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바이트의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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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자코바이트의 난은 1688년 명예혁명으로 폐위된 스튜어트 왕가의 제임스 2세와 그 후손들을 지지하며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그리고 1707년 이후에는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왕좌를 복위시키려는 일련의 반란을 의미한다. 자코바이트는 메리 2세와 윌리엄 3세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하노버 왕가가 왕위를 계승한 1714년 이후 반란이 격화되었다. 주요 반란으로는 1715년, 1719년, 1745년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를 옹립한 반란이 있었으며, 1746년 컬로든 전투에서 패배하며 완전히 진압되었다. 자코바이트의 난은 스코틀랜드의 역사와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쳐, 문학과 예술, 특히 스코틀랜드 민요에 많은 흔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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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바이트의 난 | |
---|---|
사건 개요 | |
명칭 | 자코바이트 봉기 |
다른 명칭 | 자코바이트 반란, 영국 왕위 계승 전쟁 |
로마자 표기 | Jakobaiteu Bonggi |
영어 명칭 | Jacobite risings, Jacobite rebellions, War of the British Succession |
라틴어 명칭 | Jacobus |
배경 | |
원인 | 명예 혁명으로 인한 제임스 2세의 폐위 및 윌리엄 3세의 즉위 하노버 왕가에 대한 지지 세력과 스튜어트 왕가에 대한 지지 세력 간의 갈등 |
목표 | 스튜어트 왕가의 복위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가톨릭 부활 |
주요 봉기 | |
1차 봉기 | 1689년 자코바이트 봉기 1689년 던디 봉기 |
2차 봉기 | 1708년 자코바이트 봉기 |
3차 봉기 | 1715년 자코바이트 봉기 |
4차 봉기 | 1719년 자코바이트 봉기 |
5차 봉기 | 1745년 자코바이트 봉기 |
프랑스의 개입 | |
지원 시도 | 1744년 프랑스 침공 계획 1759년 프랑스 침공 계획 |
결과 | |
영향 | 스튜어트 왕가의 복위 실패 하노버 왕가의 확고한 왕위 확보 스코틀랜드 고지대 문화의 쇠퇴 |
관련 인물 | |
주요 인물 | 제임스 2세 제임스 프랜시스 에드워드 스튜어트 (Old Pretender)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 (Young Pretender, Bonnie Prince Charlie) |
관련 가문 | 스튜어트 왕가 하노버 왕가 |
2. 배경
자코바이트 반란은 스튜어트 왕가를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왕좌(1707년 이후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왕좌)에 복귀시키려는 목표로 여러 차례 일어났다.[1] 이들은 명예혁명으로 집권한 메리 2세와 그녀의 남편 오렌지공 윌리엄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았다.[1] 하노버 왕가가 1714년 영국 왕위를 계승하자 격렬한 반란을 일으켰다.[1] 마지막 반란은 1745년 7월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를 옹립하며 시작되었으나, 1746년 4월 16일 컬로든 전투에서 패배하며 완전히 진압되었다.[1]
2. 1. 명예혁명과 스튜어트 왕가의 폐위
스튜어트 왕가를 옹립하려는 자코바이트 반란은 명예혁명 이후 메리 2세와 그녀의 남편인 오렌지공 윌리엄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시작되었다.2. 2. 자코바이트의 등장
스튜어트 왕가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왕좌(1707년 이후에는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왕좌)에 복귀시키려는 목표로 여러 차례 자코바이트 반란이 일어났다.[1] 이들은 명예혁명으로 집권한 메리 2세와 그녀의 남편 오렌지공 윌리엄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았다.[1] 하노버 왕가가 영국 왕위를 계승한 1714년에는 격렬한 반란을 일으켰다.[1] 마지막 자코바이트 반란은 1745년 7월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를 옹립하며 시작되었으나, 1746년 4월 16일 컬로든 전투에서 패배하며 완전히 진압되었다.[1]2. 3. 하노버 왕가의 즉위와 반란의 격화
여러 차례에 걸쳐 일어난 자코바이트 반란의 목표는 스튜어트 왕가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왕좌에 앉히는 것이었다. (1707년 이후에는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왕좌를 목표로 했다.) 이들은 명예혁명으로 집권한 메리 2세와 네덜란드 출신 남편 오렌지공 윌리엄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노버 왕가가 1714년 영국의 왕위를 계승하자 자코바이트는 격렬하게 반발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마지막 자코바이트 반란은 1745년 7월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를 옹립하며 시작되었으나, 1746년 4월 16일 컬로든 전투에서 패배하며 완전히 진압되었다.3. 주요 반란
여러 차례에 걸쳐 일어난 자코바이트 반란의 목표는 스튜어트 왕가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왕좌에 복귀시키는 것이었다. (1707년 이후에는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왕좌) 이들은 명예혁명으로 집권한 메리 2세와 그녀의 남편 오렌지공 윌리엄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노버 왕가가 1714년 영국의 왕좌를 계승하자 격렬한 반란을 일으켰다. 최후의 자코바이트 반란은 1745년 7월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를 옹립하며 시작되었으나, 1746년 4월 16일 컬로든 전투에서 패배하며 완전히 진압되었다.[1]
3. 1. 1715년 반란
자코바이트 반란은 스튜어트 왕가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왕좌에 앉히는 것을 목표로 여러 차례 일어났다. 1707년 이후에는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왕좌를 목표로 했다. 이들은 명예혁명으로 집권한 메리 2세와 그녀의 남편인 오렌지공 윌리엄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노버 왕가가 왕위를 계승한 1714년에는 격렬한 반란이 일어났다. 마지막 자코바이트 반란은 1745년 7월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를 옹립하며 시작되었으나, 1746년 4월 16일 컬로든 전투에서 패배하며 완전히 진압되었다.3. 2. 1719년 반란
여러 차례에 걸쳐 일어난 자코바이트 반란의 목표는 스튜어트 왕가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왕좌에 앉히는 것이었다. (1707년 이후에는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왕좌를 목표로 했다.)3. 3. 1745년 반란 (최후의 자코바이트 반란)
자코바이트 반란은 스튜어트 왕가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왕좌에 앉히려는 목표로 여러 차례 일어났다. (1707년 이후에는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왕좌)[1] 최후의 자코바이트 반란은 1745년 7월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를 옹립하며 시작되었으나, 1746년 4월 16일 컬로든 전투에서 패배하며 완전히 진압되었다.[1]3. 3. 1. 컬로든 전투 (1746년 4월 16일)
자코바이트 반란은 스튜어트 왕가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왕좌 (1707년 이후에는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왕좌)에 앉히려는 목표로 여러 차례 일어났다.[1] 이들은 명예혁명으로 집권한 메리 2세와 그녀의 남편 오렌지공 윌리엄의 통치를 인정하지 않았다.[1] 하노버 왕가가 1714년 영국의 왕좌를 계승하자 반란을 일으켰다.[1] 최후의 자코바이트 반란은 1745년 7월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를 옹립하며 시작되었으나, 1746년 4월 16일 컬로든 전투에서 패배하며 완전히 진압되었다.[1]4. 군복
자코바이트 군은 군복을 똑같이 맞춘 것이 아니라, 푸른 보닛과 흰 코케이드(꽃 모양의 리본 장식)로 자코바이트 군임을 식별하였다.
5. 결과 및 영향
자코바이트 반란은 스코틀랜드의 역사와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다양한 작품이 창작되었다. 자코바이트 반란과 관련된 스코틀랜드의 포크송은 다음과 같다.
- 블루 보니츠(Blue Bonnets)
- 화이트 코케이드(White Cockade)
- 셰라무어 파이트(Sherramuir Fight)
- 컴 이 바이 어솔(Cam ye by Atholl)
- 킬리크랭키(Killiecrankie)
- 보니 던디(Bonnie Dundee)
- 조니 코프(Johnny Cope)
- 컴 오버 더 스트림 찰리(Come over the Stream Charlie)
- 오버 더 워터(Over the Water)
- 보니 무어헨(Bonnie Moorhen)
- 윌 이 노 컴 백 어게인(Will ye no Come Back Again)
- 사운드 더 피브로크(Sound the Pibroch)
- 스카이의 뱃노래(Skye Boat Song)
- 이 재커바이츠 바이 네임(Ye Jacobites by Name) - 로버트 번스 작사
- 로지스 어브 프린스 찰리(Roses of Prince Charlie) - 로니 브라운 작사, 작곡
- 보니 블루(Bonnie Blue) - 로이 윌리엄슨 작사, 작곡
5. 1.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사회의 변화
컬로든 전투 이후 영국 정부는 하이랜드 지역의 클랜 체제를 해체하고 전통 문화를 억압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이는 스코틀랜드 사회 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5. 2. 자코바이트의 유산
자코바이트 반란은 스코틀랜드의 역사와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다양한 작품이 창작되었다. 자코바이트 반란과 관련된 스코틀랜드의 포크송은 다음과 같다.- 블루 보니츠(Blue Bonnets)
- 화이트 코케이드(White Cockade)
- 셰라무어 파이트(Sherramuir Fight)
- 컴 이 바이 어솔(Cam ye by Atholl)
- 킬리크랭키(Killiecrankie)
- 보니 던디(Bonnie Dundee)
- 조니 코프(Johnny Cope)
- 컴 오버 더 스트림 찰리(Come over the Stream Charlie)
- 오버 더 워터(Over the Water)
- 보니 무어헨(Bonnie Moorhen)
- 윌 이 노 컴 백 어게인(Will ye no Come Back Again)
- 사운드 더 피브로크(Sound the Pibroch)
- 스카이의 뱃노래(Skye Boat Song)
- 이 재커바이츠 바이 네임(Ye Jacobites by Name) - 로버트 번스 작사
- 로지스 어브 프린스 찰리(Roses of Prince Charlie) - 로니 브라운 작사, 작곡
- 보니 블루(Bonnie Blue) - 로이 윌리엄슨 작사, 작곡
6. 관련 문화
자코바이트의 반란과 관련된 스코틀랜드의 고전 및 현대 포크송은 다음과 같다.
- 블루 보니츠(Blue Bonnets)
- 화이트 코케이드(White Cockade)
- 셰라무어 파이트(Sherramuir Fight)
- 컴 이 바이 어솔(Cam ye by Atholl)
- 킬리크랭키(Killiecrankie)
- 보니 던디(Bonnie Dundee)
- 조니 코프(Johnny Cope)
- 컴 오버 더 스트림 찰리(Come over the Stream Charlie)
- 오버 더 워터(Over the Water)
- 보니 무어헨(Bonnie Moorhen)
- 윌 이 노 컴 백 어게인(Will ye no Come Back Again)
- 사운드 더 피브로크(Sound the Pibroch)
- 스카이 보트 송(Skye Boat Song)
- 이 재커바이츠 바이 네임(Ye Jacobites by Name) - 로버트 번스 작사
- 로지스 어브 프린스 찰리(Roses of Prince Charlie) - 로니 브라운 작사, 작곡
- 보니 블루(Bonnie Blue) - 로이 윌리엄슨 작사, 작곡
6. 1. 스코틀랜드 민요
자코바이트의 반란과 관련된 스코틀랜드의 고전 및 현대 포크송은 다음과 같다.- 블루 보니츠(Blue Bonnets)
- 화이트 코케이드(White Cockade)
- 셰라무어 파이트(Sherramuir Fight)
- 컴 이 바이 어솔(Cam ye by Atholl)
- 킬리크랭키(Killiecrankie)
- 보니 던디(Bonnie Dundee)
- 조니 코프(Johnny Cope)
- 컴 오버 더 스트림 찰리(Come over the Stream Charlie)
- 오버 더 워터(Over the Water)
- 보니 무어헨(Bonnie Moorhen)
- 윌 이 노 컴 백 어게인(Will ye no Come Back Again)
- 사운드 더 피브로크(Sound the Pibroch)
- 스카이 보트 송(Skye Boat Song)
- 이 재커바이츠 바이 네임(Ye Jacobites by Name) - 로버트 번스 작사
- 로지스 어브 프린스 찰리(Roses of Prince Charlie) - 로니 브라운 작사, 작곡
- 보니 블루(Bonnie Blue) - 로이 윌리엄슨 작사,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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