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듀어런스 (1912년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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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듀어런스 (1912년 배)는 노르웨이 프람네스 조선소에서 건조된 목조 선박으로, 원래는 증기 요트로 설계되어 북극 관광 및 사냥 파티를 위한 고급 숙소를 제공할 목적이었다. 1912년 진수 당시에는 '폴라리스'로 명명되었으며, 튼튼한 구조와 3개의 돛대, 증기 엔진을 갖추었다. 재정 문제로 인해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에게 판매되었고, 섀클턴은 '인듀어런스'로 개명하여 남극 탐험에 사용했다. 1914년 웨델 해에서 유빙에 갇히면서 조난당했고, 이후 표류하다가 압력으로 파괴되어 침몰했다. 2022년 Endurance22 탐험대에 의해 난파선이 발견되었으며, 선체는 놀랍도록 좋은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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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듀어런스 (1912년 배) - [배(Ship)]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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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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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주 | 어니스트 섀클턴 |
침몰 날짜 | 1915년 11월 21일 |
잔해 발견 날짜 | 2022년 3월 5일 |
잔해 발견 장소 | 웨델해 |
선박 정보 | |
선박 이름 | 인듀어런스 (Endurance) |
건조 장소 | 프람내스 조선소, 산데피오르, 노르웨이 |
기공 | 해당사항 없음 |
진수 | 1912년 12월 17일 |
취역 | 1912년 ~ 1915년 |
퇴역 | 1915년 10월 27일 |
선박 종류 | 바크형 범선 |
길이 | 144 피트 (43.9 m) |
너비 | 25 피트 (7.6 m) |
흘수선 | 해당사항 없음 |
깊이 | 해당사항 없음 |
추진 동력 | 석탄 연료 증기 및 돛 |
돛 | 해당사항 없음 |
승무원 | 28명 |
속도 | 10.2 노트 (18.9 km/h) |
2. 설계 및 건조
올레 안데루드 라르센이 설계한 ''인듀어런스''는 노르웨이 산데피오르에 있는 프람네스 조선소에서 건조되었다. 숙련된 목조 선박 건조자 크리스티안 야콥센의 감독하에 건조되었으며, 그는 고용된 모든 사람이 숙련된 조선공일 뿐만 아니라 포경선이나 어선에서 항해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건조의 모든 세부 사항은 최대의 내구성을 보장하기 위해 세심하게 계획되었다. 예를 들어, 모든 연결부와 부속품은 최대의 강도를 위해 대각선으로 보강되었다.
이 배는 1912년 12월 17일에 진수되었으며 처음에는 북극성을 따라 ''폴라리스''로 명명되었다. 길이는 44m, 너비는 7.6m이며, 총 350 톤이었다. 원래 목적은 얼음에서도 항해할 수 있는 증기 요트로서 북극에서 소규모 관광 및 사냥 파티를 위한 고급 숙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2] 진수 당시 10개의 승객용 선실, 넓은 식당과 주방 (요리사 2명 수용), 흡연실, 승객이 사진을 현상할 수 있는 암실, 전기 조명, 심지어 작은 욕실까지 갖추고 있었다.[8]
선체는 외부에서 비슷한 크기의 다른 배와 같아 보였지만, 매우 튼튼한 구조로 극지 조건에 맞게 설계되었다. 용골 부재는 4개의 단단한 참나무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로 위에 놓여 2,200mm 두께를 이루었고, 측면은 760mm에서 460mm 사이의 두께였으며, 프레임은 일반 프레임보다 두 배나 많았고 프레임의 두께도 두 배였다. 두께가 최대 760mm에 달하는 참나무와 노르웨이 전나무 판자로 만들어졌으며, 매우 강하고 무거운 나무인 그린하트로 덮여 있었다. 얼음을 정면으로 마주하도록 설계된 선수에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각 목재는 배의 설계 곡선을 따르도록 자연스러운 모양을 선택한 단일 참나무로 만들어졌다. 이 조각들을 함께 놓으면 1,300mm의 두께가 되었다.
3개의 돛대 중에서 앞 돛대는 사각 돛, 메인 돛대와 미즈 돛대는 모두 앞뒤로 장비를 갖추어 바크틴이었다. 돛 외에도 ''인듀어런스''에는 260kW 석탄 연소 증기 엔진이 장착되어 있어 최대 18.9km/h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1912년 진수 당시 ''인듀어런스''는 프람을 제외하면, 프리드쇼프 난센과 나중에 로알 아문센이 사용한 배로, 아마도 지금까지 건조된 가장 튼튼한 나무 배였을 것이다. ''프람''은 바닥이 둥글어서 얼음이 닫히면 배가 위로 밀려나고 압축되는 얼음의 압력을 받지 않았다. 반면에, ''인듀어런스''는 두꺼운 팩 얼음에 갇히도록 의도되지 않았기 때문에, 압착에서 벗어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탐험에서 대신 얼음이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갈라질 때까지 유빙에 의해 부서지는 것을 견디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이 관찰되었다.
2. 1. 구조적 특징
올레 안데루드 라르센이 설계한 ''인듀어런스''는 노르웨이 산데피오르에 있는 프람네스 조선소에서 건조되었다. 숙련된 목조 선박 건조자 크리스티안 야콥센의 감독하에 건조되었으며, 그는 고용된 모든 사람이 숙련된 조선공일 뿐만 아니라 포경선이나 어선에서 항해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건조의 모든 세부 사항은 최대의 내구성을 보장하기 위해 세심하게 계획되었다. 예를 들어, 모든 연결부와 부속품은 최대의 강도를 위해 대각선으로 보강되었다.이 배는 1912년 12월 17일에 진수되었으며 처음에는 북극성을 따라 ''폴라리스''로 명명되었다. 길이는 144피트(44m), 너비는 25피트(7.6m)이며, 총 350 톤이었다. 원래 목적은 얼음에서도 항해할 수 있는 증기 요트로서 북극에서 소규모 관광 및 사냥 파티를 위한 고급 숙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2] 진수 당시 10개의 승객용 선실, 넓은 식당과 주방 (요리사 2명 수용), 흡연실, 승객이 사진을 현상할 수 있는 암실, 전기 조명, 심지어 작은 욕실까지 갖추고 있었다.[8]
선체는 외부에서 비슷한 크기의 다른 배와 같아 보였지만, 매우 튼튼한 구조로 극지 조건에 맞게 설계되었다. 용골 부재는 4개의 단단한 참나무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로 위에 놓여 85인치(2,200mm) 두께를 이루었고, 측면은 30인치(760mm)에서 18인치(460mm) 사이의 두께였으며, 프레임은 일반 프레임보다 두 배나 많았고 프레임의 두께도 두 배였다. 두께가 최대 30인치(760mm)에 달하는 참나무와 노르웨이 전나무 판자로 만들어졌으며, 매우 강하고 무거운 나무인 그린하트로 덮여 있었다. 얼음을 정면으로 마주하도록 설계된 선수에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각 목재는 배의 설계 곡선을 따르도록 자연스러운 모양을 선택한 단일 참나무로 만들어졌다. 이 조각들을 함께 놓으면 52인치(1,300mm)의 두께가 되었다.
3개의 돛대 중에서 앞 돛대는 사각 돛, 메인 돛대와 미즈 돛대는 모두 앞뒤로 장비를 갖추어 바크틴이었다. 돛 외에도 ''인듀어런스''에는 350마력(260kW) 석탄 연소 증기 엔진이 장착되어 있어 최대 10.2노트(18.9km/h)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1912년 진수 당시 ''인듀어런스''는 프람을 제외하면, 프리드쇼프 난센과 나중에 로알 아문센이 사용한 배로, 아마도 지금까지 건조된 가장 튼튼한 나무 배였을 것이다. ''프람''은 바닥이 둥글어서 얼음이 닫히면 배가 위로 밀려나고 압축되는 얼음의 압력을 받지 않았다. 반면에, ''인듀어런스''는 두꺼운 팩 얼음에 갇히도록 의도되지 않았기 때문에, 압착에서 벗어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탐험에서 대신 얼음이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갈라질 때까지 유빙에 의해 부서지는 것을 견디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이 관찰되었다.
2. 2. 장비 및 편의 시설
올레 안데루드 라르센이 설계하고 프람네스 조선소에서 건조된 ''인듀어런스''는 숙련된 목조 선박 건조자 크리스티안 야콥센의 감독하에 건조되었다. 야콥센은 모든 사람이 숙련된 조선공일 뿐만 아니라 포경선이나 어선에서 항해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모든 연결부와 부속품은 최대의 강도를 위해 대각선으로 보강되었다.''인듀어런스''는 1912년 12월 17일에 진수되었으며 처음에는 북극성을 따라 ''폴라리스''로 명명되었다. 길이는 144피트(44m), 너비는 25피트(7.6m)이며, 총 350톤이었다. 원래 목적은 얼음에서도 항해할 수 있는 증기 요트로서 북극에서 소규모 관광 및 사냥 파티를 위한 고급 숙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진수 당시 10개의 승객용 선실, 넓은 식당과 주방 (요리사 2명 수용), 흡연실, 승객이 사진을 현상할 수 있는 암실, 전기 조명, 심지어 작은 욕실까지 갖추고 있었다.[8]
선체는 외부에서 비슷한 크기의 다른 배와 같아 보였지만, 극지 조건에 맞게 설계되어 매우 튼튼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용골 부재는 4개의 단단한 참나무 조각으로 이루어져 서로 위에 놓여 85인치(2.2m) 두께를 이루었고, 측면은 30인치(760mm)에서 18인치(460mm) 사이의 두께였으며, 프레임은 일반 프레임보다 두 배나 많았고 프레임의 두께도 두 배였다. 두께가 최대 30인치(760mm)에 달하는 참나무와 노르웨이 전나무 판자로 만들어졌으며, 매우 강하고 무거운 나무인 그린하트로 덮여 있었다. 얼음을 정면으로 마주하도록 설계된 선수에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각 목재는 배의 설계 곡선을 따르도록 자연스러운 모양을 선택한 단일 참나무로 만들어졌다. 이 조각들을 함께 놓으면 52인치(1.3m)의 두께가 되었다.
3개의 돛대 중에서 앞 돛대는 사각 돛, 메인 돛대와 미즈 돛대는 모두 앞뒤로 장비를 갖추어 바크틴이었다. 돛 외에도 ''인듀어런스''에는 350마력(260kW) 석탄 연소 증기 엔진이 장착되어 있어 최대 10.2노트(18.9km/h)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1912년 진수 당시 ''인듀어런스''는 프람을 제외하면, 프리드쇼프 난센과 나중에 로알 아문센이 사용한 배로, 아마도 지금까지 건조된 가장 튼튼한 나무 배였을 것이다. ''프람''은 바닥이 둥글어서 얼음이 닫히면 배가 위로 밀려나고 압축되는 얼음의 압력을 받지 않았다. 반면에, ''인듀어런스''는 두꺼운 팩 얼음에 갇히도록 의도되지 않았기 때문에, 압착에서 벗어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탐험에서 ''인듀어런스''는 얼음이 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갈라질 때까지 유빙에 의해 부서지는 것을 견디는 경향이 있었다.
3. 섀클턴의 구매
''폴라리스''는 원래 벨기에 탐험가 아드리앙 드 제를라슈와 노르웨이 박애주의자 라르스 크리스텐센을 위해 건조되었다. 재정적인 문제로 제를라슈는 파트너십에서 탈퇴했고, 크리스텐센은 배를 넘겨주고 장비를 갖추기 위한 최종 금액을 프람네스 조선소에 지불할 수 없게 되었다. 1년 넘게 크리스텐센은 이 배를 팔려고 했지만, 얼음에서도 항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 독특한 디자인에, 화물 공간이 거의 없고 화물칸이 없어 고래잡이 또는 물개잡이 산업에서 쓸모가 없었다. 한편, 개인용 증기 요트로 쓰기에는 너무 크고, 느리고, 불편했다. 결국 크리스텐센은 1914년 1월에 어니스트 섀클턴에게 배를 14,000 파운드에 판매하게 되어 기뻐했는데, 이는 크리스텐센에게는 상당한 손실을 의미하는 금액으로, 프람네스에 지불해야 할 미결제 금액을 겨우 충당할 수 있었을 뿐, 배의 총 건조 비용은 훨씬 밑돌았다. 작가 알프레드 앤싱은 섀클턴과 같은 "탐험가의 계획을 진전시키기 위해 손실을 기꺼이 감수했다"고 보고한다. 섀클턴은 당시 돈이 없었지만, 크리스텐센은 그가 배를 구매하기를 간절히 원했고, 보증금을 직접 지불했다. 섀클턴이 배를 구매한 후, 섀클턴 가문의 좌우명인 Fortitudine vincimusla("인내로 우리는 정복한다")에 따라 ''인듀어런스''로 개명했다.
섀클턴은 이 배를 노르웨이에서 런던으로 옮기도록 했다. 1914년 봄에 밀월 도크에 도착했고, 섀클턴은 7월 말까지 장비, 물품, 자금, 승무원을 모았다. 트윈 데크는 화물칸으로 개조되었고, 승무원들은 포캐슬에 거처를 마련했다. 암실은 보일러 뒤에 그대로 있었다. 개조를 통해 배는 흰색과 금색에서 검은색으로 다시 칠해졌다. 배는 원래 이름과 관련된 큰 다섯 개의 별을 선미에 그대로 유지했다.[3]
새로운 장비에는 세 개의 보트가 포함되었다. 두 척은 고래잡이 산업에서 중고로 구매한 6.4m의 트랜섬으로 제작된 노 젓는 커터였다. 세 번째는 원정대를 위해 프랭크 워슬리, ''인듀어런스''의 새로운 선장이 작성한 사양에 따라 건조된 6.9m의 양쪽 끝이 뾰족한 노 젓는 고래잡이 보트였다. 개조 후, ''인듀어런스''는 1914년 8월 1일,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한 날, 플리머스로 가는 짧은 해안 항해를 시작했다.
''인듀어런스''의 승무원을 찾기 위해 섀클턴은 ''타임스''에 다음과 같은 광고를 게재했다고 한다.
''인듀어런스'' 구매 전 16년 동안 남극권으로의 항해는 거의 모두 성공적이었으며, 30년 된 포경선 ''앤타크틱'' 한 척만 얼음에 부서졌다. 얼음이 모든 파도를 멈추게 하는 바다에서 목적에 맞게 건조된 배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고 느껴지면서, ''인듀어런스''는 항해를 위해 보험에 가입한 최초의 배가 되었다. 이전의 모든 사례는 얼음으로 들어가는 항해 전 마지막 기항지에서 보험이 종료되었다. 로이즈 오브 런던과 Indemnity Marine Insurance Company는 ''인듀어런스''를 15,000파운드의 가치로 인수했다.
3. 1. 개조
''폴라리스''는 원래 벨기에 탐험가 아드리앙 드 제를라슈와 노르웨이 박애주의자 라르스 크리스텐센을 위해 건조되었다. 재정적인 문제로 제를라슈는 파트너십에서 탈퇴했고, 크리스텐센은 배를 넘겨주고 장비를 갖추기 위한 최종 금액을 프람네스 조선소에 지불할 수 없게 되었다. 1년 넘게 크리스텐센은 이 배를 팔려고 했지만, 얼음에서도 항해할 수 있도록 설계된 독특한 디자인에, 화물 공간이 거의 없고 화물칸이 없어 고래잡이 또는 물개잡이 산업에서 쓸모가 없었다. 한편, 개인용 증기 요트로 쓰기에는 너무 크고, 느리고, 불편했다. 결국 크리스텐센은 1914년 1월에 어니스트 섀클턴에게 배를 14,000 파운드에 판매하게 되어 기뻐했는데, 이는 크리스텐센에게는 상당한 손실을 의미하는 금액으로, 프람네스에 지불해야 할 미결제 금액을 겨우 충당할 수 있었을 뿐, 배의 총 건조 비용은 훨씬 밑돌았다. 작가 알프레드 앤싱은 섀클턴과 같은 "탐험가의 계획을 진전시키기 위해 손실을 기꺼이 감수했다"고 보고한다. 섀클턴은 당시 돈이 없었지만, 크리스텐센은 그가 배를 구매하기를 간절히 원했고, 보증금을 직접 지불했다. 섀클턴이 배를 구매한 후, 섀클턴 가문의 좌우명인 Fortitudine vincimusla("인내로 우리는 정복한다")에 따라 ''인듀어런스''로 개명했다.섀클턴은 이 배를 노르웨이에서 런던으로 옮기도록 했다. 1914년 봄에 밀월 도크에 도착했고, 섀클턴은 7월 말까지 장비, 물품, 자금, 승무원을 모았다. 트윈 데크는 화물칸으로 개조되었고, 승무원들은 포캐슬에 거처를 마련했다. 암실은 보일러 뒤에 그대로 있었다. 개조를 통해 배는 흰색과 금색에서 검은색으로 다시 칠해졌다. 배는 원래 이름과 관련된 큰 다섯 개의 별을 선미에 그대로 유지했다.[3]
새로운 장비에는 세 개의 보트가 포함되었다. 두 척은 고래잡이 산업에서 중고로 구매한 21피트(6.4m)의 트랜섬으로 제작된 노 젓는 커터였다. 세 번째는 원정대를 위해 프랭크 워슬리, ''인듀어런스''의 새로운 선장이 작성한 사양에 따라 건조된 22.5피트(6.9m)의 양쪽 끝이 뾰족한 노 젓는 고래잡이 보트였다. 개조 후, ''인듀어런스''는 1914년 8월 1일,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한 날, 플리머스로 가는 짧은 해안 항해를 시작했다.
''인듀어런스''의 승무원을 찾기 위해 섀클턴은 ''타임스''에 다음과 같은 광고를 게재했다고 한다.
''인듀어런스'' 구매 전 16년 동안 남극권으로의 항해는 거의 모두 성공적이었으며, 30년 된 포경선 ''앤타크틱'' 한 척만 얼음에 부서졌다. 얼음이 모든 파도를 멈추게 하는 바다에서 목적에 맞게 건조된 배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고 느껴지면서, ''인듀어런스''는 항해를 위해 보험에 가입한 최초의 배가 되었다. 이전의 모든 사례는 얼음으로 들어가는 항해 전 마지막 기항지에서 보험이 종료되었다. 로이즈 오브 런던과 Indemnity Marine Insurance Company는 ''인듀어런스''를 15,000파운드의 가치로 인수했다.
4. 항해
인듀어런스는 1914년 8월 8일 영국 플리머스를 출발하여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했으며, 워슬리의 지휘 하에 항해했다. 섀클턴은 탐험대 조직을 마무리하고 막바지 자금 모금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에 머물렀다. 이것은 인듀어런스의 첫 번째 주요 항해였으며 시운전 항해에 해당했다. 얼음용으로 건조되었지만, 많은 선원들은 선체의 둥근 모양이 거친 바다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섀클턴은 증기선을 타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서 인듀어런스가 도착한 지 며칠 만에 탐험대와 합류했다.[8]
1914년 10월 26일, 인듀어런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마지막 기항지가 될 사우스조지아섬의 그리트비켄에 있는 포경 기지를 향해 출항하여 11월 5일에 도착했다. 인듀어런스는 1914년 12월 5일 그리트비켄을 출발하여 웨델해 남쪽 지역으로 향했다.
사우스조지아섬을 떠난 지 이틀 후, 인듀어런스는 극지 유빙과 마주쳤고, 진척도는 느려졌다. 몇 주 동안 인듀어런스는 유빙을 헤쳐나가 하루 평균 55.56km 미만을 항해했다. 1915년 1월 15일, 인듀어런스는 목적지인 바젤만에서 370.4km 이내에 있었다.[8] 다음날 아침, 두꺼운 유빙이 발견되었고 오후에는 폭풍이 몰아쳤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진전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이 곧 명백해졌고, 인듀어런스는 대형 좌초된 빙산의 풍하 측에서 피난처를 찾았다. 다음 이틀 동안 인듀어런스는 빙산의 보호 아래 앞뒤로 움직였다. 1월 18일, 폭풍이 약해지기 시작했고 인듀어런스는 엔진을 느린 속도로 맞춰 상돛을 올렸다. 유빙은 사라졌다. 몇 시간 후 인듀어런스가 유빙과 다시 마주칠 때까지 서서히 진척이 이루어졌다. 전진하여 유빙을 헤쳐나가기로 결정하고 오후 5시에 인듀어런스는 유빙에 진입했다. 이 얼음은 이전에 마주쳤던 것과는 달랐고, 배는 곧 두껍지만 부드러운 쇄빙 속에 갇히게 되었다. 폭풍은 더욱 강해졌고 6일 동안 북쪽 방향으로 땅을 향해 계속 불었다. 1월 24일까지 바람은 웨델해의 얼음을 땅에 완전히 압축하여 인듀어런스를 사방이 보일 정도로 얼음에 갇히게 했다. 할 수 있는 일은 남쪽 폭풍이 다른 방향으로 밀어 얼음을 풀고 열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1월 24일 이른 아침, 배 앞 45.72m 지점에 넓은 얼음 틈이 생겼다. 처음에는 너비가 4.572m이고 길이가 1.6093km였지만, 다음날 오전 중반까지 틈의 너비가 402.34m 이상으로 벌어져 인듀어런스의 선원들에게 얼음이 깨지고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틈은 배 자체에 도달하지 못했고, 전속력으로 3시간 동안 항해했지만 배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음 며칠 동안 승무원들은 남쪽 폭풍이 얼음에 가해지는 압력을 완화시켜주기를 기다렸지만, 바람이 희망했던 남/남서 방향으로 바뀌었지만 약하고 변덕스러웠다. 영하 18.89°C 정도의 이례적으로 낮은 기온은 얼음을 함께 유지했다. 얼음에 가끔 틈이 발견되었지만 배에 도달하는 것은 없었고 모두 몇 시간 안에 닫혔다.
2월 14일, 배 앞 402.34m 지점에 열린 수로가 생겼고, 새벽에는 인듀어런스가 두께가 0.61m에 불과한 부드럽고 얇은 얼음의 웅덩이에 떠 있는 것을 보여주었지만, 웅덩이는 두께가 3.66m에서 5.49m인 단단한 유빙으로 둘러싸여 열린 수로로 가는 길을 막았다. 승무원들이 하루 종일 끊임없이 작업하여 137.16m 길이의 틈을 만들었다. 이 작업은 다음날(2월 15일)까지 계속되었고, 증기를 올린 인듀어런스는 배가 수로를 돌파할 수 있도록 웅덩이 안으로 최대한 후진했다. 배가 연속적인 시도를 위해 후진하면서 뱃머리에서 느슨해진 얼음 덩어리(무게가 18톤으로 추정)에 밧줄을 묶어 길을 개척했다. 웅덩이가 배가 충분한 속도를 얻어 성공적으로 돌파하기에는 너무 작았고, 그날 말에 얼음이 다시 얼기 시작했다. 오후 3시까지 인듀어런스는 얼음을 통해 182.88m 거리를 이동했고, 깨끗한 물까지 365.76m가 남아 있었다. 섀클턴은 석탄과 인력의 소모, 배의 손상 위험이 너무 크다고 판단하고 중단을 결정했다.
4. 1. 웨델 해에서의 조난
인듀어런스(1912년 배)는 1914년 8월 8일 영국 플리머스를 출발하여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향했다.[8] 섀클턴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증기선을 타고 탐험대와 합류했다.[8] 1914년 10월 26일, 인듀어런스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마지막 기항지인 사우스조지아섬 그리트비켄의 포경 기지를 향해 출항하여 11월 5일에 도착했다. 1914년 12월 5일, 인듀어런스는 그리트비켄을 출발하여 웨델해 남쪽 지역으로 향했다.사우스조지아섬을 떠난 지 이틀 후, 인듀어런스는 극지 유빙과 마주쳤고, 진척도는 느려졌다. 몇 주 동안 유빙을 헤쳐나가 하루 평균 30해리(55.56km) 미만을 항해했다. 1915년 1월 15일, 인듀어런스는 목적지인 바젤만에서 200해리(370.4km) 이내에 있었다.[8] 그러나 다음날 아침 두꺼운 유빙이 발견되었고 오후에는 폭풍이 몰아쳤다. 인듀어런스는 대형 빙산의 풍하 측에서 피난처를 찾았고, 이후 이틀 동안 빙산의 보호 아래 앞뒤로 움직였다. 1월 18일, 폭풍이 약해지면서 인듀어런스는 엔진을 느린 속도로 맞춰 상돛을 올렸지만, 몇 시간 후 다시 유빙과 마주쳤다. 인듀어런스는 유빙에 진입했지만, 곧 두껍지만 부드러운 쇄빙 속에 갇히게 되었다. 폭풍은 더욱 강해졌고 6일 동안 북쪽 방향으로 땅을 향해 계속 불었다. 1월 24일까지 바람은 웨델해의 얼음을 땅에 완전히 압축하여 인듀어런스를 사방이 보일 정도로 얼음에 갇히게 했다.
1월 24일 이른 아침, 배 앞 50야드(45.72m) 지점에 넓은 얼음 틈이 생겼지만, 배 자체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2월 14일, 배 앞 0.25마일(402.34m) 지점에 열린 수로가 생겼고, 인듀어런스는 얇은 얼음의 웅덩이에 떠 있었지만, 두꺼운 유빙이 열린 수로로 가는 길을 막았다. 승무원들은 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섀클턴은 석탄과 인력 소모, 배 손상 위험이 크다고 판단하여 중단을 결정했다.
4. 2. 표류
1915년 2월 17일, 해가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면서 남극 여름이 끝났다. 2월 24일, 인듀어런스는 정기적인 근무가 취소되고 육상 기지 역할을 했다. 배는 천천히 남쪽으로 표류했고, 바셸 만의 착륙 지점으로부터 60마일(97km) 이내에 있었다. 그러나 배와 해안 사이의 얼음 지형은 너무 험난했다.3월까지 항해 관측 결과 배는 서북서쪽으로 방향을 틀며 표류 속도가 빨라져 3월 초부터 5월 2일 사이에 130마일(209km)을 이동했다. 이때 해가 수평선 아래로 사라지고 어두운 남극 겨울이 시작되었다.
1915년 7월 14일, ''인듀어런스''는 112 km/h (70 mph)의 풍속, 28.88 inHg (978 hPa)의 기압계 판독값, -33°C (-27°F)까지 떨어지는 기온의 남서풍 폭풍에 휩쓸렸다. 이 눈보라는 7월 16일까지 계속되었다. 이로 인해 유빙이 더 작고 개별적인 유빙으로 쪼개졌고, 웨델 해 북쪽의 물을 맑게 했다. 이는 남쪽으로 흐르는 바람이 불어갈 수 있는 긴 fetch를 제공했다. 부서진 얼음이 서로 쌓이면서 개별 부분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했고, 얼음 밭에 국지적인 강한 압력 지역을 유발했다. 다음 날까지 배에 탄 사람들에게 얼음이 부서지고 충돌하는 소리가 들렸다.
7월 동안 배는 160마일(257km)를 더 북쪽으로 표류했다. 8월 1일 아침, 압력파가 배를 붙잡고 있는 유빙을 통과하면서 400톤의 ''인듀어런스''를 들어 올리고 배를 선창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게 한 다음 물웅덩이로 떨어뜨려 거의 6개월 만에 다시 물에 뜨게 했다. 부서진 유빙 조각들이 배 주위로 닫히면서 ''인듀어런스''를 다른 얼음 덩어리에 격렬하게 움직이게 했다. 15분 이상 지난 후, 선미에서 힘이 가해져 배의 앞머리가 유빙 위로 올라가면서 선체는 압력에서 벗어나 선창 쪽으로 5도의 기울기를 보였다. 밤새 폭풍이 유빙을 더욱 교란시켜 선체를 향해 몰아치게 했고, 45도 각도로 얼음 조각을 위로 밀어 올려 배수구 높이에 이르렀다.
8월 29일, 두 개의 압력파가 배를 강타했다. 8월 31일 저녁, 천천히 압력이 가해져 ''인듀어런스''를 붙잡으면서 선체와 나무가 삐걱거리고 떨렸다. 배 주위의 얼음은 밤새 움직이고 부서지면서 선창 측면을 두들겨 댔다. 9월 30일 오후까지 모든 것이 다시 조용해졌고, 이때는 하루 10시간의 햇빛과 영상의 기온으로 봄의 징조가 있었다. 큰 유빙이 ''인듀어런스''의 선창 선수를 강타한 다음, 배의 해당 측면을 선체에 쌓인 얼음과 눈에 대고 붙잡았다. 배의 구조는 압력으로 인해 삐걱거리고 휘어졌다. 목수 해리 맥니시는 상부 갑판을 지지하는 튼튼한 참나무 보가 "지팡이 조각처럼" 구부러지고 있다고 기록했다. 갑판에서 배의 돛대는 용골의 밟는 지점이 왜곡되면서 앞뒤로 휘날렸다. 이러한 징후에도 불구하고, 워슬리는 배의 구조적 강도가 선체가 쌓이면서 얼음 자체를 부서지게 하고 있음을 언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련 이후 배의 갑판은 영구적으로 찌그러졌다.

4. 3. 침몰
10월까지 거의 영하 2°C에 달하는 기온이 기록되었고, 얼음은 더 벌어질 징후를 보였다. 10월 14일, 배의 우현에 있는 유빙이 부서지면서 ''인듀어런스''는 9개월 만에 처음으로 탁 트인 물 속에 떠 있게 되었다.10월 16일, 섀클턴은 배가 얼음이 갈라진 틈을 이용할 수 있도록 증기를 올리라고 명령했다. 보일러에 얼음에서 녹인 담수를 채우는 데 거의 4시간이 걸렸고, 이후 부속품 중 하나에서 누출이 발견되어 물을 빼내고 수리한 후 다시 채워야 했다. 다음 날, 배 앞쪽에 트인 물길이 보였다. 보일러는 하나만 점화되었고 엔진을 사용할 증기가 부족했기에, 모든 돛을 펴서 배를 느슨해진 유빙에 밀어 넣으려고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10월 18일 늦은 오후, 얼음이 다시 ''인듀어런스'' 주위를 덮쳤다. 단 5초 만에 배는 20도 기울어져 좌현으로 기울었고, 좌현 함벽이 유빙에 닿고, 그쪽의 보트가 데이빗에 매달린 채 얼음에 거의 닿을 때까지 기울어짐이 30도까지 계속되었다. 이 상태로 4시간 후, 얼음이 갈라지면서 배는 수평을 되찾았다.
그 달의 나머지 기간 동안 얼음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10월 20일, 증기를 다시 올리고 엔진을 시험했다. 10월 22일, 기온이 영하 12°C에서 영하 26°C로 급격히 떨어졌고, 바람이 남서풍에서 북동풍으로 바뀌었다. 다음 날, 얼음에 압력 능선이 형성되어 배 가까이로 이동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10월 24일, 손상된 배는 더 큰 압력파로 휩쓸려 두 유빙 사이에 갇혔다.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선미에 부딪혀 선미 기둥이 선체 판재에서 떨어져 나갔다. 거의 같은 시기에, 선수 판자가 부서져 엔진실과 앞쪽 화물창에 동시에 침수가 발생했다. 휴대용 수동 펌프를 사용하고, 주 빌지 펌프를 작동시키기 위해 증기를 발생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수위는 계속 상승했다. 주 수동 갑판 펌프는 작동하지 않았는데, 흡입구가 얼어붙었고, 석탄 벙커 내부에서 펌프 파이프에 끓는 물을 붓고 토치로 흡입 밸브를 지져서야 복구할 수 있었다. 맥니시는 손상된 선미 구역을 봉쇄하기 위해 축 터널에 체임버댐을 설치했으며, 승무원은 15분 근무, 15분 휴식으로 주 펌프 작업을 번갈아 했다. 28시간의 지속적인 작업 후, 유입되는 물은 멈추었을 뿐, 배는 여전히 심하게 침수되었다. 오후 9시, 섀클턴은 배의 보트, 비품, 필수 장비를 주변 얼음 위로 옮기라고 명령했다. 엔진실의 발판이 밀려 올라가면서 구획이 압축되어 더 이상 제자리에 놓이지 않았다. 배의 좌현 판자는 최대 15cm까지 안쪽으로 휘어졌다.
아침에는 영하 22.5°C, 저녁에는 영하 27°C까지의 기온 속에서 섀클턴은 10월 27일 오후 5시경 배를 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배를 버릴 당시 위치는 남위 69° 05', 서경 51° 30'였다.[9] 다음 날, 더 많은 물품과 비품을 회수하기 위해 배로 파티가 다시 보내졌다. 그들은 ''인듀어런스''의 좌현 전체가 안쪽으로 밀려 들어가 압축되었고, 얼음이 선수와 선미 부분을 완전히 채웠으며, 6개의 선실 중 하나만 유빙에 의해 뚫리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섀클턴은 배의 후미 전체가 "아코디언처럼 찌그러졌다"고 썼고, 앞쪽 모터 엔진은 갤리로 밀려 들어가고, 갑판에 쌓인 휘발유 통은 데크 하우스 벽을 통과하여 워드룸의 중간 지점까지 밀려 들어갔다. 배의 블루 엔사인이 미즈노 마스트에 게양되어 섀클턴의 말대로 "깃발을 휘날리며 침몰"하게 했다.
보트와 물품을 썰매로 육로로 운반하려는 시도가 실패한 후, 섀클턴은 그 노력이 너무 힘들고, 파티가 북쪽으로 이동하여 부서질 때까지 얼음 위에서 야영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많은 파티가 여전히 마스트와 밧줄이 그대로 있고 선수만 얼음 위에 있는 ''인듀어런스''로 보내져 남아있는 모든 물건을 구출했다. 배를 버린 지 이틀 후, 배는 포캐슬까지 잠겼다. 많은 양의 식량이 잠긴 하부 갑판에 남겨졌다. 그것들을 되찾는 유일한 방법은 갑판을 뚫는 것이었는데, 이곳은 곳에 따라 두께가 30cm 이상이었고, 그 자체로 91cm의 물 아래에 있었다. 구멍을 뚫자 일부 상자와 상자가 떠올랐고, 다른 것들은 갈고리로 회수했다. 총 3.5톤에 가까운 물품이 난파된 배에서 회수되었다.
파티는 11월 8일에도 여전히 ''인듀어런스'' 잔해에서 3.2km 떨어진 곳에서 야영을 하고 있었는데, 섀클턴은 추가 구조를 고려하기 위해 배로 돌아갔다. 이때 배는 얼음 속으로 46cm 더 가라앉았고, 상부 갑판은 이제 거의 얼음과 수평을 이루었다. 배 내부는 빽빽하게 다져진 얼음과 눈으로 거의 가득 차 있어서 더 이상의 작업은 불가능했다.

{{외부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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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 새로운 압력파가 유빙을 휩쓸었다. 선수가 마침내 부서지면서 선수 상갑판 마스트와 상단 마스트가 무너졌다. 이 순간들은 탐험대 사진작가 프랭크 헐리가 촬영했다. 주 마스트는 기저부 근처에서 갈라졌고, 곧 주 마스트와 미즈노 마스트가 부러져 함께 무너졌는데, 이것 또한 헐리가 촬영했다.
11월 21일 늦은 오후에, 또 다른 압력파가 덮치면서 남은 잔해의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1분도 안 되는 사이에 ''인듀어런스''의 선미가 얼음에서 들어올려졌고, 유빙이 함께 움직였고, 압력이 지나가고 갈라지면서 전체 잔해가 바다로 떨어졌다. ''인듀어런스''가 침몰한 지점을 둘러싼 얼음은 즉시 다시 합쳐져 잔해의 흔적을 지웠다. 워슬리는 위치를 남위 68°39′30″, 서경 52°26′30″로 기록했지만, 당시 육분의 시야를 확보할 수 없었고, 다음 날 정오에 ''오션 캠프''의 위치를 기준으로 위치를 정했다.
5. 잔해 발견
1998년, 코끼리섬 남서쪽의 표류물로 잘못 알려졌던 난파선 잔해는 사실 1877년 코네티컷의 바다표범 잡이 배 ''찰스 셰어러''의 잔해였다.[11] 2001년, 난파선 수색 전문가 데이비드 미어스는 ''인듀어런스''의 난파선을 찾기 위한 원정을 계획했으나 실패했다.[12] 2003년까지 두 개의 경쟁 그룹이 난파선 탐사 원정을 계획했지만,[12][13] 당시에는 원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0년, 미어스는 난파선 수색을 위한 새로운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협회의 후원을 받았지만, 추정 비용 1,000만 달러의 나머지 자금에 대한 후원을 받아야 했다.[14][15] 2013년 런던 자연사 박물관의 애드리안 글로버의 연구는 남극 순환류가 목재를 갉아먹는 "선충"을 멀리하여 해저에서 난파선을 보존할 수 있다고 정확하게 제안했다.[16] 장거리 자율 수중 차량(AUV)을 사용하여 난파선을 찾고 사진을 찍기 위한 웨델해 탐험이 2018–2019년 남극 여름에 진행되었다.[17] 이 탐험은 연구원들의 AUV가 얼음에 의해 손실되면서 실패했다.[18]
프랭크 워슬리의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있는 캔터베리 박물관에 보관된 원본 항해 일지를 검토하고 그의 항해 방법을 면밀히 연구한 후, 라르스 베르그만과 로빈 스튜어트는 일지에 주어진 위치와 관련된 난파선의 예상 위치에 대한 분석을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난파선이 거대한 퇴적물 축적과 침식 없이 약 3,000m의 평평한 지형에 놓여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19] 스코트 극지 연구소의 줄리안 도우데스웰에 따르면, 해저의 알려진 상태는 ''인듀어런스''가 손상되지 않았으며 1915년 유빙에 침몰했을 때와 같은 상태로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한 ''인듀어런스''를 찾기 위한 향후 시도는 2019년의 탐험과 같이 주로 라슨 빙붕의 용해와 후퇴를 연구하기 위해 시작된 다른 주요 과학 탐험에 "추가"될 것이라고 언급했다.[19]
2021년 7월, 포클랜드 해양 유산 신탁은 2022년 초에 사브 잠수 기술을 사용하여 시작될 ''인듀어런스'' 난파선 수색을 위한 새로운 탐험인 Endurance22를 발표했다.[20][21] 발견될 경우, 난파선은 훼손되지 않고 3D로 스캔될 것이다.[22]
2022년 2월 7일 라르스 베르그만, 데이비드 미어스와 로빈 스튜어트는 2021년 7월 저널 오브 내비게이션에 제출된 ''인듀어런스''의 항해에 관한 논문의 사전 인쇄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프랭크 워슬리와 탐험 물리학자 레지날드 W. 제임스가 현대 달 천문력과 별 위치 목록을 사용하여 만든 원래의 달 엄폐 시각을 재분석한 것을 기반으로 했으며, 이를 통해 저자는 ''인듀어런스''의 예상 침몰 위치를 개선할 수 있었다. 저자에 따르면 그들의 최신 논문은 "인듀어런스의 가장 유력한 침몰 위치를 결정하기 위한 보다 완전하고 정확하며 신뢰할 수 있는 기반"이다.[23] 데이비드 미어스는 이들의 분석에 대한 2022 EGR 테일러 강연[24]을 했으며, 최종 논문은 2023년 2월 21일에 온라인으로 게재되었다. 베르그만, 미어스, 스튜어트는 왕립 항해 연구소로부터 "''인듀어런스''의 난파선의 성공적인 위치를 이끌어낸 그들의 선구적인 데이터 분석 및 모델링에 대한 인정"으로 특별 공로 증서를 받았다.
5. 1. 발견 과정
인듀어런스호의 난파선은 2022년 3월 5일에 발견되었다.[25] Endurance22는 2022년 3월 9일 보도 자료를 통해 난파선을 웨델해에서 수심 3,008m에서 발견했다고 발표했다.[26][27] 난파선의 위치는 68°44′21″ S, 52°19′47″ W로 밝혀졌으며, 이는 항해 일지에 기록된 위치에서 남쪽으로 4.9해리, 동쪽으로 2.4해리 (총 5.4해리) 떨어진 곳이다. 탐험대 탐사 책임자인 멘슨 바운드는 월슬리의 항해술이 탐험대가 난파선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으며, 그의 역사적인 "상세한 기록은 매우 귀중했다"고 말했다.[29] 또한, 웨델해를 연중 덮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수중 탐험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로 두꺼운 해빙이 1970년대부터 우주 위성 기록이 시작된 이후 남극 주변에서 최저 수준으로 기록되었다.[30]남아프리카 연구선 ''S. A. 아굴라스 II''에 탑승한 발견자들은 난파선이 놀랍도록 좋은 상태였으며, 초고화질 3D 스캔을 포함하여 광범위하게 촬영하고 사진을 찍었다고 말했다.[31] 선미에 새겨진 ''Endurance''라는 이름은 여전히 뚜렷하게 읽을 수 있다.[27] 팀의 약속에 따라, 배는 남극 조약 시스템에 명시된 보호 역사 유적 및 기념물의 정의에 따라 난파선 또는 그 내용물의 일부도 인양하지 않았다.[32][33] 난파선 주변의 법적 보호 경계는 500m에서 1,500m로 확대될 예정이다.[34]
''Endurance''를 찾고 발견하는 과정은 탐험대의 교육 파트너인 ''Reach the World''의 노력 덕분에 전 세계 학생들이 따라갈 수 있었다.[35] ''Reach the World''는 라이브 스트리밍을 진행하고,[36] 교육 자료를 제작했으며,[37] 탐험 전, 중, 후에 정기적으로 정보 업데이트를 게시했다.[38]
5. 2. 난파선 상태
인듀어런스호의 난파선은 2022년 3월 5일에 발견되었다.[25] 2022년 3월 9일, Endurance22는 보도 자료를 통해 웨델해 수심 3,008m 지점에서 난파선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26][27] 난파선의 실제 위치는 남위 68° 44′ 21″, 서경 52° 19′ 47″로, 항해 일지에 기록된 위치에서 남쪽으로 9.1km, 동쪽으로 4.4km(총 10km) 떨어진 곳이다.[29] 탐험대 탐사 책임자인 멘슨 바운드는 월슬리의 항해술과 상세한 기록이 난파선을 찾는 데 매우 귀중했다고 말했다.[29] 또한, 1970년대부터 우주 위성 기록이 시작된 이후 웨델해를 덮고 있는 해빙이 남극 주변에서 최저 수준으로 기록되어 수중 탐험이 가능했다.[30]남아프리카 연구선 ''S. A. 아굴라스 II''에 탑승한 발견자들은 난파선이 놀랍도록 좋은 상태이며, 초고화질 3D 스캔을 포함하여 광범위하게 촬영 및 사진 촬영을 했다고 밝혔다.[31] 선미에 새겨진 ''Endurance''라는 이름은 여전히 뚜렷하게 읽을 수 있었다.[27] 남극 조약 시스템에 따라 난파선이나 그 내용물의 일부는 인양하지 않았으며,[32][33] 난파선 주변의 법적 보호 경계는 500m에서 1,500m로 확대될 예정이다.[34]
''Endurance''를 찾고 발견하는 과정은 탐험대의 교육 파트너인 ''Reach the World''의 노력으로 전 세계 학생들이 함께했다.[35] ''Reach the World''는 라이브 스트리밍을 진행하고,[36] 교육 자료를 제작했으며,[37] 탐험 전, 중, 후에 정기적으로 정보 업데이트를 게시했다.[38]
6. 승무원
어니스트 섀클턴 경을 포함한 28명의 남자가 《인듀어런스》(1912년 배)의 마지막 항해에 참여했다.[39] 이들은 수컷 선상 고양이인 치피 부인과 69마리의 썰매 개, 그리고 탐험 중 태어난 강아지들을 동반했다. 《인듀어런스》가 유빙에 갇혀 파괴된 후, 섀클턴은 치피 부인과 어린 개들 중 일부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사살했다.
- 어니스트 섀클턴 경, 탐험대장
- 프랭크 와일드, 부지휘관
- 프랭크 워슬리, 선장 및 항해사
- 라이오넬 그린스트리트, 일등 항해사
- 톰 크린, 이등 항해사
- 알프레드 치탐, 삼등 항해사
- 허버트 허드슨, 항해사
- 루이스 릭킨슨, 기관사
- 알렉산더 커, 기관사
- 알렉산더 맥클린, 외과 의사
- 제임스 맥길로이, 외과 의사
- 제임스 워디 경, 지질학자
- 레너드 허시, 기상학자
- 레지널드 제임스, 물리학자
- 로버트 클라크, 생물학자
- 프랭크 헐리, 사진 작가
- 조지 마스턴, 예술가
- 토마스 오드-리스, 모터 전문가 및 창고지기
- 해리 "치피" 맥니시, 목수
- 찰스 그린, 요리사
- 월터 하우, 우수 선원
- 윌리엄 베이커웰, 우수 선원
- 티모시 매카시, 우수 선원
- 토마스 맥클레오드, 우수 선원
- 존 빈센트, 뱃사공
- 어니스트 홀니스, 보일러공
- 윌리엄 스티븐슨, 보일러공
- 퍼스 블랙보로우, 급사
7. 유산
영국 해군의 남극 순찰선 두 척이 섀클턴의 배를 기리기 위해 ''인듀어런스''로 명명되었다. 1956년 5월에 진수되어 나중에 A171 깃발 번호가 부여된 첫 번째 는 1986년까지 얼음 순찰 및 수로 측량선으로 운용되었다.[40] 두 번째 는 1991년 노르웨이에서 구매했으며, MV ''폴라 서클''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처음에는 그 이름을 유지하다가, 얼음 파쇄선으로 운용되면서 ''인듀어런스''로 개명되었다.[40] 스페이스X의 크루 드래곤 ''인듀어런스''는 이 배를 기리기 위해 부분적으로 명명되었다.[41] 2021년, 린드블라드 익스페디션은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협력하여 섀클턴의 항해를 기리는 극지 크루즈선 ''인듀어런스''를 출시했다.[42][43]
레고는 2024년 11월 29일 블랙 프라이데이를 맞아 인듀어런스를 기반으로 한 세트를 출시했다.[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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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O 10335 The Endurance set for a Black Friday 2024 rele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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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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