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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브루아즈 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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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앙브루아즈 파레는 16세기 프랑스의 외과의로, "근대 외과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군의관으로 활동하며 총상 치료에 끓는 기름 대신 연고를 사용하고 혈관 결찰법을 개발하는 등 외과 치료법을 혁신했다. 파레는 이발사 외과의 출신으로, 당시 의사보다 낮은 지위였으나, 환자 중심의 진료와 과학적인 접근 방식으로 외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저서 『대외과학전집』은 후대 외과학에 영향을 미쳤으며, "나는 붕대를 감을 뿐, 낫게 하는 것은 신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또한, 보철 기술, 법의학, 산부인과 분야에도 기여했으며, 그의 업적을 기려 소행성 259344 파레가 명명되었다.

2. 생애

앙브루아즈 파레는 이발사 외과의 출신으로, 당시 내과 의사를 지칭하던 의사는 아니었지만 직접 상처를 치료하는 현재의 외과 의사였다. 당시 의학은 학문이라기보다는 가업에 가까웠고, 마취법이나 치료법 등의 기술 축적은 거의 없었으며, 인체 해부도 기피되었다. 의사는 해부를 하지 않고, 이발사 외과의가 행한 해부 내용을 듣고 기존 연구서와 비교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1537년 군의관으로 종군한 프랑스 군의 토리노 원정에서 총상 치료에 끓는 기름 대신 연고(달걀 흰자, 테레빈유, 바셀린 등)를 사용해 더 나은 치료 효과를 얻었다.[27]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혈관을 직접 실로 묶어 지혈하는 혈관 결찰법을 개발하는 등 외과 치료를 혁신하여 "근대 외과학의 아버지"로 칭송받았다.[27]

1545년 총상 치료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고, 1561년에는 인체 해부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1562년에는 샤를 9세의 수석 외과의로 임명되었으며,[27] 1582년에는 『대외과학전집』을 발표하여 후대 외과학의 근원이 되었다.

파레는 "나는 붕대를 감을 뿐, 낫게 하는 것은 신이다"(Je le pansai, Dieu le guérit)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환자 개개인에게 애정 어린 태도를 보였으며, 침습적인 치료법에서 벗어나 환자에게 더 나은 치료법을 제공하고자 노력한 "자상한 외과의"로 평가받는다.[27]

2. 1. 초기 생애

앙브루아즈 파레는 1510년 프랑스 북서부 맹 지방의 일부였던 부르에르상(Bourg-Hersent)에서 태어났으며, 이후 라발에 합병되었다.[3] 어린 시절 그는 파리에서 이발사이자 외과의였던 형을 지켜보며 처음으로 견습 생활을 시작했다.[4] 그는 또한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병원인 오텔-디외에서 제자로 있었다.[5]

2. 2. 군의관으로서의 활동과 외과 혁신

파레는 예리한 관찰자였으며 당시의 믿음에 얽매이지 않고 눈앞의 증거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의 자서전인 『다양한 장소로의 여정』에는 다음날 아침 전장으로 돌아가면서 의도치 않게 과학적 방법을 실천한 경험이 담겨 있다. 그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끓는 딱총나무 기름과 지짐을 이용해 치료받은 환자 그룹과, 달걀 노른자, 장미 오일, 테레빈유로 만든 처방으로 밤새 치료받은 나머지 환자들을 비교했다. 파레는 끓는 기름으로 치료받은 병사들이 고통에 시달리는 반면, 연고로 치료받은 병사들은 테레빈유의 방부성 때문에 회복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이 방법의 효과를 증명했고, 그 이후로 그는 지짐을 피했다.[6] 그러나 이와 같은 치료법은 수년이 지나서야 널리 사용되었다. 그는 1545년에 그의 첫 번째 책인 『총과 화기로 인한 상처 치료 방법』을 출판했다.

파레는 또한 절단술 시 지짐 대신 동맥의 결찰법을 재도입했다(이는 갈레노스가 처음 사용했고 알-자흐라위가 나중에 설명했다).[7] 붉게 달군 쇠로 상처를 지져 봉합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종종 출혈을 멈추는 데 실패했고 환자들이 쇼크로 사망하게 했다. 결찰 기술을 위해 그는 현대 지혈기의 전신인 "''Bec de Corbeau''"(까마귀 부리)를 설계했다. 비록 결찰이 종종 감염을 확산시켰지만, 외과적 관행에서 중요한 돌파구였다. 파레는 1564년 저서 『외과 논문』에서 절단 시 출혈을 막기 위한 결찰 사용 기술을 자세히 설명했다. 부상당한 병사들과 함께 일하면서 파레는 절단 환자들이 '환상' 절단 부위에서 느끼는 감각으로 인식하는 고통을 기록했다. 파레는 환상지 통증이 팔다리의 잔여물이 아닌 뇌에서 발생한다고 믿었다(오늘날 의학계의 합의).[8] 그는 또한 많은 신경 외과 수술을 수행했다.[9]

1542년, 페르피냥 포위전 동안, 파레는 프랑스 군대를 따라가면서 탄알 추출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기술을 사용했다. 전투 중, 브리사크 원수가 어깨에 총상을 입었다. 탄알을 찾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자, 파레는 피해자에게 총에 맞았을 때와 똑같은 자세를 취하도록 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 후 탄알은 앙리의 개인 외과 의사인 니콜 라브노에 의해 발견되어 제거되었다.[11]

1537년, 파레는 군의관으로 종군한 프랑스 군의 토리노 원정에서 병사들을 치료했다. 당시 총상 치료에는 끓는 기름을 상처에 붓는 소작 지혈법이 일반적이었다. 어느 날 부상자가 많아 기름을 다 써 버리자, 파레는 급히 임시 연고(달걀 흰자와 테레빈유, 바셀린 등)를 사용해 치료했다. 기존과 다른 치료를 한 파레는 밤새 불안해서 잠을 못 잤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끓는 기름보다 이 연고로 치료하는 것이 고통이 적고 예후도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파레는 점차 이쪽 치료로 전환했다.[27] 병사들로부터도 받아들여졌고, 파레의 명성은 높아졌다. 이러한 현장에서의 시행착오 결과, 총상 치료 외에도 혈관을 직접 실로 묶어 지혈하는 혈관 결찰법을 개발하는 등 외과 치료를 혁신하여 "근대 외과학의 아버지"라고 칭송받았다.[27]

2. 3. 왕실 외과의와 말년

1562년 샤를 9세의 수석 외과의로 임명되었다. 1582년 『대외과학전집』을 발표하여 후대 외과학의 근원이 되었다. 파레는 "근대 외과학의 아버지"로 칭송받았으며, 같은 해 발행한 『대외과학전집』으로 명성을 확립했다. "나는 붕대를 감을 뿐, 낫게 하는 것은 신이다"(Je le pansai, Dieu le guérit)라는 유명한 말이 남아있다. 한편으로는 기생충의 체내 발생설을 믿었던 면도 있었다.

파레는 의학사학자로부터 "자상한 외과의"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소작 지혈법과 같은 침습적인 치료법에서 혈관 결찰법과 같은 침습성이 낮은 치료법으로 전환한 점, 그리고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애호적인 태도로 대했던 점에 있다. 병석에 있던 샤를 9세와의 대화에서 샤를 9세가 "불쌍한 환자들에게 더 좋은 치료를 해 주시오"라고 말하자, 파레는 "그럴 수 없습니다. 모든 환자에게 국왕과 같은 치료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3. 의학적 업적

파레는 뛰어난 관찰력을 가진 의사였으며, 당시의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눈앞의 증거를 중시했다. 그는 자서전적인 저서 『다양한 장소로의 여정』에서 우연히 과학적 방법을 적용한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딱총나무 기름과 지짐을 이용한 전통적인 치료법으로 치료받은 환자들과, 달걀 노른자, 장미 오일, 테레빈유로 만든 연고로 치료받은 환자들을 비교했다. 파레는 끓는 기름으로 치료받은 병사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반면, 연고로 치료받은 병사들은 테레빈유의 방부 효과 덕분에 회복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연고 치료법의 효과를 입증했고, 이후 그는 지짐 치료를 피했다.[6] 그는 1545년에 그의 첫 번째 책인 『총과 화기로 인한 상처 치료 방법』을 출판했다.

파레는 절단술을 시행할 때 지짐 대신 동맥을 묶는 결찰법을 다시 도입했다. 이는 갈레노스가 처음 사용했고 알-자흐라위가 나중에 설명한 방법이다.[7] 붉게 달군 쇠로 상처를 지져 봉합하는 일반적인 방법은 출혈을 멈추는 데 실패하고 환자들이 쇼크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찰 기술을 위해 그는 현대 지혈기의 전신인 "까마귀 부리(Bec de Corbeau)"를 설계했다. 결찰이 감염을 확산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외과적 관행에서 중요한 진전이었다. 파레는 1564년 저서 『외과 논문』에서 절단 시 출혈을 막기 위한 결찰 사용 기술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부상당한 병사들과 함께 일하면서 절단 환자들이 '환상' 절단 부위에서 느끼는 감각, 즉 환상지 통증을 기록했다. 파레는 환상지 통증이 팔다리의 잔여물이 아닌 뇌에서 발생한다고 믿었다 (이는 오늘날 의학계의 합의와 일치한다).[8] 그는 또한 많은 신경 외과 수술을 수행했다.[9]



1542년, 페르피냥 포위전에서 파레는 프랑스 군대를 따라가면서 탄환 추출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기술을 사용했다. 브리사크 원수가 어깨에 총상을 입었는데, 탄환을 찾기 어려워 보이자 파레는 피해자에게 총에 맞았을 때와 똑같은 자세를 취하도록 했다. 그 결과 탄환은 앙리의 개인 외과 의사인 니콜 라브노에 의해 발견되어 제거되었다.[11]

파레는 16세기 중반 산부인과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족대위법의 실용성을 되살렸고, 머리가 위로 향한 경우에도 이 수술을 통해 외과 의사들이 종종 영아를 안전하게 분만할 수 있었으며, 영아를 해체하여 조각조각 추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오텔-디외에서 근무하는 동안, 파레는 미래의 왕실 산파인 루이즈 부르시에의 교육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12]

파레는 이개를 사용하여 이갈이 중인 유아의 잇몸을 째는 방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는 치아가 통로 부족으로 인해 잇몸에서 나오지 못하고 이로 인해 사망한다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 믿음과 관행은 19세기 말까지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 수세기 동안 지속되었고, 그 후 이개술은 점점 논란이 되어 폐기되었다.[13]

파레는 그의 제자인 자크 기욤모의 도움을 받았는데, 그는 그의 저서를 라틴어로 번역했고, 나중에 스스로 산파술에 대한 논문을 썼다. 그에 대한 영어 번역본은 1612년 『출산; 또는 여성의 행복한 분만』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3. 1. 보철 기술

앙브루아즈 파레는 외과적 절단술 시행과 사지 보철 디자인에 모두 기여했다.[24][25] 그는 또한 금, 은, 도자기, 유리로 만든 인공 눈에 법랑을 칠해 안구 보철을 발명하기도 했다.[26]

3. 2. 법의학

파레는 의학 관련 법적 보고서 작성 절차인 ''법정 보고서''를 쓰고 저술했다.[22][23] 그의 저술과 지침은 현대 법의병리학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20][21] 파레의 저술에는 폭력적인 죽음이 내장 기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결과도 포함되어 있다.[20][21]

3. 3. 베조아석 실험

파레는 1567년 베조아 석의 효능을 시험하기 위한 실험을 했다. 당시 베조아 석은 모든 독의 효과를 치료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파레는 이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다.[19] 파레의 궁정 요리사가 은 식기를 훔치다 발각되어 교수형에 처해졌는데, 요리사는 독살에 동의했다. 조건은 독을 먹은 직후 베조아 석을 투여받고 살아남으면 풀려나는 것이었다. 베조아 석은 그를 치료하지 못했고, 그는 독살된 지 7시간 만에 고통 속에 죽었다. 이로써 파레는 베조아 석이 모든 독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19]

4. 저술

앙브루아즈 파레의 주요 저술 목록
제목출판 연도내용
『괴물과 경이』 (Des Monstres et Prodiges프랑스어)1573년전 38장
『미라, 유니콘, 독 및 페스트에 관한 담론』 (Discours de la mumie, de la licorne, des venins et de la peste프랑스어)1582년미라, 유니콘, 독, 페스트에 관한 내용
『동물 및 인간의 우월성에 관한 책』연대 불명동물과 인간의 우월성에 관한 내용


5. 기타

2003년 프랑스 아마추어 천문학자 베르나르 크리스토프가 발견한 소행성 259344 파레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명명되었다. 공식 명명 공표는 2014년 2월 14일 소행성 센터에서 발표되었다.

5. 1. 환상지 통증 연구

파레는 절단술을 받은 환자들이 절단된 부위에서 '환상'의 감각으로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기록했다. 그는 환상지 통증이 팔다리의 잔여 부위가 아닌 뇌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이는 오늘날 의학계의 합의와 일치한다.[8]

5. 2. 이개술 비판

파레는 이개를 사용하여 이갈이 중인 유아의 잇몸을 째는 방법을 도입했는데, 이는 치아가 통로 부족으로 인해 잇몸에서 나오지 못하고 이로 인해 사망한다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었다.[13] 이 믿음과 관행은 19세기 말까지 몇 가지 예외를 제외하고 수세기 동안 지속되었고, 그 후 이개술은 점점 논란이 되어 폐기되었다.[13]

참조

[1] 서적 Ambroise Paré Paris 2006
[2] 문서
[3] 서적 Ambroise Paré and his times, 1510-1590 https://archive.org/[...] G.P. Putnam's Sons 2020-04-20
[4] 문서
[5] 문서
[6] 문서 A Surgeon in the Field Viking Penguin 1981
[7] 문서
[8] 웹사이트 News.nationalgeographic.com https://web.archive.[...]
[9] 학술지 Ambroise Paré and 16th century neurosurgery 2011-04
[10] 웹사이트 Neonatology.org http://www.neonatolo[...]
[11] 뉴스 Ambroise Paré à Perpignan en 1542 http://vieuxpapiersp[...] 2015-02-13
[12] 학술지 Louise Bourgeois (1563–1636): royal midwife of France. http://dx.doi.org/10[...] 2004
[13] 학술지 The lancet and the gum-lancet: 400 years of teething babies 1996-12-21/1996-12-28
[14] 학술지 Ambrose {{sic}} Paré, Father of Modern Surgery 1913-12
[15] 학술지 Ambroise Pare (1510 to 1590): A Surgeon Centuries Ahead of His Time https://jdc.jefferso[...] 2014-06
[16] 문서
[17] 문서
[18] 서적 The works of Ambrose Parey, chyrurgeon to Henry II. Francis II. Charles IX. and Henry III. Kings of France. : Wherein are contained an introduction to chirurgery in general : a discourse of animals, and of the excellency of man. The anatomy of man's body. A treatise of praeternatural tumors ... Illustrated with variety of figures, and the cuts of the most useful instruments in chirurgery. Recommended by the University of Paris to all students in physick and chirurgery, particularly such as practised in camps and the sea http://archive.org/d[...] London : Printed: and sold by Jos. Hindmarsh, at the Golden Ball over against the Royal Exchange in Cornhil 1691
[19] 서적 Poison Mysteries in History, Romance and Crime https://books.google[...] J.B. Lippincott, New York
[20] 웹사이트 History of Forensics http://investigation[...] The Discovery Channel 2011-03-27
[21] 웹사이트 Forensic History Timeline http://historyoffore[...] American College of Forensic Examiners 2011-03-27
[22] 웹사이트 History of Crime http://www.crimezzz.[...] Crimeline 2011-03-27
[23] 서적 The Encyclopædia Britannica: a dictionary of arts, sciences, and general literature, Volume 15 https://books.google[...] H.G. Allen 2011-03-27
[24] 웹사이트 Prostheses by Ambroise Paré http://www.todayinsc[...]
[25] 학술지 Paré and prosthetics: the early history of artificial limbs 2007
[26] 학술지 Ambroise Pare and Ocular Prosthesis 1963
[27] 서적 まんが医学の歴史 医学書院発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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