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참마속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읍참마속은 촉나라 제갈량이 군율을 지키기 위해 아끼던 부하 마속을 처형한 고사에서 유래한 성어이다. 마속이 가정 전투에서 제갈량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 촉나라가 패배하자, 제갈량은 군율에 따라 마속을 처형했다. 이 사건은 개인적인 감정을 떠나 공정한 처벌을 해야 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정사에서는 제갈량이 마속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반면, 삼국지연의에서는 제갈량이 유비의 충고를 따르지 않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눈물을 흘린 것으로 묘사된다.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원칙과 규율을 지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로 사용되며, 일본에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사용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삼국 시대 (중국) - 중국 삼국 시대의 행정 구역
중국 삼국 시대의 행정 구역은 후한의 13주 체제를 이어받아 조위, 동오, 촉한으로 나뉘어 운영되었으며, 각 국가는 군사적 필요에 따라 주를 나누거나 합치고 주자사 또는 주목의 권한을 강화했다. - 삼국 시대 (중국) - 오호
오호는 후한 시대부터 중국 북부에 거주하며 한족과 공존한 흉노, 갈, 선비, 저, 강족을 지칭하는 용어로, 서진 말기 혼란을 틈타 여러 국가를 세운 다양한 계통의 부족 혼합 집단이다. - 제갈량 - 와룡묘
와룡묘는 제갈량을 모시는 사당으로, 조선 시대에 건립되어 화재로 소실된 후 재건되었으며, 제갈량상, 관우상, 단군상 등을 모시고 한국 토속 신앙과 결합된 무속 신앙의 형태를 띤다. - 제갈량 - 무후사
무후사는 쓰촨성 청두시에 있는 사당으로, 제갈량과 유비를 함께 모시며, 촉한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청나라 시대의 유적지이다. - 한자성어 - 청화
"세이와"는 일본어로 다양한 의미를 지닌 다의어이며, 세이와 천황, 세이와 겐지, 세이와정책연구회, 세이와 대학 등 여러 인물, 집단, 지명 등에 사용되므로 문맥을 고려하여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 - 한자성어 - 와신상담
와신상담은 오나라와 월나라의 대립에서 유래하여 복수를 위해 고난을 감내하며 노력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읍참마속 | |
---|---|
개요 | |
사건 | 읍참마속 |
시기 | 삼국 시대 |
배경 | 제갈량의 제1차 북벌 |
관련 인물 | 마속 제갈량 |
상세 내용 | |
원문 | 揮淚斬馬謖 |
내용 | 제갈량이 가정 전투에서 패전한 마속의 책임을 물어 눈물을 흘리며 목을 베었다는 고사 |
교훈 | 기강 확립의 중요성 공정한 법 집행의 중요성 |
유래 | 삼국지 촉지 마속전 |
기타 | |
유사 고사 | 사마천의 '읍참양저' 손무의 '오자서 처형' |
2. 성어의 경위
촉나라의 무장 마속이 가정 전투에서 제갈량의 지시를 어기고 패배를 초래하여, 제갈량은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처형했다. 이후 장완이 마속과 같이 유능한 장수를 처형한 것을 아쉬워했으나, 제갈량은 "군율 준수가 최우선"이라고 답했다.[1] 이와 관련하여 '읍참마속'이라는 성어가 생겨났으며, '제갈량휘루참마속(諸葛亮揮淚斬馬謖)'이라고도 한다.
2. 1. 역사적 사건
촉나라의 무장 마속이 가정 전투에서 제갈량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패전을 초래했다. 제갈량은 가정 전투에서의 대패로 인해 한중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고, 이막(李邈)이 마속의 구명을 청했음에도 불구하고[1] 마속을 하옥했다가 죽였다. 마속의 나이는 39세였다. 마속은 아버지와 아들처럼 지내던 제갈량에게 자식을 부탁한다는 유서를 남겼다. 제갈량은 우는 장병들 앞에서 같이 눈물을 흘리며 친히 제사 지내고 그 자식을 돌보아 주었다. 참수했다는 서술은 없지만 읍참마속이라는 성어는 이러한 고사에서 유래했으며 제갈량휘루참마속(諸葛亮揮淚斬馬謖)이라고도 한다.처형 후에 장완은 마속과 같이 유능한 장수를 처형한 것을 아쉽게 여겼으나, 제갈량은 ‘군율(軍律)의 준수가 최우선’이라고 답하였다. 이 이야기의 출전은 『삼국지』 「촉서 마량전」이다.
2. 2. 제갈량의 결단
가정 전투에서 마속이 제갈량의 지시를 따르지 않아 패배하자, 제갈량은 한중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막(李邈)이 마속의 구명을 청했음에도[1] 제갈량은 마속을 하옥했다가 죽였다. 마속의 나이는 39세였다. 마속은 아버지와 아들처럼 지내던 제갈량에게 자식을 부탁한다는 유서를 남겼다. 제갈량은 우는 장병들 앞에서 같이 눈물을 흘리며 친히 제사 지내고 그 자식을 돌보아 주었다. 참수했다는 서술은 없지만, 읍참마속 고사는 이러한 고사에서 유래했으며 제갈량휘루참마속(諸葛亮揮淚斬馬謖)이라고도 한다.장완은 마속과 같이 유능한 장수를 처형한 것을 아쉽게 여겼으나, 제갈량은 ‘군율(軍律)의 준수가 최우선’이라고 답하였다.
3. 〈정사〉와 《연의》의 차이
정사와 삼국지연의에서는 읍참마속 고사가 다르게 묘사된다. 정사에서는 제갈량이 마속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고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연의에서는 제갈량이 눈물을 흘린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3. 1. 정사의 기록
〈정사〉에서는 "제갈량은 그(마속)를 위해 눈물을 흘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즉 군율을 지키기 위해 애제자를 처형하게 되었으며, 그를 생각하며 제갈량은 눈물을 흘렸다고 되어 있다.3. 2. 연의의 묘사
이 고사에 관한 기술은 정사와 그것을 기반으로 한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약간의 차이가 나타난다.연의에서는 장완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묻자, 제갈량은 '마속을 위해 운 것이 아니'라고 답하였다. 제갈량은 유비로부터 '마속을 중용해서는 안 된다'는 충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따르지 않은 자신의 불찰을 한탄하며 울었다고 묘사된다.[1]
4. 현대적 의미와 한국 사회
읍참마속은 현대 한국 사회에서 대체로 정사의 고사에 해당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울면서(泣) 베는(斬) 것이 아니라, 읍(泣) 없이 참(斬)만 있는 토사구팽(兎死狗烹)과 혼동되기도 한다. 또한, 규율과 원칙을 지키기 위한 본래의 의미가 약해진 채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2]
4. 1. 한국 사회에서의 의미
현대 대한민국에서는 대체로 정사의 고사에 해당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읍(泣) 없이 참(斬)만 있을 뿐인 토사구팽과 혼동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규율과 원칙을 지키기 위한 본래의 함의가 경시되는 용례도 있다.[2]4. 2. 오용 사례와 본래 의미
대한민국에서는 대체로 정사의 고사에 해당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읍(泣) 없이 참(斬)만 있을 뿐인 토사구팽(兎死狗烹)과 혼동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규율과 원칙을 지키기 위한 본래의 함의가 경시되는 용례도 있다.[2]5. 일본에서의 사용
일본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법과 규율을 어기고 책임을 묻지 않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읍참마속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정사(正史)"의 기술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매스 미디어에서는 어떤 불상사 등을 일으켜 어쩔 수 없이 처분된 인물이 있었을 경우 "울면서 ○○를 벤다"와 같이 인용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참조
[1]
서적
화양국지
[2]
웹인용
泣斬馬謖을 泣함
https://www.itkc.or.[...]
2021-12-19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