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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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염우는 촉한의 인물로, 래강도독과 우대장군을 역임했다. 그는 마충의 뒤를 이어 래강도독이 되었으나, 마충의 업적에는 미치지 못했다. 257년, 오나라의 손침이 전횡하자 주적이 촉과 결탁하려 했고, 염우는 촉 조정의 명령에 따라 백제성 수비를 강화했다. 이후 황호에게 협력하여 강유를 폐하고 그 자리를 대신하려 했으나, 위나라의 침공으로 소환된 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황호에게 아부하여 우장군이 된 인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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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우 | |
---|---|
인물 정보 | |
이름 | 염우 |
한자 표기 | 閻宇 |
로마자 표기 | Yan Yu |
자 | 문평 |
한자 자 | 文平 |
소속 국가 | 촉한 |
출신지 | 형주남군 |
생년 | 생년 미상 |
몰년 | 몰년 미상 |
관직 | 우대장군 |
섬긴 군주 | 유선 |
2. 생애
염우는 래강도독으로 마충, 장표의 후임으로 촉 남부를 통치하여 장기간에 걸쳐 업적을 올리고 직무에 열심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마충의 풍격과 공적에는 미치지 못했다고 한다.[4]
2. 1. 오나라와의 관계
염우는 과거 공적을 세우고 근무에 열심이어서 마충의 뒤를 이어 재직하였으나, 마충의 업적에는 미치지 못했다.[4] 이후 우대장군(右大將軍)에 임명되었다. 257년, 오에서 손침이 전횡하자 주적이 밀서를 보내 촉과 결탁하려 하였고, 염우는 촉 조정의 명령에 따라 군사 5천 명을 이끌고 백제성의 수비를 강화하며 주적의 연락을 기다렸다.[5] 이로써 염우는 우대장군의 지위를 유지하며 파동도독(巴東都督)이 되었다. 파동태수로 좌천된 나헌은 영군(領軍)이 되어 염우를 보좌하였다.[6]2. 2. 황호와의 결탁 및 강유와의 갈등
257년, 오에서 손침이 전횡하자 주적이 밀서를 보내 촉과 결탁하려 하였고, 이에 염우가 촉 조정의 명령에 따라 군사 5천 명을 이끌고 백제성의 수비를 강화하며 주적의 연락을 기다렸다.[5] 이로써 염우는 우대장군의 지위를 유지하며 파동도독(巴東都督)이 되었다. 파동태수로 좌천된 나헌은 영군(領軍)이 되어 염우를 보좌하였다.[6] 경요 5년(262년), 염우는 당시 권력을 쥐고 있던 황호에게 협력하였고, 황호는 공적을 세우지 못하고 있던 대장군 강유를 폐하고 염우를 대신 세우려 획책하였다.[7]한편으로 염우는 황호와 결탁하여 북벌 중인 강유와 자신을 교체하려 획책했다. 황호 외에도 제갈첨 · 동궐 등은 승산 없는 북벌의 연속으로 국내를 피폐시켰다는 것을 이유로, 유선에게 강유를 소환하여 익주자사로 삼고 그 군사권을 빼앗도록 상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촉의 원로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제갈첨은 실제로 강유와 염우를 교체하도록 상소했다고 한다.[2]
2. 3. 촉한 멸망
263년, 위가 촉을 침공해오자 소환되었다. 나헌에게 2천 명의 군세를 위임한 후 서쪽으로 물러났다. 그 후의 소식은 불명이다.3.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삼국지연의》에서는 변변한 공적도 없이 황호에게 아첨하여 우장군의 지위를 얻은 인물로 묘사된다. 강유를 대신하려고 생각하여 강유를 소환하도록 황호를 부추겼지만, 위나라의 등애가 강적이라는 말을 듣고는 흐지부지되었다.
참조
[1]
서적
呉書』朱治朱然呂範朱桓伝
[2]
서적
삼국지 (역사서)
[3]
서적
삼국지
[4]
서적
삼국지
[5]
서적
삼국지
[6]
서적
양양기
[7]
서적
삼국지
[8]
문서
[9]
서적
신당서(新唐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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