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양녕대군 이제 묘역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양녕대군 이제 묘역은 조선 태종의 장남이자 세종의 형인 양녕대군 이제의 묘소와 사당인 지덕사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양녕대군은 왕세자였으나 폐세자되었고, 시와 서예에 능하여 숭례문 현판 글씨를 썼다. 지덕사는 숙종 때 건립되었으며, 양녕대군과 부인 광산 김씨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묘소는 지덕사 뒤편에 있으며,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양녕대군의 16대손으로 알려져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서울 동작구의 무덤 - 창빈 안씨 묘역
    조선 중종의 후궁 창빈 안씨의 묘소인 창빈 안씨 묘역은 그녀와 중종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과 관련되며, 묘비와 신도비 등 조선 시대 석조물이 남아있는 역사 유적이다.
  • 서울 동작구의 무덤 - 부안군 이석수 묘역
    부안군 이석수 묘역은 이석수와 평강 채씨의 묘역으로, 18세기 석비 양식을 보여주는 묘비와 석물들이 잘 보존되어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29호로 지정되었다.
  • 서울특별시의 사당 - 종묘
    종묘는 조선 왕조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 왕실의 권위와 유교적 이념을 반영한 건축물이며,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사적 제125호이다.
  • 서울특별시의 사당 - 서울 문묘
    서울 문묘는 조선 태조 때 건립되어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현들을 기리는 유교 사당으로, 대성전, 명륜당, 동무, 서무 등의 시설을 갖추고 동방 18현의 위패가 함께 봉안되어 있으며 석전대제가 거행된다.
  • 서울 동작구의 문화유산 - 창빈 안씨 묘역
    조선 중종의 후궁 창빈 안씨의 묘소인 창빈 안씨 묘역은 그녀와 중종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과 관련되며, 묘비와 신도비 등 조선 시대 석조물이 남아있는 역사 유적이다.
  • 서울 동작구의 문화유산 - 효사정
양녕대군 이제 묘역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묘역 정보
이름양녕대군 이제 묘역
한자 표기讓寧大君 李禔 墓域
양녕대군 이제 묘역
양녕대군 이제 묘역
유형유형문화재
지정 번호11
지정일1972년 8월 30일
주소서울특별시 동작구 양녕로 167
시대조선
소유지덕사
수량건물 3동(사당, 서고, 제기고) 및 묘 1기
문화재청 ID21,00110000,11

2. 생애

2. 1. 가계와 왕위 계승

양녕대군은 조선 태종의 장남이자 세종의 맏형으로 태어났다.[3]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폐세자되었다. 동생 효령대군 또한 왕위에 뜻이 없어, 결국 셋째인 충녕대군(세종)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3] 이러한 왕위 계승 과정은 주나라 태왕의 세 아들(태백, 우중, 계력) 고사와 비유되기도 한다. 훗날 공자(孔子)가 태백은 지덕, 우중은 청권이라고 칭송하였다.[3] 양녕대군은 왕위에서 멀어졌지만, 이후 세종과의 우애는 돈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녕대군은 시와 글씨에 능하였는데 서울역앞 남대문의 '숭례문(崇禮門)'이라는 현판 글씨도 썼다.[3]

2. 2. 성품과 재능

양녕대군은 자유분방하고 호방한 성격을 지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3] 시와 서예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특히 서울역 앞 남대문의 '숭례문' 현판 글씨는 그의 작품으로 전해진다.[3] 사냥을 즐겼으며, 세종은 양녕대군을 위해 사냥터를 마련해주기도 하였다.

2. 3. 사후

양녕대군은 1462년(세조 8년) 6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3] 유언에 따라 호화로운 장례는 치르지 않았으며, 묘비와 상석도 만들지 말라고 하였다.[3] 사후 세조는 '지덕(至德)'이라는 시호를 내렸는데, 이는 중국 주나라 태왕의 맏아들 태백이 왕위를 사양한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3] 7대손과 8대손이 묘소 앞에 석물을 세웠으나, 이 묘비는 1910년 벼락으로 인해 갈라졌다고 전해진다.[3] 1915년 새로운 묘비가 세워졌다.[3]

양녕대군의 묘소와 사당인 지덕사(至德祠)는 관악구 봉천동 호리목 마을에서 상도동으로 넘어가는 능고개에 위치해 있다.[3] 지덕사에는 세조가 친히 만든 금자현액(金字懸額)과 허목의 휘호로 된 지덕사기(至德祠記) 등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3] 양녕대군은 시와 글씨에 능하였으며, 남대문의 '숭례문' 현판 글씨도 썼다.[3]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양녕대군의 16대손으로 알려져 있다.[3] 이승만양녕대군의 봉사손이었던 이근수의 도동 서당에 다니기 위해 남산 서쪽의 도동(桃洞)에 정착했다고 한다.[3] 이승만은 살던 초가집이 도동 우수현(雩守峴) 남쪽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아호를 우남(雩南)으로 했다.[3]

3. 지덕사(至德祠)

조선 숙종 1년(1675) 임금의 명에 의해 양녕대군을 모시는 사당으로 건립되었다.[3] 원래 숭례문 밖에 있었으나, 1912년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동 현재 위치로 이전되었다.[3] '지덕(至德)'은 '인격이 덕의 극치에 이르렀다'는 뜻으로, 세조가 직접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3]

중국 주(周)나라 때 태왕(太王)이 맏아들 태백과 둘째아들 우중을 건너뛰어 셋째아들 계력에게 왕위를 물려할 때 태백과 우중 두 형제는 부왕의 뜻을 헤아려 삭발하고 은거하며 왕위를 사양했는데, 훗날 공자(孔子)가 태백은 지덕, 우중은 청권이라고 칭송하였다. 이러한 고사를 바탕으로 양녕대군을 모시는 사당을 지덕사(至德祠), 효령대군을 모시는 사당을 청권사(淸權祠)라 하였다.[3]

사당 안에는 양녕대군과 부인 광산 김씨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3] 양녕대군의 친필인 숭례문 현판의 탁본과 정조가 지은 지덕사기, 허목이 지은 지덕사기 등이 있다.[3]

능고개는 관악구 봉천동 호리목 마을에서 상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이 고개를 넘어가면 상도동 산65-42번지와 217-1번지에 양녕대군의 묘소와 사당인 지덕사(至德祠)가 있는 데서 유래된 이름인데 사당에는 세조가 친히 만든 금자현액(金字懸額)과 조선 중기의 문신인 허목(許穆)의 휘호로 된 지덕사기(至德祠記), 양녕대군의 필적으로 전해지는 숭례문의 탁본 등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3. 1. 유물

지덕사에는 양녕대군과 부인 광산 김씨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3] 양녕대군의 친필인 숭례문 현판 탁본이 보관되어 있다.[3] 정조가 지은 지덕사기와 허목이 지은 지덕사기가 전해진다.[3]

4. 묘소

양녕대군(1394∼1462)의 묘는 지덕사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묘소에는 양녕대군과 정경부인 광산 김씨가 합장되어 있다. 묘소 앞에는 장명등, 묘비, 문인석 등이 배치되어 있다.

5. 기타

5. 1. 이승만과의 관계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양녕대군의 16대손으로 알려져 있다.[3] 이승만은 어린 시절 양녕대군 봉사손 이근수의 도동 서당에 다니기 위해 남산 서쪽 도동(桃洞)에 정착했다고 한다.[3] 이승만이 살던 집은 도동 우수현(雩守峴) 남쪽에 있었는데, 이승만은 훗날 자신의 아호를 집 위치에서 따 '우남(雩南)'으로 지었다.[3]

5. 2. 능고개

능고개는 관악구 봉천동 호리목 마을에서 상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이 고개를 넘어가면 상도동 산65-42번지와 217-1번지에 양녕대군의 묘소와 지덕사(至德祠)가 있는데서 유래된 이름이다.[3] 지덕사에는 세조가 친히 만든 금자현액(金字懸額)과 조선 중기의 문신인 허목/許穆중국어의 휘호로 된 지덕사기(至德祠記), 양녕대군의 필적으로 전해지는 숭례문의 탁본 등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3]

5. 3. 교통

서울 지하철 7호선 상도역 2번 출구에서 양녕로를 따라 300m 거리에 지덕사가 위치해 있다.

참조

[1] 간행물 서울특별시고시 제2008-378호, 《서울특별시 지정문화재 및 문화재자료 지정명칭 변경》 http://event.seoul.g[...] 서울특별시 2008-10-30
[2] 뉴스 https://news.naver.c[...]
[3] 뉴스 세종대왕의 '형님'으로 세상 살아가기 http://www.ohmynews.[...] 오마이뉴스 2012-11-30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