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만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심상만은 조선 시대 명문가 출신으로, 1872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고종 시기에 한림, 동부승지, 이조참의, 대사성 등을 역임했으며, 동학농민운동 당시 성천부사로 파직되기도 했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태복사장, 경모궁 제조, 경효전 제조, 영희전 제조 등을 거쳐 칙임관 3등까지 올랐다. 1916년 사망했다.
심상만은 심성택의 아들로 태어나 심희순에게 양자로 갔다. 심상만의 가계는 다음과 같다.[1]
2. 가계
2. 1. 친가
2. 2. 양가
심상만은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의 관료이다. 1872년(고종 9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1873년 한림(翰林)이 되었고, 1879년에는 동부승지에 임명되었다.[1] 1884년 이조참의, 1890년 대사성을 역임했다.
3. 생애
1894년 평안도 성천부사로 부임했으나, 동학농민운동 발생 시 관청을 비운 죄로 잠시 파직되기도 했다. 1897년 비서승 겸 장례에 제수되었고, 이후 궁내부 특진관에 올라 칙임관 4등이 되었다.[2]
1916년 (순종 9년) 사망하였고, 순종은 그의 상에 특별히 100KRW을 하사하였다.[3]
3. 1. 조선 고종 시기
1872년(고종 9년)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873년 한림(翰林)이 되었다.
1879년 특별히 동부승지에 제수되었다.[1]
1884년 이조참의, 1890년 대사성을 지냈다.
1894년 관서지방(평안도) 성천부사로 나아갔을 때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관부(官府, 관청)를 비운 죄로 잠시 파직되었다.
1897년 비서승 겸 장례에 제수되었다. 얼마 뒤, 시종원 시종(侍從院 侍從)을 거쳐, 궁내부 특진관에 제수되고 칙임관 4등에 올랐다.[2]
3. 2. 대한제국 고종 시기
1898년(고종 35년) 심상만은 태복사장(太僕司長) · 경모궁 제조(景慕宮提調)에 제수되고 칙임관 4등에 올랐다.
1899년 경효전 제조(景孝殿提調) · 영희전 제조(永禧殿提調)에 제수되고 칙임관 4등에 올랐다.
1901년 종묘서 제조(宗廟署提調)에 제수되고 칙임관 4등에 올랐다.
1903년 경효전 제조(景孝殿提調) · 봉상사 제조(奉常司提調)에 제수되고 칙임관 4등에 올랐다.
1904년 장례원 소경(掌隷院少卿) · 홍릉 제조(洪陵提調)에 제수되고 칙임관 4등에 올랐다.
1907년 영희전 제조(永禧殿提調) · 기로소 비서장(耆老所祕書長) · 홍릉 제조(洪陵提調)에 제수되고 칙임관 3등에 올랐다.
3. 3. 일제강점기
1916년 (순종 9년) 순종이 전 장례원 소경(掌禮院少卿) 심상만의 상(喪)에 특별히 100KRW을 하사하였다.[3]
참조
[1]
역사기록
고종실록 16권, 고종 16년 8월 10일 신해 1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2]
역사기록
고종실록 35권, 고종 34년 3월 3일 양력 1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3]
역사기록
순종실록부록 7권, 순종 9년 10월 9일 양력 4번째기사
http://sillok.histor[...]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