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선우
1. 개요
오유선우는 기원전 114년 아버지 이지사 선우가 죽자 선우가 되었다. 그는 한나라가 남월, 동월과 전쟁 중일 때는 한나라와 충돌을 피했으나, 한 무제가 무력 시위를 하자 곽길을 추방하며 반발했다. 이후 한나라와 화친을 도모하며, 한나라 사신을 억류하고 변경을 침입하기도 했다. 기원전 105년 재위 10년 만에 사망했으며, 아들 아선우가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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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05년 사망 -
왕겹
위만조선의 장군 왕겹은 기원전 109년에서 108년 사이 한나라의 공격에 조선왕 우거를 배신하고 항복하여 평주후에 봉해졌으나 후사 없이 사망했고, 그의 성씨로 인해 중국계 인물로 추정된다. -
기원전 105년 사망 -
유단 (안중강후)
유단은 전한 시대 남양군 안중후에 봉해진 인물로, 유정의 현손이자 유숭의 손자, 유막의 아들이며 사후 강후라는 시호를 받았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흉노의 선우 -
호한야선우
호한야선우는 흉노의 선우로서, 흉노 분열기에 한나라에 귀순하여 지원을 받아 흉노를 통일하고 한나라와의 우호 관계를 통해 흉노를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다. -
흉노의 선우 -
어부라
어부라는 후한 말 남흉노의 선우로, 흉노족 내분으로 낙양에 망명하여 용병으로 활동하다 195년 사망했으며, 그의 손자 유연은 한조를 건국했다.
2. 생애
기원전 114년, 아버지 이지사선우가 죽자 그 뒤를 이어 선우가 되었다.
오유선우 즉위 초, 한나라는 남쪽의 남월과 동월 정벌 중이었다. 《사기》와 《한서》 흉노전에는 흉노가 한나라를 침탈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었으나, 《한서》 무제기에는 기원전 112년 가을 흉노가 오원군을 공격해 태수를 죽였다고 한다. 기원전 111년, 한나라는 남월과 동월을 멸망시킨 후 공손하와 조파노에게 흉노 공격을 명했으나, 이들은 흉노를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기원전 110년 겨울, 한 무제는 18만 기병으로 국경에서 무력 시위를 하고, 곽길을 보내 항복을 요구했다. 오유선우는 곽길을 만나게 한 주객(主客)을 목 베고 곽길을 바이칼호로 유배했으나, 한나라와 직접적인 충돌은 피하며 화친을 모색했다.
한나라는 북지군 출신 왕오 등을 보냈는데, 왕오는 흉노 관습에 따라 절(사신의 부절)을 치우고 얼굴에 먹물을 들여 선우의 천막에 들어갔다. 그는 거짓으로 태자를 한나라에 볼모로 보내겠다고 했다. 기원전 107년, 한나라 사신 양신은 태자를 볼모로 요구했으나, 오유선우는 묵돌선우와 한 고제 시절 맺은 약속과 다르다며 거절했다. 그는 한나라 재물을 탐내 왕오에게 자신이 직접 한나라 천자를 만나러 가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한나라에서 사신 지위가 낮다고 트집을 잡았다. 흉노 고위 인사를 사신으로 보냈으나 병사하자, 한나라가 사신을 죽였다고 의심하여 한나라 사신 노충국을 억류하고 한나라 변경을 침입했다.
이후 오유선우의 죽음과 관련된 내용은 "죽음" 하위 섹션에 자세히 나와있다.
2.1. 한나라와의 관계
오유선우는 기원전 114년, 아버지 이지사선우가 죽자 그 뒤를 이어 선우가 되었다.
오유선우가 즉위했을 무렵, 한나라는 남쪽의 남월과 동월을 정벌하고 있었다. 《사기》와 《한서》 흉노전에서는 흉노가 한나라를 침탈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한서》 무제기에서는 기원전 112년 가을에 흉노가 오원군을 공격하여 태수를 살해했다고 전한다. 기원전 111년, 한나라는 남월과 동월을 멸망시킨 후 공손하와 조파노에게 흉노 공격을 명했으나, 이들은 흉노와 교전하지 못하고 회군했다.
기원전 110년, 한 무제는 18만 기병을 이끌고 국경에서 무력 시위를 벌이며, 곽길을 사신으로 보내 항복을 요구했다. 오유선우는 이에 분노하여 곽길을 바이칼호로 유배했다. 그러나 한나라와 직접적인 충돌은 피하며 화친을 모색했다.
한나라는 북지군 출신 왕오 등을 사신으로 보냈는데, 왕오는 흉노의 관습에 따라 사신의 부절을 치우고 얼굴에 먹물을 들이는 등 흉노의 풍습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 선우의 천막에 들어갈 수 있었다. 왕오는 거짓으로 태자를 한나라에 인질로 보내겠다고 약속했다.
기원전 107년, 한나라 사신 양신은 태자를 인질로 요구했으나, 오유선우는 묵돌선우와 한 고제 시절 맺은 약속(한나라 공주를 흉노에 출가시키고 공물을 바치는 것)과 다르다며 거절했다.
오유선우는 한나라의 재물을 탐내 왕오에게 자신이 직접 한나라 천자를 만나러 가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한나라에서 사신의 지위가 낮다고 트집을 잡았다. 흉노의 고위 인사를 사신으로 보냈으나 병으로 죽자, 한나라가 사신을 죽였다고 의심하여 한나라 사신 노충국을 억류하고 한나라 변경을 침입했다.
기원전 105년, 오유선우는 재위 10년 만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