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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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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인조쌀은 쌀과 유사한 형태로 제조된 식품으로, 메이지 시대부터 연구가 시작되었다. 1950년대 일본에서 마츠우라 키이치로의 제조법을 기반으로 대량 생산되었으며, 정부의 장려와 함께 인기를 얻었으나 품질 저하로 인해 빠르게 시장에서 사라졌다. 현재는 부서진 쌀이나 기타 재료를 쌀 모양으로 성형하거나, 미량 영양소를 첨가하는 방식으로 제조되며, 뉴트리라이스, 울트라 라이스 등 다양한 종류가 개발되어 영양 개선을 위한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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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쌀

2. 역사

인조미(인조쌀)는 제조법이 간단하고 강화미 제조에 용이하다는 이점 덕분에 한때 큰 인기를 얻었으나, 품질이 낮은 제품들이 대량으로 생산되면서 결국 시장에서 사라졌다.[1]

2. 1. 일본

인조미 연구는 메이지 시대부터 이루어졌다. 가장 오래된 특허는 1908년(메이지 41년)에 하야시 스에가 취득했다. 감자, 고구마, 옥수수 가루, 밀가루, 보릿가루, 쌀겨 등 다양한 원료로 제조되었지만, 어느 것도 상품화에는 이르지 못했다.[1]

발명가 마츠우라 키이치로가 1950년(쇼와 25년)에 특허를 취득한 '인조미 제조법'을 기반으로 한 제법에 의해 인조미의 양산이 시작되었고, 1953년(쇼와 28년)에 인조미 붐이 일어났다. 희소성도 더해져 한때 폭발적으로 팔렸다.[1]

1953년 10월 27일 각의에서는 '인조미 육성 요강'이 결의되었고, 국가는 국내에 있는 많은 식품 제조 업체에 인조미의 제조를 장려했다.[1]

인조미는 그 제조법이 간단하고 제조 라인에 많은 투자를 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인조미를 만드는 공장은 이러한 국가의 움직임에 힘입어 급속히 그 규모를 확대했다. 또한, 비타민 등을 첨가한 강화미를 만드는 데에도 원료에 반죽하는 것만으로 좋다는 이점이 있었다.[1]

일정 수준의 품질을 갖춘 상품은 쌀에 비해 손색이 없는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편, 조악한 제품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와 인조미 자체에 대한 인상을 깎아내렸다. 결과적으로 '외국 쌀보다 맛없다'거나 '우동을 잘게 썰어 놓은 것 같다' 등 혹평이 자리 잡았고, '인조미 육성 요강' 결의에서 불과 몇 개월 후인 쇼와 29년 봄이 지나면서 전혀 팔리지 않게 되었고, 점차 제조량이 감소했다. 그리고 쇼와 30년대 전반에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1]

3. 제조 방법

메이지 시대부터 인조미 연구가 이루어졌다. 가장 오래된 특허는 1908년(메이지 41년)에 하야시 스에가 취득했다. 감자, 고구마, 옥수수 가루, 밀가루, 보릿가루, 쌀겨 등 다양한 원료로 제조되었지만, 어느 것도 상품화에는 이르지 못했다.

1950년(쇼와 25년) 마츠우라 키이치로가 특허를 취득한 '인조미 제조법'을 기반으로 인조미 양산이 시작되어, 1953년(쇼와 28년) 인조미 붐이 일어났다. 희소성으로 인해 한때 폭발적으로 팔렸다. 1953년 10월 27일 각의에서는 '인조미 육성 요강'이 결의되어, 국가는 국내 식품 제조 업체에 인조미 제조를 장려했다.

인조미 제조법은 간단하고 제조 라인에 많은 투자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인조미 공장은 국가의 움직임에 힘입어 급속히 규모를 확대했다. 또한, 비타민 등을 첨가한 강화미를 만들 때 원료에 반죽하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이점이 있었다.

일정 수준의 품질을 갖춘 상품은 쌀에 비해 손색이 없어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조악한 제품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와 인조미 자체에 대한 인상을 깎아내렸다. 그 결과 '외국 쌀보다 맛없다'거나 '우동을 잘게 썰어 놓은 것 같다' 등 혹평이 자리 잡았고, '인조미 육성 요강' 결의에서 불과 몇 개월 후인 쇼와 29년 봄이 지나면서 전혀 팔리지 않게 되어 점차 제조량이 감소했다. 그리고 쇼와 30년대 전반에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 일반 쌀과 똑같이 밥을 지을 수 있었으나, 상품에 따라서는 밥을 짓는 동안 녹거나 덩어리 상태가 되기도 했다.
  • 발매 당시 가격은 1 kg당 80(JPY)에서 85엔 정도였다.
  • 제조의 피크는 쇼와 29년 1월경으로, 월간 약 400ton 정도였다.

3. 1. 압출 성형

쌀 모양의 펠릿으로 부서진 쌀이나 기타 재료를 성형할 수 있는 쌀 제조 기계가 존재한다.[1] 쌀 강화는 수많은 기술적 문제를 제시한다. 미량 영양소는 단순히 쌀알에 첨가될 수 없는데, 이는 요리 전에 물로 쌀을 담그고 헹구는 전통적인 방식이 첨가된 영양소의 대부분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열간 압출 공정에서는 쌀가루와 미량 영양소를 시각적으로 천연 쌀과 유사한 제품으로 변환한다. 따라서 비타민과 미네랄이 삽입되어 분리되거나 세척 및 요리 과정에서 헹굼이나 용출을 통해 제거되는 것을 방지한다.

3. 2. 영양 강화

쌀 모양의 펠릿으로 부서진 쌀이나 기타 재료를 성형할 수 있는 쌀 제조 기계가 존재한다.[1] 쌀 강화는 여러 기술적 문제를 야기하는데, 미량 영양소를 단순히 쌀알에 첨가하면 조리 전 물로 헹구는 과정에서 대부분 제거되기 때문이다.

열간 압출 공정에서는 쌀가루와 미량 영양소를 시각적으로 천연 쌀과 유사한 제품으로 변환한다. 이를 통해 비타민과 미네랄이 쌀에 삽입되어 분리되거나 세척 및 요리 과정에서 헹굼이나 용출로 제거되는 것을 방지한다.

'''뉴트리라이스'''는 뜨거운 압출 기술을 활용하는 쌀 강화 방법으로, 숨겨진 기아 문제를 해결하고 쌀 강화의 과제를 충족하는 일종의 재구성된 강화 이다.[2] 뉴트리라이스 생산은 여러 미량 영양소로 쌀을 효율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독특한 가능성을 제공하며, 비타민 A와 B군, 철분, 아연과 같은 비타민과 미네랄을 선택하여 포함할 수 있다.

세척 안정성, 보관 안정성, 조리 거동, 시각적 외관 및 조리된 쌀의 질감과 같은 강화 쌀의 특성과 관련하여, 뜨거운 압출은 강화 쌀 커널을 생산하는 데 권장될 수 있다. 뜨거운 압출을 통해 만들어진 강화 쌀 커널은 조리 후 천연 쌀과 가장 유사하다.[3][4]

베이징의 민들레 중학교에서 600명의 이주 노동자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시범 프로젝트에서 8개월 동안 뉴트리라이스를 제공한 결과, 영양실조의 영향이 50% 감소하여 학생들의 전반적인 영양 상태를 평균적인 도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5]

'''울트라 라이스'''는 제임스 P. 콕스 박사와 그의 아내 잔 콕스가 1960년대 캐나다에서 개발한 기술이다. 콕스 박사 부부가 개발한 공정은 시장 가치보다 실행 비용이 더 많이 들었고, 결국 그들은 해당 공정에 대한 특허를 PATH에 이전했다.[6] 울트라 라이스는 2005년에 처음으로 일반적으로 사용 가능하게 되었다.[7]

연구자들은 쌀을 보관하면서 울트라 라이스에 함유된 비타민의 안정성을 평가했다. 아스코르브산, 포화 지방, 항산화제가 고습도 환경에서 보관하는 동안 비타민 A를 온전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8] 또 다른 연구에서는 6개월 후에 비타민 A 손실이 안정화되고 조리 중 비타민 A 손실을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9]

비타민 A 결핍은 야맹증을 유발할 수 있는데, 2005년 연구에 따르면 울트라 라이스를 먹은 네팔 임산부 348명이 간, 당근, 캡슐 또는 녹색 잎채소로 비타민 A를 섭취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야맹증 개선 효과를 보였다.[10]

인도 생명공학부, 브라질 농림부, 비소사 연방 대학교 (브라질), 토론토 대학교 (캐나다)는 울트라 라이스 계획의 연구 및 개발에 기여했다.[11] 2009년 테크 혁신 박물관은 주요 세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 사용을 인정하여 PATH에 울트라 라이스 상을 수여했다.[12]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부터 인조미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1908년(메이지 41년) 하야시 스에가 취득한 특허가 가장 오래되었다. 감자, 고구마, 옥수수 가루, 밀가루, 보릿가루, 쌀겨 등 다양한 원료로 제조되었지만, 상품화에는 이르지 못했다.

1950년(쇼와 25년) 마츠우라 키이치로가 특허를 취득한 '인조미 제조법'을 기반으로 인조미 양산이 시작되어 1953년(쇼와 28년) 인조미 붐이 일어났다. 희소성으로 인해 한때 폭발적으로 팔렸으며, 1953년 10월 27일 각의에서는 '인조미 육성 요강'이 결의되어 국가는 국내 식품 제조 업체에 인조미 제조를 장려했다.

인조미는 제조법이 간단하고 제조 라인에 많은 투자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인조미 공장은 국가의 움직임에 힘입어 급속히 규모를 확대했다. 또한, 비타민 등을 첨가한 강화미를 만드는 데에도 원료에 반죽하는 것만으로 좋다는 이점이 있었다.

일정 수준의 품질을 갖춘 상품은 쌀에 비해 손색이 없어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조악한 제품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와 인조미 자체에 대한 인상을 깎아내렸다. 그 결과 '외국 쌀보다 맛없다'거나 '우동을 잘게 썰어 놓은 것 같다' 등 혹평이 자리 잡았고, '인조미 육성 요강' 결의에서 불과 몇 개월 후인 쇼와 29년 봄이 지나면서 전혀 팔리지 않게 되어 점차 제조량이 감소했다. 그리고 쇼와 30년대 전반에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 일반 쌀과 똑같이 밥을 지을 수 있었으나, 상품에 따라서는 밥을 짓는 동안 녹거나 덩어리 상태가 되기도 했다.
  • 발매 당시 가격은 1 kg당 80엔에서 85엔 정도였다.
  • 제조의 피크는 쇼와 29년 1월경으로, 월간 약 400 t 정도였다.

4. 종류

인조쌀은 사용되는 재료와 제조 방법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뉴트리라이스 (NutriRice)'''는 압출 기술을 활용하여 만든 강화 이다. 비타민 A와 B군, 철분, 아연 등 다양한 미량 영양소를 첨가할 수 있다.[2] 조리 후에도 천연 쌀과 유사한 형태와 질감을 유지한다.[3][4] 베이징의 한 중학교에서 뉴트리라이스를 급식으로 제공한 결과, 학생들의 영양실조가 감소하고 영양 상태가 개선되었다.[5]
  • '''울트라 라이스 (Ultra Rice)'''는 1960년대 캐나다에서 개발된 강화 쌀이다.[6] 아스코르브산, 포화 지방, 항산화제 등이 비타민 A의 안정성을 높인다.[8] 네팔 임산부 대상 연구에서는 울트라 라이스 섭취가 야맹증 개선에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었다.[10] 인도, 브라질, 캐나다 등 여러 국가의 연구 기관들이 울트라 라이스 개발에 참여했다.[11]
  • '''기타 곡물을 이용한 인조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옥수수를 이용한 인공 쌀인 "옥쌀" 또는 "강낭쌀"을 만들었다.[13]

4. 1. 뉴트리라이스 (NutriRice)

'''뉴트리라이스'''는 재구성된 강화 의 일종이다. 뉴트리라이스 공정은 뜨거운 압출 기술을 활용하는 쌀 강화 방법으로, 숨겨진 기아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쌀 강화의 과제를 충족한다.[2] 뉴트리라이스 생산은 여러 미량 영양소로 쌀을 효율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독특한 가능성을 제공한다. 비타민 A와 B군, 철분 및 아연과 같은 비타민과 미네랄을 선택하여 포함할 수 있다.

세척 안정성, 보관 안정성, 조리 거동, 시각적 외관 및 조리된 쌀의 질감과 같은 강화 쌀의 특성과 관련하여, 뜨거운 압출은 강화 쌀 커널을 생산하는 데 권장될 수 있다. 뜨거운 압출을 통해 만들어진 강화 쌀 커널은 조리 후 천연 쌀과 가장 유사하다.[3][4]

베이징의 민들레 중학교에는 600명의 이주 노동자 자녀들이 다니고 있으며, 그중 일부는 기숙 학생이다. 2008년, 시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학교의 모든 학생들에게 8개월 동안 뉴트리라이스가 제공되었다. 8개월의 시험 기간 동안 영양실조의 영향이 50% 감소하여 학생들의 전반적인 영양 상태를 평균적인 도시 수준으로 끌어올렸다.[5]

4. 2. 울트라 라이스 (Ultra Rice)

1960년대 캐나다에서 제임스 P. 콕스 박사와 그의 아내 잔 콕스가 20년에 걸쳐 개발하였다.[6] 콕스 박사 부부가 개발한 공정은 제품의 시장 가치보다 실행 비용이 더 많이 들었고, 결국 그들은 해당 공정에 대한 특허를 PATH에 이전했다.[6] 울트라 라이스는 2005년에 처음으로 일반적으로 사용 가능하게 되었다.[7]

연구자들은 쌀을 보관하면서 울트라 라이스에 함유된 비타민의 안정성을 평가했다. 아스코르브산, 포화 지방 및 항산화제가 고습도 환경에서 보관하는 동안 비타민 A를 온전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8] 또 다른 연구에서는 6개월 후에 비타민 A 손실이 안정화되고 조리 중 비타민 A 손실을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9]

비타민 A 결핍은 야맹증을 유발할 수 있다. 2005년 연구에 따르면 울트라 라이스를 먹은 네팔 임산부 348명이 간, 당근, 캡슐 또는 녹색 잎채소로 비타민 A를 섭취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야맹증 개선 효과를 보였다.[10]

인도 생명공학부, 브라질 농림부, 비소사 연방 대학교 (브라질), 토론토 대학교 (캐나다)는 울트라 라이스 계획의 연구 및 개발에 기여했다.[11] 2009년 테크 혁신 박물관은 주요 세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 사용을 인정하여 PATH에 울트라 라이스 상을 수여했다.[12]

4. 3. 기타 곡물을 이용한 인조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옥수수를 이용해 옥쌀 또는 강낭쌀로 알려진 인공 "옥수수 쌀"이 만들어졌다.[13]

5. 사회적 영향 및 활용

인조쌀은 사회적으로 다양한 영향을 미쳤으며, 여러 방면에서 활용되었다. 1950년대 일본에서는 인조미 붐이 일어나면서 1953년에는 '인조미 육성 요강'이 결의될 정도로 국가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는 인조미 제조가 간단하고 강화미 생산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악한 제품이 대량 유통되면서 인조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었고, 결국 1950년대 전반에 시장에서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인조쌀은 일반 쌀과 똑같이 밥을 지을 수 있었지만, 상품에 따라 밥을 지을 때 녹거나 덩어리지는 경우도 있었다. 발매 당시 가격은 kg당 80엔에서 85엔 정도였으며, 제조 정점은 1954년 1월경으로 월간 약 400t 정도였다.

한편, 영양실조 문제 해결을 위해 개발된 뉴트리라이스와 울트라 라이스는 긍정적인 사회적 영향을 미쳤다. 특히, 뉴트리라이스는 베이징의 이주 노동자 자녀들의 영양 상태 개선에 기여한 사례가 있다.

5. 1. 영양 개선

'''뉴트리라이스'''는 뜨거운 압출 기술을 활용하는 쌀 강화 방법으로, 숨겨진 기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2] 비타민 A와 B군, 철분, 아연 등 다양한 미량 영양소를 쌀에 효율적으로 강화할 수 있다.[2] 뜨거운 압출 방식으로 만들어진 강화 쌀은 조리 후에도 천연 쌀과 가장 유사한 특성을 보인다.[3][4]

2008년 베이징의 민들레 중학교에서 8개월 동안 뉴트리라이스를 제공한 결과, 영양실조의 영향이 50% 감소하고 학생들의 영양 상태가 평균적인 도시 수준으로 향상되었다.[5]

'''울트라 라이스'''는 1960년대부터 20년에 걸쳐 개발되었으며, 2005년부터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6][7] 연구에 따르면 울트라 라이스에 함유된 비타민 A는 보관 및 조리 중에도 안정적으로 유지된다.[8][9] 네팔 임산부 대상 연구에서는 울트라 라이스 섭취가 야맹증 개선에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다.[10]

인도 생명공학부 등 여러 기관이 울트라 라이스 연구 개발에 기여했으며, PATH는 2009년 테크 혁신 박물관에서 울트라 라이스 상을 받았다.[11][12]

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부터 인조미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1950년대에 인조미 양산이 시작되어 1953년에는 인조미 붐이 일어났다. 1953년 10월 27일 각의에서는 '인조미 육성 요강'이 결의되어 국가 차원에서 인조미 제조를 장려했다. 인조미는 제조가 간단하고 강화미 제조에도 유리하여 생산이 급증했다.

초기에는 쌀과 유사한 품질로 호평을 받았으나, 조악한 제품의 등장으로 '외국 쌀보다 맛없다'는 혹평을 받으며 1954년 봄 이후 판매량이 급감하여 1950년대 전반에 시장에서 사라졌다.

5. 2. 연구 개발

1950년 마츠우라 키이치로가 특허를 취득한 '인조미 제조법'을 기반으로 인조미 양산이 시작되었고, 1953년에는 인조미 붐이 일어났다. 희소성 덕분에 한때 폭발적으로 팔렸다.[12]

1953년 10월 27일, 일본 각의에서는 '인조미 육성 요강'이 결의되었고, 국가는 국내 식품 제조 업체에 인조미 제조를 장려했다. 인조미 제조법은 간단하고 제조 라인에 큰 투자가 필요 없었기 때문에, 인조미 공장은 국가의 지원에 힘입어 급속히 성장했다. 또한, 비타민 등을 첨가한 강화미를 만들 때 원료에 반죽하기만 하면 된다는 이점이 있었다.[12]

일정 수준 품질을 갖춘 상품은 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조악한 제품이 대량으로 유통되면서 인조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었다. '외국 쌀보다 맛없다', '우동을 잘게 썰어 놓은 것 같다'는 혹평이 나오면서, '인조미 육성 요강' 결의 후 불과 몇 달 만인 1954년 봄부터 판매량이 급감했고, 점차 생산량이 감소했다. 1955년대 전반에는 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졌다.[12]

인조미 연구는 메이지 시대부터 이루어졌다. 가장 오래된 특허는 1908년에 하야시 스에가 취득했다. 감자, 고구마, 옥수수 가루, 밀가루, 보릿가루, 쌀겨 등 다양한 원료로 제조되었지만, 상품화에는 이르지 못했다.[12]

한편, 다른 연구 개발 사례로 '''울트라 라이스'''는 제임스 P. 콕스 박사와 그의 아내 잔 콕스가 1960년대 캐나다에서 살면서 20년에 걸쳐 개발하였다. 콕스 박사 부부가 개발한 공정은 제품의 시장 가치보다 실행 비용이 더 많이 들었고, 결국 그들은 해당 공정에 대한 특허를 PATH에 이전했다. 울트라 라이스는 2005년에 처음으로 일반적으로 사용 가능하게 되었다. 연구자들은 쌀을 보관하면서 울트라 라이스에 함유된 비타민의 안정성을 평가했다. 아스코르브산, 포화 지방 및 항산화제가 고습도 환경에서 보관하는 동안 비타민 A를 온전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6개월 후에 비타민 A 손실이 안정화되고 조리 중 비타민 A 손실을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11]

인도 생명공학부, 브라질 농림부, 비소사 연방 대학교(브라질), 토론토 대학교(캐나다)는 울트라 라이스 계획의 연구 및 개발에 기여했다. 2009년 테크 혁신 박물관은 주요 세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술 사용을 인정하여 PATH에 울트라 라이스 상을 수여했다.[11]

'''뉴트리라이스'''는 일종의 재구성된 강화 이다. 뉴트리라이스 공정은 뜨거운 압출 기술을 활용하는 쌀 강화 방법으로, 숨겨진 기아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쌀 강화의 과제를 충족한다. 뉴트리라이스의 생산은 여러 미량 영양소로 쌀을 효율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독특한 가능성을 제공한다. 비타민 A와 B군, 철분 및 아연과 같은 비타민과 미네랄을 선택하여 포함할 수 있다.[2]

2008년, 베이징의 민들레 중학교에서 600명의 이주 노동자 자녀들을 대상으로 8개월 동안 뉴트리라이스를 제공하는 시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영양실조의 영향이 50% 감소하여 학생들의 전반적인 영양 상태가 평균적인 도시 수준으로 향상되었다.[5]

6. 한국의 인조미 개발 현황 (추가)

1950년 마쓰우라 기이치로가 특허를 취득한 '인조미 제조법'을 기반으로 인조미 양산이 시작되어 1953년에는 인조미 붐이 일어났다. 희소성으로 인해 한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1]

1953년 10월 27일, 일본 각의에서 '인조미 육성 요강'이 결의되었고, 일본 정부는 국내 식품 제조 업체들에 인조미 제조를 장려했다. 인조미 제조법은 간단하고 제조 라인에 많은 투자가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조미 공장은 이러한 국가 정책에 힘입어 빠르게 성장했다. 또한 비타민 등을 첨가한 강화미를 만드는 데에도 원료를 반죽하면 된다는 이점이 있었다.[1]

일정 수준의 품질을 갖춘 인조미는 쌀과 거의 유사하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조악한 제품이 대량으로 유통되면서 인조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었다. '외국 쌀보다 맛없다', '우동을 잘게 썰어 놓은 것 같다'는 혹평이 나오면서 1954년 봄 이후 판매량이 급감했고, 1955년대 전반에 시장에서 사라졌다.[1]

6. 1. 한국의 인조미 관련 정책 (추가)

1953년 10월 27일 각의에서 '인조미 육성 요강'이 결의되면서, 국가는 국내 식품 제조 업체에 인조미 제조를 장려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식량 안보 및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인조미 개발 및 보급 지원 정책을 펼쳤다. 인조미는 제조법이 간단하고 제조 라인에 많은 투자가 필요 없었기 때문에, 인조미 공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또한, 비타민 등을 첨가한 강화미 제조에도 유리했다.[1]

인조미는 쌀과 거의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조악한 제품이 많아 '외국 쌀보다 맛없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결국 1954년 봄 이후 판매량이 급감하여 1955년대를 전후로 시장에서 사라졌다.[1]

인조미는 일반 쌀처럼 밥을 지을 수 있었지만, 일부 제품은 밥을 지을 때 녹거나 덩어리지는 문제가 있었다. 발매 당시 가격은 1kg당 80~85엔 수준이었으며, 1954년 1월경 월간 약 400t 정도가 제조되어 정점을 찍었다.[1]

6. 2. 논란 및 과제 (추가)

인조쌀(인조미)은 그 안전성과 효능, 그리고 경제성에 대한 여러 논란에 직면해 왔다. 초기에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지만, 품질 문제가 제기되면서 소비자들의 인식이 악화되었다.
안전성 및 품질 문제메이지 시대부터 인조쌀 연구가 시작되었고, 1950년대에는 대량 생산이 이루어지면서 인조쌀 붐이 일어났다. 1953년 10월 27일에는 일본 정부가 '인조미 육성 요강'을 결의하여 생산을 장려하기도 했다.[1] 그러나, 조악한 품질의 제품들이 대량으로 유통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러한 제품들은 "외국 쌀보다 맛없다"거나 "우동을 잘게 썰어 놓은 것 같다"는 혹평을 받았다.[1] 일반 쌀처럼 밥을 지을 수 있다고 홍보되었지만, 일부 제품은 밥을 짓는 과정에서 녹거나 덩어리지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1]
경제성 문제발매 당시 인조쌀의 가격은 1kg당 80엔에서 85엔 수준이었다.[1] 제조 피크 시기였던 1954년 1월경에는 월간 약 400t이 생산되었다.[1] 그러나 품질 문제로 인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으면서, 1954년 봄 이후 판매량이 급감했고, 결국 1950년대 중반에는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1]
향후 과제인조쌀이 다시 주목받기 위해서는 안전성, 효능, 경제성 등 여러 측면에서 소비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지속적인 기술 개발과 품질 관리가 필요하며, 소비자들의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참조

[1] 웹사이트 Artificial rice making machine http://www.alibaba.c[...] 2016-06-09
[2] 웹사이트 A breakthrough in rice fortification http://www.world-gra[...]
[3] 논문 Structuring of starch matrices 2009
[4] 논문 Fortification of rice: technologies and nutrients 2014
[5] 웹사이트 NutriRice hot extrusion technology - breakthrough in rice fortification http://www.2020resil[...]
[6] 웹사이트 Ultra Rice: Whatcom County invention holds hope for health http://seattletimes.[...] Seattle Times 2011-05-24
[7] 웹사이트 USAID: Science and Technology – Ultra Rice® http://www.usaid.gov[...] USAID 2011-05-24
[8] 논문 Stabilization of Vitamin A in a synthetic rice premix
[9] 논문 Bioavailability of Vitamin A in a synthetic rice premix
[10] 논문 Recovery from impaired dark adaptation in night-blind pregnant Nepali women who receive small daily doses of vitamin A as amaranth leaves, carrots, goat liver, vitamin A-fortified rice or retinyl palmitate
[11] 웹사이트 PATH: Ultra Rice technology: at a glance http://www.path.org/[...] 2011-05-29
[12] 웹사이트 The Tech Museum Awards – Technology Benefiting Humanity http://www.techaward[...] The Tech Museum of Innovation 2011-05-24
[13] 서적 Cuisine, Colonialism and Cold War: Food in Twentieth-Century Korea https://books.google[...] Reaktion Books 2013
[14] 웹사이트 Startup Innovation Challenge 2018 nominees: Alternative proteins, upcycling side-streams https://www.foodingr[...]
[15] 서적 幻の主食:「人造米ブーム」はなぜ瞬く間に消え去ったのか 一般社団法人日本電子書籍技術普及協会 2021-10-01
[16] 문서 人造米生産育成要綱 https://ndlsearch.nd[...] 内閣 1953-10-27
[17] 간행물 日本の食糧とビタミン強化 http://www.nfri.affr[...] 農林省食糧研究所 19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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