳은 전간기 유고슬라비아에서 가장 큰 세르비아 정교회였다.[2][8]
건축가이자 교수인 조란 페트로비치가 디자인한 교회의 중앙 이코노스타시스는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코노스타시스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아이콘 자체는 1996년부터 1998년까지 화가 주라들로비치의 작품으로 모자이크로 만들어졌다. 2017년에는 제단 위에 있는 20m 높이의 앱스에 Radlović가 베네치아 유리 조각으로 만든 또 다른 모자이크를 설치했다. 이 모자이크는 Bogorodica Širšajasr 또는 "하늘보다 더 큰 하나님의 어머니"를 나타낸다.[2][8] 다른 표현으로는 사도들의 성찬과 전례자가 있으며, 여기에는 성 사바, 성 오스트로고의 바실, 지차의 성 니콜라이, 성 페타르 지몬지치와 총대주교 파블레 등이 포함된다.[10]
이코노스타시의 모자이크는 수태고지를 묘사하는데, 일반적인 성모 마리아의 모습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눈에 띄게 놀란 모습으로 묘사된다.[9]
이 모자이크는 세계 어느 제단의 압스에서든 가장 큰 모자이크로 여겨진다. 면적은 130m2에 달하며, 이 중 하나님의 어머니는 80m를 덮고 있다. 각 1m2에는 1만에서 1만 5천 개의 유리 조각이 포함되어 있다. 모자이크의 다른 주제는 사도들의 성찬과 성 사바, 성 바실 오브 오스트로고, 오흐리드와 지차의 성 니콜라이 및 총대주교 파블레의 묘사이다.[8]
수십 년 동안 벽이 텅 비어 있던 교회의 내부를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로 부분적으로 채색하기 위한 계획이 세워졌다. 2년 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2022년 여름, 100m2 규모의 모자이크가 제단과 압스 위에 있는 30m 높이의 천장에 설치되었다. 이 모자이크는 옥좌에 앉은 그리스도를 묘사하며, 두 명의 천사가 그 위에 맴돌고 있다. 이 모자이크는 Radlović가 제작했으며, 850만 개의 구운 베네치아 유리 조각으로 만들어졌다.[10][9]
교회에는 세 개의 제단이 있다. 제단 테이블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앞면에는 작은 모자이크가 있다. 제단 오른쪽에는 성 데스포트 스테판 라자레비치 (1427년 사망)에게 헌정된 작은 제단이 있으며, 북쪽 제단은 주님의 변모 축일을 위해 헌정되었다.
교회에 들어가 남쪽 벽을 따라 오른쪽으로 가면 황제 스테판 두샨 (1331–55 재위)의 대리석 무덤이 있는데, 드라가미르 타디치가 디자인했다. 황제는 원래 그의 기증품인 프리즈렌 근처의 성 대천사 수도원에 묻혔으나, 수도원이 폐허가 된 후 1927년 역사가 라도슬라브 그루이치(Radoslav Grujić)가 황제의 유물을 발견하여 성 마르카 교회로 옮겼다.[2][8] 반대편 북쪽에는 세르비아 총대주교 게르만 (1991년 사망)의 무덤이 같은 스타일과 재료로 건설되었다.[2][8] 황제와 총대주교의 무덤 위에는 주라들로비치가 제작한 모자이크가 있는데, 각각 "두샨 황제의 대관식"과 "섭리의 눈"이다.[10]
내부에는 또한 교회의 축척 모형 형태의 벌집이 있다.[8] 교회 중앙의 쿠폴라 아래에는 1969년 드라가미르 타디치의 디자인에 따라 구리로 제작되었고, 학술 조각가 드라구틴 페트로비치가 제작한 ''아폴리엘레이'', 즉 휠 샹들리에가 있다.
교회의 나르텍스 아래에는 2007년에 개조된 지하실이 있다. 새로운 지면 대리석, 냉방 및 환기, 음향 시스템이 설치되었고, 무덤이 재개조되었다. 원래 교회에서 옮겨온 여러 무덤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 메트로폴리탄 테오도시예 (1815–1892)
- 니시의 비숍 빅토르 (1797–1888)
- 샤바츠의 비숍 가브릴로 (포포비치, 1811–1871)
- 티모크의 비숍 모지시에 (1835–1896)
- 알렉산다르 오브레노비치 왕과 드라가 여왕 (†1903)
- 아나 요바나 오브레노비치 (†1880)
- 밀란 M. 오브레노비치 공 (1819–1839)
- 세르기예 M. 오브레노비치 공 († 1878)
- 옛 교회의 후원 기증자인 라자르 판차의 무덤[2]
일반적으로, 매우 넓은 지하실 전체 공간은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갤러리, 박물관 또는 전시 공간으로 적합하다. 현재 교회 보물창고는 남쪽에 있는 방에 있으며, 풍부한 아이콘과 귀중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가장 가치 있는 아이콘들은 다음과 같다.
아이콘 | 제작 시기 | 작가 |
---|---|---|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테오토코스 | 16세기 | 미상 |
옥좌 위의 예수 그리스도 | 18세기 말 | 미상 |
옥좌 위의 성 니콜라스 | 19세기 전반 | 미상 |
성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헬레나 황후 | 1849년 | 미상 |
성 데메트리오스와 성 조지 | 19세기 전반 | 미상 |
성도들과 함께 있는 테오토코스 | 19세기 전반 | 미상 |
성 조지와 성 데메트리오스 | 19세기 중반 | 미상 |
가장 거룩한 테오토코스의 대관식 | 19세기 중반 | 미상 |
성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헬레나 황후 (존경받는 십자가의 숭고) | 19세기 중반 | 미상 |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테오토코스 | 1863년 | 미상 |
성 예언자 다니엘과 성 요한 세례자 | 1872년 | 미상 |
아라비아의 테오토코스 | 1870년 | 미상 |
세르비아의 성 사바 | 1883년 | 미상 |
성 데차니의 스테판 왕 | 1889년 | 미상 |
성 대천사 미카엘 | 19세기 말 | 미상 |
순례자들의 아이콘 (테오토코스, 예수 그리스도, 사도들, 최후의 심판) | 1926년 | 미상 |
성 조지가 용을 죽이는 모습 | 미상 | 미상 |
아이콘은 주로 19세기와 20세기의 저명한 화가와 아이콘 화가인 스테바 토도로비치, 니콜라 마르코비치, 드미트리예 포스니코비치, 블라디미르 보이노비치, 파블레 코르타노비치, 루키얀 비비치, 바사 포모리사치, 조르제 포포비치, 올가 크르잘리치 등의 작품이다. 16세기의 호데게트리아 성모 아이콘은 베오그라드에 보존된 두 번째로 오래된 아이콘으로 여겨진다.[8]
4. 주요 인물
1838년, 밀란 공과 샤바츠의 가브릴로 포포비치 주교가 교회 바로 옆에 묻혔다. 남쪽에는 스테판 우로시 4세 두샨의 석관이, 북쪽에는 총대주교 게르만의 무덤이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지하 교회에 있다.
4. 1. 왕족 및 귀족
5월 쿠데타 이후, 알렉산다르 1세 국왕과 드라가 왕비가 이 교회에 묻혔다.[1]4. 2. 기타
옛 교회는 1835년부터 1836년까지 베오그라드 대주교 페타르 요바노비치 시대에 지어졌다.[1][2] 주요 기부자는 상인 라자르 판차(1831년 사망)였다.[2] 밀로시 오브레노비치 공은 톱치데르에 성 사도 베드로와 바울의 궁궐 교회를 지었고(1834년 완공), 두 교회의 작업은 건축가 니콜라 지브코비치가 감독했다.[2] 5월 쿠데타 이후, 알렉산다르 오브레노비치 1세 국왕과 드라가 오브레노비치 왕비가 이 교회에 묻혔다.[2] 교회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오스트리아 군에 의해 파괴되었고, 1917년에 재건되었다.[2] 이 교회는 1941년 독일의 베오그라드 폭격 때 심하게 손상되었으며,[1] 1941년 4월 13일 성지주일에 폭격을 받았다.[8] 잔해는 1942년에 치워졌다.[2]교회 내부는 1150m2이다. ''나오스''는 2,000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성가대 갤러리는 150명의 음악가를 수용할 수 있다.[2][8]
건축가 조란 페트로비치가 디자인한 교회의 중앙 이코노스타시스는 1992년에 만들어졌다. 이코노스타시스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아이콘은 1996년부터 1998년까지 화가 Đuro Radlović가 모자이크로 만들었다. 2017년에는 제단 위에 20m 높이의 앱스에 Radlović가 베네치아 유리 조각으로 만든 "하늘보다 더 큰 하나님의 어머니"를 나타내는 모자이크를 설치했다.[2][8]
이 모자이크는 세계 어느 제단의 압스에서든 가장 큰 모자이크로 여겨진다. 면적은 130m2이며, 이 중 하나님의 어머니는 80m를 덮고 있다. 각 1m2에는 1만에서 1만 5천 개의 유리 조각이 포함되어 있다.[8] 2022년 여름, 100m2 규모의 옥좌에 앉은 그리스도를 묘사한 모자이크가 제단과 압스 위에 있는 30m 높이의 천장에 설치되었다. 이 모자이크는 Radlović가 제작했으며, 850만 개의 구운 베네치아 유리 조각으로 만들어졌다.[10][9]
교회에는 세 개의 제단이 있다. 제단 테이블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앞면에는 작은 모자이크가 있다.
황제 스테판 두샨의 대리석 무덤은 교회 남쪽에 있으며, 드라가미르 타디치가 디자인했다. 반대편 북쪽에는 세르비아 총대주교 게르만의 무덤이 있다.[2][8] 황제와 총대주교의 무덤 위에는 Đuro Radlević가 제작한 모자이크가 있는데, 각각 "두샨 황제의 대관식"과 "섭리의 눈"이다.[10]
내부에는 또한 교회의 축척 모형 형태의 100kg 무게의 벌집이 있다.[8] 교회 중앙의 쿠폴라 아래에는 1969년 드라가미르 타디치의 디자인에 따라 구리로 제작된 ''아폴리엘레이''(휠 샹들리에)가 있다.
교회의 나르텍스 아래에는 2007년에 개조된 지하실이 있다. 알렉산더 오브레노비치 왕과 드라가 여왕, 옛 교회의 후원 기증자인 라자르 판차의 무덤 등이 안치되어 있다.[2]
교회 보물창고는 남쪽에 있는 방에 있으며, 풍부한 아이콘과 귀중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가장 가치 있는 아이콘은 16세기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테오토코스, 18세기 말의 옥좌 위의 예수 그리스도 등이다. 아이콘은 주로 19세기와 20세기의 저명한 화가와 아이콘 화가들의 작품이다. 16세기의 호데게트리아 성모 아이콘은 베오그라드에 보존된 두 번째로 오래된 아이콘으로 여겨진다.[8]
5. 사건
원래의 나무 교회는 1835년부터 1836년까지 베오그라드 대주교 페타르 요바노비치 시대에 지어졌다.[1][2] 5월 쿠데타 이후, 알렉산다르 오브레노비치 1세 국왕과 드라가 오브레노비치 왕비가 이 교회에 묻혔다.
이 교회는 제1차 세계 대전 중 오스트리아 군에 의해 파괴되었고, 1917년에 재건되었다. 그러나 1941년 독일의 베오그라드 폭격 때 심하게 손상되었으며,[1] 1941년 4월 13일 성지주일에 폭격을 받았다.[8] 잔해는 1942년에 치워졌다.[2]
폭풍 작전 기념일은 크로아티아 및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사망하고 추방된 크로아티아 세르비아인을 추모하기 위해 8월 5일 성 마르코 교회에서 열린다.[4]
2017년 11월, 교회 앞 타슈마이단 공원의 연장선으로 기능했던 광장의 완전한 재정비가 시작되어 2018년 2월에 완공되었다.[5] 2018년 6월, 1990년부터 2009년까지 세르비아 정교회 수장이었던 파블레 세르비아 총대주교 기념비가 새로 완공된 광장과 타슈마이단 공원의 트램 정류장 사이의 녹지 공간에 세워질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1.8m 높이의 청동 기념비는 조란 말레시가 제작했다. 이 기념비는 2018년 11월 13일 공원에 설치되었고, 파블레의 사망 기념일인 11월 15일에 헌정되었다.[6][7]
6. 갤러리
참조
[1]
간행물
Šest decenija opštine Palilula - Nekad selo, a danas urbana celina grada
2017-05-09
[2]
간행물
Duhovna riznica istorije
http://www.politika.[...]
2011-06-20
[3]
간행물
Novi plato ispred Crkve Svetog Marka
2017-11-28
[4]
웹사이트
Parastos žrtvama "Oluje" u Crkvi Svetog Marka 5. avgusta
http://www.b92.net/i[...]
Politika
2016-08-03
[5]
뉴스
Plato ispred Crkve Svetog Marka nova oaza u centru grada
2018-02-17
[6]
뉴스
Patrijarhu Pavlu spomenik kod Markove crkve
http://www.politika.[...]
2018-06-28
[7]
뉴스
Skulptura od danas na Tašmajdanu
http://www.politika.[...]
2018-11-13
[8]
뉴스
Devet decenija od početka gradnje Crkve Svetog Marka
http://www.politika.[...]
2021-05-08
[9]
뉴스
Počelo postavljanje mozaika u Crkvi Svetog Marka
https://www.politika[...]
2022-07-07
[10]
뉴스
Uskoro podizanje mozaika Hrista Spasitelja na prestolu
https://www.politika[...]
2022-06-28
[11]
웹사이트
베오그라ード案内
https://www.city.hof[...]
2017-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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