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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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순흥군은 고구려 시대 급벌산군으로 시작하여 신라 시대 급산군으로 개칭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흥주, 순안현, 흥녕현, 지흥주사, 순흥부로 불리며 변천을 겪었다. 조선 시대에는 순흥도호부로 승격되었으나 단종 복위 운동으로 혁파되었다가 다시 복설되었고, 대한제국 시기에는 안동부 관할 순흥군, 경상북도 관할 순흥군으로 변화했다. 1913년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폐지되어 영천군(현 영주시)과 봉화군으로 분할 편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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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흥군 | |
---|---|
지도 | |
기본 정보 | |
한자 표기 | 順興郡 |
로마자 표기 | Sunheung-gun |
국가 | 대한제국 |
행정 구역 | |
도 | 경상북도 |
역사 | |
설치 | 고려 시대 |
폐지 | 대한제국 시대 (1914년) |
개편 | 영주군에 통합 |
인구 통계 | |
1910년 | 13,678명 |
현재 | |
위치 | 경상북도영주시 순흥면 일대 |
2. 역사
고구려 때 급벌산군(及伐山郡)이었고, 신라 경덕왕 때 급산군(岌山郡)으로 고쳐 삭주(朔州)의 영현으로 삼았다. 940년(태조 23) 흥주(興州)로 고쳤고, 1018년(현종 9) 안동부에 속하였다가 순안현(順安縣)으로 이속하였다. 1172년(명종 2) 처음으로 감무를 두었고, 충렬왕 때 흥녕현(興寧縣)으로 승격하고 현령을 두었다. 충숙왕 때 지흥주사(知興州事)로, 충목왕 때 순흥부(順興府)로 승격하였다.
조선 1413년(태종 13년) 순흥도호부로 승격되었으나, 1457년(세조 3년) 단종 복위 운동으로 도호부가 혁파되어 그 영역을 인근의 군현으로 분산시켰다. 1683년(숙종 9년) 순흥도호부로 복설되었고, 1829년(순조 29년) 일시 강등되어 현감을 둔 일이 있었다.
1895년 6월 23일(음력 윤5월 1일) 고종의 칙령에 따라 안동부 순흥군이 되었다가,[5] 1896년 8월 4일 13도제 시행에 따라 경상북도 순흥군이 되었다.[6] 1914년 4월 1일 일제는 순흥군을 폐지하고 영주군, 봉화군으로 분할 편입시켰다.[9]
2. 1. 고구려와 신라
고구려 때 급벌산군(及伐山郡)이었다.[5] 신라 경덕왕 때 급산군(岌山郡)으로 이름을 고쳐 삭주(朔州)의 영현으로 삼았다.[5]2. 2. 고려 시대
940년(태조 23) 흥주(興州)로 개칭하였다.[5]1018년(현종 9) 안동부에 속하였다가 순안현(順安縣)으로 이속하였다.[5]
1172년(명종 2) 처음으로 감무를 두었다.[5]
충렬왕 때 흥녕현(興寧縣)으로 승격하고 현령을 두었다.[5]
충숙왕 때 지흥주사(知興州事)로 승격하였다.[5]
충목왕 때 순흥부(順興府)로 승격하였다.[5]
2. 3. 조선 시대
1413년(태종 13년) 순흥도호부로 승격되었다.[5] 1457년(세조 3년) 단종 복위 운동으로 도호부가 혁파되어 그 영역을 인근의 군현으로 분산시켰다.[6] 1683년(숙종 9년) 순흥도호부로 복설되었다. 1829년(순조 29년) 일시 강등되어 현감을 둔 일이 있었다.[7]2. 4. 대한제국
1895년 6월 23일(음력 윤5월 1일) 고종의 칙령에 따라 안동부 순흥군이 되었다.[5] 1896년 8월 4일 13도제 시행에 따라 경상북도 순흥군이 되었다.[6]2. 5. 일제강점기
1914년 4월 1일 일제는 순흥군을 폐지하고 영주군, 봉화군으로 분할 편입시켰다.[9] 폐지 당시 순흥군은 내죽면, 대평면, 동원면, 단산면, 봉양면, 도강면, 용암면, 수식면, 화천면, 수민단면의 10개 면을 관할했다.[10]- 순흥면은 내죽면, 대평면을 통합하면서 순흥군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 단산면은 1914년 동원면을 흡수하여 기존 단산면의 이름을 유지하였다.
- 부석면은 봉양면, 도강면, 용암면을 통합하여 부석사에서 이름을 따왔다.
- 물야면은 1914년 수식면을 흡수하여 기존 물야면의 이름을 유지하였다.
- 내성면은 1914년 화천면, 수민단면을 통합하여 기존 내성면의 이름을 유지하였다.
3. 1914년 이후
1914년 4월 1일 순흥군이 폐지되어 영주시와 봉화군으로 분할 편입되었다.[9][4] 폐지 당시 순흥군은 내죽면, 대평면, 동원면, 단산면, 봉양면, 도강면, 용암면, 수식면, 화천면, 수민단면의 10개 면을 관할했다.[10]
- 순흥면은 내죽면과 대평면을 통합하면서 순흥군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 단산면은 1914년 동원면을 흡수하면서 기존 단산면의 이름을 유지하였다.
- 부석면은 봉양면, 도강면, 용암면을 통합하면서 부석사에서 이름을 따왔다.
- 물야면은 1914년 수식면을 흡수하면서 기존 물야면의 이름을 유지하였다.
- 내성면은 1914년 화천면, 수민단면을 통합하면서 기존 내성면의 이름을 유지하였다.
참조
[1]
법령
勅令第98号 지방제도의개정에관한안건
1895-05-26
[2]
법령
勅令第36号 지방제도와관제개정에관한안건
1896-08-04
[3]
법령
道令第3号
1912-12-12
[4]
법령
朝鮮総督府令第111号
1913-12-29
[5]
법령
칙령 제98호 지방제도의개정에관한안건
1895-05-26
[6]
법령
칙령 제36호 지방제도와관제개정에관한안건
1896-08-04
[7]
법령
조선총독부령 제39호
1912-12-06
[8]
법령
도령 제3호
1912-12-12
[9]
법령
조선총독부령 제111호
1913-12-29
[10]
법령
경상북도령 제2호
1914-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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