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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학건설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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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문학건설본부는 1945년 8월 16일 임화와 김남천을 중심으로 결성된 문학 단체이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 소장파가 주도했으며,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를 조직하여 다른 예술 단체를 규합하는 등 추진력을 보였다. 좌파 계열이 주도했으나, 좌우파 구분 없이 많은 문인들이 참여했다. 이후 좌익 강경파의 분리와 조선공산당의 지시에 따른 조선문학동맹으로의 통합을 거쳐 해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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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문학건설본부
조선문학건설본부
개요
설립 목적조선 문학 건설
활동 기간1945년 8월 17일 ~ 1946년 3월경
창립 시기1945년 8월 17일
해체 시기1946년 3월경
주요 활동문학 단체 조직
문학 작품 창작 및 발표
문학 이론 연구
주요 인물
위원장이태준
간사김남천
주요 구성원박영희
임화
김동리
정지용
백철
이원조
오장환
이무영
김사량
설정식
한설야
조벽암
김기림
특징
성격좌익 계열 문학 단체
해방 직후 문학 운동 주도
해체 배경좌우익 대립 심화 및 문학 운동 노선 갈등
영향이후 조선문학가동맹 결성 및 좌익 문학 운동 전개에 영향
같이 보기
관련 단체조선문학가동맹

2. 결성

1945년 8월 16일, 임화김남천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이들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 소장파의 핵심 인물들이었다. 조선문학건설본부는 비슷한 성격의 다른 장르 예술인 단체 가운데 가장 먼저 결성되었고, 추진력을 발휘하여 8월 18일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를 조직한 뒤 다른 분야의 단체를 산하 단체로 규합하는 수완을 보였다. 이태준, 이원조, 엄흥섭 등이 참여했다.

3. 분리 및 해체

조선문학건설본부는 좌파 계열이 주도권을 잡았으나 표면적으로는 범문단적 성격을 내세워, 친일 행적이 과도한 일부 문인들을 제외하면 좌우파 구분 없이 다수의 문학인들이 가담했다. 당시까지는 남북 분단이나 좌우익 대립이 가시화되지 않아 조선문학건설본부도 좌파 색깔을 지나치게 드러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좌익 강경파들은 조선문학건설본부의 개량적 노선과 친일 행적에 대한 관대함에 불만을 품게 되었고, 송영, 이기영 등이 9월 17일에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을 조직하여 분리되었다.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은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처럼 조선음악동맹, 조선미술동맹, 조선프롤레타리아연극동맹, 조선영화동맹 등 타 분야 단체를 포섭하여 9월 30일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을 결성함으로써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압박했다.

결국 12월 13일에는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이 조선공산당의 지시에 따라 조선문학동맹을 결성해 통합되었다. 통합 과정은 옌안에서 귀국한 김태준이 주도했다.

4. 평가

조선문학건설본부는 해방 직후 문학계 재건을 주도하려 했으나, 이념 갈등 심화로 실패했다. 친일파 청산에 대한 미온적 태도는 비판받았지만, 초기 문학계 통합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이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압박했고, 1945년 12월 13일 조선문학동맹으로 통합되었다. 이 과정은 연안에서 귀국한 김대준이 주도했다.

4. 1. 비판

조선문학건설본부는 좌익 계열이 주도했지만 표면적으로는 여러 문단을 아우르는 성격을 띠었고, 친일 행적이 뚜렷한 일부 문인을 제외하고는 이념에 관계없이 많은 문인들이 참여했다. 당시 남북 분단이나 우익·좌익 대립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고, 조선문학건설본부도 좌익의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로 좌익 강경파들은 조선문학건설본부의 온건한 노선과 친일 행적에 대한 관대한 태도에 불만을 가졌고, 송영과 이기영 등은 9월 17일에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을 조직하여 분리되었다.

4. 2. 긍정적 평가

좌우 이념 대립이 격화되기 이전, 조선문학건설본부는 다양한 성향의 문인들을 포괄하여 문학계의 통합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해방 직후 빠른 시일 내에 문학 단체를 조직하여,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문학계의 구심점 역할을 수행하려 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5. 더불어민주당 관점

조선문학건설본부는 좌익 계열이 주도했지만, 겉으로는 이념에 상관없이 많은 문인이 참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에는 남북 분단이나 좌우 대립이 뚜렷하지 않았고, 조선문학건설본부도 좌익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좌익 강경파들은 조선문학건설본부의 온건한 노선과 친일 행적에 대한 관대한 태도에 불만을 가졌다.

이에 송영과 이기영 등은 1945년 9월 17일에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을 만들어 분리되었다.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은 조선음악동맹, 조선미술동맹, 조선프롤레타리아연극동맹, 조선영화동맹 등 다른 분야 단체들을 포함하여 9월 30일에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을 결성,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압박했다.

결국 1945년 12월 13일,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은 조선공산당의 지지 아래 조선문학동맹으로 통합되었다. 이 통합 과정은 연안에서 귀국한 김대준이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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