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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 (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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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부는 후한 말기의 인물로, 원상 휘하에서 주부로 활동하며 조조군에게 포위된 업에 잠입하여 정보를 전달하는 활약을 했다. 이후 원담에게 투항하여 평원에 부임했으나, 원담 세력 멸망 후 조조에게 귀순했다. 조조 밑에서 평원 성내 혼란을 수습했으나 참언으로 좌천되기도 했으며, 70세 즈음에 사례교위와 양평태수를 역임하다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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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 (후한)

2. 생애

흥평(興平) 연간, 이부는 부추를 심어 가꾸었으나, 기근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부추를 요청해도 주지 않고 자신도 먹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은 이부를 의지가 굳센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관리로 임명되어 건안(建安) 연간 원상이 기주를 차지하자 그의 밑에서 주부(注簿)를 지냈다.

건안 9년, 심배에서 조조군에게 포위되자 원상은 군대를 이끌고 업에 도착했으나 포위가 견고하여 심배에게 소식을 알릴 방법이 없었다. 이에 이부는 자신이 직접 가겠다고 자원하여 세 명만 데리고 조조군의 도독으로 위장, 포위를 통과하고 업으로 들어갔다. 군사들은 북을 치며 환호하였고, 업성 내에서는 원상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만세를 불렀다. 조조는 이부의 기지에 쓴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성으로 들어간 이부는 심배에게 성 안의 곡식이 적으니 노인과 아이들을 내보내 곡식을 아끼자고 건의했다. 심배는 이부의 진언을 받아들여 성 안의 노인과 아이들에게 백기를 들게 하여 성 밖으로 내보냈다. 이때 이부는 성을 탈출하여 원상에게 돌아갔다.

이후 심배와 원상은 봉화를 피워 연락했고, 원상은 심배와 함께 조조를 공격했으나 패퇴하였다. 이부는 원상과 헤어지게 되어 원담에게 항복했고 평원(平原)에 부임하였다.

205년 원담의 세력이 멸망하자 이부는 조조에게 출두하여 전권을 위임받아 평원 성내의 혼란을 진정시켰다. 이후 조조에게 귀순하였으나, 참언을 받아 해장(解長)으로 좌천되었다.[1] 70세 즈음에는 사례교위에 임명되었으며, 양평태수(陽平太守)로 재임하던 중 숨을 거두었다.

2. 1. 초기 생애와 원상 휘하에서의 활약

흥평(興平) 연간, 이부는 부추를 심어 가꾸었으나, 기근에 시달리던 사람들이 부추를 요청해도 주지 않고 자신도 먹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은 이부를 의지가 굳센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관리가 되었으며, 건안(建安) 연간 원상이 기주를 차지하자 그의 밑에서 주부(注簿)를 지냈다.[1]

건안 9년, 심배에서 조조군에게 포위되자 원상은 군대를 이끌고 업에 도착했으나 포위가 견고하여 심배에게 소식을 알릴 방법이 없었다. 원상은 이부와 상의했고, 이부는 자신이 직접 가겠다고 자원했다. 이부는 세 명만 데리고 조조군의 도독으로 위장하여 포위를 통과하고 업으로 들어갔다. 군사들은 북을 치며 환호하였고, 업성 내에서는 원상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만세를 불렀다. 조조도 이부의 기지에 쓴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성으로 들어간 이부는 심배에게 성 안의 곡식이 적으니 노인과 아이들을 내보내 곡식을 아끼자고 건의했다. 심배는 이부의 진언을 받아들여 성 안의 노인과 아이들에게 백기를 들게 하여 성 밖으로 내보냈다. 이때 이부는 성을 탈출하여 원상에게 돌아갔다.

이후 심배와 원상은 봉화를 피워 연락했고, 원상은 심배와 함께 조조를 공격했으나 패퇴하였다. 이부는 원상과 헤어지게 되어 원담에게 항복했고 평원(平原)에 부임하였다.[1]

2. 2. 원담 휘하에서의 짧은 부임과 조조에게 귀순

건안 9년(204년), 심배에서 조조군에게 포위당하자 원상은 군대를 이끌고 업에 도착했으나 포위가 철통같아 심배에게 자신의 소식을 알릴 도리가 없었다. 원상은 이에 대하여 이부와 상의하였는데, 이부가 직접 가겠다고 자원하였다. 이부는 기병 세 명이면 족하다고 하며, 세 명만을 데리고 조조군의 도독으로 위장하여 포위를 통과하고 유유히 업으로 들어갔다. 이 모습을 본 군사들은 북을 치며 환호하였고, 업성 내에서는 원상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가 만세를 불렀다. 조조도 이부의 기지에 쓴웃음을 지었다.[1]

성으로 들어간 이부는 심배에게 "지금 성 안의 곡식이 적습니다. 노인과 아이들은 쓸모가 없으니, 그들을 밖으로 내보내 곡식을 아끼는 것이 낫습니다."고 진언하였다. 심배는 이부의 진언을 받아들여 성 안의 노인과 아이들에게 백기를 들게 하여 성 밖으로 내보냈다. 이때 이부는 성을 탈출하여 원상에게 돌아갔다.[1]

이후 심배와 원상은 봉화를 피워 서로 연락했고, 원상은 심배와 기각지세를 취해 안팎으로 조조를 공격했으나 오히려 조조의 거듭된 맹공격을 받아 패퇴하였다. 이부는 원상과 헤어지게 되었으므로 원담에게 항복했고 평원에 부임하였다.[1]

건안 10년(205년), 원담의 세력이 멸망하자 조조에게 출두하여 조조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평원 성내의 혼란을 진정시켰다.[1]

2. 3. 조조 휘하에서의 관직 생활

205년 원담의 세력이 멸망하자 이부는 조조에게 출두하여 전권을 위임받아 평원 성내의 혼란을 진정시켰다.[1] 이후 조조의 밑으로 들어갔으나, 참언을 받아 해장(解長)으로 좌천되었다.[1] 70세 즈음에는 사례교위에 임명되었으며, 양평태수(陽平太守)로 재임하던 중 숨을 거두었다.

3. 《삼국지연의》 속 이부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도 업성으로의 침입, 노인과 아이들의 항복까지는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업성 탈출 이후의 기술은 없고, 조조의 부하가 된 것에 대해서도 언급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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