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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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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윤정옥은 일제강점기 강원도 고성에서 출생하여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다녀온 인물이다.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및 영문학과 교수를 역임하며, 1980년부터 일본군 '위안부' 문제 조사와 해결을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결성에 참여하고,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를 조사하는 등 여성 운동과 위안부 문제 해결에 힘썼다. 그러나 아시아 여성 기금 수령을 반대하며 위안부 피해자들과 갈등을 겪었으며,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해설과 주석 등이 있으며, 유관순상과 한국여성지도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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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옥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윤정옥
원어명尹貞玉
로마자 표기Yun Jeong-ok
출생일1925년
국적대한민국
직업영문학자, 인권운동가
경력
활동 기간알려지지 않음
기타
종교알려지지 않음
배우자알려지지 않음
상훈알려지지 않음
웹사이트알려지지 않음

2. 생애

1925년 일제강점기 강원도 고성군 외금강에서 태어났다. 1943년 이화여자전문학교(현재의 이화여자대학교)에 입학했으나, 학교 측의 강요로 정신대 자원서를 쓴 직후 아버지의 권유로 자퇴하고 가족과 함께 금강산으로 피신하였다. 해방 후 재입학하여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11][10] 1953년 이화여자대학교 강사가 되었고, 1958년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 교수가 되었다.

1980년 일본군 '위안부' 조사를 시작하였다.[12] 1988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주최 세미나에서 정신대 답사 보고를 하였고, 이후 한국교회여성연합회에 정신대연구위원회를 설치하였다.[12] 1990년 한겨레신문에 정신대 취재기를 게재하였다. 같은 해 11월 16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결성하고 공동 대표가 되었다.[12] 2006년 베트남을 방문하여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를 조사하기도 하였다.[12] 이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지도위원으로서 활동하였다.[12]

1991년 일본 중의원 의원 회관에서 일본사회당 도이 다카코 여성 비서로부터 활동비 명목으로 수십만 엔에서 백만 엔 가량의 돈을 영수증 없이 받기도 하였다.[2]

1994년 일본 무라야마 총리의 위안부 보상 성격의 아시아여성기금 위로금 수령 문제로 당시 위안부 피해 생존자 46명 중 33명과 크게 불화가 있었다.[14]

2000년-2001년 여성국제전범법정 공동 주최자였다.[10]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1925년 강원도 고성군 외금강에서 태어났다. 1943년 이화여자전문학교(현재의 이화여자대학교)에 입학했으나, 학교 측의 강요로 정신대 자원서를 쓴 직후 아버지의 권유로 자퇴하고 가족과 함께 금강산으로 피신하였다. 해방 후 재입학하여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다녀왔다.[11][10] 1953년 이화여자대학교 강사가 되었고, 1958년 이화여자대학교 영문학과 교수가 되었다.

2. 2. 여성운동 및 위안부 문제 해결 활동

1980년 일본군 '위안부' 조사를 시작하였다.[12] 1988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주최 세미나에서 정신대 답사 보고를 하였고, 이후 한국교회여성연합회에 정신대연구위원회를 설치하였다.[12] 1990년 한겨레신문에 정신대 취재기를 게재하여 위안부라는 존재를 한국 여론에 알렸다.[3]

1990년 11월 16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결성하고 공동 대표가 되었다.[12] 2006년 베트남을 방문하여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를 조사하기도 하였다.[12]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지도위원으로서 활동하였다.[12]

1991년 일본 중의원 의원 회관에서 일본사회당 도이 다카코 여성 비서로부터 활동비 명목으로 수십만 엔에서 백만 엔 가량의 돈을 영수증 없이 받기도 하였다.[2]

1994년 일본 무라야마 총리의 위안부 보상 성격의 아시아여성기금 위로금 수령 문제로 당시 위안부 피해 생존자 46명 중 33명과 크게 불화가 있었다.[14] 1996년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에는 윤정옥이 "일본군이 젊은 여성들을 학교에 모아 강제 연행해 갔다"고 주장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4]

1997년 한 세미나에서 "아시아 여성 기금을 받으면 공창이 된다", "아시아 여성 기금의 돈을 받는 것은 다시 더러운 돈으로 몸을 파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전 위안부 할머니들을 압박하여 수령 거부를 강요했다.[6][5][7] 1998년 11월 18일 수요집회에서 아시아 여성 기금을 받으려는 한국인 위안부들의 행위는 한국 정부, 한국 국민, 정대협에 대한 배신이라고 발언했다.[6][5][7]

2000년-2001년 여성국제전범법정 공동 주최자였다.[10]

2004년 고 심미자 등 전 위안부 13명은 정대협과 나눔의 집을 상대로 성명서를 발표하고, 정대협을 "위안부 문제를 구실로 자신들의 부귀영화만을 누리고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고령의) 전 위안부들을 역사의 무대에 구걸하는 사람으로 팔아 사리사욕을 채워 온 악당"이라고 규탄했다.[6][5][7]

2020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전 대표인 윤미향을 둘러싼 전 위안부들의 고발, 각종 부정 의혹과 관련하여 "정대협은 처음부터 '정치와는 얽히지 않는다'는 합의 하에 출발했다", "단체가 나서서 돈을 모으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실정을 알리고 할머니들을 돕겠다는 단체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 "1992년에 시작된 수요 집회 초기에도 모금 활동은 전혀 없었다"며 현재의 정의연과 윤미향을 비판했다.[8]

3. 논란

윤정옥은 1980년부터 국내외에서 일본군 '위안부' 조사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0년에는 그 기록을 한겨레신문에 게재하여 위안부라는 존재를 한국 여론에 알렸다[3]

1996년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에는 윤정옥이 "일본군이 젊은 여성들을 학교에 모아 강제 연행해 갔다"고 주장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4]

윤정옥은 아시아 여성 기금에 반대하며, 기금을 받으려는 위안부들을 모욕하고 방해해 왔다. 2020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전 대표인 윤미향을 둘러싼 전 위안부들의 고발, 각종 부정 의혹과 관련하여 "정대협은 처음부터 '정치와는 얽히지 않는다'는 합의 하에 출발했다", "단체가 나서서 돈을 모으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실정을 알리고 할머니들을 돕겠다는 단체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8]

3. 1. 아시아여성기금 관련 논란

1996년의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에는 윤정옥이 "일본군이 젊은 여성들을 학교에 모아 강제 연행해 갔다"고 주장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4]

윤정옥은 아시아 여성 기금에 반대하며, 기금을 받으려는 위안부들을 모욕하고 방해해 왔다. 2004년 고 심미자 등 전 위안부 13명이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나눔의 집을 상대로 "모금 행위 및 데모 동원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 전에 성명서를 발표하고, 정대협을 "위안부 문제를 구실로 자신들의 부귀영화만을 누리고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고령의) 전 위안부들을 역사의 무대에 구걸하는 사람으로 팔아 사리사욕을 채워 온 악당"이라고 규탄했다.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에서 전 위안부들에게 각 500만을 지원한 것에 대해, 윤정옥은 1997년 한 세미나에서 "아시아 여성 기금을 받으면 공창이 된다", "아시아 여성 기금의 돈을 받는 것은 다시 더러운 돈으로 몸을 파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전 위안부 할머니들을 압박하여 수령 거부를 강요했다. 1998년 11월 18일 수요 집회에서 아시아 여성 기금을 받으려는 한국인 위안부들의 행위는 한국 정부, 한국 국민, 정대협에 대한 배신이라고 발언했다.

아시아 여성 기금 이사였던 시모무라 미츠코는 "정대협 멤버들과 함께 일본을 방문한 위안부 할머니가 '숙소에 갇혀 밖에 나가지 못하게 되어 싫다'고 전화한 적도 있습니다. 할머니들은 속으로는 정대협을 원망했지만, 정대협이 무서워서 공개적인 자리에 나오라고 하면 나가고, 데모를 하라고 하면 데모를 했습니다. 불쌍한 약자들이었습니다"라고 증언했다[6][5][7]

아시아 여성 기금을 희망하면 매춘부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위안부들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젊었다면 입을 벌려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게 하고 싶다"며 분노를 터뜨렸으며, 정대협으로부터 오히려 인권을 유린당해 왔다고 비판했다. 정대협은 실제로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으면 자발적 공창이 된다고 주장하며, 아시아 여성 기금을 받은 7명의 전 위안부에 대해 한국 정부의 보조금 수령을 방해하고, 협박과 공갈을 일삼았다는 사실을 전 위안부들이 고발했다[6][7]

2020년 정대협의 후신 단체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전 대표인 윤미향을 둘러싼 전 위안부들의 고발, 각종 부정 의혹과 관련하여 "정대협은 처음부터 '정치와는 얽히지 않는다'는 합의 하에 출발했다", "단체가 나서서 돈을 모으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실정을 알리고 할머니들을 돕겠다는 단체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 "1992년에 시작된 수요 집회 초기에도 모금 활동은 전혀 없었다"며 현재의 정의연과 윤미향을 비판했다[8]

3. 2. 정의기억연대 및 윤미향 관련 비판

1996년의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에는 윤정옥이 "일본군이 젊은 여성들을 학교에 모아 강제 연행해 갔다"고 주장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4]

아시아 여성 기금에 반대하며, 기금을 받으려는 위안부들을 모욕하고 방해해 왔다. 2004년, 고 심미자 등 전 위안부 13명이 정대협과 나눔의 집을 상대로 "모금 행위 및 데모 동원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 전에 성명서를 발표하고, 정대협을 "위안부 문제를 구실로 자신들의 부귀영화만을 누리고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고령의) 전 위안부들을 역사의 무대에 구걸하는 사람으로 팔아 사리사욕을 채워 온 악당"이라고 규탄했다.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에서 전 위안부들에게 각 5000000JPY을 지원한 것에 대해, 윤정옥은 1997년 한 세미나에서 "아시아 여성 기금을 받으면 공창이 된다", "아시아 여성 기금의 돈을 받는 것은 다시 더러운 돈으로 몸을 파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전 위안부 할머니들을 압박하여 수령 거부를 강요했다. 1998년 11월 18일 수요집회에서 아시아 여성 기금을 받으려는 한국인 위안부들의 행위는 한국 정부, 한국 국민, 정대협에 대한 배신이라고 발언했다. 아시아 여성 기금 이사였던 시모무라 미츠코는 "정대협 멤버들과 함께 일본을 방문한 위안부 할머니가 '숙소에 갇혀 밖에 나가지 못하게 되어 싫다'고 전화한 적도 있습니다. 할머니들은 속으로는 정대협을 원망했지만, 정대협이 무서워서 공개적인 자리에 나오라고 하면 나가고, 데모를 하라고 하면 데모를 했습니다. 불쌍한 약자들이었습니다"라고 증언했다[6][5][7]。아시아 여성 기금을 희망하면 매춘부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위안부들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젊었다면 입을 벌려 자유롭게 말하지 못하게 하고 싶다"며 분노를 터뜨렸으며, 정대협으로부터 오히려 인권을 유린당해 왔다고 비판했다. 정대협은 실제로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으면 자발적 공창이 된다고 주장하며, 아시아 여성 기금을 받은 7명의 전 위안부에 대해 한국 정부의 보조금 수령을 방해하고, 협박과 공갈을 일삼았다는 사실을 전 위안부들이 고발했다[6][7]

2020년, 정대협의 후신 단체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와 전 대표인 윤미향을 둘러싼 전 위안부들의 고발, 각종 부정 의혹과 관련하여 "정대협은 처음부터 '정치와는 얽히지 않는다'는 합의 하에 출발했다", "단체가 나서서 돈을 모으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실정을 알리고 할머니들을 돕겠다는 단체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 "1992년에 시작된 수요 집회 초기에도 모금 활동은 전혀 없었다"며 현재의 정의연과 윤미향을 비판했다[8]

4. 저서


  • 《미국 자연주의와 셔우드 앤더슨》 (한국영어영문학회 간행, 1970년)
  •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 해설과 주석 (탐구당, 1984년)
  • 《조선인 여성이 본 '위안부 문제': 내일을 함께 만들기 위해》 (윤정옥 외 삼일서방, 1992년) (한겨레신문 연재 수록)
  • 《증언·강제 연행된 조선인 군 위안부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아카시 서점 1993) (조사·편집 참여)
  • 《평화를 희구하며: '위안부' 피해자의 존엄 회복을 향한 걸음》 (하쿠사 서점, 2003년)

5. 상훈

참조

[1] 웹사이트 윤정옥 http://genderarchive[...] 2022-11-19
[2] 웹사이트 스쿠프! 위안부 극 여배우가 회오의 증언 정대협의 배신、그리고 구 사회당과의 관계 {{!}} Web「정론」|Seiron https://seiron-sanke[...] 2020-05-20
[3] 간행물 日本軍性奴隷制(「従軍慰安婦」)問題と最近の動向(<特集>戦後60年・ポスト北京の10年) https://doi.org/10.1[...] 神戸女学院大学
[4] 문서 쿠마라스와미 보고 (P9) http://www.awf.or.jp[...]
[5] 웹사이트 위안부문제 해결을 막은 아사히와 한국 https://ironna.jp/ar[...] 2020-05-20
[6] 웹사이트 위안부를 이용한 사람은 누구인가、한국에서 잇따라 폭로되는 진실 의혹 끝없는 정대협 전 대표、지금은 집중 포화 상태에 {{!}} JBpress(Japan Business Press) https://jbpress.isme[...] 2020-05-20
[7] 웹사이트 2004년 위안부 피해자 33인「정신대대책협의회、우리를 거지로 팔아넘긴 악당」 https://news.livedoo[...] 2020-05-20
[8] 뉴스 尹美香氏、挺対協を立ち上げた名誉教授たちまで利用していた http://www.chosunonl[...] 朝鮮日報 2020-05-22
[9] 뉴스 挺對協, 유엔인권위 참석 보고대회 http://news.naver.co[...] 연합뉴스 1996-04-23
[10] 뉴스 “할머니들 다 돌아가셔도 내가 끝까지 할거야” http://www.womennews[...] 여성신문 2013-10-22
[11] 뉴스 "할머니들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어떻게 부인해?" http://news.naver.co[...] 노컷뉴스 2007-10-08
[12] 뉴스 제2회 유관순賞 윤정옥씨…정신대 국제이슈화 헌신 http://news.naver.co[...] 동아일보 2003-02-28
[13] 뉴스 “베트남전 성범죄를 사죄하자” http://news.naver.co[...] 한겨레21 2006-05-09
[14] 웹인용 윤미향, 위안부 할머니 이용 논란...이미 2004년 위안부 할머니들은 정대협(정의연 전신)을 분노에 찬 눈으로 바라봤다 http://monthly.chosu[...] 20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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