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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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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소는 촉한의 인물로, 장비의 아들이자 유선의 외척이었다. 장비 사후 그의 지위를 계승하여 시중과 상서복야를 역임했다. 촉한 멸망 후에는 초주, 등량과 함께 위나라에 항복하여 유선을 따라 낙양으로 갔으며, 위로부터 열후에 봉해졌다. 소설 《삼국지연의》에도 등장한다. 민간 전승에 따르면 장소는 아버지 장비가 조성한 측백나무 가로수 길을 보며 감격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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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촉한)

2. 생애

장소(張紹)는 형이 젊은 나이에 사망하고, 그 아들인 장준(張遵)도 어렸기 때문에 아버지 장비의 뒤를 이었다. 유선외척이었으며, 시중, 상서복야를 역임했다.

263년, 촉한에 멸망하자 초주, 등지의 아들 등량과 함께 항복하는 사자가 되었고, 유선과 함께 낙양으로 이송되었다. 위로부터 열후에 봉해졌다.

소설 『삼국지연의』에도 등장하며, 그 서술은 정사와 거의 동일하다.

2. 1. 촉한 시대

222년, 장비가 죽자, 그의 지위를 계승하였다.[1] 형이 젊은 나이에 사망하고, 그 아들인 장준(張遵)도 어렸기 때문에 아버지 사후에 그 뒤를 이었다. 유선외척이었으며, 시중, 상서복야를 역임했다.

263년, 촉한에 망하자 위에 항복하였고, 유선과 함께 낙양으로 이송되었다. 촉이 멸망한 후, 장소는 초주, 등지의 아들 등량과 함께 인새를 휴대하는 사자가 되었다. 유선이 낙양으로 호송될 때 수행했으며, 위로부터 열후에 봉해졌다.

소설 『삼국지연의』에도 등장하며, 그 서술은 정사와 거의 동일하다.

2. 2. 촉한 멸망 이후

263년, 촉한에 멸망하자 초주, 등지의 아들 등량과 함께 위에 항복하는 사자가 되었고, 유선과 함께 낙양으로 이송되었다.[1] 위로부터 열후에 봉해졌다.[1]

소설 『삼국지연의』에도 등장하며, 정사(『삼국지』)와 거의 동일하게 묘사된다.

3. 민간 전승

다음은 쓰촨성 광원시 교외의 소화고성에 있는 가맹관 주변의 민간 전승이다.[1]

와구관에서 멀리 랑중까지를 수비 범위로 하던 장비는 군도를 사용하여 병마를 자주 이동시켰지만, 여름과 겨울의 심한 기온 차이로 병사들이 병에 걸리는 일이 끊이지 않았다. 제갈량은 장비의 대책 요청에 의학서와 병법을 인용하며 평소 대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장비는 장소 및 마을 사람들과 함께 더위와 추위를 막기 위해 마을 밖 산림에 진나라 시대부터 있던 측백나무 이식 사업을 추진했다. 촉한 멸망 후, 장소는 위나라에 투항한 유선을 따라 등애에게 항복하던 중 유선과 함께 고목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 장소는 측백나무 가로수길을 보고 감격하여 가로수길을 지키는 조직을 만들게 하고, 유선이 비를 피했던 고목을 '아두백(阿斗柏)'이라 이름 붙였다.

3. 1. 고백의 길 (古柏의 道)

쓰촨성 광원시 교외의 소화고성에 있는 가맹관 주변의 민간 전승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랑중까지를 수비 범위로 하던 장비는 군도를 이용하여 병마를 자주 이동시켰지만, 여름과 겨울의 심한 기온 차이로 인해 병에 걸리는 병사가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제갈량에게 대책을 구했다. 제갈량은 "의학서에는 사계절 기온 변화(봄의 따뜻함, 여름의 더위, 가을의 서늘함, 겨울의 추위)에 대한 대응을 게을리하지 않고 질병을 예방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병법에도 통하는 것이므로, 평소부터 다양한 요인에 대한 대비를 게을리하지 않아야 합니다"라고 답했다.

장비는 장소 및 마을 사람들과 더위와 추위를 막기 위해, 마을 밖 산림에 진나라 시대부터 있던 측백나무 이식 사업을 협의하여 추진했다.

촉한 멸망 후, 장소는 위나라에 투항한 유선을 따라, 위나라의 등애에게 항복하던 도중에 유선과 함께 고목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 장소는 측백나무 가로수길을 보고, 아버지 장비에게 물려받은 우렁찬 목소리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가로수길을 지키기 위해 식수를 도왔던 마을 사람들에게 측백나무 가로수길을 지키는 조직을 만들게 하여 호위하게 했다. 또한 유선이 비를 피했던 고목을 '아두백(阿斗柏)'이라고 이름 붙여, 거기에 있던 모든 문관, 무관, 마을 사람들의 가슴을 감동시켰다고 한다.

4. 유적

취운랑 북쪽 입구에는 장소의 상이 세워져 있고, 고백의 비문(아버지 장비가 심은 잣나무 가로수 길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다)이 새겨져 있어 유선, 장비, 장소 등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고백이 울창하게 우거져 고요한 역도가 단속적으로 이어지며, 수령이 천 년을 넘는 고백도 드물지 않다. 당시부터 사랑받아 명나라 시대까지 심어진 잣나무는 8,000 그루에 달한다고 한다.[1]

5. 친족 관계

관계이름비고
부친장비
장포
조카장준
누이경애황후
누이장황후
매형유선
조카유요
조카유종
조카유찬
조카유심
조카유순
조카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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