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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준 (고려 왕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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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왕준은 고려 현종의 7세손이자 청화후 왕경의 아들로, 몽골에 인질로 보내졌으나 몽골 궁정에서 활동하며 옹구트 수장의 딸과 결혼했다. 1241년 몽골에 가짜 왕자로 보내졌으며, 몽골의 고려 침략 시 강화에 힘썼고, 몽골에 투항한 고려인들을 통솔했다. 그는 홍복원을 모함하여 처형하고 그의 아들 홍차구와 갈등을 겪었으며, 1283년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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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준 (고려 왕족)

2. 가계

왕준은 현종의 넷째 아들 평양공 왕기의 7세손으로, 아버지 청화후 왕경의 둘째 아들이다. 형제로는 형 승화후 왕온, 단양백 왕서, 아우 사공 왕정이 있었다.

『고려사』에는 왕준에게 왕옹, 왕희, 왕함, 왕지, 왕화, 왕림 등 여섯 아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원사』에는 세 아들만 언급된다. 왕옹, 왕희, 왕함은 정실 부인의 소생으로, 『원사』에 나오는 아라테무르, 곽곽테무르, 오애가 이들이다. 나머지 아들들은 측실 소생으로 추정된다.[2][3][4]

2. 1. 가계 관련 추가 정보

구분이름비고
조부계성후 왕원
아버지청화후 왕경
승화후 왕온
단양백 왕서
아우사공 왕정
아들신안후 왕옹[2]
아들광화후 왕희[3]
아들영인후 왕함[4]
아들수사도 왕지
아들사도 왕화
손자광릉후 왕미
손자사공 왕형
손자사공 왕구
손자연창군 왕원
손자정윤 왕연
아들화의군 왕림
손자화의대군 왕거
증손자덕풍군 왕의
고손녀익비 한씨공민왕의 부인


3. 생애

왕준은 현종의 넷째 아들 평양공 왕기의 7세손으로, 청화후 왕경의 둘째 아들이다. 형은 승화후 왕온이다. 왕준은 용모가 수려하고, 말 타기와 활쏘기에 능했으며, 서적에도 정통했다.[1]

1241년(신축년) 몽골이 왕자를 인질로 요구하자, 고종 등은 몽골에 완전히 굴복하는 것을 꺼려 가짜 왕자로 왕준을 보냈다.[1] 고려의 수법이 드러나 몽골은 더욱 분노했지만, 왕준은 우대받아 고려 출신 홍복원에게 맡겨져 두터운 보살핌을 받았다.[1] 이후 몽골 궁정에 섬겼으며, 몽골 대귀족 옹구트 수장의 딸 부야고와 혼인했다.[1]

홍복원에게 은혜를 입었으나, 그의 반고려적 태도에 불만을 품고 1258년(무오년) 자신의 처자식과 함께 홍복원이 몽케 칸에게 저주를 했다고 모함하여 처형되게 하였다.[1] 이 일로 홍복원의 아들 홍차구에게 깊은 원한을 샀다.[1]

1253년(계축년) 몽골의 고려 침략 때에는 강화에 힘썼다.[1] 몽골에 투항한 고려인들은 왕준의 지휘 아래 통괄되었으며, 지원 7년(1270년)에는 1,300호를 거느렸다.[1]

원사』에는 1270년 병으로 은퇴했다고 기록되었지만, 『고려사』에는 왕준에게 불손한 언행을 했다는 홍차구의 모함으로 쿠빌라이 칸의 분노를 사 칩거하게 되었다고 한다.[1] 1271년 왕준과 왕옹 부자는 삼별초 진압에 동원되었지만, 붙잡힌 왕온 부자는 홍차구에 의해 처형되었다.[1]

1283년 9월에 훙거했다. 향년 61세.[1] 『고려사』에는 왕준에게 여섯 아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원사』에는 세 아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1]

3. 1. 몽골로 보내지다

현종의 넷째 아들인 평양공 왕기의 7세손으로, 청화후 왕경의 둘째 아들이다. 형은 승화후 왕온이다. 용모가 아름답고, 기마술과 궁술에 능했으며, 서적에도 통달했다.[1] 1241년(신축년) 몽골이 왕자를 인질로 요구하자, 고종 등은 몽골에 완전히 굴복하는 것을 꺼려 가짜 왕자로 왕준을 보냈다.[1] 고려의 수법이 드러나 몽골은 더욱 분노했지만, 왕준은 우대받아 고려 출신 홍복원에게 맡겨져 두터운 보살핌을 받았다.[1] 이후 몽골 궁정에 섬겼으며, 몽골 대귀족 옹구트 수장의 딸 부야고와 혼인했다.[1] 1253년(계축년) 몽골의 고려 침략 때에는 강화에 힘썼다.[1] 지원 7년(1270년)에는 몽골에 투항한 고려인 1,300호를 거느리고 왕준의 지휘 아래 통괄되었다.[1]

3. 2. 몽골에서의 생활

현종의 넷째 아들 평양공 왕기의 7세손이자 청화후 왕경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은 승화후 왕온이다. 왕준은 용모가 수려하고, 말 타기와 활쏘기에 능했으며, 서적에도 정통했다.[1] 1241년(신축년), 왕자를 인질로 요구한 몽골의 요구에, 완전히 굴복하기를 꺼린 고종 등에 의해 가짜 왕자로 몽골에 보내졌다.[1] 이러한 고려의 계략은 몽골의 더 큰 분노를 샀지만, 왕준은 오히려 우대를 받아 고려 출신 홍복원에게 맡겨져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다.[1] 이후 몽골 궁정에서 봉사하며, 몽골 대귀족 옹구트 수장 부야고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다.[1]

1253년(계축년) 몽골의 고려 침략 당시 강화에 힘썼으며, 몽골에 투항한 고려인들은 왕준의 지휘 아래 통합되었다.[1] 지원 7년(1270년)에는 1,300호를 거느렸다.[1]

홍복원에게 은혜를 입었으나, 그의 반고려적 태도에 불만을 품고 1258년(무오년) 자신의 처자식과 함께 홍복원이 몽케 칸에게 저주를 했다고 모함하여 처형되게 하였다.[1] 이 일로 홍복원의 아들 홍차구에게 깊은 원한을 샀다.[1]원사』에는 1270년 병으로 은퇴했다고 기록되었지만, 『고려사』에는 왕준에게 불손한 언행을 했다는 홍차구의 모함으로 쿠빌라이 칸의 분노를 사 칩거하게 되었다고 한다.[1]

3. 3. 홍복원과의 관계

왕준은 몽골에 투항한 고려 출신 홍복원에게 맡겨져 보살핌을 받았다. 그러나 홍복원의 반고려적인 태도에 불만을 품고, 1258년 자신의 처자식과 함께 홍복원이 몽케 칸에게 저주를 했다고 거짓으로 모함하여 처형되게 하였다.[1] 이 일로 홍복원의 아들 홍차구에게 깊은 원한을 샀다.[1]고려사』에 따르면, 왕준에게 불손한 언동이 있었다는 홍차구의 모함으로 쿠빌라이 칸의 분노를 사 칩거하게 되었다고 한다.[1]

3. 4. 고려인 통솔

1253년 (계축년) 몽골의 고려 침략 때 강화에 힘썼다. 몽골에 투항한 고려인들은 왕준의 지휘 아래 통괄되었으며, 지원 7년 (1270년)에는 1,300호를 거느렸다.[1]

3. 5. 말년

홍복원에게는 은혜가 있었지만, 그의 반고려적인 태도에 불만을 품고, 1258년에 자신의 처자식과 함께 홍복원이 몽케 칸에게 저주를 했다고 참소하여 처형하게 했으며, 그의 아들인 홍차구에게 깊은 원한을 샀다. 『원사』에서는 지원 7년(1270년)에 질병으로 은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고려사』에 따르면 왕준에게 불손한 언동이 있었다는 홍차구의 무고로 쿠빌라이 칸의 분노를 사 칩거하게 되었다.[1] 승화후 왕온은 삼별초의 반란에서 원나라에 대항하는 고려 왕으로 옹립되었다. 지원 8년(1271년), 왕준과 왕옹의 부자도 진압에 동원되었지만, 그 탄원에도 불구하고, 붙잡힌 왕온 부자는 홍차구에 의해 처형되었다.[1]

지원 20년(1283년) 9월에 훙거했다. 향년 61세. 『고려사』에는 왕준에게 왕옹, 왕희, 왕헌, 왕제, 왕화, 왕림의 여섯 아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원사』에는 세 아들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1] 왕옹, 왕희, 왕헌이 정실 부인의 아들이며, 원사에 이름이 있는 아라테무르, 곽곽테무르, 오애 세 사람에 해당하며, 나머지는 측실의 아들로 여겨진다.[1]

4. 왕준이 등장한 작품

2012년 MBC에서 방영한 드라마 무신에서 배우 김지완이 왕준 역을 맡았다.

참조

[1] 문서 고려사에 기록된 쌍성총관부와 같음
[2] 문서 아락티무르 원사(元使)
[3] 문서 쿠오쿠오티무르 원사(元史)
[4] 문서 우아이 원사(元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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