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계순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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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계순은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활동한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1931년 연극배우로 데뷔하여 1936년 조선연극사 해산까지 활동했고, 이후 동양극장과 고려영화협회 극단 고협에서 활동하며 연극과 영화를 병행했다. 1950년 한국 전쟁 중 남편을 잃는 아픔을 겪었으며, 1954년 극단 민예에 합류하여 연극 《백치 아다다》 등에 출연했다. 영화 《벽속의 부인》 등 2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1969년 연극 《석가》에서 호평을 받았다. 1973년과 1974년에는 영화 소품 감독으로도 참여했으며, 1990년 7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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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계순 (배우)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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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지계순 |
원어명 | 池季順 |
출생일 | 1918년 7월 3일 |
출생지 | 일제강점기 조선 함경남도 함흥 |
사망일 | 1990년 6월 16일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국적 | 대한민국 |
직업 | 배우, 가수, 연출가 |
활동 기간 | 1931년 ~ 1990년 3월 |
부모 | 지두한(부) |
형제자매 | 언니 2명 남동생 1명 누이동생 1명 |
학력 | 경성효창소학교 |
수상 | 1990년 MBC 연기대상 TV드라마부문 특별상 추서 |
2. 생애
지계순은 함경남도 함흥에서 연극배우 지두한(친정아버지)의 슬하 1남 4녀 중 셋째딸로 태어나, 충청북도 충주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후 경성부에서 성장하였다. 1936년 조선연극사가 해산된 후에는 《동양극장》에 입단하여 활동하다가, 1939년 〈고려영화협회〉가 조직한 극단인 〈고협〉으로 자리를 옮겨 영화와 연극 활동을 병행하였다. 1940년에는 국민정부 시대 중화민국 대륙 본토 허베이성 베이핑(북경), 톈진(천진)으로 연극 공연을 떠나기도 하였다.
2. 1. 조선연극사 활동과 세 자매
함경남도 함흥에서 연극배우 지두한(친정아버지)의 슬하 1남 4녀 중 셋째 딸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충청북도 충주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그 후 경성부에서 성장하였다. 그녀의 아버지 지두한을 중심으로 1916년 조직되어 13년간 신파극을 이끌어오던 취성좌가 1929년 12월에 해산되고, 그 주축 인물들이 모여 〈조선연극사〉를 창단하였다. 〈조선연극사〉는 독창, 촌극, 합창 등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상연하던 극단으로 유명하였으며 지계순은 1931년 연극배우로 첫 데뷔하였고 1936년 극단이 해산될 때까지 이 극단에서 활동하였다. 지계순과 자매들은 인기 덕에 《모던 판매술》(지계순 노래), 《청춘 문답》(첫째언니 지최순 노래), 《결혼 도피》(둘째언니 지경순 노래) 등의 콩트 음반을 녹음하기도 하고, 실제 자매가 동시에 한 라디오 드라마에 자매 역으로 캐스팅되기도 하였다.2. 2. 해방 이후의 활동
1945년 일제 강점기 조선국 경성부(서울)에서 8·15(광복)를 맞았으며, 1950년 한국 전쟁 때 남편을 북괴군의 손에 잃는 슬픔을 겪었다. 그 후, 1954년 전창근, 최남현 등이 주축이 된 극단 〈민예〉에 들어가 1955년 연극 《백치 아다다》, 1956년 영화 《백치 아다다》에 출연하였다. 이후 1988년 영화 《벽속의 부인》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영화에서 조연 및 단역을 하는 한편, 연극 무대에도 계속 머물며 1969년 연극 《석가》에서의 호연으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자녀가 없었던 그녀는 2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1990년 6월 16일 향년 73세로 세상을 떠났다.2. 3. 한국 전쟁과 개인적 시련
1950년 한국 전쟁 때 남편을 북괴군의 손에 잃는 슬픔을 겪었다. 그 후 1954년 전창근, 최남현 등이 주축이 된 극단 〈민예〉에 들어가 1955년 연극 《백치 아다다》, 1956년 영화 《백치 아다다》에 출연하였다.2. 4. 말년과 죽음
1950년 한국 전쟁 때 남편을 북괴군에 잃는 슬픔을 겪었다. 이후 1954년 전창근, 최남현 등이 주축이 된 극단 〈민예〉에 합류하여 1955년 연극 《백치 아다다》, 1956년 영화 《백치 아다다》에 출연하였다. 1988년 영화 《벽속의 부인》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영화에서 조연 및 단역을 맡았고, 연극 무대에도 계속 머물며 1969년 연극 《석가》에서의 호연으로 호평을 받았다. 자녀가 없었던 그녀는 25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였으며 1990년 6월 16일 향년 73세로 사망하였다.3. 학력
- 경성효창소학교 졸업
4. 출연작
지계순은 연극,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4. 1. 연극
- 1955년 《백치 아다다》
- 1969년 《석가》
- 1980년 《봄봄봄 밤밤밤》
4. 2. 영화
연도 | 제목 | 역할 |
---|---|---|
1956년 | 백치 아다다 | |
1960년 | 애수에 젖은 토요일 | |
1961년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 |
1961년 | 일편단심 | |
1962년 | 성웅 이순신 | |
1967년 | 막차로 온 손님들 | |
1968년 | 울고 넘는 박달재 | |
1969년 | 사나이 유디티 | |
1970년 | 비운의 왕비 | |
1970년 | 탑골 아씨 | |
1973년 | 또순이와 갑순이 | |
1974년 | 회상 | |
1984년 | 고래사냥 | |
1988년 | 벽속의 부인 | |
1989년 | 새벽을 깨우리로다 |
4. 3. 드라마
5. 제작 작품
지계순은 영화 또순이와 갑순이(1973년), 회상(1974년)에서 소품 감독을 맡았다.
5. 1. 영화 소품 감독
지계순은 1973년 영화 《또순이와 갑순이》, 1974년 영화 《회상》에서 소품 감독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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