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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서 (동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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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서는 오나라의 장수로, 전종의 차남이자 전역의 형이다. 어려서부터 이름이 알려져 양무장군, 우저독을 역임했다. 241년 작피 전투에서 위나라 군대를 격퇴하는 데 기여했으나, 공신 서열에서 밀려 아버지 전종이 장휴, 고승 등을 참소하는 원인이 되었다. 252년에는 진북장군으로 임명되어 동흥 전투에서 위나라 군대를 격파했으며, 아들 한 명이 정후에 봉해졌다. 44세에 사망했으며, 동생 전역을 비롯한 전씨 일족 대부분이 위나라에 투항한 257년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2. 생애

전서는 전종의 차남이자 전역의 형으로, 어려서부터 명성을 얻었다. 양무장군, 우저독을 역임했다. 241년 작비의 역에서 아버지 전종이 왕릉과 싸울 때 장휴, 고승이 위군을 저지하자, 전단과 함께 위군을 공격해 격퇴했다. 그러나 논공행상에서 장휴, 고승보다 낮은 평가를 받아 원한을 품고 이들을 참소하여 교주로 유배보냈다. 252년 손량 즉위 후 진북장군으로 승진했으며, 동흥의 전투에서 정봉과 함께 위군을 격파하여 아들 한 명이 정후에 봉해졌다. 44세에 사망했으며, 257년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2. 1. 초기 생애 및 관직

전종(全琮)의 차남이자 전역(全懌)의 형이다. 어려서부터 이름이 알려졌으며, 나라의 병사를 받아 지방으로 나갔고 양무장군, 우저독을 역임했다.[1]

2. 2. 작피 전투 (241년)

241년, 아버지 전종이 작피에서 왕릉과 싸웠는데 형세가 불리했다. 승세를 탄 위군을 장휴, 고승이 공격하여 진격을 저지시키자, 전서는 전단과 함께 위군을 공격해 결국 물러나게 했다.[1] 이후 논공행상에서 장휴, 고승의 공을 전서, 전단보다 높여 장휴와 고승은 잡호장군, 전서와 전단은 비장군이 되었다. 이로 인해 전종과 전기는 원한을 품어 장휴, 고승, 고담을 참소하여 교주로 유배보냈다.[1]

2. 3. 동흥 전투 (252년)

252년, 회계왕 손량이 즉위하자 전서는 진북장군으로 옮겨졌다. 이 해 12월, 위나라에서 대군을 일으켜 동흥을 침공하였다. 전서는 정봉(丁奉)과 함께 의논하여 앞서 나가 위군을 격파했다. 이 공으로 아들 한 명이 정후에 봉해졌다.[1]

건흥 원년(252년) 동흥의 전투에서 전서는 정봉과 함께 선수를 쳐서 조위군을 기습할 것을 건의했고, 스스로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 군을 격파했다. 전투는 오나라 군의 대승으로 끝나, 그 공적으로 정후(亭侯)에 봉해졌다.[2]

2. 4. 죽음

44세에 사망했다. 태평 2년(257년), 아우 전역을 비롯한 전씨 일족 대부분이 위나라에 투항했을 때에도, 이듬해(258년) 일족 전상(全尙)이 손침(孫綝) 주살 모의에 가담했을 때에도 이름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257년 전에 죽었을 것 같다.[1] 태평 2년(257년), 아들 전위(全禕)·전의(全儀) 등이 소유지를 둘러싸고 내분을 일으켜, 어머니를 데리고 위나라로 망명했다.[3]

3. 가계

관계이름
할아버지전유
아버지전종
본인전서
아우전기
아우전역
아우전오
조카[1]전정
조카[1]전휘
조카[1]전의
종형제전단
종형제전편
종형제전집


참조

[1] 문서 一説には、全琮が12歳の頃の子であるという
[2] 서적 韋昭著『呉書』
[3] 서적 『三国志』魏志 鍾会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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