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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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니 빈은 16세기 스코틀랜드에서 활동했다는 전설적인 인물로, 식인 풍습을 저지른 혐의를 받는다. 《뉴게이트 캘린더》에 따르면, 빈은 아그네스 더글라스와 결혼하여 갤러웨이 해안 동굴에서 25년 동안 가족과 함께 여행객을 습격, 살해하고 인육을 먹었다. 이들은 결국 체포되어 처형되었으나, 역사적 기록의 부재로 인해 허구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소니 빈의 이야기는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 영감을 주었으며, 영화, 만화, 소설, 음악 등에서 소재로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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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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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설
소니 빈 전설은 18세기와 19세기 런던에서 발행된 대중적인 범죄 기록인 《뉴게이트 캘린더》에 기반한다. 이 책에 따르면, 소니 빈과 그의 가족은 16세기 스코틀랜드에서 여행자들을 살해하고 인육을 먹었다고 전해진다.[1]
빈 일족은 밤에 조심스럽게 매복하여 개인이나 소규모 그룹을 강탈하고 살해했으며, 시체를 동굴로 가져와 해체하고 먹었다. 남은 음식은 절여서 보관했다. 이러한 잔혹 행위는 인근 해변으로 밀려온 신체 부위들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지만, 마을 사람들은 범인이 동물이라고 생각했다.[2]
실종 사건이 계속되자 수색이 시작되었지만, 빈 일족은 낮에는 동굴에 머물고 밤에만 활동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발각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의심받고 처형되기도 했다.
어느 날 밤, 빈 일족은 축제에서 돌아오는 부부를 공격했지만 실패했다. 남편은 저항했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 이 사건으로 빈 일족의 존재가 드러났고, 국왕(아마도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체포에 나섰다.
수색대는 혈통견을 이용해 빈 일족의 동굴을 찾아냈고, 그곳에서 인체 잔해와 도난당한 물건들을 발견했다. 빈 일족은 모두 체포되어 재판 없이 처형되었다. 남자들은 사지가 절단되어 과다출혈로 사망했고, 여자와 아이들은 화형당했다.[2]
소니 빈 이야기는 《뉴게이트 캘린더》에 실린 내용이 널리 퍼졌지만, 1843년 존 니콜슨의 저서 『롤랜드의 옛 이야기』가 최초 출처로 알려져 있다. 국왕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체포에 나섰다는 점 등 세간의 주목을 끄는 요소가 많았음에도, 동시대의 공문서나 일기 등에는 등장하지 않아 후대에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사건의 잔혹성 때문에 스코틀랜드 왕조가 기록을 의도적으로 삭제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2. 1. 출생과 초기 생애
소니 빈은 스코틀랜드인으로 에든버러에서 동쪽으로 150km 떨어진 시골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울타리를 설치하거나 하수구를 치우는 일을 했다. 소니도 그 일을 거들었지만, 그러한 일들이 성에 차지 않았다. 그는 나태하고, 교활했고, 난폭하며 반사회적인 성격이었다.[1]18세기와 19세기의 런던의 인기 출판물인 《뉴게이트 캘린더》에 따르면, 알렉산더 빈은 16세기에 이스트 로디언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도랑 파는 사람이자 산울타리 손질하는 사람이었고, 빈은 가업을 이어가려 했지만 곧 이 일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블랙' 아그네스 더글라스라는 험악한 여성과 함께 집을 떠났는데, 그녀는 겉보기에 그의 성향을 공유했고 마녀로 고발되었다. 몇 차례의 강도질과 희생자 중 한 명의 식인 행위 이후, 그 부부는 기번과 발란트레이 사이의 벤네인 헤드의 해안 동굴에 정착했다. 동굴은 깊었고, 입구는 만조 때 물에 막혀서 그 부부가 약 25년 동안 그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살 수 있었다.
《뉴게이트 캘린더》에 따르면 빈은 14세기 후반에 이스트로디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정원 가꾸기, 도랑 파기, 폐기물 처리 등의 일용직 노동에 종사했고, 빈도 젊은 시절에는 그것을 도왔지만, 게으르고 난폭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노동을 싫어하여 집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성질이 고약한 여자 아그네스와 의기투합하여 갤러웨이(브리튼 섬 서쪽 해안의 노스 해협에 면한 반도, 현 사우스에어셔) 부근에 있는 바난 헤드의 해안 동굴에서 살게 되었다. 동굴 입구는 만조 때 해수면 아래에 숨겨지므로 사람들의 눈에 띄기 어려웠다. 노동을 싫어했던 두 사람은, 날마다 생활의 양식을 얻기 위해 공모하여 지나가는 여행자를 습격하는 것을 생각해냈다. 게다가 자신들의 존재나 범행이 드러나지 않도록, 반드시 상대를 죽여 시체를 동굴로 가져갔다.
2. 2. 식인 가족의 형성
빈과 아그네스는 갤러웨이 해안의 베네인 헤드에 있는 동굴에 정착했다. 이 동굴은 만조 때 입구가 물에 잠겨 외부와 차단되는 은신처였다.[1] 이들은 생계를 위해 여행자들을 상대로 강도와 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말이 나지 않도록 소니는 반드시 희생자를 죽였다. 범행 은폐와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희생자들의 시체를 먹기 시작했다.[2]빈 부부는 8남 6녀를 낳았고, 자녀들은 근친상간을 통해 18남 14녀의 손주를 낳았다. 빈 일가는 총 48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인육만을 주식으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장애가 있는 아이는 살해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빈 일가의 아이들은 동굴 앞의 황폐한 물가에서 대낮의 밝은 빛 아래서 뛰어놀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침입자를 지키는 동안 신체를 단련했다. 식량 마련을 위한 체력을 갖추기 위해서였고, 살인 및 식인은 습관이 되었다.
아이들은 전혀 교육을 받고 있지 않았다. 원시적인 말투와 살인, 그리고 식인 요리에 대한 기술을 제외하고는 굶주림과 욕구를 채우려는 자급자족하는 집단으로만 나아갔다. 아이들은 커지자 유괴와 살인에 참가하게 되었고, 빈 일가는 무서운 규모로 확대해 갔다. 살인과 유괴는 경험이 쌓여감에 따라 그 기술이 세련되어 갔다.
2. 3. 범행과 은폐
빈 일가는 조직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이들은 주로 밤에 5명 이하의 소규모 여행자 무리를 습격하여 살해하고 시체를 동굴로 가져왔다.[2] 동굴에서 시체를 해체하고 소금에 절여 저장했으며, 남은 뼈는 동굴에 쌓아두거나 버렸다. 썩은 인육 조각이 해안으로 밀려오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지만, 당국은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지 못했다. 무고한 여관 주인 등이 체포되어 무고하게 처형되기도 했다.[2] 빈 일가는 25년 동안 범행을 이어갔다.[1]빈 일족은 5명 이하의 무리만 공격하고, 도주로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다.[2] 희생자들은 모두 살해되었고, 갤러웨이 해안 일대에서 실종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했지만,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무고한 사람들이 체포되어 처형되기도 했지만, 실종 사건은 계속되었다.[2]
2. 4. 발각과 최후
빈 일가가 처음으로 습격에 실패한 것은 시장에서 돌아오던 부부를 공격했을 때였다. 남편은 격렬하게 저항했고, 때마침 다른 여행자들이 나타나면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는 말을 타고 도주하여 글래스고의 관청에 이 사실을 알렸다.[2]생존자의 증언은 충격적이었고, 오랫동안 수많은 실종 사건의 범인이 겔로웨이 지구 부근에 살고 있는 식인종이라는 것을 시사했다. 이 소식은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1세(또는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에게 보고되었고, 국왕은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직접 400명의 병사와 수색견을 이끌고 체포에 나섰다.
수색대는 겔로웨이 지방과 해안 전체를 샅샅이 뒤졌지만, 빈 일가의 은신처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수색견들이 바닷물이 차오르는 동굴 근처에서 죽음과 부패의 냄새를 맡고 짖기 시작했고, 수색대는 동굴 안으로 진입했다. 그곳에서 25년간 살인을 일삼아온 빈 일가의 거주지가 발견되었다. 동굴 벽에는 인간의 사지, 몸통, 남녀의 신체 조각들이 걸려 있었고, 다른 곳에서는 도난당한 귀중품과 25년간 쌓인 뼈들이 발견되었다.
빈 일가 48명 전원은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그들은 저항했지만, 동굴 출구가 봉쇄되어 도망갈 수 없었다. 영주와 병사들은 빈 일가를 에든버러로 압송했다.
빈 일가의 소행은 너무나 끔찍했기에 정식 재판은 열리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극형에 처해졌다. 남자들은 산 채로 팔다리가 절단되어 과다출혈로 사망했고, 여자와 아이들은 남자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후 화형당했다. 한 살 난 여자아이만 살아남았지만, 성장한 후 죄를 자백하고 사형당했다. 빈 일가는 단 한 명도 후회하는 빛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3. 진위 논란
소니 빈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이 이야기는 18세기와 19세기에 런던에서 인기 있었던 출판물인 《뉴게이트 캘린더》를 통해 널리 퍼졌다. 하지만, 소니 빈 사건과 동시대의 공식 문서, 서신, 일기, 출판물 등에는 이 사건에 대한 기록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1] 이러한 이유로, 소니 빈 이야기는 후대에 만들어진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된다.[4]
반면, 스코틀랜드 왕조가 사건의 잔혹성을 우려하여 관련 기록을 의도적으로 삭제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15세기 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크리스티 클릭이라는 스코틀랜드 식인종 이야기가 소니 빈 전설과 유사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일부에서는 소니 빈 이야기가 자코바이트 반란 이후 반(反)스코틀랜드 정서를 조장하기 위한 정치적 선전이었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그러나 션 토마스[4]는 같은 출판물에서 잉글랜드 범죄자들에게도 동등한 비중을 두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1750년경의 브로드사이드 발라드에는 "샌디 베인(Sandy Bane)에 대한 스코틀랜드 전통 이야기"가 언급되어 있으며,[5] 나다니엘 크라우치의 1696년 작품에는 소니 빈 이야기와 유사한 식인 풍습 이야기가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2세 사망 1년 전인 1459년에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6] 헥토르 보이세 또한 스코틀랜드 강도의 어린 딸이 식인 풍습으로 처형되었다는 기록을 남겼다.[7]
4. 대중문화에 미친 영향
웨스 크레이븐 감독의 영화 《더 힐스 해브 아이즈》는 소니 빈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되었다.[8] 일본 만화 및 애니메이션 시리즈 《진격의 거인》에서는 한지 조에가 포획한 두 거인에게 식인족 일족 이야기를 들려주며, 두 거인의 이름을 "소니"와 "빈"으로 짓는다.
잭 케첨의 소설 《오프 시즌》도 소니 빈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 외에도 이미지 코믹스 시리즈 《핵/슬래시》, 할런 엘리슨의 단편 소설 ''She's a Young Thing and Cannot Leave Her Mother'', 해리 테이트의 소설 ''The Ballad of Sawney Bain''[9] 등 다양한 작품에서 소니 빈 이야기가 활용되었다.
데스 메탈 밴드 Deeds of Flesh의 1998년 앨범 《인브리딩 더 안트로포파지》는 소니 빈과 그의 가족 이야기를 바탕으로 가사를 구성했다. 닐 게이먼의 판타지 중편 소설 "The Monarch of the Glen"과 어린이 책 ''The Day I Swapped My Dad for Two Goldfish''에서도 소니 빈 이야기가 언급된다. 2022년, 독일 포크 메탈 밴드 보겔프레이는 앨범 ''Titanium''에서 ''소니 빈''을 주제로 한 노래를 발표했다.
참조
[1]
웹사이트
Sawney Beane
https://web.archive.[...]
[2]
웹사이트
Undiscovered Scotland
https://www.undiscov[...]
[3]
웹사이트
Title: Sawney Bean and His Family
http://www.isfdb.org[...]
[4]
웹사이트
In Search of Sawney Bean
http://www.forteanti[...]
2005-04
[5]
웹사이트
"Human Monsters!! / Account of a Human Monster, at Woodside, near Old / Windsor, who makes a common Practice of EATING LIVE CATS, &c. He was / Yesterday apprehended and committed to Goal for the MURDER of an INFANT / CHILD. Also an account of a similar Monster at Reepham, Norfolk. / TO WHICH IS ADDED, / The Account of a RAPE committed by Mr. J, of / Broad-street St. Giles's. And an account of another Rape committed by a BOY of only / Sixteen Years of Age, who is committed to Strafford Gaol for Trial."
http://ebba.english.[...]
2021-05-25
[6]
서적
The history of the kingdom of Scotland.
https://archive.org/[...]
Printed for M. Stace, by W. Smith & Co.
1813
[7]
서적
Anomalies and Curiosities of Medicine
https://archive.org/[...]
W. B. Saunders
1896
[8]
서적
Nightmares in Red, White and Blue: The Evolution of the American Horror Film
https://books.google[...]
McFarland & Company
2004
[9]
서적
Prizing Scottish literature: a cultural history of the Saltire Society Literary Awards
https://www.worldcat[...]
Anthem Press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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