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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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치근은 1931년 울산 출생으로, 경남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56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부산, 서울,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를 거쳐 대검찰청 수사국 4과장, 법무부 검찰과장, 서울지방검찰청 부장검사 등을 역임했다. 1979년 검사장으로 승진하여 춘천,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을 거쳐, 1981년 제18대 검찰총장, 1982년 제32대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 검찰총장 발탁은 파격적인 인사로 평가받았으며, 퇴임 후 1984년부터 1989년까지 한국산업은행 이사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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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근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이름 | 정치근 |
| 원어명 | 鄭致根 |
| 로마자 표기 | Jeong Ji-geun |
| 출생일 | 1931년 |
| 국적 | 대한민국 |
| 직업 | 법조인 |
| 경력 | |
| 직책 | 제32대 법무부 장관 |
2. 생애
1931년 경상남도 울산시에서 태어나 경남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1956년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후, 부산지방검찰청, 서울지방검찰청, 대구지방검찰청 등에서 검사로 활동했다. 과묵하고 치밀한 성격으로 알려졌으며[1], 공안 분야에서 주로 경력을 쌓아 '공안통'으로 분류되었다.
이후 대검찰청 수사국 과장, 법무부 검찰과장, 서울지방검찰청 부장검사, 서울지방검찰청 성동지청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9년 검사장으로 승진하여 춘천지방검찰청과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지냈다.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재직 중이던 1981년 12월, 전두환 정부에 의해 제18대 대한민국의 검찰총장으로 발탁되었다. 이는 여러 고등고시 선배 기수들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인사로 평가받았다.[2] 검찰총장 취임 5개월 만인 1982년 5월에는 제32대 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으나, 약 한 달 뒤인 6월에 퇴임하였다.
퇴임 후 1984년부터 1989년까지 한국산업은행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부인 백수자와의 사이에 2남 2녀를 두었다.[7]
2. 1. 초기 생애 및 학창 시절
1931년 경상남도 울산시에서 태어났다. 경남고등학교 재학 중 축구 선수로 활동했으며,[6] 당시 177cm의 큰 키[1]와 우람한 체구, 넘치는 스테미너로 '황소'라는 별명을 가졌다.[6] 1950년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4년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1956년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였다.2. 2. 검사 시절
부산지방검찰청, 서울지방검찰청, 대구지방검찰청 등에서 검사로 근무했다. 과묵하고 치밀한 성격으로 알려졌으며[1], 검사 재직 중 공안 분야에서 경력을 쌓아 '공안통'으로 분류되었다. 1969년 대검찰청 수사국 4과장으로 승진한 이후, 1971년 법무부 검찰과장, 1973년 서울지방검찰청 부장검사를 역임했다. 특히 서울지방검찰청 공안부장으로 재직할 당시에는 김대중 등 재야 인사들이 연루된 3·1 민주구국선언(명동 사건)의 공판을 맡아 엄격하게 공소를 유지했으며[8], 문세광 사건 등 주요 공안 사건을 처리한 공로로 5·16 민족상 안보부문 상을 수상했다. 1977년에는 서울지방검찰청 성동지청장을 지냈다.2. 3. 검찰총장 및 법무부 장관 시절
1979년 검사장으로 승진하여 춘천지방검찰청과 부산지방검찰청에서 검사장을 역임하였다. 과묵하고 치밀한 성격으로 알려진 그는 공안통으로 평가받았으며,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부임한 지 8개월 만에 고등고시 8회 동기들을 제치고 대검찰청 공안부장으로 승진하여 공안 사건 지휘를 맡았다.1981년 12월,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제18대 대한민국의 검찰총장으로 임명되었다. 이는 고등고시 3회인 유태선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 4회인 이길주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5회인 박준양 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6회인 정명래 법무연수원장 등 여러 고시 선배들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발탁이었다.[2] 당시 법조계에서는 이를 "검찰 사상 최대의 인사 개편"으로 받아들였으며,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검찰 체계를 정립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2] 이러한 인사는 전임 검찰총장이 저질 연탄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동력자원부로부터 "갓 출범한 정부의 공신력을 실추시켰다"는 비판을 받은 배경 속에서 이루어졌다.[3]
1981년 12월 17일 열린 검찰총장 취임식에서 정치근은 "격변하는 국내,외 정세와 복잡한 정치경제 사회현상을 냉철히 직시하여 무엇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선이며 검찰권 발동이 국가와 국민생활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넓은 안목으로 예의 관찰하면서 전인격과 전역량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4]
이후 1982년 5월에는 제32대 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 5월 21일 법무부 장관 취임식에서는 약 40분에 걸쳐 "개인과 단체의 조화 및 상,하간의 인화가 있어야 법무행정에 발전이 기약된다"는 취지의 연설을 하였다.[5] 그러나 법무부 장관으로서는 비교적 짧은 기간인 1982년 6월에 퇴임하였다.
2. 4. 퇴임 이후
1982년 6월 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 직에서 퇴임하였다. 이후 1984년에는 한국산업은행 이사장에 임명되어 1989년까지 5년 동안 재직하였다.3. 개인적 특징
정치근은 6척 장신(177cm)[1]으로 과묵하고 치밀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1] 경남고등학교에 재학할 때 축구 선수로 뛰었으며, 우람한 체구와 넘치는 스테미너로 '황소'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6] 검사 시절에도 검찰 축구 경기 대표 선수로 활약했다.[6] 부인 백수자와 2남 2녀를 두었다.[7]
4. 가족 관계
참조
[1]
뉴스
경향신문
1991-01-19
[2]
뉴스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1981-12-16
[3]
뉴스
https://newslibrary.[...]
한겨레
1993-09-14
[4]
뉴스
https://newslibrary.[...]
동아일보
1981-12-17
[5]
뉴스
경향신문
1982-05-22
[6]
뉴스
경향신문
1982-05-21
[7]
뉴스
https://newslibrary.[...]
경향신문
1981-12-16
[8]
뉴스
동아일보
198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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