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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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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왕겹은 위만조선의 장수로, 기원전 109년부터 기원전 108년까지 전한이 위만조선을 공격할 때 군사를 담당했다. 한나라 군대가 왕검성을 공격하자 노인, 한음과 함께 조선왕 우거를 남겨두고 항복했다. 항복 후 평주후에 봉해졌으나 3년 후 사망하여 봉국은 폐지되었다. 왕씨 성을 가진 점과 관련하여 중국계 인물로 추정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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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겹 - [인물]에 관한 문서
인물 정보
한글 이름왕겹
한자 이름王唊
로마자 표기Wang Gyeop
일본어 표기오우쿄우
생애
사망년도기원전 105년
주요 활동위만조선 정치인
출신연나라
주요 경력위만조선 대신

2. 생애

왕겹은 위만조선의 장수였다.[10][5] 기원전 109년 한(漢)나라왕검성을 공격하자, 노인, 한음 등과 함께 우거왕을 버리고 한나라에 투항했다.[10][7] 이후 한나라로부터 평주후(平州侯)에 봉해졌으나,[11] 얼마 지나지 않아 후사 없이 사망하여 봉국은 폐지되었다.[11][8] 그의 성씨가 '왕(王)'이라는 점에서 중국계 인물일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5][6]

2. 1. 위만조선의 장수

위만조선의 장수였다.[10][5] 기원전 109년부터 기원전 108년까지 한나라 군대가 위만조선의 수도 왕검성으로 쳐들어오자, 조선의 상(相)이었던 노인, 한음과 함께 우거왕을 남겨둔 채 한나라에 항복했다.[10][7]

항복 후 전한으로부터 평주후(平州侯)에 봉해졌으나,[11] 3년 뒤 후계자 없이 사망하여 봉국은 폐지되었다.[11][8]

일본 학자 다케다 유키오는 왕겹을 노인, 한음과 함께 위만조선의 유력한 망명자 또는 그 관련 인물로 추정하며, 왕겹은 무사(武事)를 담당했을 것으로 보았다. 그는 특히 왕겹의 성씨인 왕씨와 한음의 한씨를 근거로 들었다.[5] 미카미 다카오 역시 왕겹의 성씨가 '왕'인 점을 들어, 그가 우거왕과 마찬가지로 중국계 인물일 가능성을 지적했다.[6]

2. 2. 한나라에 항복

왕겹은 위만조선의 장수로서 군사를 담당했다.[5] 기원전 109년부터 기원전 108년까지 한(漢)나라 군대가 위만조선의 수도 왕검성을 공격하자, 노인, 한음과 함께 우거왕을 남겨두고 한나라에 항복했다.[7][10] 항복 후, 한나라로부터 평주후(平州侯)에 봉해졌으나,[11] 얼마 지나지 않아 후계자 없이 사망하여 봉국은 폐지되었다.[11][8]

일부 학자들은 왕겹의 '왕(王)'이라는 성씨를 근거로, 그가 중국계 망명자이거나 그와 관련된 인물일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5][6]

2. 3. 평주후 책봉과 죽음

기원전 109년부터 기원전 108년까지 한(漢)나라 군대가 위만조선의 수도 왕검성을 공격하자, 조선의 장수였던 왕겹은 노인, 한음과 함께 우거왕을 남겨두고 한나라에 항복했다.[10][7] 항복 후, 왕겹은 한나라로부터 평주후(平州侯)에 봉해졌다.[11][8] 그러나 평주후에 봉해진 지 3년[11] (혹은 1년[8]) 만에 사망하였고, 후사가 없어 그의 봉국은 폐지되었다.[11][8]

참조

[1] 서적
[2] 서적
[3] 서적
[4] 서적
[5] 서적
[6] 서적 漢書>朝鮮傳>古朝鮮>左將軍이 이미 두 군대를 합병한 뒤 http://db.history.go[...] 국사편찬위원회
[7] 서적
[8] 서적
[9] 웹인용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의 정보, 왕겹(王唊) https://web.archive.[...] 한국학 중앙연구원 2012-03-18
[10] 문서 사마천“조선 상(朝鮮相) 노인(路人)·상 한음(相韓陰)·니계 상 참(尼谿相參)·장군 왕겹(王唊)이 서로 참여하여 일을 꾸며 이르기를, “당초에 누선에게 항복하고자 하였으나, 누선은 지금 잡혀있고, 홀로 좌장군이 아우르고 거느리니, 전쟁은 점차 급해지고 있고, 더불어 싸우지 못할까 두려운데, 왕은 또한 항복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 ”하였다. 한음·왕겹·노인은 모두 도망쳐 한(漢)나라에 항복하였다.”/“朝鮮相路人、相韓陰、尼谿相參、將軍王唊相與謀曰:「始欲降樓船,樓船今執,獨左將軍并將,戰益急,恐不能與,(戰)王又不肯降。」陰、唊、路人皆亡降漢。”
[11] 문서 사마천 “왕겹을 평주후(平州侯)에 [...] 봉(封)하였다.” /“封[...]唊為平州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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