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손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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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장손도생은 북위의 인물로, 탁발규를 섬기며 국정 기밀에 관여했고, 탁발사가 즉위한 후 남통장군과 기주 자사에 임명되었다. 이후 북연 공격, 유연 정벌, 혁련창 토벌 등 군사적 업적을 세웠으며, 송나라의 침공을 막아내고 사공과 시중을 역임했다. 상당왕에 봉해졌으며, 451년 82세의 나이로 사망하여 태위로 추증되고 시호는 정(靖)을 받았다.
장손도생은 탁발규를 섬기며 국정의 기밀에 관여했으며, 탁발사와 탁발도를 섬기며 군사적 업적을 쌓았다.
2. 생애
하위 섹션에서 다루는 초기 활동과 군사적 업적 외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435년 (태연 원년), 상당왕(上黨王)에 봉해졌다. 451년 (정평 원년) 10월,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사후 태위로 추증되었고, 시호는 정(靖)이다.
2. 1. 초기 활동
탁발규를 섬기며 국정의 기밀에 관여하였으며, 탁발사가 즉위하자 남통장군(南統將軍) 및 기주자사로 임명되었다. 409년(영흥 원년),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딸을 빼앗아 탁발사에게 바치려다 책망을 받았지만, 옛 신하로서 죄를 받지는 않았다.
418년(태상 3년), 해관과 함께 2만 명의 병사를 이끌고 북연을 공격해 용성까지 진군하였다.
423년(태상 8년), 탁발도가 즉위하자 여음공(汝陰公)이 된 뒤 정위경(廷尉卿)으로 승진하였다.
2. 2. 군사적 업적
탁발규(拓跋珪)를 섬기며 국정의 기밀에 관여하였으며, 탁발사(拓跋嗣)가 즉위하자 남통장군(南統將軍) 및 기주(冀州)자사(刺史)로 임명되었다.
418년(태상 3년), 혜관(奚観)과 함께 2만 명의 병사를 이끌고 북연(北燕)을 공격해 용성(龍城)까지 진군하였다. 423년 탁발도(拓跋燾)가 즉위하자 여음공(汝陰公)이 된 뒤 정위경(廷尉卿)으로 승진하였다. 425년(시광 2년) 탁발도가 유연(柔然)을 정벌할 당시 울권(尉眷)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백막(白漠)과 흑막(黑漠) 사이로 이동해 승리를 거두었다. 427년(시광 4년) 탁발도가 혁련창(赫連昌)을 토벌하려 하자 장손한(長孫翰), 아청(娥淸)과 함께 선봉을 맡아 통만(統万)을 평정하는 데 공헌하였다.
430년 (신가 3년) 송(宋)의 도언지(到彦之)와 왕의(王懿)가 하남(河南)으로 침공해오자 숙손건(叔孫建)과 함께 하상(河上)에서 방어하였다. 431년(신가 4년) 단도제(檀道濟)와 왕의가 활태(滑台)를 구원하려 나서자 이에 맞서 격파한 이후 역성(歷城)까지 추격한 뒤 복귀하였다. 그 공으로 사공(司空) 에 제수된 뒤 시중(侍中)을 겸하였으며, 434년(연화 3년) 군사를 이끌고 북연을 공격하였다.
437년 (태연 3년) 글호(契胡)의 백룡(白龍) 잔당을 서하(西河)에서 격파하였다. 439년 (태연 5년) 유연의 욱구려오제(郁久閭吳提)가 칠개산(七介山)까지 진격해오자 탁발황(拓跋晃)의 명으로 토퇴산(吐頹山)에서 이를 막았으며, 욱구려오제가 퇴각하자 막남(漠南)까지 추격하였다. 444년 (태평진군 5년) 통만에 주둔했다.
2. 3. 사망
451년 (정평 원년) 10월,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 태위로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정(靖)이다.
3. 가족
4. 평가
장손도생에 대한 평가는 위서와 북사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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