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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데 레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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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안토니오 데 레이바는 나바라 출신의 군인으로, 이탈리아 전쟁에서 활약했다. 알푸하라스에서 군사적 경력을 시작하여 라벤나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고, 파비아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격퇴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밀라노 공국의 황제군 총사령관과 밀라노 총독을 역임했다. 카를 5세는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병사 복장으로 테르시오 부대에 참여하기도 했다. 1536년 프로방스 원정 중 통풍으로 사망했으며, 그의 후손들은 밀라노에서 중요한 가문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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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데 레이바
기본 정보
안토니오 데 레이바의 초상화
안토니오 데 레이바의 초상화
출생1480년, 나헤라
사망1536년 9월 12일, 포르첼
매장지밀라노
다른 이름테라노바 공작
국적스페인
군사 경력
복무스페인 제국
계급장군
참여 전쟁이탈리아 전쟁
파비아 전투
빈 공방전
주요 전투라벤나 전투
파비아 전투
나폴리 공방전
작위
테라노바 공작해당사항 없음

2. 생애

안토니오 데 레이바는 이탈리아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1512년 라벤나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다. 이후 밀라노 근처에서 싸웠고, 1524년 프로방스 원정에 참여했으나 마르세유를 점령하지 못하고 철수해야 했다. 프로방스 원정 실패 후, 파비아 수비대 사령관 직을 맡아 프랑수아 1세가 이끄는 프랑스 군대의 긴 포위 공격을 견뎌내고, 스페인 및 제국군이 재편성되어 파비아 전투에서 승리할 시간을 벌었다.

1535년 프란체스코 2세가 사망하자, 카를 5세는 그를 밀라노 총독으로 임명했다. 그의 후손들은 밀라노에 살았으며, 도시에서 가장 저명한 가문 중 하나가 되었다. 그의 후손 중 한 명은 몬차의 수녀로 유명하다.

2. 1. 초기 생애와 군사 경력

나바라 출신 가문에서 태어난 안토니오 데 레이바는 그라나다에서 발생한 무데하르들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군사적 경력을 시작했다. 알푸하라스에서 군사적으로 처음 데뷔하였고, 이후 그란 카피탄 휘하에서 이탈리아에서 복무했다(1503년–1504년). 이탈리아 전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으며, 라벤나 전투(1512년)에서 부상을 입었다. 페스카라 후작 지휘 하에 밀라노 인근과 프로방스 원정(1524년)에서 전투를 벌였다.

2. 2. 파비아 전투와 공성전

프로방스 원정 실패 후, 파비아 수비대 사령관 직을 맡았다. 프랑수아 1세가 이끈 프랑스군의 긴 공성(1524년 10월 - 1525년 2월)을 한결같이 막아내며, 스페인군과 황제군이 재편성되고 파비아 전투에서 승리할 시간을 벌었다.

2. 3. 밀라노 총독 임명과 사망

1525년 안토니오 데 레이바는 페스카라 후작의 뒤를 이어 밀라노 공국의 황제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1535년 스포르차 가문 출신 마지막 밀라노 공작 프란체스코 2세가 사망하자, 황제 카를 5세는 그를 밀라노 총독으로 임명하였다.

카를 5세는 레이바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일반 병사의 복장을 하고 나타나 자신을 "안토니오 데 레이바의 용감한 테르시오 병사, 카를로스 데 간테"로 테르시오 부대 명부에 기록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안토니오 데 레이바는 1536년 프로방스 원정 중에 통풍으로 사망했지만, 현재는 파괴된 밀라노의 산 디오니지(San Dionigi) 교회에 묻혔다.

3. 후손

그의 후손들은 밀라노에 정착하여 도시에서 가장 저명한 가문 중 하나가 되었다. 그의 후손 중 한 명은 마리아나 데 레비아 이 마리노(몬차의 수녀)였으며, 그녀의 이야기는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소설 약혼자들에 영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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