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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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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세붕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522년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섰다. 그는 풍기 군수로 재직하며 백성을 위한 선정을 펼쳤으며, 1542년 안향의 사당을 세우고 이듬해 한국 최초의 서원인 소수 서원을 창설했다. 이후 황해도 관찰사, 호조 참판 등을 역임하고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며, 사후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무릉잡고》가 있으며, 편서로 《죽계지》, 《동국명신언행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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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붕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주세붕 초상화
이름주세붕
한자 이름周世鵬
경유(景遊)
신재(愼齋)·손옹(巽翁)·남고(南皐)
별호해당 정보 없음
아호해당 정보 없음
시호문민(文敏)
국적조선
성별남성
출생일1495년
출생지해당 정보 없음
사망일1554년
사망지해당 정보 없음
매장지해당 정보 없음
본관상주(尙州)
아버지해당 정보 없음
어머니해당 정보 없음
배우자해당 정보 없음
형제자매해당 정보 없음
자녀해당 정보 없음
친인척해당 정보 없음
관직
직책해당 정보 없음
재임해당 정보 없음
전임자해당 정보 없음
공동 재위자해당 정보 없음
후임자해당 정보 없음
대리청정해당 정보 없음
영의정해당 정보 없음
임금해당 정보 없음
직책2해당 정보 없음
재임2해당 정보 없음
전임자2해당 정보 없음
공동 재위자2해당 정보 없음
후임자2해당 정보 없음
대리청정2해당 정보 없음
영의정2해당 정보 없음
임금2해당 정보 없음
학문
분야해당 정보 없음
스승해당 정보 없음
주요 제자해당 정보 없음
성과해당 정보 없음
주요 저작해당 정보 없음
군사 경력
복무해당 정보 없음
복무 기간해당 정보 없음
소속해당 정보 없음
근무해당 정보 없음
근무 기간해당 정보 없음
최종 계급해당 정보 없음
충성해당 정보 없음
주군해당 정보 없음
지휘해당 정보 없음
참전해당 정보 없음

2. 생애

주세붕은 방유령의 제자로, 1522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김안로의 배척으로 좌천되기도 했으나, 곤양 군수, 풍기 군수 등을 역임하며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쳤다.

1542년에는 안향을 기리는 사당을 세우고, 이듬해 한국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을 창설했다. 그는 타 학문에 대한 유연한 사고와 백성을 위하는 마음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는다. 흉년에는 자신의 재산을 털어 백성을 구휼하기도 했다.

1551년 황해도 감사 시절에는 해주에 수양 서원(문헌 서원)을 세웠다. 이후 청백리에 선정되었고, 사후에는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

2. 1. 초기 생애와 관직 진출

주세붕은 이조·병조 참판을 지낸 방유령의 문인이다. 1522년(중종 17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가 되어 사가독서한 후 검열·부수찬 등을 지냈다. 이항의 소지를 공공연한 자리에 꺼낸 문제와 관련하여 김안로의 배척을 받아 좌천되었다. 그 후 곤양 군수를 거쳐 풍기 군수로 있을 때 여러 일화를 남겼다.

풍기 군수로 있을 때 재산 문제로 동생과 다툰 한 백성이 있었는데, 주세붕은 그 형에게 아우를 업고 종일 동헌 뜰을 돌게 하였다. 몹시 지쳤을 때 불러 '어릴 적 동생을 업어 기를 때에도 다투어 빼앗을 생각을 가졌었느냐?' 하니 자신의 욕심을 부끄럽게 여기고 물러갔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주세붕을 비웃었으나 얼마 안 가 그의 솜씨에 감복하였다. 실록의 사관은 '유학을 겨우 알고 있으나 많은 사람들을 교화시켰다.'라고 평했다.

2. 2. 풍기 군수 시절

중종 17년(1522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正字)가 되어 사가독서한 후 검열·부수찬 등을 지내다가 이항의 소지를 공공연한 자리에 꺼낸 문제와 관련하여, 김안로의 배척을 받아 좌천되었다. 그 후 곤양 군수를 거쳐 풍기 군수로 재임하면서 여러 일화들을 남겼다.

풍기 군수로 있을 때 재산 문제로 동생과 다툰 한 백성이 있었는데, 주세붕은 그 형에게 아우를 업고 종일 동헌의 뜰을 돌게 하였다. 몹시 지치게 되었을 때 주세붕은 '어릴 적 동생을 업어 기를 때에도 다투어 빼앗을 생각을 가졌었느냐?'라고 물었고, 형은 자신의 욕심을 부끄럽게 여기고 물러갔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주세붕을 비웃었으나 얼마 안가 그의 솜씨에 감복하였다. 실록의 사관은 '유학을 겨우 알고 있으나 많은 사람들을 교화시켰다.'라고 평했다.

중종 37년(1542년) 백운동에 고려 말의 학자 안향의 사당을 세웠다. 이듬해 백운동 서원(소수 서원)을 창설하였는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서원이다. 1541년 5월 22일의 실록에서는 '사당의 좌우에 학교를 세워 유생이 거처하는 곳으로 하고, 약간의 곡식을 저축하고, 이자를 받아서, 고을 안의 모든 백성 가운데에서 준수한 자가 모여 먹고 배우게 하였다. 당초 터를 닦을 때에 땅을 파다가 구리 그릇 3백여 근을 얻어 중국에서 책을 사왔는데, 경서(經書)뿐만 아니라 무릇 정·주(程朱)의 서적도 없는 것이 없었으며, 권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이항의 분경과 관련한 문제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다른 유학자들과는 달리 타 학문에 대한 유연한 사고방식과 백성을 위한 마음가짐의 선비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고도 기록되었다. 흉년이 들었을 때, 자신의 재산을 털어가면서 백성들을 구휼하였는데, 그의 구휼 실적은 도내 제일이었다. 풍기 군수에 제수된 지 1년 뒤 조정에서는 이와 관련한 포상 문제를 논하였다.

2. 3. 황해도 관찰사 시절과 이후

1551년(황해도 감사)로 있을 때 해주에 수양 서원(문헌 서원)을 창설하였다. 그는 청백리에 선정되었으며, 사후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

3. 저서 및 작품

주세붕의 저서로는 《무릉잡고(武陵雜稿)》가 있고, 편서로는 《죽계지(竹溪誌)》, 《동국명신언행록(東國名臣言行錄)》, 《심도이훈(心圖彛訓)》 등이 있다. 시가로는 〈도동곡(道東曲)〉, 〈육현가(六賢歌)〉, 〈엄연곡(儼然曲)〉, 〈태평곡(太平曲)〉 등 장가와 〈군자가(君子歌)〉 등의 단가 8수가 전한다.

3. 1. 저서

저서로는 《무릉잡고(武陵雜稿)》, 편서로는 《죽계지(竹溪誌)》·《동국명신언행록(東國名臣言行錄)》·《심도이훈(心圖彛訓)》 등이 있으며, 〈도동곡(道東曲)〉·〈육현가(六賢歌)〉·〈엄연곡(儼然曲)〉·〈태평곡(太平曲)〉 등 장가(長歌)와 〈군자가(君子歌)〉 등의 단가 8수가 전한다.

3. 2. 편서

편서로는 《죽계지》, 《동국명신언행록》, 《심도이훈(心圖彛訓)》 등이 있으며, 〈도동곡〉, 〈육현가〉, 〈엄연곡〉, 〈태평곡〉 등 장가(長歌)와 〈군자가〉 등의 단가 8수가 전한다.

3. 3. 시가

저서로 《무릉잡고(武陵雜稿)》, 편서로 《죽계지(竹溪誌)》·《동국명신언행록(東國名臣言行錄)》·《심도이훈(心圖彛訓)》 등이 있으며, 〈도동곡(道東曲)〉·〈육현가(六賢歌)〉·〈엄연곡(儼然曲)〉·〈태평곡(太平曲)〉 등 장가(長歌)와 〈군자가(君子歌)〉 등의 단가 8수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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