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년
1. 개요
451년은 서기 연도이며, 여러 국가와 관련된 다양한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연호로는 중국의 유송, 북위, 북량, 일본의 황기 등이 사용되었으며, 한국의 신라, 고구려, 백제에서도 기년이 사용되었다. 주요 사건으로는 6월 20일 카탈로니아 평원의 전투, 10월 칼케돈 공의회 개최, 프랑크족의 투르네 점령, 아틸라의 카탈라우눔 전투 패배 등이 있다. 또한, 동로마 제국의 마르키아누스 황제 즉위, 파프누티우스의 예루살렘 총대주교 임명, 왜왕 제가 송으로부터 호를 수여받는 사건도 있었다. 이 해에는 여러 인물의 탄생과 사망이 있었으며, 특히 킬데어의 브리짓, 세루그의 야곱 등이 탄생했고 취희왕, 테오도리크 1세, 유의강 등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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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라우눔 전투
451년 갈리아 카탈라우니아 평원에서 서로마 제국과 훈족 연합군 사이에 벌어진 카탈라우눔 전투는 서로마 제국 연합군의 승리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양측 모두 막대한 손실을 입었으며 유럽 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평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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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고등법원
광주고등법원은 1952년에 설치되어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전북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를 관할하며, 제주와 전주에 원외재판부를 두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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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년
1502년은 율리우스력으로 수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으로, 이사벨 1세의 이슬람교 금지 칙령 발표, 콜럼버스의 중앙아메리카 해안 탐험,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상관 설립, 크리미아 칸국의 킵차크 칸국 멸망, 비텐베르크 대학교 설립, 최초의 아프리카 노예들의 신대륙 도착 등의 주요 사건이 있었다.
2. 연호
3. 기년
4. 사건
* 6월 20일 - 카탈라우눔 평원의 전투에서 아틸라 군이 서로마, 서고트, 프랑크 연합군에게 패배했다.
* 10월 8일 - 칼케돈 공의회가 열려, 단성론이 이단으로 배척되었다. 이는 동방 정교회 분열의 시작이었다.
* 왜왕 제는 송으로부터 육국제군사 등에 관한 호를 받았다.
* 10월 8일 – 11월 1일 – 칼케돈 공의회는 유티케스의 단성론을 부인하고, 칼케돈 신조를 제시하였다. 이 공의회의 결과로 오리엔트 정교회가 결국 별도의 교류 단체가 되었다. 예루살렘은 총대주교가 되었고, 알렉산드리아의 디오스코루스는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에서 해임되었다.
* 파프누티우스가 예루살렘의 총대주교가 되었다.
* 로마 제국의 마르키아누스가 동로마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4.1. 서양
* 게르만족의 프랑크족이 갈리아 북부의 투르네를 점령하였다.
* 서로마 제국의 장군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가 아키텐의 서고트족 왕 테오도리크 1세와 동맹을 맺어 훈족의 침략을 막아내고 카탈라우눔 전투에서 아틸라를 격파하였다.
* 봄 – 아틸라는 바스타르나이, 게피다이, 헤룰리, 동고트족, 루기, 스키리족, 튀링겐족 등 봉신들을 소집하여 게르마니아를 휩쓸어 광범위한 공포와 파괴를 야기하였다. 그는 5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벨기카에 도착하여 라인강을 건넜다.
* 4월 7일 – 아틸라의 군대가 골을 침략하여 메츠를 약탈하였다. 스트라스부르, 보름스, 마인츠, 트리어, 쾰른, 랭스, 투르네, 캉브레, 아미앵 및 보베의 주요 도시들이 훈족에 의해 파괴되었다.
* 발렌티니아누스 3세 황제의 딸인 유도키아가 라벤나에서 훈네릭과 결혼하였다. 이 약혼은 서로마 제국과 반달 왕국 간의 군사 동맹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 6월 – 아틸라는 아우렐리아눔(오늘날의 오를레앙)에 접근하고, 도시 주민들은 문을 닫아 그가 포위하도록 강요하였다. 훈족의 침략을 알게 된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군사령관)는 이탈리아에서 골로 신속하게 이동하여 서고트 왕 테오도리크 1세와 힘을 합쳤다.
* 6월 20일 – 카탈라우눔 평원의 전투(샬롱): 아틸라는 오를레앙 근처에서 벌어진 격전을 피하고 카탈라우눔 평원(샹파뉴아르덴)으로 후퇴하였다. 로마 연합군은 훈족을 물리치지만, 테오도리크 1세는 전투에서 사망하였다. 이 전투는 457년에서 461년 사이에 알레만니족, 서고트족, 수에비족, 부르군트족에 맞서 마요리아누스 황제가 거둔 승리 이전,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군사적 승리 중 하나이다.
* 토리스문드는 아버지 테오도리크 1세의 뒤를 이어 서고트족의 왕이 되었다. 그는 툴루즈의 수도에서 즉위하여 히스파니아에서 서고트 왕국을 확장하였다.
4.2. 페르시아
* 5월 26일 - 바르다난츠 전투: 야즈데게르드 2세는 반란 지도자 바르단 마미코니안 휘하의 아르메니아인 군대(66,000명)를 아바라야르 평원(아르메니아)에서 격파했다. 마미코니안이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메니아인들은 이 전투를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승리로 간주하는데, 야즈데게르드가 그들의 노고를 존중하여 그들이 기독교인으로 남도록 허락했기 때문이다. 이 날은 국가적 및 종교적 기념일이다.
* 야즈데게르드 2세는 안식일을 폐지하는 칙령을 발표하고, 유대인 지도자들, 특히 유대인 지도자의 처형을 명령한다.
5. 문화
10월 8일부터 11월 1일까지 Οικουμενική Σύνοδος της Χαλκηδόνας고대 그리스어 (Concilium Chalcedonense라틴어)가 개최되었다. 칼케돈 공의회는 교회의 전 세계 공의회였다. 이 회의에서 유티케스의 단성론이 부인되고, 칼케돈 신조가 제시되었다. 이 공의회의 결과로 오리엔트 정교회가 별도의 교류 단체가 되었다. 예루살렘은 총대주교가 되었고, 알렉산드리아의 디오스코루스는 공의회에 의해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에서 해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