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아모가바즈라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아모가바즈라는 당나라에서 활동한 밀교 승려로, 705년에 태어나 774년에 입적했다. 그는 금강지에게 밀교를 배우고, 스리랑카와 인도 남부에서 밀교 경전을 구했으며, 오부 관정을 전수받았다. 안사의 난 당시에는 당나라를 위해 초자연적인 의식을 행했고, 티베트와 위구르 연합군의 침략을 막는 데 기여했다. 그는 110부 143권에 달하는 경전을 한역하여 구마라집, 진제, 현장과 함께 4대 역경가로 불리며, 금강정경 텍스트 번역은 그의 중요한 업적 중 하나이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인도에서 중국으로 이민간 사람 - 바즈라보디
    바즈라보디는 8세기 중국 밀교, 특히 진언종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인도 출신 승려로, 산스크리트어 경전 번역과 밀교 의식 전파, 그리고 《사르바타타가타타트바사가라하》 부분 번역을 통해 중국 진언종과 일본 신곤종, 천태종 밀교 분파의 기초를 다졌다.
  • 705년 출생 - 아가보디 6세
    죄송합니다. 본문 내용이 제공되지 않아 아가보디 6세에 대한 위키백과 스타일의 한 문장 요약을 할 수 없습니다.
  • 705년 출생 - 페룸비두구 무타라이야르 2세
    페룸비두구 무타라이야르 2세는 2세기에 촐라 왕조와 동시대에 무타라이야르 왕조를 통치했던 왕이다.
아모가바즈라
기본 정보
이름불공금강
한자 표기不空金剛
로마자 표기Amoghavajra
간체자不空
병음Bùkōng
일본어Fukū
베트남어Bất Không
한국어불공
생몰년신룡 원년 - 대력 9년 6월 15일 (705년 - 774년 7월 28일)
시호불공삼장
출생지인도 남부 또는 당나라의 량주
종지밀교
스승선무외, 금강지
제자혜과
저작대락금강불공진실삼마야경
아모가바즈라 초상
아모가바즈라 초상 (14세기, 도쿄 국립 박물관)

2. 생애

아모가바즈라의 출생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인도 남부[4], 사마르칸트, 당나라 량주 등 다양한 출신지 설이 제기되고 있다. 아버지는 인도 북부 출신의 바라문이었고, 어머니는 소그드계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

714년 장안에서 금강지에게 밀교를 배웠다. 741년 스승 금강지가 입적한 후 그의 유언에 따라 금강정경 완본 등을 구하기 위해 스리랑카·인도 남부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용지 아사리에게 가르침을 받았다.[4] 746년 장안으로 돌아왔으며, 755년 안사의 난을 계기로 당나라를 위해 활동하였다.[4] 765년에는 장안을 침략하려는 티베트와 위구르 20만 명의 연합군을 격퇴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2][3] 774년에 입적하였다.[4]

2. 1. 중국으로의 이주와 초기 활동

714년, 아모가바즈라는 장안에서 금강지에게 가르침을 받아 밀교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열 살의 나이에 중국으로 건너갔다.[1] 719년, 금강지의 제자가 되어 승려 생활을 시작했다.[1]

2. 2. 인도와 스리랑카 순례

741년, 스승 금강지가 입적하자, 그의 유언에 따라 금강정경의 완본을 구하고, 대일경 등 밀교 경전을 구하기 위해 스리랑카인도 남부로 순례를 떠났다.[4] 이 과정에서 금강지의 스승인 나가보디를 만나 금강정경을 자세히 연구했고, 용지 아사리로부터 태장계와 금강계 만다라를 아우르는 오부 관정을 전수받았다.[4]

2. 3. 중국 귀환과 안사의 난

746년, 아모가바즈라는 약 500권의 경전을 가지고 중국으로 돌아왔다. 750년 법정을 떠나 당나라 장군 게수 한의 군사 통치에 참여하여 대규모 탄트라 입문 의식을 수행했다. 754년 금강승 불교의 핵심 경전인 금강정경 텍스트의 첫 부분을 번역했다.

755년 안사의 난이 발발하자, 아모가바즈라는 정력적으로 교화 활동을 펼쳤다.[4] 안록산이 낙양을 지배하자, 칙명에 의해 장안으로 돌아와 대흥선사에 머물며 관정 의식을 행하고, 안록산 군대에 대항하는 초자연적인 의식을 수행하여 그들의 장군 저우즈광을 죽게 하는 등 당나라를 수호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2][3][4]

2. 4. 티베트와 위구르 연합군 격퇴

765년, 아모가바즈라는 인왕경의 새로운 번역본을 사용하여 장안을 침략하려는 티베트와 위구르 연합군 20만 명의 진격을 막기 위한 정교한 의식을 거행했다.[2][3] 그 결과, 연합군의 지도자인 푸구 화이안은 진영에서 급사했고 그의 군대는 흩어졌다.[2][3]

2. 5. 만년과 죽음

765년 아모가바즈라는 인왕경의 새로운 번역본을 사용하여 장안을 침략하려는 티베트와 위구르 20만 명의 연합군 진격을 막기 위한 의식을 거행했다. 그 지도자인 푸구 화이안은 진영에서 급사했고 그의 군대는 흩어졌다.[2][3]

아모가바즈라가 심혈을 기울인 오대산의 금각사는 767년에 완공되었으며, 그는 만수사리를 중국의 수호신으로 숭배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아모가바즈라는 당 대종의 요청에 따라 재앙을 막기 위한 의식을 계속 수행했다.[4]

774년에 입적하자, 3일간의 공식적인 애도 기간이 선포되었고, 그는 사후에 다양한 존칭을 받았다. 중국 승려 회랑, 혜과, 혜림은 그의 가장 저명한 제자들이다. 아모가바즈라가 직접 번역한 텍스트는 77개였지만, 원본을 포함한 훨씬 더 많은 작품이 중국 경전에 그의 번역으로 기록되어 있다.

3. 4대 역경가

110부 143권에 달하는 경전을 한역했으며, 구마라집, 진제, 현장 삼장과 함께 4대 역경가로 불린다. 진언종의 중요 경전인 이취경이나 숙요도의 소의 경전인 숙요경 등도 불공이 번역한 것이다(저자 설도 있다). 용수의 저작으로 번역되었다고 전해지는 보리심론은 오늘날 불공 자신의 저작이 아닌가 여겨지고 있다.[1]

참조

[1] 논문 Amoghavajra https://referencewor[...] 2021
[2] 서적 Esoteric Buddhism in Mediaeval Maritime Asia: Networks of Masters, Texts, Icons https://books.google[...] ISEAS-Yusof Ishak Institute 2016
[3] 논문 Appreciation of Relics, Stupas, and Relic Stupas in Eighth Century Esoteric Buddhism: Taisho Tripitaka Texts and Archaeological Residues in Guhya Lanka_Part 2 https://www.academia[...] 2018
[4] 웹사이트 真言宗|歴史|八祖 http://www.shingon.o[...]
[5] 간행물 종교·철학 > 세계의 종교 > 불 교 > 불교의 역사 > 밀교의 발달 > 불공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