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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형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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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임무형 전술은 지휘관이 부하에게 임무 완수에 초점을 맞춰 자율적으로 행동하도록 하는 전술로, 독일군에서 발전했다. 이는 명령 실행에 중점을 둔 기존 전술과 대조되며, 부하 지휘관이 상급 지휘관의 의도를 이해하고 독립적으로 행동하도록 훈련받는 것이 핵심이다. 훈령 전술은 기동전의 발달과 함께 중요해졌으며, 독일의 전격전 수행의 기반이 되었고, 현대 미국군의 임무형 명령으로 발전했다. 헬무트 폰 몰트케의 연구를 통해 개념이 형성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하인츠 구데리안이 이를 활용하여 전차 부대의 신속한 전진을 이끌었다. 훈령 전술은 유연성을 강조하며, 현대 네트워크 중심전과도 호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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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형 전술

2. 어원

Auftragstaktikde은 독일어 단어로, 영어 번역 과정에서 그 의미가 다소 희석될 수 있다. 이 용어는 단순한 전술이나 리더십 방식을 넘어, "임무/과제 완수에 초점을 맞춘 전술"을 의미하며, 이는 일련의 명령 실행에 초점을 맞춘 Befehlstaktikde(명령 전술)과 대비된다. 독일군에서는 직접적인 명령보다는 "과제" 부여가 분대 수준에 이르기까지 리더십의 표준 수단이었다.[7]

1891년부터 1914년 사이에는 Freies Verfahrende(자유 방식), Freie Taktikde(자유 전술), Auftragsverfahrende(임무 방식), Individualverfahrende(개별 방식), Initiativverfahrende(주도 방식) 등 다양한 용어가 사용되었다.[7]

3. 특징

훈령 전술의 핵심은 부하 지휘관이 명령의 의도를 이해하고, 적절한 지침을 받아 독립적으로 행동하도록 훈련받는 것이다. 상급 지휘관은 부하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명령만 내리고, 명령은 명확하고 간결해야 한다. 명령 수령자는 명령의 의도를 이해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다른 지침을 위반하더라도 행동할 수 있다.[7]

이는 분산된 지휘 문화에서 유지하기 쉬운 개념으로, 모든 계층에서 상세한 명령에 따르도록 훈련받는 조직 구조와 대조된다. 고전적인 독일의 훈령 전술은 모든 지휘관이 자신의 임명보다 두 단계 높은 지휘 수준에서 기능하도록 훈련받을 것을 요구했다. 예를 들어, 독일군에서 부사관이 맡는 소대 지휘관은 필요하다면 대대의 작전을 통제할 수 있어야 했다.[7]

오늘날에는 그러한 문화가 전체 군대가 아닌 엘리트 부대에만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독일 국방군은 1919년부터 1935년까지 한스 폰 젝트의 엄격한 훈련을 통해 훈령 전술을 효과적으로 수행한 대표적인 예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스라엘 방위군이 훈령 전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는 모셰 다얀의 영향이 컸는데,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군 지휘 하에 참전하면서 영국군 참모 훈련 과정에 실망했다고 회고록에 기록했다.[7]

훈령 전술은 자신을 작고, 적에게 둘러싸여 있으며, 멸망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생각했던 프로이센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이스라엘의 상황과 유사하다. 이러한 배경은 다른 군대가 훈령 전술을 채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영국군은 1987년 '임무 지휘'를 채택할 의사를 밝혔지만,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지휘 및 통제에 대한 2004년 영국군 내부 검토 결과 그 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7]

4. 기원

나폴레옹은 끊임없이 기동전을 벌였다. 이베리아 반도 전쟁 이전까지 그는 부대의 더 큰 유연성과 더 나은 배치로 어떤 적이라도 격파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프랑스군이 주로 징집병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은 프랑스군에게 전반적인 이점을 제공한 것은 전문적인 훈련보다는 나폴레옹의 병력 조직이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1806년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나폴레옹에게 프로이센군이 심각한 패배를 겪은 후, 프로이센 군대는 군사적 접근 방식을 재고하고, 자신들을 그렇게 훌륭하게 격파했던 개인적인 천재성에 대한 체계적인 대항책으로 참모본부라는 군사적 역량의 대학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따라서 프로이센군은 탁월함을 제도화하고, 나폴레옹과 유사한 유연성을 구조에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러한 유연성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프로이센군은 또한 참모 장교들에게 각 군사 부대가 임무를 이해하고 실행하도록 하는 능력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오스트리아-프로이센 전쟁의 쾨니히그레츠 전투는 ''임무형 전술(Auftragstaktik)''의 가장 초창기 사용 사례 중 하나로 여겨진다.[9] ''임무형 전술''은 종종 프로이센군에게 결정적인 승리를 안겨준 도구 중 하나로 여겨지지만, 공식적으로 ''임무형 전술''에 대한 인식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보헤미아 전역에서 부하 지휘관이 상사의 지시를 무시하고, 동쪽으로 진군하라는 명령을 받고 남쪽으로 행군하며, 상급 지휘관을 거의 숨기지 않은 경멸로 대하는 것을 "유연한 지휘"의 한 형태로 묘사할 수 있다면, 이는 임무형 전술 사용의 예가 될 수 있다.[9] 대부분의 프로이센 지휘관, 특히 제1 프로이센군의 프리드리히 카를 왕자는 헬무트 폰 몰트케의 전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프리드리히 카를은 그가 이해한 부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몰트케의 명령에 비협조적이었으며, 여러 번 그에게 불복종했다.[10] 전투 중 그는 승인 없이 독자적으로 행동하여 오스트리아군에 대한 조기 공격을 감행하여 거의 재앙으로 이어질 뻔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황태자가 한 시간만 더 늦게 도착했더라면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패배했을지도 모른다.[11]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은 장교단 전체에 걸쳐 신뢰, 역량 및 이해 수준을 구축하여 새로운 수준의 탁월함을 가능하게 했다. 이는 게르하르트 폰 샤른호르스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및 헬무트 폰 몰트케의 전통에 기반하며, 전쟁의 불확실성 속에서 굳어진 규칙이 설 자리가 없다는 전제에 기초했다. 몰트케는 부하들 사이에서 독립적인 사고와 행동을 옹호하는 주요 인물이었다.

장교가 자신의 상황에 대한 견해에 근거하여 행동해야 하는 상황은 다양하다. 명령을 내릴 수 없는 시기에 명령을 기다려야 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상급 지휘관의 의도의 틀 내에서 행동할 때 가장 생산적이다.


''임무형 전술'' 시스템에서 전투 부대의 선택과 전진 경로 및 속도는 부대의 임무, 지형 및 적의 배치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이는 나폴레옹이 잘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높은 수준의 신뢰, 역량 및 이해를 구축하는 것은 이러한 교리의 성공에 매우 중요했다. 이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자유는 프로이센군을 포함한 많은 군대의 군사 규율에 대한 관점에 도전했다.

5. 훈련

제2차 세계 대전 이전과 당시에 독일 참모는 육군의 여러 병과 간에 장교와 부사관을 교차 배치했다. 따라서 포병 및 보병 지휘 경험이 있는 기갑 지휘관을 발견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독일 최고 사령부(OKH)는 워게임을 통해 훈련을 실시하고 교리를 수정, 보완했다. 이러한 훈련은 1933년 야전교범 ''트루펜퓌루(Truppenführung)''에 반영되었다.[12]

6. 교리

교리는 효과적으로 생각하고 작전을 수행하는 방법에 대한 개념적 토대이며, 지도자에게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를 가르친다. 따라서 교리는 공통의 이해를 보장하는 프레임워크이며, 군대 훈련의 기초가 된다.[12]

임무형 전술(Auftragstaktik)은 "마찰"을 극복하기 위해 공식적인 규칙을 선택적으로 중단할 수 있는 교리이다. 여기서 "마찰"이란 잘못된 통신, 병력 이동 실수, 기상 조건으로 인한 지연 등 전투 중 발생하는 문제를 의미한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는 것은 지휘관의 의무이며, 임무형 전술은 지휘관이 주도성, 유연성, 임기응변을 발휘하도록 장려한다.[12]

상황이 변했다면 지휘관은 상위 지휘관의 의도만 유지한 채, 자신의 판단에 따라 명령에 구속되지 않는다고 간주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하급 장교와 부사관이 명령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기술과 자신감을 갖도록 훈련해야 한다. 현장 지휘자의 역할이 중요하며, 그는 수직적인 지휘 계통보다 우선시된다.[12]

전투 중 작전 명령이 이전 작전이나 훈련 연습을 위해 발행된 명령의 복사본인 경우가 있다. 이는 오랜 작전 경험을 통해 상위 지휘관이 명령을 추상적으로 내릴 수 있었음을 시사한다.[12]

헬무트 카를 베른하르트 폰 몰트케는 부하들 사이에서 독립적인 사고와 행동을 옹호하는 주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장교가 자신의 상황에 대한 견해에 근거하여 행동해야 하는 상황은 다양하다. 명령을 내릴 수 없는 시기에 명령을 기다려야 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상급 지휘관의 의도의 틀 내에서 행동할 때 가장 생산적이다."라고 말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 전후 장교단은 모니터링, 코칭 및 훈련을 통해 신뢰, 역량 및 이해 수준을 구축하여 새로운 수준의 탁월함을 가능하게 했다. 이는 게르하르트 폰 샤른호르스트,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헬무트 폰 몰트케의 전통에서 유래되었으며, 전쟁의 환경에서는 굳어진 규칙이 설 자리가 없다는 전제에 기초했다.

임무형 전술 시스템에서 전투 부대의 선택, 전진 경로 및 속도는 부대의 임무, 지형 및 적의 배치에 따라 결정되었다. 높은 수준의 신뢰, 역량 및 이해를 구축하는 것은 이러한 교리의 성공에 매우 중요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하인츠 구데리안은 훈령 전술을 도입하여 부하에게 자유롭게 행동하는 적 부대에 공격 목표를 지정했다. 결과적으로 전 부대를 신속하게 전진시킬 수 있었으며, 이는 부대 지휘관이 될 장교에 대한 교육 훈련 방법에도 영향을 주었다.

7. 정보화 시대

훈령 전술은 현대 군사 네트워크 중심전 개념과 호환되며, 덜 중앙 집중화된 지휘 및 통제(C2) 방식과도 호환된다.[14][15]

고든 R. 설리번 장군은 정보 시대의 전쟁에서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관리하고 과도하게 통제하려는 유혹을 뿌리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휘 계통을 오르내리며 결정을 내리는 것은 경쟁 우위를 무효화한다. 모든 소대와 전차 승무원은 주변 상황, 적의 위치, 적 무기 시스템의 특성과 조준에 대한 실시간 정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지휘관의 의도가 이해되면, 최전선 병사들이 기회를 활용할 수 있도록 결정을 가능한 한 최저 수준으로 위임해야 한다.[16]

8. 효과

미국 육군은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분석하면서, 독일군이 지휘관의 리더십과 주도성 개발에 중점을 두었고, 이는 폴란드 전역에서 보상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이 보고서는 "주도성, 유연성 및 기동성"이 독일 전술의 필수적인 측면임을 인식했다.[16]

임무형 전술의 핵심적인 측면은 전방 통제이다. 작전 지휘관은 결과를 관찰하고, '마찰'을 극복하고 추진력을 유지하기 위해 원래 계획에서 벗어나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개인적 영향력 적용의 영향은 매우 중요하며, 이는 부대의 후방에서 관리하는 참모 장교들이 제공하는 지원으로 가능했다.

이러한 측면은 성공적인 작전에서도 지휘관의 높은 사상률(전체 사망자의 5%)을 초래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하인츠 구데리안은 모든 독일 전차에 무선 수신기를 설치하여 그의 지휘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했다.

통합된 합동 병과 팀의 지휘를 활용하여 공격자의 공격 패턴을 파악하기 어려웠고, 전장의 지배력은 재래식 부대 전략을 무력화하여 "전선이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참조

[1] 간행물 Command Approach: Problem Solving in Mission Command. Proc. 14th International Command and Control Research and Technology Symposium 2009
[2] 간행물 Mission Command: Command and Control of Army Forces Headquarters, United States Department of the Army 2003
[3] 간행물 Command and Control Department of the Navy, Headquarters, United States Marine Corps 1996
[4] 간행물 Conduct of Land Operations – Operational Level Doctrine for the Canadian Army Queen's Printer 1996
[5] 간행물 Land Operations United Kingdom Ministry of Defence, Director General, Development, Concepts, & Doctrine 2005
[6] 웹사이트 Military Review https://www.armyupre[...] 2002-09
[7] 서적 C2 Re-Envisioned: the Future of the Enterprise CRC Press 2015
[8] 서적 Auftragstaktik im preußisch-deutschen Heer 1871 bis 1914 E.S. Mittler and Sohn 2002
[9] 서적 The German Way of War: From the Thirty Years' War to the Third Reich University Press of Kansas 2005
[10] 문서 2005
[11] 문서 2005
[12] 웹사이트 Auftragstaktik and Innere Führung. Trademarks of German Generalship https://www.armyupre[...] Military Review, Band 82 2002-09
[13] 서적 Information Age Transformation: Getting to a 21st Century Military CCRP Press 2002
[14] 간행물 The Evolution Towards Decentralized C2 Proc. 15th International Command and Control Research and Technology Symposium 2010
[15] 서적 C2 Re-Envisioned: the Future of the Enterprise CRC Press 2015
[16] 간행물 Digests and Lessons of Recent Military Operations: The German Campaign in Poland, September 1 to October 5, 1939 U.S. Government Printing Office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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