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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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달은 소설 《수호전》에 등장하는 인물로, 주무, 양춘과 의형제를 맺고 소화산의 산적으로 활동했다. 사가촌을 습격했다가 사진에게 붙잡혔지만, 이후 사진과 의형제를 맺고 친분을 쌓았다. 관원과의 싸움 이후 사진을 두령으로 삼으려 했으나 실패하고, 방랑을 마치고 돌아온 사진을 두령으로 맞아 양산박 합류를 권유하러 온 노지심과 만났다. 화주 태수에게 잡힌 사진을 구출한 후 양산박에 합류했으며, 108성 집결 이후 기병군 소표장 겸 척후로 임명되었다. 방랍의 난 토벌 중 방만춘의 복병에 의해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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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호전 - 양산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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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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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진달 |
별명 | 간을 뛰어넘는 호랑이 |
로마자 표기 | Chen Da |
이명 | 별칭 없음 |
출신 | 야(현재의 한단시, 허베이성) |
첫 등장 | 2장 |
수호전 정보 | |
소속 | 양산박 |
직책 | 표범 두목 경비 장군 |
순위 | 72위, 지주성 |
무기 | 철 창 |
인물 배경 | |
기원 | 소화산 산적 두목 |
기타 정보 | |
간체 | 陈达 |
번체 | 陳達 |
병음 | Chén Dá |
웨이드-자일스 | Ch'en Ta |
2. 생애
주무(朱武), 양춘과 의형제를 맺은 뒤 소화산(少華山)의 산적 노릇을 했으며, 사가촌(史家村)을 습격했으나 사가촌에 있는 사진과 일대일 승부 끝에 붙잡혔다. 이후 주무의 작전으로 인해 석방되었으며, 이들의 의협심에 반한 사진과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이들의 친분이 관원에게 발각되어 결국 관원들과 한바탕 싸움을 벌였으며, 이후 주무, 양춘과 함께 사진을 두령으로 삼으려 했으나 사진은 이를 거부하고 방랑의 길에 나섰다.
그 뒤 전국 방랑을 끝내고 다시 돌아온 사진을 두령으로 맞아들였으며, 이후 사진에게 양산박(梁山泊) 합류를 권유하러 온 노지심(魯智深)과 만났다. 하지만 사진은 화주(華州)의 태수(太守)에게 붙잡혀 있어서 노지심 등 양산박의 호걸들과 함께 사진을 구출했으며, 이후 사진, 주무, 양춘과 함께 양산박으로 들어갔다.
108성 집결 이후에는 기병군(騎兵軍) 소표장(小彪將) 겸 척후(斥候) 중 한 명으로 임명되었으며, 방랍의 난 토벌 도중 방만춘의 복병에 의해 전사했다.
2. 1. 소화산 시절
진달은 예 (오늘날 중국 허베이성 한단) 출신으로, 성격이 급하고 화를 잘 내며 우렁찬 목소리를 가진 인물로 "강을 뛰어넘는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쇠 창을 잘 다루었다. 주무(朱武), 양춘(楊春)과 의형제를 맺은 뒤 Shaohua 산(少華山; 오늘날 산시성 화현 남동쪽)의 산적 노릇을 했다.어느 날, 진달은 식량이 부족해지자 화음현을 습격하여 곡식을 약탈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주무는 화음으로 가는 길에 사진을 만날 수 있는 사가촌을 지나야 한다고 경고했지만, 진달은 주무를 겁쟁이라며 무시하고 부하들을 이끌고 화음으로 향했다.
주 무의 예상대로 사진은 진달의 길을 막았고, 일대일 기마 전투에서 그를 사로잡았다. 그 소식을 들은 주무와 양춘은 사진에게 가서 자신들 또한 체포해달라고 간청하여 함께 죽겠다는 맹세를 지키려 했다. 이들의 끈끈한 정에 감동한 사진은 진달을 풀어주고 셋은 친구가 되었다. 이후 두 세력은 종종 선물을 교환하고 서로 방문하여 술을 마시며 교류했다.
어느 날, 한 사냥꾼이 산적들의 초대에 대한 답신을 발견하고 관청에 보고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관청은 사씨 집으로 체포조를 보냈고, 저택이 포위된 것을 알게 된 사진은 저택을 불태우고 산적 두목들과 함께 탈출하여 소화산에 도착한다. 이후 사진은 산적 두목이 되었다.
2. 2. 양산박 합류
진달은 주무(朱武), 양춘(楊春)과 의형제를 맺고 소화산(少華山)에서 산적 노릇을 하다가 사진(史進)과 일대일 승부 끝에 붙잡혔으나, 주무의 작전으로 석방된 후 사진과 친분을 쌓았다. 관원에게 이들의 친분이 발각되어 싸운 후, 사진을 두령으로 삼으려 했으나 사진은 방랑길에 올랐다.이후 전국 방랑을 끝내고 돌아온 사진을 두령으로 맞이하고, 양산박(梁山泊) 합류를 권유하러 온 노지심(魯智深)과 만났다. 사진이 화주(華州)의 태수(太守)에게 붙잡히자, 노지심 등 양산박 호걸들과 함께 사진을 구출하고 양산박에 합류했다.
2. 3. 최후
진달은 양산박(梁山泊)에 들어간 후, 마군 소표장(小彪將) 겸 척후(斥候) 중 한 명으로 임명되어 사진의 부장으로서 양춘과 함께 전장에서 싸웠다. 조정에 귀순한 후에도 요나라와의 전쟁과 전호, 왕경 토벌에 참전했다.방랍 토벌에서 욱령관(昱嶺關, 현재의 안휘성 섭현 주포촌 근처) 정찰에 나섰다가, 방만춘의 복병에 걸려 화살 세례를 받고 사진, 양춘 등 5명의 두령과 함께 전사하였다.
3. 한국의 관점에서의 평가
4.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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